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 에스더(법무법인 원 변호사)
 | ▲ 강금실 에스더 |
예수 그리스도는 산상설교에서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맨 먼저 어긴 사람은 아담이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 하느님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는데, 하느님이 아담을 찾고 선악과를 따먹었느냐고 물으시자 아담은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창세 3,12)라고 대답하였다. 아담은 “예” 하면 될 것을 자신의 잘못을 하와에게 돌리고 자기 잘못은 아닌 것처럼 구구절절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것은 선악과를 따먹고 식별력이 생긴 인간이 짊어지게 된 근본악이 무엇인지를 시사해준다.
보통 금지된 행위를 하는 것은 죄이고 처벌이 부과되는 기준들이 있지만,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부인하거나 변명하는 것은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죄의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 사회적 행위와 언어문화 안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든지, 슬쩍 타인의 잘못을 공격하면서 호도한다든지, 여러 가지 정황과 동기, 이유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들이 횡행한다든지 하면서 서로 겹치고 섞이어 관계들을 포장하고 채워나간다. 그래서 보통 우리 문화적 삶 속에서 잘못의 시인은 권력을 잃어버릴 위기에 직면하거나, 경제적 이익의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될 상황에 처할 때 비로소 정치적으로 언급되곤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 모든 부인과 변명의 네트워크가 아담의 첫 변명으로서의 근본악에서 나온 것이란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금지된 행위를 저지르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는 것이야말로 유의해야 할 악의 발호이다. 미국의 의사이자 심리상담가였던 마틴 스캇 펙(1936~2005)은 성경에 나타난 이 근본악의 문제를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차원에서 규명하고자 시도한 사람이었다. 그는 저서 「거짓의 사람들」에서 악을 정신질환의 한 질병 유형으로 체계화해서 치료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리상담과정에서 그 어떤 신경증이나 정신질환에도 딱히 해당하지 않는 병리현상으로서의 ‘악’을 발견했다. 악의 특성은 죄책감이 없고 잘못을 다른 데로 돌리도록 교묘히 거짓말을 하며, 상대에게 그 거짓을 통해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혐오감을 주는 것이다. 그는 원래 타 종교인이었으나 심리상담의 경험을 통해 악의 존재를 인정하고서 악의 식별을 다루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영성과 윤리 차원에서는 악이 존재하나, 과학과 사회 영역에서는 악의 정의가 정립되어 있지 않기에 우리는 많은 혼란과 착각에 직면한다. 그리고 실제로 사회생활에서 ‘악’을 거론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정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스캇 펙 박사도 ‘악’을 질병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는 인간 개개인의 영혼이 하느님과 악마 사이의 팽팽한 대결 속에 끼어 있는 전투장이고, 인생의 의미는 전적으로 이 전투에 달려 있다고 했다. 악과의 전투장으로서의 영혼이 끝내 승리를 거둬 하느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영혼의 구원에 이르는 길로서 신앙의 목적이기도 하다(1베드 1,9).
성경의 가르침을 준거로 자기 안의 악을 대면하고 식별하면서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무조건의 순종이 필요하다.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는 단순함으로 자기를 무장하는 것이다. 실천하기에 힘들고 무너지는 자기를 수없이 돌아보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신앙생활이기에 나날이 실천하고자 노력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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