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가 발생한 지 39년이 지났다. 이 기간 동안 광주사태와 관련한 여러 의혹과 주장이 제기됐다. 대부분의 의혹들은 여러 차례의 국가적 조사를 통해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됐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방부는 2018년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발표를 내놨다.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의 쟁점에 대해 가장 중요한 증언자는 당시 출동했던 헬기 조종사들이다. 이들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지난 39년 동안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언론은 헬기 사격이 있었던 것을 기정사실로 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갑제닷컴>은 광주에 출동했던 헬기 조종사인 백승묵 당시 203 항공대대장에 이어 이정부(李貞夫) 103 항공대대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이정부 대대장은 26일 인터뷰에서 “당시에 근무한 조종사와 정비사 등 약 200명이 있는데 이들의 입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며 헬기 사격은 일체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헬기로 광주천에 위협사격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민간인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무리한 지시라며 작전에 반대했던 사람이다. 이에 따라 헬기 사격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는 헬기에 탑재한 발칸포를 민간인에 향해 쏘면 (일각에서 헬기사격 피해자의 상처로 제시하는) 관통상 수준이 아니라 몸이 두 동강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주장한 조비오 신부를 직접 찾아가 헬기 사격이 없었음을 설명했지만 조 신부는 그의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대장은 육군의 동의를 받아 조비오 신부 등을 초청해 헬기 사격 시범을 보여주려 했으나 조 신부 등 5·18 단체들은 시범을 볼 필요가 없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증거로 수백 발의 탄피를 주운 사람이 없다는 점, 전일빌딩 탄착군은 헬기 사격으로 생길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는 헬기 사격 시범만 하면 5·18 당시 광주에서 왜 헬기 사격이 없었는지 단번에 알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헬기 사격 있었으면 광주는 불바다 됐을 것”
- 당시 103 항공대대장을 맡으셨는데, 어떤 직책입니까?
“저는 103 항공대대장이었습니다. 103항공대대는 AH1J 대전차 헬기 부대였습니다. 대전차 헬기 부대인데 제가 500MD는 경무장 헬기이고 코브라 헬기는 대전차 공격 헬기이니까 거기에는 20mm 발칸도 있고 미사일, 로켓이 장착된 중무장 헬기입니다. 제가 명을 받고 광주에 출동했습니다.”
- 광주에는 며칠에 도착하셨습니까?
“제가 신고하고 (1980년) 5월 22일에 광주에 내려갔습니다. 광주에 내려가서 전교사에 내려가자마자 신고를 했습니다. 제가 배속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배속명령에 따른 신고를 했습니다.”
- 과거 진술 조서를 보면 전교사 김준현 준장이 대대장께 광주 상황이 심각하다, 무장을 했으니 광주천에 위협 사격을 하라고 지시했고 대대장님께서는 이게 말이 안 되는 지시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십시오.
“당시에는 제가 대대장이고 배속됐으니까 상관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된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광주공원 앞 광주천에 위협 사격을 해달라고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에 제가 설명을 했습니다. 20mm 발칸포를 쏘면 유탄이 얼마나 센 겁니까. 전차를 부수고 장갑차를 때려부수는 발칸포를 사용하면 바윗돌이 무너지고 피탄이 생기면 피해가 엄청 생깁니다. 그리고 20mm 탄피가 떨어지는 것에 맞으면 사람이 즉사합니다.”
- 떨어지는 탄피를 맞아도 사람이 죽습니까?
“제가 사격 훈련할 때 잘못해서 지붕 위에 탄피가 떨어져 탄피가 지붕을 뚫고 들어가서 생긴 피해를 물어줬습니다. 탄피가 떨어져도 엄청난 피해가 생깁니다. 20mm 발칸을 쏘면 10발마다 한 발씩 예광탄이 날아갑니다. 이것은 불인데, 그러면 광주시내가 불바다 되지 않겠습니까? 그 설명을 했습니다. 위험하다. 그러나 군인은 명령을 받으면 따라야 하잖습니까? 그래서 저는 구두명령은 안되고 서면명령을 받으면 판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서면명령이 안 내려왔죠.
