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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로 고개 위에 위치한 '삼일로 창고극장' 단원들은 플라스틱 간이 테이블 두 개를 펼쳐놓고 조문객들에게 화장실을 제공하고 따뜻한 녹차를 나눠주고 있었다. 극장대표 정대경(50)씨는 "추기경을 조문하기 위해 줄 선 이들을 위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봉사는 무엇일까'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깥 거리로 길게 이어지는 조문의 행렬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조용한 혁명'을 보는 것 같았다. 정치권력이나 경제적 부(富)로도, 또 선전 선동과 강압의 세력으로도, 이런 광경을 만들 수는 없다.
이념과 빈부, 세대, 종교의 차이를 넘어 모두를 통합하는 힘은 다른 데 있음을 김 추기경의 선종(善終)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조문의 줄에 서 있던 불교신도인 김영희(58)씨는 "마치 아버지를 잃은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없이 베푸시고 어떤 사람들과도 벽(壁)이나 차별 없이 대하시는 모습이 너무 존경스럽다"고 덧붙였다. 저 숱한 사람들을 움직이고 끌어들이는 힘은 사회적 약자와 빈자들에 대한 사랑, 온유함과 관용을 실천하는 쪽에 있었는지 모른다.
서울 청량리에 사는 장두호(70)씨는 "1979년 명동성당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을 때 추기경님께서 나오셔서 정부측 인사에게 '서로 자제하자'며 중재하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게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 사회 충돌의 현장에서 균형을 잡고 조화를 이뤘던 큰 어른"이라고 회상했다.
김 추기경의 빈소가 차려진 명동성당은 스스로 원하지는 않았지만, 종종 시국갈등의 현장이 되곤 했다. 보수와 진보의 대결, 계층간의 반목, 세대간의 불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도 이 부근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하지만 이제 이곳으로 이념과 빈부, 세대, 종교의 차이를 떠나 지난 17일엔 9만명, 18일엔 14만명의 조문객이 모여들었다.
명동성당 건너편 인도에서는 재단법인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가 책상 두 개를 붙여놓고 장기기증에 대한 팸플릿을 나눠주고 있었다. 이 관계자는 "오늘 하루만 60명 정도가 장기기증을 서약했다"며 "어떤 분은 '추기경님이 하셔서 나도 해야겠다'며 신청하더라"고 했다. 한 고귀한 인간의 '작은' 행위가 세상을 얼마나 많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인가.
5시간 이상 줄을 섰던 조문객들이 마침내 명동성당 구내로 들어섰다. 오른쪽으로 김 추기경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과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보면서.
입력 : 2009.02.19 03:06 / 수정 : 2009.02.19 08:16
첫댓글 3∼4시간 떨며 기다려 김 추기경 조문하는 마음이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