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필(李漢弼,)
1936년 4월 ~ 2015년 2월 12일)은 대한민국의 가수, MC이다. 예명은 위키리(Wicky Lee)이다.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960년 미8군 쇼단체인 '메이크 인 후피 쇼'(Make in Whoopy Show)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62년 가수로 데뷔했다. 1963년 최희준, 유주용, 박형준과 함께
국내 최초의 음악 동아리인 포클로버스를 결성해 활동했다.
'종이배', '눈물을 감추고', '저녁 한때의 목장 풍경' 등을 히트시켰다.
1960년대 중반부터 동아방송의 첫 라디오 교통정보 프로그램인 '달려라 위키리' DJ를 맡았다.
1966년 밤하늘의 브루스, 1968년 폭풍의 사나이 등 영화에 출연해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1966년 제1회 MBC 10대 가수상에 뽑혔다.
1976년부터 TBC 쇼쇼쇼 MC를 맡았다.
1980년 11월 9일부터 5년간 KBS 전국노래자랑 초대 MC를 지냈다.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교포방송 KATV에서 '굿 이브닝 코리안'을 진행했다.
2015년 2월 12일 미국 LA에서 지병으로 인해 80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포클로버스: 좌로부터 박형준,유주용,위키리,최희준)
미련도 후회도 없다 - 위키리
타고난 사나이의 순정의 목숨정의에 살아야 할 운명이더냐거칠은 무정가를 걸어야 하던지나온 내 청춘이 가여웠지만미련이 있을 소냐 후회도 없다
*외로운 사나이의 걸어온 길은 의리에 살아야 할 팔자이더냐 황금도 첫사랑도 뿌리쳐 버린 얄궂은 사나이의 과거였지만 미련이 있을 소냐 후회도 없다.
1963년에 결성된 국내 최초 노래동아리라는 (포 클로버스)를 결성하여
희망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를 뜻하는 미8군 가수들의 음악모임으로...
명문고와 명문대출신이라는 유명세를 탄 이들의 면면을 살표보면 쟁쟁하다.
경복고 서울대법대 출신의 최희준, 경기고 서울대공대 출신의 유주용,
외국어대 출신의 박형준, 경기고 서라벌예대 출신의 위키리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1960년대 척박했던 대중음악계에서 밝고 맑고 흥겨운 홈송운동을 펼치는 등
대중가요의 부흥기를 이끈 선구자들이다.
위키리(본명 : 이한필)는
훤칠한 키와 매끄러운 무대매너로 6-70년대 영화출연 및 라디오 dj로 나서기도 했으며
쇼쇼쇼, KBS전국노래자랑 등 비중있는 TV프로의 사회자로 방송가에서 명성을 날리기도 하였고
나중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한때는 미국한인방송의 회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1966년에 부른 '눈물을감추고'라는 곡이 인기를 얻어서 널리 불리워 지던중,
1969년에 만들어진 '눈물을 감추고'의 영화주제곡으로도 유명하다.
영화는 성공못하였으나 주제곡은 영화로 인해 더욱 인기를 얻었다.
1968년 '미련도 후회도 없다', '저녁 한 때 목장풍경', '밤차에 만난 사랑', '사막의 보헤미안' 등
다수의 히트곡을 남겼다.
신사’ 위키리, ‘악동’ 김상국
1974년 강원도 황지 공연 때 그는 탄광지역에 유난히 즐비했던 요정으로부터 거의 매일 초청을 받았다.
그러나 옆에 있는 남자들이 김샐만큼 그는 술판이 끝날 때까지 흐트러짐 없이 신사다운 매너를 지켰다.
덩달아 따라간 사람들은 호스티스들과 질탕 놀이를 즐기는데도 막상 주빈(主賓)인 그는
한치도 짓궂거나 추잡한 면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결과 한없이 길어질 수도 있는 술자리가 일찍 끝나버리는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신사도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닌듯. ^^
‘코미디언을 웃기는 가수’로서 ‘쇼 무대의 명물’로 통했던 가수 김상국은 위키리와는 딴판이었다.
그는 반대로 ‘악동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입증한 인물이었다.
도를 넘어선 짓궂은 행동으로 사람을 골탕먹였지만, 때로는 ‘기행’으로 배꼽을 잡게 했다.
쇼 무대 사회자들은 지금도 주저없이 “김상국이야 말로 앞에서나 뒤에서나
사람을 즐겁게 한 진정한 의미의 엔터테이너였다”고 말한다.
출처: 추억의 팝송.가요 원문보기 글쓴이: 역마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