|
Tuesday, May 22nd, 2007
바이에른 주의 주도로 독일 남부의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인 뮌헨.
보통 뮌헨의 주변 도시, 퓌센과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다녀오느라
정작 뮌헨은 호브 브로이 하우스의 맥주 한 잔으로 기억되는 곳이지만,
나에게는 나름 야심찬 계획이 있었다.
유럽 어디에 내놓아도 결코 손색없는 뮌헨의 미술관 탐험하기!
목줄기를 따라 시원하게 흘러 내려가는 독일 전통 맥주 질리도록 마시기!
독일 친구, 마르쿠스와 토마스 만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뮌헨에서의 첫 날, 부실한 토스트로 주린 배를 채우며
정작 나란 사람은 `어딜 갈까, 무얼 할까`로 한참을 고심...
아침부터 맥주를 마셔댈 수도 없고, 마르쿠스와 토마스는 이미 만날 약속을 해둔 터,
미술관은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노동을 요하는 관계로 피로를 풀고 내일 가고 싶었다.
그럼 대체 어딜가지...
"뮌헨 서쪽에 위치한 바이에른 왕가가 여름에 거주하던 바로크식의 별궁으로
뮌헨에서 손꼽히는 관광지 중의 하나로서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다."
한참을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발견한 님펜부르그 궁전.
오호~ 뮌헨의 도심 속에 숨겨진 바이에른 왕가의 여름 별궁이라~ 이거 살짝 구미가 당겨주시는데??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다고..? 가볍게 산책하고 오후엔 뮌헨 시내나 둘러보면 되겠군~
그래서 출발한 님펜부르그 궁전.
한 두시간이면 금방 둘러보고 나오겠거니 했는데, 도착하고 알게 된 사실.
님펜부르그 궁전은 입이 쩍-하고 벌어질만큼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별궁이었다는 것.
오늘의 미션!
본궁부터 시작해서 궁전 박물관을 구경하고
뒷 정원 곳곳에 숨겨진 별궁들을 숨은 보물 찾기하듯 찾아낼 것.
단, 길을 알려주는 지도 없음.
숲속 갈림길마다 길을 일러주는 가이드도 없음.
그야말로 do it yourself adventure. 커억-;;
앞이 까마득한 거얼~ 길만 안 잃어버리면 본전이닷, 에잇.
님펜부르그 궁정 전체를 둘러보는 패키지 티켓, 8유로.
자자자, 오늘의 이동 경로를 간단히 체크하고, 출발!
영국 햄튼코트에서 너무나도 완벽한 궁전을 이미 보고 와서일까.
제한적으로 개방된 님펜부르크 본궁은 생각보다 기대 이하였다.
무려 8유로씩이나 내고 들어온 곳인데, 본궁부터 나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고
오히려 실망만 안겨주니 불현듯 불안한 걱정이 눈 앞을 가린다.
혹시, 남은 별궁들도,,, 그닥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닐까....
최소한 영어로 설명이라도 써있으면 이것이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인지 대충 이해라도 할 수 있으련만
죄다 독일어로만 설명이 된 본궁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대충 영어 비슷한 단어들을 조합해 내 식대로 이해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등학교때 독일어 공부 좀 열심히 해둘걸,
이제와 밀려오는 후회의 파도는 나를 한없이 먼 곳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본궁에서의 씁쓸함을 지우지 못하고 터벅터벅 걸어 들어간 궁전 박물관.
그 옛날 왕들이 탔던 사냥 썰매, 각 종 마차들, 화려한 말 안장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금빛 찬란한 화려함을 자랑했을 숱한 장식들이 세월의 흐름에 퇴색되어
완벽한 멋을 자아내고 있진 못했지만 오히려 세월의 깊이에 녹아내린 진미를 느낄 수가 있었다.
2층에는 왕가에서 실제로 사용한 찻잔 세트, 그릇 세트, 접시 세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우아한 것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쩜 그 옛날에도 이렇게 완벽한 작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일까.
보는 것들마다 탐이 나는 것이 가져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느라고 고생 좀 했다.
