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에 오른다!! 산 봉오리를 뱅-둘러서 60도의 절벽으로 둘러싸인,
마치 고대 이스라엘의 ‘마사다’ 요새와 좀 비슷한, 천혜의 요충지이다!
산성 안에는 상당히 넓은 분지가 있고, 거기에 장기항전을 대비하여 군사시설은 물론이고
임금님의 별궁, 식량창고, 무기창고 심지어 임금님의 낚시터...등, 별아별 시설을 다 갖췄다.
인조는 이곳에서 45여일을 버티다가, 1월 30일 삼전도(지금의 송파)에 나가서,
북쪽을 향하여 3배하고 9번 무릅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치욕적인 항복식을 치룬다.
청의 장수 용골대는, “못난 놈!”하며, 인조의 용안에 침을 퉤-하고 내뱉는다.
1636년 12월 9일, 청나라 오랑캐는 조선을 침략한다!! 12월 15일, 침입군은 압록강을 넘어선지
단 6일 만에 파죽지세로 수도 한성(홍제동)에 도달한다. 그 사이에 있는 여러 군사방어선들은
마치 썩은 기둥처럼 순식간에 무너진다. 심지어 적군이 개성에 입성한 12월 14일 에서야,
‘청군 압록강월경’의 파발마가 조정에 당도했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군사 방위력이다.
침공속도로 보면, 1231년 몽고의 침입 시와 비슷하다. 1592년 임진왜란시의 2주일 만에 한성
함락과 비교하면, 두배 빠른 속도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 기갑부대의 진군속도보다 빠르다.
인조는 12월 15일, “왕제와 삼학사 등 반청대신들을 인질로 보내라”는 청의 화평조건을
무작정 거부한다. 오래전 수립된 수도방위전략에 따라, 종묘의 위패와 신주, 비빈처첩,
사대부집 부녀자들 또 금은재화 등을 강화도로 빼돌리고, 문무백관과 사대부 등
제한된 지배계층만을 대동하고서 장기농성 하고자 '남한산성'으로 내빼게 된다.
일반 백성들의 안위 따위는 애시당초부터 헌신짝처럼 내팽겨진 상태이다.
아마도 6.25전쟁 당시의 원산 피난민처럼, 수많은 백성들이 강화도에서 또 남한산성에서
“우리도 같이 가자”고 아귀다툼으로 매달렸지만, 냉정하게 뿌리치고 몰래 피난가지 않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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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개괄도>
'Arnold Toynbee' 의 ‘역사 반복론’은 상당 부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적군의 침입으로 수도방위가 위태로울 때에, 못난 집권자들은 백성들에게는
결사항전과 수도 사수를 거듭 외치며, 자신들은 안전한 곳으로 야밤중에 줄행랑친다.
몽고의 침입 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또 6.25 전쟁 시, 어쩌면 그렇게 신통할 정도로 다-
똑같을 수가 있었을까!! 다음에도 만약 이런 경우에 부딪치면, 우리 정부는 과연 어떻게 할까??
당시 남한산성에는 1만3천명의 병사가 항전하였다는 기록도 있으나, 당초 수도권에는 군사
쿠데타를 염려하여 대규모 병력을 아예 주둔시키지 않았고, 또 창졸간에 수도권 경찰병력들을
겨우 끌어 모았으며, 대세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마당에 지방관헌들이 근왕병을 제대로
보냈을리 만무하므로, 고작 수 천명 정도가 아니었을까?
12월 29일, 남한산성 방어전 첫 전투(하남 방향)에서, ‘청군은 고작 십여 명이
부상하는데 그쳤으나, 우리는 3백여 명이 포위, 몰살되었다’는 우리 기록도 있으니,
쌍방 전투력의 차이는 마치 장정과 아이의 싸움보다도 더하다.
그 후로 인조는 성문을 굳게 걸어 잠구고서, 험한 절벽산세를 이용하여 꼭-꼭 숨어서 45일을
버틴다. 청군은 산 아래에서 산성을 에워싸고, 외부와의 소통을 끊어 고립무원 상태로 만든다.
인조대왕과 대신들은 삼국지도 안읽어 보았나? 완전 포위상태에서 30일 정도 지나자,
성안에서는 식량보다도 우선 식수가 고갈되기 시작하여 장병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다.