“저는 배속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작전명령은 전교사에서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명령 불복종으로 지휘부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제가 단장님께 전화로 보고를 드렸습니다. 서면명령을 받지 않으면 사격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단장님께서 네가 지휘관으로 내려가 있으니 상황 판단을 잘해 조치하라고 말했습니다. 잘했다라고 말했습니다.”
- 헬기사격은 아예 없었습니까?
“있을 수가 없죠. 왜냐하면 헬기사격을 만일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냐 하면, 21일이 절정이었잖아요. 군중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 있었는데 위에서 기총소사를 했다면 목격자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데모한다고 나와 있는데. 제가 조비오 신부님이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해서 제가 직접 가서 찾아가서 말씀드린 게, ‘어떻게 헬기 사격을 하는데 조비오 신부님만 보십니까, 광주시민들이 얼마나 많으냐 이거에요, 탄피가 떨어지는데 그것을 주운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착각하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헬기에서 발칸포를 사람에 쏘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맞으면 한 발만 맞아도 두 동강 납니다. 위력이 엄청 셉니다. 저는 전역을 해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였는데 그 당시에 항공감에게 건의를 했습니다. 사격했다고 하는데 사격을 목격한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시범사격을 하게 해달라고 건의를 하니 항공감 자기가 마음대로 못하고 총장님 결제 받겠다고 했습니다. 총장 결제를 받아 광주에 내려가서 직접 사격하는 것을 시범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내려갔습니다.”
- 실제로 시범 사격을 했습니까?
“안 보겠다고 해요. (누가?) 조비오 신부님. 직접 봤기 때문에 직접 볼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 실제 육군에서 시범 사격 결정을 내렸던 겁니까?
“그 당시에 항공감이 곽 장군이라고 지금 있습니다. 그분에게 해서 지휘계통으로 올라가서 코브라하고 헬기를 광주로 내려 보내겠다는 승인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조비오 신부님 혼자 목격할 수 있습니까?”
-1995년 양평 사격장에서도 헬기 사격 시범이 있었다고 자료에 있는데요.
“양평 사격장은 제가 안가고 저는 광주에만 갔습니다. ‘어머니의 노래’에서 사격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신자이기 때문에 조비오 신부님이 순천성당 주임신부였습니다. 제가 순천에 가서 일요일이었습니다. 신부님이 광주사태에 대해서 강론을 하시더라고요. 다 듣고 난 뒤에 신부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신부님, 제가 사격 안 했는데 사격했다는 증인이라고 해서 제가 설명드리러 왔습니다. 제가 자료를 다 가져 갔습니다. 신부님하고 사무실에서 말씀을 다 드렸습니다. 착각이잖습니까? 코브라는 크고 엔진도 두 개입니다. 비행하면 소리가 요란합니다. 신부님 착각하신 거라고 말했더니 내가 봤는데 착각할 수가 없다고 해요. 사격을 보셨다면 어떻게 신부님 혼자만 보십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증인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랬더니 신부님은 그것은 자기는 모르겠다고 해요. 그런 다음 광주에서 몇 사람이 목격했다고 나왔습니다. 신문에 나와서 제가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주소 번지가 없는 집이에요. 신부님, 제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모든 명예훼손 자료를 만들어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 과거 검찰기록을 보면 조비오 신부가 군 관계자들을 피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직접 순천까지 가서 만나신 걸로 나옵니다만.
“네 순천 가서 만났습니다. 조비오 신부님이 군 관계자를 만났다 안 만났다는 것을 떠나서 순천 성당에 가서 미사 끝나면 나오시니까 시간에 맞춰 갔죠. 신부님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고, 그 뒤에 아시는 신부님을 통해서 윤공희 대주교님까지 뵀습니다. 윤공희 대주교님 뵙고, 대주교님 절대 사격 안했습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제가 사격을 했다면 결과가 어떻겠습니까. 윤 대주교님 하시는 말씀이 제가 가톨릭 신자니까 형제 말도 믿지만 성직자 말도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하셨습니다.”
- 90년 MBC 방송에 나온 거는 피터슨 목사가 제시한 헬기 사진이었는데요. 과거 검찰 기록을 보면 모든 헬기 부대 관계자들은 사진에서 보이는 섬광은 사격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증언했습니다. 어떤 불빛인가요?