그릇, 찻잔 세트에 눈이 가기 시작하면 시집갈 때가 된 거라고 하던데,,,
이정도로 내 눈길을 끈다면,, 워워워, 위험수위다. 참자 참자.
결혼하려면 아직도 멀었는 걸.
박물관에 있는동안 시원하게 비가 몰아쳤었나 보다.
나오자마자 스믈스믈 비가 그치더니 금세 해가 떠오르기 시작.
하하하~ 타이밍 좋으시고~
세번째로 찾아간 여왕 별궁, 아말리엔부르그
와우, 완벽한 나의 스타일!!!
메인인 본궁보다 어쩜 이렇게 나의 맘을 쏙 잡아버릴 수 있는 거냐.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기품있는 자세로 앉아 교양있게 책을 읽으며 창밖을 바라보는 여왕,
그리고 그 여왕을 찾아 본궁에서 부터 이랴이랴~ 말을 타고 달려온 왕.
동서남북 사방으로 숲이 둘러 싸인 별궁이 그 안에 있는 듯 없는 듯 숨겨져 있어
왕과 여왕이 주변의 시선을 피해 뜨거운 밀애를 더없이 행복하게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별별 상상이 머릿 속에 다 떠오른다.
아말리엔부르그 실내.
여기에 앉아 여왕은 창밖에 시선을 던지며 왕이 오기만을 기다렸겠지.
전체적으로 하늘색 톤에 은색 장식이 곁들여진 실내가 우아하고 고급스러웠다.
나중에 별궁 하나 지을 때 참고해 두어야지.ㅋ
여기서 문제!
과연 이 곳은 어디일까요???
네번째로 찾아간 바덴부르그.
계단 위에 남녀가 별별 포즈를 다 취해가며 사진기 하나를 들고 완전 쇼를 하고 있기에
한번 무안 좀 줘볼까 싶어 빤히 쳐다보니, 내 시선은 신경도 안쓰는 이들.
쳇, 건물로 들어가고 만다.
겉에서 봤을 땐 나름 웅장하더니 안으로 들어가자 뭔지 모르게 휑-한 느낌.
게다가 건물엔 관리직원 한 명과 내가 전부. 점점 난감해진다.
왠지 모를 썰렁한 분위기, 창문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이다지도 어색할 수 있을까.
한바퀴 삥~둘러보는데, 관리 직원의 내 등 뒤를 쫓는 따가운 레이저 같은 시선이 느껴진다.
아우씨, 얼른 나가야겠다. 너무 불편해~~;;
1층은 별반 다를 것 없는 별궁의 구색을 갖추고 있었지만 지하가 유난히 독특했다.
벽 전체가 주방처럼 타일로 꾸며져 있었다.
옛날의 신식 주방이었을까,,, 그런데 아궁이라던지, 뭐 그렇다할 주방 기기들이 보이지 않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내 등을 뒤쫓는 관리 직원의 시선도 무마시킬 겸, 질문을 했다.
"아저씨, 요기 지하, 대체 뭘로 쓰이던 거에요? 주방 맞죠?"
"아~ 이거요? 자자, 이리와 보세요. 저 밑을 자세히 봐요.
전체가 타일로 붙여져 있죠? 옛날에 왕이 말을 타고 와서 목욕을 하던 목욕탕이에요."
"예엣??? 모모모목욕탕이라고요??"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궁전이름도 목욕탕 궁전이지요."
"-_ -ㅋ 아아, 그렇구나. 설명 감사드려요."
목욕탕, 왕의 전용 목욕탕.
본궁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이 곳에 왕의 전용 목욕탕이 있었을 줄이야.
목욕탕 궁전 밖으로 보이는 풍경.
목욕을 하고 개운한 표정으로 밖을 향해 지그시 눈길을 보냈을 왕.
소녀, 이 한 몸 던져 님의 품에 안겨 있다면 얼마나 좋겠사옵나이까~
숲을 타고 타고 아주 깊이 들어와 정 중앙까지 도착했을 때 마주한 님펜부르그 궁전.
