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요한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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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나서자(나보다 더 늙어 보이는) 노인네 한 쌍이 배낭을 메고 길을 건너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남자는 우산을 들고 간다. 두 사람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로 손을 꼭 잡고 걷는다. 그들의 배낭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를 상징하는 전통 문양인 조개껍질 모양이 노란 실로 뜨개질되어 있다. 순례를 주제로 그린 유럽의 모든 그림들 가운데, 지금 내 눈 앞에서 이른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걷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싶은 것과 같은 강렬한 충동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그림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막 순례를 시작하는 걸까, 아니면 순례에서 돌아오는 길일까?
어쨌든 그들은 너무 연약해서 콤포스텔라까지 긴 여정을 견뎌낼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 p.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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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납니다.
가톨릭 3대 성지인 산티아고.
프랑스 생장부터 산티아고 꼼포스텔라까지 800킬로를 순례합니다.
여러가지 걱정이 앞서지만, 오늘 하루만 걸을 수 있다면
내일도, 또 그 다음 내일도, 마지막까지 걸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그 길위에서 그분을 만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려 합니다.
그 옛날, 신학교를 합격하고 갑자기 찾아온 두려움에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고
성당으로 향했던 그 무거운 발걸음이,
선배의 입을 통해 마음을 되돌리신 그분의 음성에
기쁘게 집으로 향하던 그 기억을 되찾고 싶습니다.
그 길에서 미사봉헌하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하루하루 걷겠습니다.
풀어내지 못한 무거운 마음들,
내려놓지 못했던 그 기억들,
심장도, 무릎도, 허리도 다 그분께 맡깁니다.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없을 것같아서
여행사의 도움을 받으며 순례길을 나섭니다.
고맙게도 제주에서 함께 사제연수를 한 청주교구 신부님과
함께 떠납니다.
4월 19일부터 5월 29일까지 40일 여정.
기도 중에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모두들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