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 ‘빠파솔라’와 ‘뻠가라’, 조선을 깨우다
조선일보 2024. 12. 7
[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 자전거 세계일주 도전한 인도 청년, 1926년 2월 부산 경성 평양거쳐 만주로
1923년10월부터 자전거 세계일주중인 인도 청년 '빠파솔라'와 '뻠가라'가 1926년 2월 조선에 왔다. 조선을 종단한 이들은 경성, 평양에서 대규모 군중들의 환영을 받고 강연회를 여는 등 일약 스타가 됐다. 조선일보 1926년2월18일자
‘파초와 야자수가 우거진 여름의 나라 인도의 청년 두명이 자전거라는 극히 간단한 두 바퀴에 몸을 싣고 세계일주의 길을 떠난 지 3년만에 조선에 왔다.’ (수려한 강산,순후한 인정, 역로도처의 환영을 감패,조선일보 1926년2월18일)
1926년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인도 청년은 ‘빠파솔라’와 ‘뻠가라’였을 것이다. 이름만 들으면 허구의 인물같지만 실제 인물이다. 잘 삐 바빠솔라(Jal P.Bapasola)와 루스텀 비 품가라(Rustom B.Bhumgara)라는 20대 청년으로 자전거 세계일주 중이었다.
이들은 1923년10월15일 인도 봄베이를 출발, 아라비아 반도와 북아프리카를 거쳐 이탈리아 남쪽부터 유럽 대륙과 영국을 훑었다. 이어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횡단한 후 태평양을 지나 1925년 12월부터 일본을 일주했다. 그리고 1926년 2월5일 부산에 상륙했다. 경주, 대구, 상주, 충주, 장호원, 이천, 수원을 거쳐 18일 오후 한강 인도교를 통해 경성 시내에 입성했다. 둘이 익힌 우리말은 딱 하나였다고 한다. “서울은 어디로 갑니까”
자전거 세계일주중인 인도 청년들은 1926년2월18일 경성에 입성,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조선일보 1926년 2월19일자
◇ 청중 수천명 몰려든 종로YMCA 강연회
두 청년의 일거수 일투족은 신문에 연일 보도됐다. 식민지 청년의 대담한 도전이란 점에 공감했던 듯하다. 조선일보는 ‘우리 조선과 처지 및 경우가 같은 이 인도의 두 청년을 환영하는 의미로’ 2월19일 저녁7시30분 종로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유료 강연회를 개최했다. 중앙기독교청년회(YMCA)와 공동이었다. ‘수천군중으로 대만원된 장내의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출입하는 문을 봉쇄’(감격에 넘치는 어조로 삼만리를 돌파한 實地談, 조선일보 1926년2월20일)할 만큼 청중이 몰려들었다. 이상재 조선일보 사장 안내로 등단한 두 청년은 감격한 표정이었다.
조선일보와 YMCA는 자전거 세계일주에 도전한 인도 청년들의 경성 방문을 맞아 강연회를 공동주최했다. 조선일보 1926년2월19일자에 강연회 개최를 알리는 사고가 실렸다.
◇ '인도의 멍텅구리와 윤바람’
“여기 와서 들으니 조선 멍텅구리와 윤바람은 비행기 하나로 세계일주를 한다 하옵니다만, 우리는 자전거 하나로 세계를 일주하는 인도의 멍텅구리와 윤바람입니다.” ‘빠파솔라’의 우스개 소리에 청중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조선일보에 인기리에 연재중인 네컷만화 ‘멍텅구리 세계일주’를 가리킨 것이었다.
‘빠파솔라’는 ‘먹을 것은 없고 사방에 보이는 것은 사막과 해골들뿐’인 페르시아 사막을 지나 바그다드, 시리아, 예루살렘을 통과하면서 ‘심히 험악한 곳과 무서운 짐승으로 고생을 많이 하였’다고 했다. 유럽 대륙과 영국을 거쳐 대서양을 지나 뉴욕, 시카고를 거쳐 록키산맥을 넘어 샌프란시스코를 통해 태평양을 건너 일본을 거쳐 조선에 오기까지 일정이 3만 마일을 돌파했다.