“비콘라이트는 충돌방지등인데, 다른 물체하고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밑에 비콘라이트가 ‘픽픽픽’ 돌아갑니다. 경찰 순찰차 위 불 돌아가죠? 사람들한테 경계심을 주는 거죠. 밑에 불빛이 ‘픽픽픽’ 돌아가게 되는 겁니다. 헬기 블레이드가 꼬이면 ‘따다다다’ 소리가 나고 비콘라이트가 돌아가니까 마치 보면 꼭 사격하는 것 같습니다. 지상에서 사격 소리가 나고 그랬잖아요. 바로 그 전날 광주 비행장에서 아군 UH1이 피격당한 것을 봤습니다. 절대 착각이다. 있을 수가 없다. 광주에 신문기자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외국 기자들도 있었을 겁니다. 헬기가 기총소사했다면 그것을 안 내보내겠어요?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그 때 맞았다는 사람이 있어서 병원까지 들렀습니다. 기총소사했으면 총알이 위에서 뚫고 내려가잖아요. 병원에는 그런 기록들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검찰이 조사 과정에서 말한 것은 한 여중생이 어깨에 관통상을 당했다고 했는데요. 헬기사격으로 맞으면 두 동강이 난다고 하셨는데요.
“두 동강이 나는 것도 있고 500MD나 다른 헬기에서 했다면 두 동강이 안 날 수가 있는데, 헬기에서 사격했다면 총알이 위에서 대각선으로 박히잖아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그 여중생도 옆으로 관통해서 죽었잖아요. 제가 아는 기록을 보면, 도저히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항공종사자 200명의 입을 어떻게 막나”
- 이정부 대대장이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양심선언을 했다고 조비오 신부가 주장했다는 검찰 수사기록이 있던데요. 사실입니까?
“양심선언을 했다면 조비오 신부를 고발할 수가 없잖아요.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 당시의 목격자가 불과 몇 사람밖에 없고 헬기가 30~40대가 있었어요 광주 비행장에. 헬기 한 대에 조종사가 두 사람, 그러면 조종사가 80명이죠? 정비사가 있잖아요. 무장사, 정비사, 비행기 한 대에 최소 5명 정도가 따릅니다. 40대 같으면 5명, 200여 명의 항공종사자들이 광주비행장에 집결돼 있었습니다. 헬기 연료도 보급해야죠, 정비사 있죠. 200여 명의 조종 관계자들이 39년 동안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한 명이라도 했습니다, 내가 봤습니다, 내가 무장했습니다, 재무장했습니다, 이런 조종사나 정비사가 안 나오겠습니까? 제가 103항공대대장을 했지만 제가 광주에 있는 조종사들이나 정비사들과 연락하고 있는 게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100여 명의 항공 종사자들이 있는데 너네 말하지 말라고 해서 말하지 않겠습니까? 양심선언해서 제가 봤습니다, 증인으로 나오잖아요. 39년이나 흘렀는데 누구 하나 항공종사자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사격 했다는 사람 말입니다. 제가 조갑제닷컴을 보고 대단히 많이 조사를 했고 진실을 밝히려 했고, 진실에 가장 가깝게 나왔구나 하는 면에서 존경스럽습니다.”
- 헬기 사격이 없다는 말에 대해 조비오 신부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신부님의 말은 딱 한 마디입니다. 내가 직접 봤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신부님이 성당에서 나오는데 (헬기에서) 기총소사를 해서 무서워서 벽으로 숨었다는 겁니다. 딱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비오 신부님에게 자료를, 항공사령부에서 받아서 여러 자료를 많이 가져갔습니다. 다 설명해도 조비오 신부님은 경청을 안 합니다. 왜? 너무 믿어버리는 겁니다. 대화가 안 통하는 겁니다. 대화가 전혀 안 되니까 광주에 계시는 군종신부 출신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이 제 군종신부님이었기 때문에 고해성사도 하고 잘 아셨습니다. 그 군종신부님이 윤공희 대주교님을 뵙는 게 좋겠다고 해서 제가 뵀습니다. 하소연하기 위해서입니다.”
“사격 실험해보면 단번에 진실 안다”
- 국과수에서 나온 전일빌딩 탄흔 관련 자료가 있었는데요.
