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라언덕 길을 걸으니 옛 추억이 생각난다
삼일절을 맞아 창라 언덕 길을 걸었다
세상도 시끄럽고 혼란 하다
3월의 첫날은 우리에게 봄을 알린다.
무거운 이부자리나 거추장스러운 옷에 눌렸던 몸이 가벼워진다.
온 누리에 빛이 넘친다. 자유다. 해방이다. 새로운 세상이다.
주변이 모두 되살아난 듯 생기에 넘친다.
그런데 갑자기 어두운 비바람, 폭풍이 불어닥친다.
즐거운 사람들, 소생하는 생명들이 잔혹한 폭력에 슬어진다.
3월 1일, 기미 독립 만세 운동을 생각할 때마다
나에게 자연스러운 연상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 꽃 향기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여/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가사 전반에 흐르는 수려한 시적 표현,
청각에서 시각으로 이어지는 공감각적 이미지들은
은연중 사춘기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실제로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동네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청라 언덕은 아니었지만 봄에는 개나리와 목련, 라일락이 피었고
그 향기는 남중생들의 콧구멍을 벌렁거리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 동네 사는 하얀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었다. 등교 시간에 마주친 그들은 남고생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청라(靑蘿) 언덕은 ‘대구 근대화 거리’로 알려진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옆에 있는
90계단의 작은 언덕길이다.
1900년대 미국 선교사들이 이 지역을 매입해 교회와 병원, 신학교를 지었다.
청라라는 이름은 선교사들이 거주하면서 담쟁이를 많이 심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구제일교회와 선교박물관 그리고 청라 언덕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대구의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불린다.
동무 생각을 작곡한 박태준(1900~1986) 선생은 청라 언덕 아래 동네에서 태어났다.
미션스쿨인 계성중학교에 다닐 때 근처 신명여중에 다니는 한 여학생을 좋아했다고 한다. 아침마다 청라 언덕을 오르며 그 여학생을 쳐다보며 가슴이 뛰었다.
여학생은 얼굴이 예쁜 데다 피부도 백합처럼 희었다고 한다.
그의 짝사랑은 나날이 깊어갔지만 결국 고백 한번 못 한 채 시간은 흘렀고
‘백합’ 여학생은 졸업 후 일본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이 같은 사연이 노래가 된 것은 박 선생이 마산 창신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시인 이은상(1903~1982) 선생과 이 학교에서 만나면서다.
이 선생은 이런 사연을 듣고 가사를 썼고 박 선생은 곡을 지었다.
그때가 1922년이었다. 4절로 된 곡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노래하며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잔잔히 표현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이라 노래 전편에는 조국 해방이라는 봄을 기다리는 간절함,
그리고 백합 같았던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난다.
동무생 시비 앞에서니 첫사랑이 생각 난다
카까머리 고교시절 첫사랑 하얀 카라 교복 입은 여학생이 생각 난다
얼굴이 뜨겁게 붉게 물들었다
단 3초라도 포옹했으면 좋았을 것을
“첫사랑
한번 제대로 이야기도 못 했 보았다.”
“첫사랑이 다 그렇지요.
영영 가슴속에
박제되는 사랑이다.”
“분내만 솔솔
가슴은 콩닥
이마에 땀 방울만 송송
말은 더듬 거린다
반월성 같은 입술
하얀 젖 가슴, 사랑, 생각으로 보듬는다”
별들이 속삭인다
삶을 미소짓게 하라
첫 사랑 친구를 생각하며 웃는 얼굴
제일 예쁘고 행복해 보인다
여고생의 하얀카라
목련꽃 같다
학 같이 긴목을 들어낸다
첫사랑 그녀
꽃 손수건을 깔고 앉았다
손만 조몰락 조몰락
허연 허벅지 다리가 설랜다
절 보며 웃었어요.
제게 눈을 맞추고
소리 없이 빙그레 웃었어요
가슴이 콩닥 거린다
볼그레한 얼굴 진 땀이 난다
그녀가 꽃 손수건으로 땀을 딲아준다
손수건이 흔건하다
손수건을 몰래 주머니에 넣어 왔다
그녀의 분내가 난다
냄새를 맞다가
미안해 돌려주지 못했다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숨쉬고 있다
손수건을 전해주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다가올 그 시간을
아껴두고 싶었거든
가사의 압권은 마지막 구절이다.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너와 내가, 내가 너와 하나 될 때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바람이다.
동무 생각이 세상에 나온 지 벌써 100년이 넘었다.
언덕이 담쟁이를 만나 청라 언덕이 되고 내가 너를 짝사랑해 노래가 되었듯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이 나라,
갈라진 남과 북이 함께 어우러져 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제일교회 앞을 지나간다
106년전 독립 만세 소리가 들린다
고등학교 몇 학년 때인가 확실하지 않지만,
3·1 운동 선언문의 전반부를 외운 적이 있었다.