남은 길은 봉천(심양),북경, 상해, 안남을 거쳐 인도로 돌아가기까지 5분의 1이 남았다고 했다. 자전거로 조선을 일주한 외국인(한국인까지 포함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은 이 인도 청년들이 최초였을 것이다.
◇ '조선처럼 추운 나라는 없다’
이들은 ‘조선와서 제일 고생하고 통절히 느낀 것은 조선처럼 추운 나라는 없다. 어찌나 추운지 손발이 얼 지경’이라고 했다. 남부와 중부지방을 자전거로 여행했지만 2월 한파가 만만찮았던 모양이다.
자전거 세계일주중인 인도 청년들은 1926년2월19일 종로 YMCA강당에서 강연회를 열었다. 수천명의 청중들이 참석해 세계를 돌아본 이들의 흥미진진한 여행기를 들었다. 조선일보 1926년2월20일자
◇ '인도 3억 민중을 생각하면서’
인도 청년들의 입경(入京)을 맞아 신문 사설까지 나왔다. ‘인도 3억 민중을 생각하면서’(조선일보 1926년2월19일). 사설은 제국주의 영국에 맞서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이 ‘세계적 경이의 표적이 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식민지 조선의 처지와 넌지시 빗댄다. 조선에 온 인도 청년 둘이 ‘모두 간디씨(氏)의 운동을 지지하는 청년지사인 자라 한다’면서 ‘양씨의 옴은 아무 정치적 사명이나 사교적 의미를 가짐이 아니요, 오직 그 세계를 답파하는 청년의 의기(意氣)를 위함이라. 그러나 어찌 민중적 열정을 모아 이 원래(遠來)한 진객(珍客)을 환대치 아니하랴’고 썼다.
1923년 10월 인도 봄베이를 출발, 자전거 세계일주에 도전한 아디 비 하킴, 잘 삐 바빠솔라, 루스텀 비 품가라. 1926년2~3월 조선을 일주해 만주로 건너갔다.
◇ 평양주민 5000명이 대환영
둘은 2월26일 경성을 떠나 개성을 거쳐 3월5일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 시민들도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악대가 선두에 서서 음악을 연주했고, 그 뒤를 자동차 여러대와 소년군(보이스카웃) 20명이 뒤따랐다. 중간에 인도 청년을 중심으로 자전거 300대가 장사진을 이뤘다. 시내 서기산(瑞氣山)에 모인 환영군중만 5000명이나 됐다. 저녁엔 평양권번 기생 20명까지 출연한 검무, 승무와 국악 공연도 펼쳐졌다.(세계일주 인도 양청년 금수강산 평양에 안착, 조선일보 1926년3월6일) 평양에서도 수천명이 운집한 강연회가 열렸다.
하킴, 바빠솔라, 품가라가 자전거 세계일주를 마치고 출간한 여행기 'With Cyclist Around World'
◇ 세계 최초 자전거 세계일주 성공
둘이 만주로 향한 뒤, 또 한명의 인도청년이 3월17일 부산에 내렸다. ‘빠파솔라’, ‘뻠가라’와 함께 인도를 출발, 미국을 횡단한 아디 비 하킴(Adi B.Hakim)이 두 친구의 뒤를 좇아 조선 일주에 나선 것이다. 하킴은 대구, 영천을 거쳐 경성으로 올라왔고 뜨거운 환영을 받으면서 만주로 향했다. 셋 모두 봄베이 역도클럽 회원이었다. 세계 최초로 자전거 세계일주에 성공한 여행가로 꼽힌다. 이들은 ‘With Cyclists Around the World’란 여행기를 출간했다.
◇ 참고자료
아디 비 하킴, 잘 삐 바빠솔라, 루스텀 비 품가라 지음, 90년 전 일제강점기에 한국을 찾아온 인도인, SINYUL,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