“탄흔이 생겼다고 하는데 제가 (태국) 치앙마이에 몸이 안 좋아 가 있는데 그 때 국방부 조사위원회의 간사로 있는 현역 대령이 있습니다. 그 현역 대령이 여러 번 연락이 왔습니다. 카톡으로도 오고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수없이 연락이 왔습니다. 사격 어떻게 했느냐 이런 얘기를… 제가 상세히 말씀드렸습니다. 전일빌딩에 사격이 있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무척 간단하다. 전일빌딩 사격 150~160발을 사격했다면 그 밑에 탄피도 150~160발 떨어져 있을 것 아닙니까. 더 명확한 것은 전일빌딩의 탄착군이 형성된 것과 헬기에서 직접 사격을 해보라는 겁니다. UH1이든 500MD이든 헬기 호버링해가지고 했다 하는데 호버링을 하면 블레이드가 돌고 있잖아요? 총구가 위로는 못 올리죠? 블레이드를 맞추게 되니까 비행기가 추락하겠죠? 그러니까 기총을 밑으로 할 것 아닙니까? (탄흔이) 지붕에 찍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죠. 헬기에서 지붕을 뚫을 수가 없죠. 총을 위로 못하니까. 그리고 탄착군 형성되는 것 있잖습니까? 제가 월남전에도 참전했습니다. UH1 헬기를 탔습니다. 제가 1960년대에 월남전에서 헬기를 타고, 코브라 헬기의 최초 조종사였습니다. 교관 교육도 미국에서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 그 때 그 헬기가 없었잖아요. 다 미국 가서 교육받고 월남전까지 수행했습니다. 월남전에 가서도 헬기 기총소사를 안 합니다. 밑으로. 민간인도 있고 누가 죽을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같은 동포인데 폭도인지 아닌지 눈으로 안 보이잖아요. 전일빌딩 사격을 했다면 똑 같은 모형을 만들어서 대번에 판명이 되잖아요. 기자들 참관시키고 5·18 진상조사위원들 참관시키고 사격을 하면 대단히 간단하게 판명될 것인데 왜 저한테 자꾸 전화를 하시느냐 이렇게 간단한데…”
- 어떤 실험을 하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까?
“첫째는 사격 안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는 증인이 몇 사람밖에 없다. 광주 시민이, 수많은 사람들이 사격하는 것을 봤는데 (증인) 없죠. 기총소사를 받았다면 총구가 위에서 밑으로 뚫고 내려가기 때문에 한 발 맞을지 여러 발 맞을지 모릅니다. 연발로 쏘니까 말이죠. 그런 일 없죠? 객관적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실질적으로 헬리콥터 가지고 전일빌딩 탄착군 같이 생기나 쏴보면 됩니다. 사격장 있잖아요. 항공사령부에 헬기 사격장 있고 다 있습니다. 그곳에서 안 된다면 광주에도 사격장이 있습니다. 제가 당시 항공감하고 얘기를 해서 조비오 신부하고 5·18 조사위원들 하고 다 모아가지고 사격 시범을 보자 한 것은 광주에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올라오는 게 아니라. 제가 항공감하고 월남전에도 같이 참전했습니다. 지원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분들은 보지를 않았습니다. 조비오 신부도 그렇고 다 볼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 그때 뭘 보여주려고 하셨습니까?
“헬기를 가지고 가서 요구하는 대로…사격 모양 있잖아요? 헬기가 저공비행으로 비콘라이트로 ‘팍팍팍’ 하면 착각할 수 있잖아요? 헬기에 대해서 모르니까. 그때 광주에서 여러 가지 총탄이 오고 갔습니다. 그 소리에 헬기가 저공으로 ‘탁탁탁’ (소리로) 날고 비콘라이트가 ‘팍팍팍’ 해봐요. 착각 안하겠습니까? 헬기에 대해서 모르는 분들이시잖아요. 광주에는 헬기도 별로 없어요, 공군 전투기가 다니지. 그것을 보여주고, 실제 사격하는 것을 보여주면 헬기 사격 위력이 이렇구나, 이것을 아시면 이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증명된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참모총장님이 헬기를 지원해주겠다고 한 것은 확실하니까, 사격을 안 한 것이, 그래서 지원해주겠다고 한 것이죠.” (계속)
첫댓글 헬기 사격 한 사람이없는데,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니 조작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