포위 40여일 쯤에는 청군이 산성방어의 최대취약점인 북동쪽 ‘벌봉’ 코스, 검단산 자락의 평편한
능선지대를 찾아내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보병부대 투입하여 산성을 함락시킬 수 있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평지에서의 기병전과 달리 공성의 보병전은 이겨도 병력손실이 상당하므로,
청군은 성벽의 코앞에서 진을 치고서 성안으로 ‘대포’ 만 엄청나게 쏘아댄다. 명나라 원군은
애시당초부터 기대난망이었지만, 그래도 인조는 행여나 하여 고대하며 無대포(‘무대뽀’)로 버텨본다.
드디어 1월29일에는 강화도가 함락되어, 꽃 같은 비빈궁녀들과 사대부의 부녀자들이 청군의 억센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어-쿠!! 큰일 났네! 인조는 비로써 대경실색하여, 청군에 항복을 통보한다.
제대로 된 싸움한 번을 못하고, 50 일만에 농성(?)은 싱겁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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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에서 3 번 큰절을 하고 9번 땅바닥에 머리를 꽝꽝 처박는 인조임금-MBC 드라마 화정>
그 동안에 우리 백성들은 어찌 되었을까? 국왕이 산성 안에 꼭-꼭 숨어서 시간만 끌고 있는 동안에,
청군은 지쳐서 회군하기는 커녕 전국을 휘젓고 다니면서 화풀이로 노략질과 분탕질을 거듭한다.
청군의 기강이 정연하였다는 우리 기록도 있으니, 이게 다 삼국지에 나오는 항복 압박용이다.
기실, 인류사회가 현대에 이르기 전까지, 전쟁에서 승자에 의한 살인, 강간, 강탈...등은
아주 당연한 권리로써 인정되어 왔다. 고로 그들의 천인공노할 만행만을 탓할 수는 없다.
집은 불타고, 자식은 아비를 찾아 헤매고, 아낙은 지아비를 찾아 울부짖으며,
고아, 아사자, 병사자가 길거리에 널려 자뿌러 지고...
조선 팔도는 생지옥이 따로 없는 그런 참혹한 아수라장이 되었지 않았겠나?
휴전 후에도 조정에서는 왕자 두 사람과 반청 삼학사 정도만 볼모로 끌려갔지만, 백성들은
5십만명의 부녀자들이 배상금의 인질로써 청나라로 끌려가서 참으로 비참한 노예 신세가 되었다.
그 중에서 일부 극소수의 여인들은 몸값을 지불하고 환향녀 (화냥뇬)가 되어 되돌아왔지만,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죽지않고 살아서 몸을 더럽힌 나쁜 년, 즉 ‘화냥뇬’이라고 하여
소박 당하고, 문둥이 나병환자처럼 천형의 삶을 살아야 했다. 참으로 기가 막혀 죽을 노릇이다!!
이런 ‘레미제라블’의 사람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단지 위정자들의 알량한 자존심
또는 정권안보 때문에 너무나도, 너무나도 가련한 삶을 살아야 하였던 전쟁포로들을 위하여,
인조 임금이 진정 팔 걷어부치고 실질적으로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가 전쟁이란 다 그런 것이지만, 백성들의 안위 보다는 정권안보를 위한 전쟁!
그런데 그것도 웃통 벗고 한판 붙어볼 만한 상대라면, 또 모르겠다.
지배계층을 그래도 좀 괜찮지만, 백성들은 존나게 얻어터지고 피투성이가 된다.
이런 전쟁 패턴은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몽고의 침입 시나, 임진왜란 당시에나,
또 정묘, 병자호란 당시에나, 항시 매- 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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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로 끌려가는 여인들-의정부시 제작 뮤지컬 '환향녀 의순공주' >
전란으로 인하여 벌어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백성들의 참상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틈바귀에
끼어있는 약소국 백성들의 피할 수 없는 천재(天災) 라기 보다는, 잘만하면 충분히 피할 수도 있는데
정권안보에만 급급하였던 썩어빠진 위정자들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인재(人災)의 성격이 짙다.
도대체, 이런 놈의 역사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왜 우리백성들은 이런 횡음무도한 왕들을 갈아엎지도 못했단 말인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는 위정자의 최우선적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정권안보는 그 다음이 되어야 한다.
고로, 전쟁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니 된다! 무슨 수를 다 써서라도, 결단코 막아야 한다!!
남한산성을 오른다!!
피처럼 빨간 연산홍이 활짝 피어 있는 성벽 길을 거닐며, 부도덕한 전쟁에 휩쓸려갔던
수많은 억울한 생명들을 떠올려 본다. 정권을 지키기 위하여, 백성이 아니라 험한 산세에만
의지하였다가 참혹한 환란을 자초하였던, 인조 왕의 편집광적 이기심에 몸서리 처친다.