정 중앙에 서서 님펜부르그를 마주하고 있자니 왠지 기분이 묘하다.
일 대 일로 맞선을 보듯.
이티와 함께 검지와 검지를 닿아 인사를 나누듯.
중국의 신, 파고다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파고덴부르그.
18세기 유럽을 강타한 차이니즈 스타일의 위력을 알 수 있겠다.
2층의 중국풍 휴실.
나를 포함한 우리 아시아인들에겐 중국풍이 달리 특별한 것도 아닌데
이들에게는 이다지도 높은 가치로 숭앙을 받고 있었음에 새삼 놀라울 따름.
우리가 유럽풍에 사죽을 못쓰는 것을 생각하면 딱히 이해 못 할 일도 아닌데.
서로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갖는 갖지 못한 자의 막연한 동경.
그나저나, 코리안 스타일이 전세계를 강타할 날은 언제쯤 도래하려는지.
오늘의 궁정탐험, 대망의 마지막 코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이탈리안 스타일로 지어진 채플이었다.
특이한 점은 "ruin"의 이미지, 즉 "파괴"의 이미지를 살려 지어졌다는 사실.
처음부터 작정하고 방금 전쟁에서 파괴된 이미지 그대로 생생한 분위기를 살리고자 했다는 것이
쉬이 납득이 가지 않거니와 몇번이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만들었다.
대체 왜,,,??
생각해보니 여기에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라는 공식을 그대로 적용해 볼 수 있겠다.
평민들이야 단 하루라도 궁전에서 화려한 생활을 누려보고 싶었겠지만,
왕족들은 반대로 평민들이나 살 것 같은 초라한 집을 지어
궁정 생활의 화려함과는 동떨어진 별난 재미를 느껴보며 일탈을 가끔씩 즐기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바로 이러한 건물이 탄생하게 된 건지도.
왕족들이 단순한 일탈의 해방감을 맛보기 위하여.
베르사유 궁전 내의 마리 앙트와네트만을 위한 시골마을도 이와 같은 맥락을 잇고 있다고 본다.
4시간여의 님펜부르그 궁정 탐험을 마치고,,,
아침에는 없던 백조들이 유유히 떠다니던 님펜부르그의 오후 풍경
만족스런 미소를 한 가득 머금고 터언~
참 오길 잘 했어.
뮌헨에 와서 여길 놓치고 지나갔더라면 정말 크게 후회했을 뻔 했어.
가슴 팍에 손을 얹어 안도의 한숨을 쓸어 내리고 또 쓸어 내리고,,
이른 아침 왔던 길을 되돌아가 뮌헨 중심가 도착.
짜디 짠 브레첼 빵을 물어 뜯으며 시내 구경에 나섰다.
심심찮은 음식거리에 질질 군침도 흘려가며 대규모의 노천시장 빅투아리엔 마켓을 구경하고,
뮌헨 사람들이 전부 나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마리엔 광장을 지나쳐,
공사중인 신시청사를 아쉬움의 눈빛으로 한번 흘겨주고,
양파 모양의 쌍둥이 탑이 매력 포인트인 프라우엔 교회도
한껏 목을 뒤로 꺾어 찜 찍어두고,
각종 까페, 쇼핑몰이 몰린 카우핑 거리와 기념품 가게가 늘어선 노이하우저 거리를 배회,
셀 수도 없이 많은 가판대에서 신선한 과일들을 파는 모습에
이 곳 저 곳 왔다갔다, 가격 비교하며 체리 한 봉지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아무 것도 안사고 칼스문을 지나,,,
칼스광장까지!
유후!
관광객이 아닌 뮌헨의 한 시민으로
항상 그러하듯 걷던 거리를 걷고, 지나치던 곳을 지나치는 일상적인 느낌.
한국의 김민영말고, 독일의 김민영으로 지금 숨 쉬고 있는 오후의 시간이 끔찍히도 소중하다.
아-! 잠깐 고개를 돌려 버리고 나면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꿈만 같은 시간.
