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윤문기 (사)한국의길과문화 사무총장ㆍ도보여행전문가
⊙ 걷는 거리 : 50.5km
⊙ 걷는 시간 : 20시간 내외(쉬는 시간 포함)
⊙ 코스 1 : 17.5km, 7시간 내외
⊙ 코스 2 : 17.5km, 6시간 내외
⊙ 코스 3 : 17.5km, 7시간 내외
⊙ 난이도 : 쉬운 편
대소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동해. 이보다 시원한 풍광이 또 있을까.
동해안의 가장 대표적인 길로 이름을 알린 영덕 블루로드. 3년 전에 개통된 후 이 길을 찾은 걷기 동호인들마다 아름다운 경관에 탄성을 내지 않은 이가 없었다. 걷기 마니아들은 죄다 한두 번씩 다녀갔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블루로드는 열악한 교통사정을 감안하자면 의외의 성공으로 평가된다. 그야말로 걷는 길의 ‘신데렐라’인 셈이다. 이 길은 800km에 달하는 초광역 동해안 트레일의 시범코스로 처음 개통되었다. ‘해파랑길’이라는 예쁜 이름이 붙은 초광역 동해안 트레일은 남해와 동해의 분기점인 부산 오륙도공원을 출발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른다. 그래서 영덕 블루로드의 성공은 국내 최장거리 걷기 길인 ‘해파랑길’의 앞길에 켜진 푸른 신호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빛과 바람의 길 1코스
블루로드라는 이름부터 짙푸른 바다향이 왈칵 풍긴다. 이 길의 시작은 거친 바다사나이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강구항이다.
광고
버스터미널에서 블루로드 안내지도를 챙기면서 여행을 시작하자. 강구교를 건너며 바라본 바다 풍광은 파라솔로 대변되는 어시장 좌판과 어마어마한 대게 조형물들이다. 우리나라 대게 집산지 중 으뜸이라고 할 만한 거리 모습이다. 이 같은 모습을 보고 대게가 사시사철 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게는 해마다 12월부터 5월까지만 조업을 허용한다. 물론 다른 철에도 대게를 맛볼 순 있지만 보통은 러시아산이다.
블루로드 루트를 따르려면 대게거리 뒷골목을 통해 봉화산 능선을 타야 한다. 이 능선길을 해맞이등산로라고도 불렀지만 이제는 블루로드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노란 화살표와 표찰, 그리고 다양한 이정표들이 블루로드 코스를 안내하므로 조금만 주의하면 길 찾기가 어렵지 않다. 봉화산 기슭에 기댄 작은 산동네를 지나 능선을 막 타면 강구항을 굽어 보는 언덕이다. 여기서 보는 강구항은 아까 밑에서 보던 풍광과는 사뭇 다른 조용하고 한적한 어촌이다. 고불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편안한 숲길이다. 소나무가 많아 사철 언제라도 기분 좋은 발걸음을 유도한다.
2시간 조금 넘게 숲길을 사부작사부작 걸으면 고불봉에 도착한다. 산은 낮지만 사방이 확 트인 봉우리다. 영덕 읍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동해도 먼 시야에서 아른거린다. 이제 더 오를 곳이 없으니 내리막을 걸을 수밖에 없다. 급경사를 구불구불 내려가게 돌려놓아서 빙글빙글 돌아 걷게 된다. 야성폐차장을 지나 임도를 한동안 걸으면 해맞이캠핑장과 풍력발전단지를 차례로 지난다. 바람이 전기로 바뀌는 풍력발전단지는 몇 년 전 일어난 산불 피해지역에 세운 것이다. 당시 산림복원과 풍력발전단지 사이에서 고민하다 지금의 선택을 했다. 인근으로 청소년수련관을 비롯한 다양한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큰 게다리가 등대를 집어삼킬 듯 솟구치는 것으로 유명한 창포말등대를 지나 1코스 종착점이자 2코스 시작점인 해맞이공원에 닿는다.