또 하늘을 저버린 저- 썩어빠진 위정자들을 제대로 심판하지 못하고,
수수방관하였던 우리역사의 무기력함에 대한 분노가 열불처럼 솟구친다.
20C 영국의 역사학자 E. H. CARR 의 말처럼, 역사판단의 기준은
추상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엄격한 '실용주의’에 근거되어야 한단다.
남한산성 유적지는, 그릇된 민족사관에 의하여
민족자존을 위한 항쟁지로써 치장되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였던 우리 역사의 과오를
뼈아프게 반성하고 참회하는, 반면교사의 장(場)이 되어야만 한다!
또 다시는 그런 역사의 어리석은 반복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민주주의’의 장(場)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과거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만들어 진다~!!
-The End
※원본을 1/2로 압축하니 맛이 가버렸습니다! 2012년 원본 전문 보기!!
^◐남한산성에 올라,TBC ‘꽃들의 전쟁’을 생각한다!!◑^
http://blog.daum.net/bluesun0401/113
첫댓글 2012년에는 JTBC 역사드라마 ‘꽃들의 전쟁’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드라마의 시점인 4백년전 병자호란 당시나 또 작금의 오늘에서나
주전론(主戰論)이 주화론(主和論)을 압도하는 모습이 하- 넘 비슷하여
다시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화면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백성들은 참혹한 전란 속에서 생명과 재산을 잃고
생지옥과 같이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겠지요.
헌데 소위 왕이라는 작자는 그런 중에서도 고대광실, 산해진미 속에서
수많은 미녀들과 희희낙낙 거리며 자신의 권력유지에만 정신팔려 있으니,
정말 한심하고 통탄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런 주길넘....”하는 쌍욕조차 제 맘속에서 여러번 치솟았고,
또 비뚤린 우리 민족사관에 대해 울분을 터트리다가 어느날 성남시 ‘남한산성’을 찾았습니다.
그 때의 피를 토하는 심정을 이 글로써 표출해 봤습니다.
당시 글을 읽고서 어떤분이 크게 공감하여
“사자의 울부짖음이 여기까지 전해지나이다!”라는 댓글을 달아주시기도 했습니다.
무릇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지요!!
허나 당시의 임금들은 “백성이 하늘이다”는 공맹사상의 개념조차도 없으며,
오직 백성들을 마,소와 같은 짐승처럼 자기 소유물로써만 여겼던 듯합니다.
백성의 입장과 피눈물은 눈꼽만치도 생각지 않았던 조선의 왕들을 떠올리면,
이씨조선이란 나라는 우리역사에서 정말로 태어나서는 아니 되었던 귀태(鬼胎)정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4백년전 당시에 조선의 사회지도층들은 아무런 국방력도 없으면서
오직 중국(명) 하나만 믿고서 신흥세력 청나라 오랑캐들과 무모하게 전쟁을 벌렸다가,
온 나라가 개작살나고 피바다되는 참극을 겪었지요.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회지도층들은,
미국의 군사력만 믿고서 무조건 북핵시설을 정밀타격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입니다.
어찌나 시끄럽게 구는지 마치 그게 구원의 복음이라도 되는 양 싶습니다.
외과수술식 정밀타격이 실제 정말 가능할까요?
또 전쟁이 나면, 북의 핵미사일은 미국 본토에 앞서 평택과 용산에 먼저 날라오지 않을까요??
병자호란과는 비교가 안되는 대참극이 벌어져서
이 땅에서 수백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 아닐까요??
“그건 절대 안돼!!”하며 소수의 주화론자(主和論者)들이 몸부림쳐보지만,
힘있고 다수인 주전론자(主戰論者)들의 고성과 험한 기세에 밀려 사그라집니다.
병자호란 때처럼, 주전론은 애국이고 주화론은 종북이라고 하네요!!
역사란 것은 정말 발전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단지 반복하는 것일까요??
지금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역사의 참뜻을 새겨 행동해야 할 때인 듯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런 사람,저런 사람들의 이익행위들이 모여지고 합쳐저서,
종국적으로는 역사발전의 흐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죄송합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원문 전문보기>를 읽어보시면, 어떠실까요??
나라가 자주적이 못하고 민중의 힘을 믿고 그에
의지하지 못하면
결국은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망국노의 신세를 면치 못한다
동감입니다!! kbsns 님~
‘꽃들의 전쟁’을 보면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여러번 해봤습니다.