시간은 이미 초저녁을 향해 빠르게 내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기분 그대로 쭈욱 내달리고 싶었던 난, 돌연 영국 정원엘 가야겠단 마음을 먹고.
그냥 고!
마음 내키면 가는 거다. 여행 별 거 있나, 이런 즉흥적인 맛에 하는게지.
젊음의 거리, 슈바빙.
이렇게 신나게 걷고 있었더랬디요, 김양.
어찌어찌 영국 정원엔 잘 도착했는데, 문제는 영국 정원이 너무나 큰기라.
중국 탑 주변으로 둘러싸인 옥외 비어가든이 보고 싶어 찾아 가려는데 도무지 찾질 못하겠는 거다.
이 길 갔다 저 길 갔다, 아우, 이러다간 나가는 길 조차 찾질 못하겠다.
한참을 돌아다녔을까, 결국 포기하고 그냥 맘 껏 돌아다녀보는 걸로 선회했지만,
어디선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나온 외간 남자, 헨리.
"저기, 죄송한데 중국탑 어떻게 가는지 아세요??"
"ㅜ_ㅠ 저도 거기 가고 싶은데 찾다 찾다 못 찾았어요. 죄송해요, 저도 모르겠네요."
"아, 여행 중이신가 봐요?"
"네, 뮌헨은 오늘이 처음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조금 낯서네요."
"저도 여기 온지 일주일 밖에 안됐어요. 공부하려고 왔거든요. 아르헨티나에서요.
지금은 사촌형 집에 있고요. 잠깐 산책하러 나왔는데, 같이 찾아 볼까요? 중국탑?"
"암만 찾아도 못 찾겠던데, 전 포기에요-;; ㅠ_-"
"심심한데 같이 얘기하면서 찾아봐요~ 이래뵈도 제가 방향감각이 있거든요~ 저만 믿어봐요."
뜻밖의 동행군이 생겼다.
중국탑 보고 싶어, 보고 싶어, 했는데, 동지가 생긴 것만으로도 찾기 전부터 든든하다.
"그래요, 그럼. 같이 가요~" 히힛!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헨리는 자전거에서 내려 한 손으로 자전거를 끌고 이미 걸을 태세를 잡고 있었다.
우왓- 자전거 타고 있을 땐 몰랐는데 키 정말 크다. -ㅁ-
초면에 항상 나누는 대화들을 형식적으로 주고 받고 잠시 말이 끊겼는데
헨리, 예상치 못한 습격! 그 놈의 크디큰 손으로 덥썩 내 손을 잡는다.
순간 당황, 얼굴이 버~얼게 졌는데,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
"워워워, 야, 너 뭐하는 거야~" 장난투로 받아치며 손을 빼냈더니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면 실례가 되니? 별 뜻은 없었는데. 우린 이제 편한 친구잖아~"
이-런 능구렁이 같은 발언이라닛!!! -_ -ㅗ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였다고!
"연인 사이나 손 잡지 초면부터 손을 덥썩덥썩 잡진 않는다구. -_ -+ 그것도 허락도 없이"
"아~ 미안미안. 실수했어. 그저 편한 친구처럼 손 잡고 산책하듯 거닐고 싶어서 그랬는데."
"그냥 이렇게 걸어, 짜샤~ 이대로도 좋잖아. 난 아직 이런 거 불편하다그"
"그래, 그럼"
이 남자 편하게 받아줄랬더니 슬슬 경계모드 돌입.
그나마 주위에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아 안심은 해도 되겠는데,,
아무래도 이것도 내가 극복하지 못하는 하나의 문화 차이일까.
내가 너무 보수적으로 구는 걸까.
속으론 순간 찌릿- 전기가 왔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니라고. -_ -;
언제 그랬냐는 듯 화기애애 모드로 다시 돌입한 우리.
"헤이, 민영! 봐봐, 나만 믿으라고 했지? 저기 중국탑이야~"
"우왓! -ㅁ- 정말이네~ 대단해~ㅋㅋ"
헨리가 찾아낸 중국탑, 그리고 옥외 비어가든.
