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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왔으니까, 새것이 아니니까 실밥들은 뻔히 보이고
나와 비슷한 몸매의 사람이 예쁘게 늘려놓은 니트를 입고
꾸민 듯 안 꾸민 듯
오래전부터 이 예쁜 태를 만들어온 듯 말야
누군가에게 지루해졌을 때쯤,
누군가에게는 가장 예쁜 모습으로
오트 쿠튀르가 따로 있어?
깃의 끝은 낡았지만
목덜미는 끝없이 아름다운
너의 전 애인이 입었던 옷을 내가 집어들고
그녀보다 아주 잘 어울렸을 수도 있겠지
비슷한 사람을 입고
비슷한 사람을 고르고
비슷한 사람을 찾으러 가는 걸까?
익숙하거나 낯선 얼룩들의 패션,
우리도 입어본 우리였지
△ 오트 쿠튀르 :
상류층을 위한 맞춤옷, 혹은 그것을 만드는 의상점. 공식적으로는 '파리 의상 조합'에서 지정한 기준에 맞는 규모와 조건을 갖춘 의상 제작점에서 만들어지는 옷.
-『서울신문/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2023.10.06. -
누군가 입었던 오래된 옷을 팔고 사는 시장이 있다. ‘구제’나 ‘빈티지’라고도 불리는 오래된 옷들을 보면서 시인을 사람을 연상한 모양이다. “살아왔으니까, 새것이 아니니까” 우리는 모두 구제가 아닌가. 우리가 어떤 사람을 고르고 찾는 것은 구제마켓에서 낡은 옷을 사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실밥들은 뻔히 보이고” 늘어나 있다. 하지만 그 흔적들, 얼룩들이 구제를 패션으로 만든다. “누군가에게 지루해졌을 때쯤,/누군가에게는 가장 예쁜 모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