외워야 했던 것이 분명한 것은, 지금도 선언문의 첫 몇 문장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独立国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万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万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権을 永有케 하노라.’
20세기 초 일본의 핍박 아래 있었던 가난했던 조선의 이 선언문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克明하며”와 “正権을 永有케”의 단어는 기억나지 않는다.
혹시 당시 교과서에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00년 이후 태어난 후배들은 이 선언문이 한국의 선언문인지
중국의 선언문인지 헷갈릴 것이다.
백년의 세월을 넘긴 지금 한국은 그만큼 달라졌다.
기미 독립선언서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다.
이 두 문서를 중시한 것은 이들이 한국의 독립 투쟁에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동양평화론은 아마도 정치학자 데이비드 미트라니가 주창한 기능주의적 접근에 의한
국제 협력과 평화 추구 이론이 나오기 훨씬 앞서 이를 동아시아에서 주장한 문헌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 지역에 닥쳐오는 큰 재앙을 미리 보는 혜안과 함께
이를 어떻게든 함께 막아야 하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동양의 수억 황인종 가운데 수많은 뜻있는 인사와 정의로운 사나이가
어찌 수수방관하고 앉아서 동양 전체가 까맣게
타죽는 참상을 기다리기만 할 것이며…”)
그리고 기미 독립선언서는 이보다 더 큰 맥락에서 인류 문명의 대세와
세계가 나아갈 길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19세기에는 서양 문물의 우수성이 전해지면서 아시아권 나라들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것이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때 나온 이야기들이 각기‘동도서기(東道西器)’ ‘화혼양재(和魂洋才)’ 혹은
‘중체서용(中體西用)’ 같은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서양 근대의 물질적인 우수함은 받아들이더라도
자신들의 정신적인 정체성은 그대로 지킨다는 취지였는데, 물론 잘 되기 어려웠다.
다른 면에서 서양의 근대는 서로 엇갈리는 메시지들을 전달한 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주체성에 기반한 해방의 메시지와 함께 절대적인 신에 의지하는
구원의 복음도 함께 전해졌다.
한국은 아마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로 모순이 될 수도 있는
기독교와 근대성을 함께 받아들여 성공한 나라가 아닌가 한다.
여하간 산업화의 성공에 따른 물질적 풍요가 무제한의 탐욕을 낳고
이것이 부국강병이나 착취 그리고 약육강식 같은 실제로 이어지는 것도
함께 전해진 것이다.
근대화의 모순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살상과 파괴가 극심한 두 차례에 걸친
대전으로 이어졌고 일본의 참여로 아시아도 이 참화에 이끌려 들어갔다.
기미 독립선언서는 인류가 처음으로 겪은 전 세계에 걸친 무의미한 참화가 끝난 시점에
나온 세계사적인 문서이다.
이 문서는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이것이 단지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세계사적인 대전환의 문제임을 조명한다.
서양 근대화에 내재한 모순을 지적하고 새로운 세계사적인 전망이
어떻게 한국의 독립으로 가능한 것인지 설파하고 있다.
일본의 지도층이 이 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였더라면 그 이후에 세상은,
혹은 적어도 아시아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결국 일본인 자신들도 이 엄청난 재앙에서 자유롭지 않았고
다른 어느 나라 국민 못지않은 고난을 겪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이유는 선조들의 희생과 독립을 향한 강한 의지 덕분이다.
그 정신을 이어받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역사를 기억하며,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대한독립 만세!"
그 외침이 지금도 우리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인류평등人類平等의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하며 차此로써
자손만대子孫万代에 고誥하야 민족자존民族自存의 정권正権을 영유永有케 하노라.’
귀에 쟁쟁히 들린다
위대한 코리아여! 깨어나라!
창라 언덕길을 길으며 나라를 걱정한다
독립선언문(앞부문)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 만방에 고하야 인류 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써 자손 만대에 고하야 민족 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장(仗)하야 차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성충(誠忠)을 합하야 차를 포명(布明)함이며
민족의 항구여일(恒久如一)한 자유 발전을 위하야 차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의 발로(發露)에 기인한 세계 개조의 대기운에
순응병진(順應幷進)하기 위하야 차를 제기함이니
시(是)이 천(天)의 명명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 인류 공존 동생권의 정당한 발동이라
천하 하물(何物)이던지 차를 저지 억제치 못할 지니라.
사우(동무 생각 1,2절)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더운 백사장에 밀려드는 저녁 조수 위에 흰 새 뛸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저녁 조수와 같은 내 맘에 흰 새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떠돌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