푸른 대게의 길 2코스
|
잡념 하나 끼어들 틈 없는 완벽한 해안산책로가 펼쳐진다(2코스). |
2코스는 영덕대게 원조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있어 강구항이 있는 1코스를 제치고 ‘푸른 대게’라는 이름을 얻었다. 블루로드 1코스가 대체로 숲길을 따랐다면 2코스는 온전히 해안을 걷는 길이다. 바다를 질리도록 실컷 보고 싶다면 2코스를 적극 추천한다. 제주도의 올레길을 걸으며 감탄했던 걷기마니아들도 매우 흡족해 할 만한 길이다. 어떤 이들은 제주 바다와 동해의 물색이 어떻게 다른지를 감지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대게 루미나리에(luminarie)가 있는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한 길은 이내 대탄항으로 꺾어져 내려간다. 거북이 등짝처럼 쩍쩍 갈라진 기암괴석들이 파도와 맞서며 나그네를 기다린다. 간혹 찻길 옆으로 난 갓길을 걷기도 하고, 조그만 포구를 지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속이 훤히 비쳐 보이는 푸른 바다 덕분에 가슴 속이 뻥 뚫린다. 작은 포구마다 바다 쪽으로 손을 뻗친 방파제와 그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등대가 떠다니는 갈매기와 어울리며 한 폭의 그림을 그린다.
끝없이 펼쳐진 동해는 무엇이라도 다 받아내어 삼킨다. 깊고도 깊은 바다이니 아무리 짙은 시름이라도 단박에 소화해 낼 수 있으리라. 적어도 이 길을 걷는 동안에는 복잡한 생각이 머리에 남아 있질 못한다.
이 길 중간쯤에는 대게 원조마을이라는 경정2리가 있다. 게의 다리가 대나무를 닮았다고 하여 이 마을에서 대게라고 부르기 시작해서 이 마을이 대게 원조마을로 낙점됐단다. ‘아름다운 어촌마을’로 선정된 적도 있을 만큼 풍광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코스 막바지에 다다르면 대나무가 많은 죽도산유원지 길을 돌아 걷는다. 나무 덱(deck)을 통해 죽도산 중턱을 돌 때도 바다는 곁을 떠나지 않는다. 산을 내려오면 강구항과 더불어 영덕을 대표하는 포구인 축산항이다.
목은 사색의 길 3코스
고려 말 삼은(三隱) 중의 한 분으로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목은 이색(1318~1396) 선생의 출생지가 바로 이 구간에 있다. 목은 선생이 산책했을 법한 길을 닦아 ‘목은 이색 산책로’라는 길을 만들었다. 기념관과 함께 예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전통마을도 지난다. 코스 초입인 대소산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광은 명불허전이란 단어를 붙여도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다.
축산항을 빙 돌아가면 와우산 밑에서 블루로드 3코스가 시작된다. 3코스 역시 이정표가 잘 되어 있으므로 길 찾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영양(英陽) 남씨(南氏) 발상지를 품은 와우산은 고도 70m가 채 안 되지만 능선에 올라서면 바람 한점 없는 날에도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끌려오는 신묘한 곳이다. 와우산을 내려와 찻길을 잠깐 걸으면 대소산 봉수대까지 30분 정도를 숲길을 따라 올라야 한다.
최근에 복원한 봉수대에 올라 바라보는 축산항과 죽도산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이곳에서만 1시간 넘게 머물며 이 풍광을 구석구석 마음속에 챙겨갔다는 열혈 팬도 여럿이다. 이후로 걷는 길은 잘 정돈된 숲길이다. 다리가 피곤할 만하면 잘 지어진 정자쉼터가 나타나니 고맙다. 하지만 식수 보급할 곳이 없으니 물은 미리 챙겨가야 한다. 구름다리를 지나 목은 이색 산책로를 걸으면 한옥으로 지은 기념관을 만난다.
이곳을 지나 밑으로 내려오면 200년 정도 된 전통가옥들이 잘 보존된 괴시리 전통마을이다. 전통마을 이후로는 한동안 찻길 옆을 걸어 대진항까지 나온다. 중간에 조그만 점방 하나가 있어 물과 음료수를 살 수 있다. 대진항부터 3코스의 끝지점인 고래불해수욕장까지는 길이 내내 해변을 따른다. 영덕의 대표적 해수욕장인 고래불해수욕장에는 다양한 먹거리와 쉴 곳이 있으므로 하루쯤 머물다 가도 좋겠다.
● 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오전 9시10분 버스가 있다. 그것보다는 포항·경주·대구나 영덕·후포·울진에서 버스가 자주 있다. 포항 등은 오전 6시부터 30분 간격, 영덕 등은 6시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있다. 교통관련 문의는 영덕터미널(054-732-7673), 강구터미널(054-733-4400), 영해터미널(054-732-1564~5), 강구택시(054-733-5165), 영덕택시(054-734-2447), 영해택시(054-732-0358), 축산택시(054-732-5151)를 이용하면 된다. 여행에 관한 전반적인 문의는 영덕군 문화관광과(054-730-6396)로 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