인간은 지극히 이기적 존재이므로,
단지 자기이익을 위해 개별생활을 버리고 국가라는 집단사회를 만들었지요.
그런데 그 국가라는 것이 내게 무언가 이익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내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으면서 나라를 위해 세금과 목숨을 바치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아무리 왕정국가라 할지라도 국가란 국민의 생명,재산을 최소한도라도 지켜줘야 하고,
또 사법제도라든지 교육제도, 비상시의 복지제도 같은 것도 쪼금은 갖춰 줘야하지 않겠어요??
나라가 백성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면서 무조건 내놓아라 하며 빼앗아만 간다면,
그건 강도 패거리, 산적들의 집단과 다를 바가 없지요.
이씨 조선은 바로 그런 나라였습니다!!
몽고의 침입, 임진왜란,병자호란....
이런 때들에 이 땅의 백성들은 외적에 맞서 격력하게 대항했던 흔적이 별로 없습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침략자나 위정자나 다 마찬가지이고,
차라리 침략자가 이겨서 어떤 변화라도 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지 않았을까요??
@희망의나라로- 국가와 민족의 역사성 정체성 자주성을 잃은 모습을 희망의나라로-님께서 명확히 지적해주시는군요.
@빙탄. 감사합니다! 빙탄님~
오늘날 주전론(主戰論)은 군대도 안갔다온 사람들과
미국에 생활근거를 마련해둔 사람들이 더욱 강경하게 주장하는 듯합니다.
@다른맛 죄송합니다!! 민족사관의 화장술이 넘 지나쳤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대국이 군사개입하니까,
시골 양반지주들이 이런 기회에 충성심을 보여서 벼슬 한자리 할까하여
자신의 하인종복과 소작인들을 강제 동원했던 듯합니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왕에 대한 공명심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묘사처럼 힘들지 않았습니다
우린 그런생각을 지금 안하지만
당시 여진족 청나라는 조선에 대해서
같은 동족의식이 있었어요
명에서는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지만
조선에서는 순리대로 했어요
전란치고는 가장 손실이 없었던게
병자호란 입니다
몽골 전쟁도 마찬가지여요
고구려를 계승했다는게 우리만 있는게 아녀요
몽골 거란 여진 고려...
다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말합니다
고구려가 다민족 국가니깐요
그 살벌한 몽골과 청나라 침공시
우리 백성들은 그런 이유로
피해가 별로 없었습니다
흑독하네 어쩌네 하는 것은
오늘날의 정세를 놓고 그 시절을 이용하는거여요
대사리 님! 새로운 견해에 감사드립니다.
건륭제의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에 의거, 고구려가 다민족국가라는 사실은 저도 인정합니다.
또 우리가 배운 역사라는 것이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거 그렇게 왜곡되었을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다만 동족의식에 대해서는 앞으로 역사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http://cafe.daum.net/sisa-1/f8lD/811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남한산성 위치..조선의 강역
작설차 님~
대조선론, 대백제와 대신라....그리고 환단고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가 퍼즐 꿰맞추듯이 하여 더덕더덕 짜집기해서 만든 내용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고대에 한반도의 북쪽은 중국의 식민지, 남쪽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가설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검증을 해보고 있습니다.
@희망의나라로-
http://cafe.daum.net/sisa-1/f8lD/761
대륙에 있었던 우리 조선의 황궁
http://cafe.daum.net/sisa-1/dqMu/25885
조선왕조실록의 의구심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역사의 현장을 구상화로 그려보지 마시고,
추상화로 그려보시면 이해가 깊어집니다.
청나라를 세운 누루하치도 한민족..
고구려가 멸망후 유민들이 발해건국..금나라..몽골(원나라)..청나라..만주국..
결국 단군의 자손들이지요..
고구려 유민인 말갈이 터키를 건국..
그렇다고 백성이 100% 한민족은 아니겠지요..
고르바초프가 단군을 부활시킴..푸틴도 계승.
갈라지기 전에 구소련 국민들 중에도 단군의 자손이 많겟지요.
@작설차 그런 얼토당토한 얘기 하지마요
이 방 사람들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행위여요
말갈과 돌궐( 터키)은 인종 자체가 달라요
말갈은 우리와 유사한 여진족인데
만일 터키를 세웠다면
거기 사람들 황인종여야 되는거여요
근데 아니거든요?
