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백과 이하부정관[ 李下不整冠 ] -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남에게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것을 비유한 말.
李 : 오얏나무 리 下 : 아래 하 不 : 아닐 불 整 : 정돈할 정 冠 : 갓 관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의 형태로 쓰인다. 즉 오이가 익은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고 있으면 마치 오이를 따는 것같이 보이고, 오얏이 익은 나무 아래서 손을 들어 관을 고쳐 쓰려고 하면 오얏을 따는 것같이 보이니 남에게 의심받을 짓은 삼가라는 뜻이다. 《열녀전(烈女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전국시대에 제(齊)나라는 위왕(威王)이 즉위한 지 9년이 되도록 나라가 편안하지 않았다. 그것은 못된 신하 주파호(周破胡)에 의해 국정이 휘둘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후궁인 우희(虞姬)가 주파호의 횡포와 음흉함을 왕에게 호소했다. “주파호는 뱃장이 검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등용하지 않음이 옳습니다. 대신에 북곽선생(北郭先生)이라는 현명하고 덕망이 있는 분을 부르십시오.” 이것을 안 주파호가 거꾸로 우희와 북곽선생이 내통하는 사이라고 모함하였다. 왕은 우희를 9층 누각에 감금하고 직접 심문하였다. 우희는, “저에게 죄가 있다면 첫째 오이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를 지나갈 때 관을 바로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지키지 않은 것이고, 둘째는 평소에 사람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우희는 자신의 불찰을 사죄하고 주파호의 비위를 예를 들어가면서 호소하였다. 우희의 말을 들은 왕은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는 듯함을 느꼈다. 왕은 그녀의 유폐를 풀고 간신 주파호를 삶아 죽였다. 그리고 정사를 바로잡아 제나라를 다시 부강하게 만들었다.
《문선(文選)》의 〈악부(樂府)〉‘군자행(君子行)’에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군자는 미리 방지하여 혐의 받을 염려가 되는 곳에 있지 말 것이다(君子防未然 不處嫌疑問).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않으며, 오얏나무 아래서는 관을 고쳐 쓰지 않는다(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종묘의 오얏나무▼
오얏나무의 꽃이 지고 있습니다.
흔히 자두가 오얏이라고 말 하지만 꼭 그렇치는 않습니다. 현재 우리가 접하는 자두는 개량종이고 ▶오얏은 재래종 자두라고 한다면 정답에 가까울 것입니다.
우리가 오얏나무를 볼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이씨조선은 도읍이었던 지금의 서울에는 조선의 흔적과 유적이 많습니다.
4대궁, 종묘, 사직단, 환구단 등이 있지만 오얏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은 종묘 향대청이 유일합니다.
문화재청에서는 수년전 이씨조선의 상징인 오얏나무를 보급하기 위해 20여 그루를 심었다고 하는데 잘 자라는 자두나무와 달리 오얏나무는 자라지 못하고 죽었는데 향대청 앞 오얏나무만이 살아서 현재 관람객들이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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