시끌벅적한 옥외 비어가든을 보려면 밤이 더 깊어져야 할 듯 싶었다.
사람이 몇몇 있긴 했지만 밝은 조명 아래 술잔을 부딪히는 북적북적한 풍경은 아직이었다.
조금 실망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중국탑을 끝내 찾고 말았다는 성취감에 그래도 폴짝폴짝.
헨리는 옆에서 영문도 모른채 "얘 왜 이러니?"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센스있게 앞에 서보랜다. 사진 찍어주겠다고.
히힛. 내가 원한게 바로 이런거였다고. 정말 수천 아니, 수만년만의 기념사진 촬영이다.
오늘 헨리 덕분에 사진 한장 건지겠군.
허나, 나중에 본 사진, -_ - 난 울고 싶었다.
뭔 놈이 사진도 이렇게 못찍어. 이왕 찍는 거 예쁘게 좀 찍어주지. 삐딱하게 찍어가지고는,,, 쳇.
"덕분에 중국탑도 찾고, 고마워."
"이제 뭐할거야? 중국탑은 찾았고. 시원하게 맥주 한 잔 안 할래?"
"맥주?? 글쎄,,"
"호숫가 옆에 벤치도 있고, 아니면 잔디도 괜찮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냥 헤어지기도 아쉽잖아. 얘기나 하자."
맥주에 사죽을 못쓰는 김양, 심하게 고민.
뮌헨에서 이룰 야심찬 계획 중의 하나가 아니었던가. 맥주 마시기.
독일 맥주 스타트를 드디어 오늘에야 끊는구낫.
외간남자, 헨리와 술을 마셔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아- 그것이 문제로다.
고민을 하고 말 것도 없이 헨리는 이미 내 팔을 부여잡고 매점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안그래도 알코올 섭취가 필요했는데 잘 됐지 뭐.
"독일 온 지 일주일 밖에 안됐지만 화이트 맥주 마셔보니까 괜찮더라.
단 맛도 나고 좀 순한 맛이 있어서 너한텐 괜찮을 거야. 난 노멀 비어로."
헨리의 추천으로 화이트 비어 한 병과 노멀 비어 한 병을 사들고 호숫가로 향했다.
벤치도 있었지만, 호수를 바로 앞에 두고 잔디에 앉자며 직접 윗옷을 벗어 잔디에 까는 헨리.
오홋- 감동감동ㅋㅋ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네 옷이 더러워 지잖아."
"어차피 빨면 되는데, 뭐. 부담없이 앉아~"
바닥으로 앉히는 헨리의 힘에 못이겨 풀썩 자리에 앉고 말았지만, 앉아보니 이야- 편하다~
"짠!"
청명한 맥주 병 소리가 기분까지 맑게 하는 느낌!
목젖을 타고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화이트 비어 한 모금. 캬아- 이보다 행복할 순 없다!
"헨리, 그거 알아? 나 진짜 여행와서 술 너무 마시고 싶었는데 혼자라서 못 마셨던거.
오늘 너 덕분에 소원 푼다, 야~"
"에이, 뭘. 덕분에 나도 즐거운 걸."
헨리와 내 등 뒤로 펼쳐져 있던 풍경
여느 커플 못지않은 정다운 연인의 모습으로 호숫가에 앉아 즐기는 드링킹.
뮌헨에서의 첫 시작이 참 순조롭다.
우리의 등 뒤로 서서히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각자의 맥주를 비운지는 이미 오래 전이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끝도 없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처음 만났는데도 이렇게 격의 없이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얘기들까지 꺼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헨리, 이제 그만 가자."
"벌써? 갈려고? 그럼 내가 정원 출입구까지 데려다 줄게. 같이 걷자."
우리의 수다는 끝날 줄을 몰랐다.