작설차님...
뜬구름과 허황된 얘기 하지마요
도움 안돼요
@대사리 터키가 2002년 월드컵때 왜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하면서
함께 운동장을 돌았을까요?
물론 전국민이 한민족은 아니겠지요.
@작설차 그거는
고구려와 돌궐이 당시 처지가 같았어요
서로 돕고 사신 왕래를 했어요
수나라 당나라에 대항해서 살자니
당연한 현상이지요
요즘으로 치면 동맹국이랄까요...
@대사리 단군조선은 12개지파의 연방정부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민족의 단군이 아니였죠.
중국의 양자강위쪽과 유럽을 연결하는 비단길이 열리는 곳은 다 단군이 시조가 됩니다.
@대사리 http://www.coo21.rgro.net/bbs/zboard.php?id=con_4&page=619&sn1=&divpage=4&sn=off&ss=on&sc=on&select_arrange=reg_date&desc=asc&no=19086
고구려, 돌궐, 말갈, 거란, 고려 의 엄청난 비밀
@작설차 하여튼 없는 얘기좀 하지마세요
다만
중산문화라고 하던가요??
북방에 당시 중국문명보다도 우수한
문명이 있었다고는 합디다
서쪽 끝 터키부터 동쪽 끝 블라디 보스톡 까지지요
근데 그것은 통일된 민족국가 문명이
아니잖어요?
거 참...
@대사리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37192
동유럽 역사 흔든 돌궐제국 선조는 ‘고조선 한민족’
제후국 돌궐족…고조선족 아사나(阿史那 Asana) 왕족에 아사달(阿史德, Asadar) 귀족
사실확인님
한나라 정벌하러 온 장군이라면
그나라 통치자의 성정을 반듯이 분석했을
것입니다.
능양군 인조 한마디로 말해 개 쓰래기지요
이놈은 권력에 눈이 멀어 당시 국세정세 흐름도 못읽는
멍텅구리에 후에는 지아들도 죽인놈인데
용골대 입장에서 볼 때 침뱉은 것은 약과이지
주제에 기집들고 피난살이 모습을 볼 때 누루하치와 비교해보면
내가 만약 용골대라면
절하는 대가리를 밟아 버린다.
주전 주화를 떠나 흐름을 읽고
준비를 해야지
더럽븐 새이들 별것도 안닌 소국 주제에
대도무문 소리를 하는 놈이 있는 한
이한반도의 민초들의 삶은 항상 고닯프지
대통이 되기 전에
내가 이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지
님의 글에 반박해서 미안합니다만
난 인조반정을 조선 역사상 최고라 봅니다
임진왜란이 났습니다
명나라는 아무 조껀이 없이 참전했어요
막대한 군사 그리고 물자..
돈하면 또 은이지요... 천문학적인
은을 지불했어요
일본이 철수하자
아무 조건과 보상없이 철군한게 명나라입니다
한세대가 30년이라고 합디다
근데 그 한세대도 지나기전에 그런 명나라를 배신해요??
광해군 그 짐승이 인간여요?
만일 인조반정이 없었으면
우린 두고두고 웃음거리고
이건 대대손손 엄청난 빚을 지고 사는거여요
중국인들이 우리를 볼적에
사람으로 보겠습니까
난 사람들 왜케 답답한지 몰겠어요
인조반정은 우리 후손들
역사에서 면죄부 준거여요
@대사리 명나라와 마찬가지로 625 전쟁때 미국도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 일본은 36년간 식민통치하며 조선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결과론적으로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들은 단지 이기심(자기필요)에 의해 우리를 도와줬을 뿐입니다.
대사리님 정신차리세요.
명이 우리를 위해 파병이라.
만약 조선이 일본에 항복하고
명에 진출하면 명이 조선에 투자한 비용으로
막을수 있었을까요.
참 한심합니다.
책에 쓰인 역사만 읽으니 문제가 많네요.
사건을 두고 생각 좀 해보세요.
임란의 영웅 이순신도 중요하지만
권율이 명의 군사력과 일본의 군사력을 약화 시키기 위해
울산성 전투를 유도한 것이 가장 백미지요(일본측의 대승전투)
선조 이 빙신시키는 순신을 질투하고
지아들 광해의 이런 시세흐름을 아는 것을
아주 못마땅해 한 놈이 었지
인조 이놈도 능력도 되지 않는 놈이
뒷통수 치는데는 일가견이 있지
이런 쥐새끼 밑에 있는 민초들만 죽어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