결국 헨리는, "내일은 뭐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실 순간적으로 내일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행이란 거 얽매이며 다니지 않으리라,
나란 사람, 누군가에게 얽매이고 나기 시작하면 쉽게 질리는 사람인지라
이것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턴 마르쿠스라고 독일 친구 만나서 남은 뮌헨 일정 보내려고"
마르쿠스를 만나기까지 아직 하루라는 시간이 여유가 있었지만, 그렇게 말해두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아쉽네, 내일도 같이 돌아다니면 재밌을 것 같은데,,"
"그래도 오늘 재밌었잖아~ 독일에서 공부 잘하고"
"그럼 인사라도 제대로 하게 해줘"
키 큰 헨리, 큼지막한 두 손으로 내 두 볼을 감싸더니 입에 가벼운 뽀뽀를 쪽.
헉- 순간 당황스러움이 하늘 위로 치솟았지만, 엉거주춤 뒤로 물러나며 어정쩡한 미소를 살짝 띄웠다.
하긴, 여기선 자연스러운 인사인 걸. 촌티내지 말자, 김양. -_ -;;
돌아가는 길, 오랜만의 맥주에 췻기가 올랐던 탓인지, 갑작스런 헨리의 기습 뽀뽀 때문인지
헤롱헤롱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으로 난 그렇게 호스텔로 향했다.
첫댓글 님펜부르그...정말 좋은 곳이죠! 다시 독일을 간다면... 저 곳 만큼은 꼭 가고 싶네요^^ ㅎ
여행다니면서 참 많은 성들을 거닐었지만 님펜부르그는 정말 맘에 와닿았던 곳이에요. 저도 다시한번 가보고 싶다는데 거침없이 한표!
뽀뽀......좋아 좋아....ㅋㅋㅋ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더라는-ㅋㅋㅋ
와.... 뮌헨서 하룻동안 정말 많은 곳을 다니셨네요. 저는 그때 가서 뭐한건지..ㅎㅎ
발걸음이 워낙에 잽싸고 빠르다 보니- ^-^;; 그래도 여행이 길어질수록 여유는 늘어만 가던데요?ㅎㅁㅎ
정말 공주들은 살 맛 났을듯한 .. ㅋㅋㅋ 야.. 적응안되는 뽀뽀 ㅋㅋ
그러게 말이에요, 공주 시켜주면 잘 할 자신 있는데- -_ㅡㅋ 뽀뽀라,,,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와우ㅋㅋㅋ 앤님은 인간관계가 너무 담백하달까;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도 좋지만 여행기 읽다보면 약간 아쉽네요ㅋㅋㅋ
그렇죠?? 그래서 항상 외로웠었나봐요, 여행 내내 짙게 배인 외로움은 여행 마지막날까지도 뿌리쳐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
목욕탕궁전 밖을 바라보시며...왕의 품에 안겨있길 소망하신 anne양~~!! //전혀 안타까워하실 일이 아닌 듯 ㅋㅋ//지금껏 왕의 초상화를 꽤 봤지만, 한 번도 멋지다 생각된 적이 없었거든요.//..음...그런데, 뽀뽀 부분에서 왜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이런~~
하핫~ 그런가요~?! 그래도 한번쯤 꿈꿔보는 희망사항이 아닌가요?? 그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긴 해요-ㅎㅁㅎ;; 뛰어오르기님이 화끈거리시면 저는 어찌나 당황스러웠겠어요ㅋ
다녀온 지 1년도 채 안 됐는데, 또 다시 가 보고 싶네요. 정말 잘 봤습니다. 글을 너무 귀엽게 잘 쓰셔서 헨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라도 기습 키스를 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
유럽의 마력이 참 세긴 세죠?? 가본 곳 또 다시 가보고 싶게 만들정도로요. 맘에 품고만 있다면 언제든 이뤄질 수 있다고 하니까 다시 가볼 날을 그려보자구요~
저도 님펜부르크 넘 좋았어요~~산책하기도 좋고 날도 화창했구여~ 헨리랑 짧은 만남 좋은 추억이 되셨겠네요^^ 부러워요~
산책 코스로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나중에 기회되면 정말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가보고 싶어요, 도시락 바구니 싸들고요~^-^
글쓰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잼있게 읽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