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1박2일 간 고교 동창생들의 모임인 '청솔회'의 정모가 있었다.
대전 '수통골'에서 모였고, 숙박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대전 시내에 있는 단독주택을 구했다.
2층짜리 아담한 주택이라 조용했고 쾌적했다.
우리들끼리 숙박을 하며 대화를 나누기엔 딱이었다.
1980년도, '광주민주항쟁'이 있던 바로 그 해에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우리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가고, 군대 다녀오고, 대학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고, 결혼하고,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느라 각자 고군분투하며 분주한 일상을 살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2009년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낯선 번호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상대방이 외쳤다.
"친구야. 그동안 잘 지냈노? 나 기모다"
"잉? 고딩 1학년 2반, 전기모?"
"고뤠에~~"
"와우, 이게 얼마 만이냐? 살아 있었구나"
진정으로 반가웠다.
"지금 어디서 살고 있노?"
"경남 진주에 있다. 넌 서울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며? 동창생 몇 명에게 물어보았더니 너를 다 알고 있더라. 그래서 니 번호를 받아 지금 전화하는 기다"
만사를 제쳐두고 주말에 만나기로 했다.
중간지점인 대전에서 보자고 했다.
가슴이 설렜다.
이게 얼마 만인가?
고딩 졸업 후에 보지 못했으니 27-8년은 족히 된 듯했다.
양해를 구하고, 기존의 주말 약속을 뒤로 연기했다.
안 할 수 없었다.
대전으로 가기 2-3일 전에 대전에 사는 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욱아. 기모랑 계룡산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너도 같이 보자"
대전 친구도 단박에 "오케이" 했다.
그렇게 중년 사내 세 명이 '동학사' 앞 주차장에서 갈비뼈가 부러질 만큼 힘차게 포옹했다.
진심으로 반가웠고 감사했다.
잊고 살았던 죽마고우를 다시 만났다.
간단한 먹거리와 막걸리 몇 병을 배낭에 넣고 '계룡산'에 올랐다.
정상을 찍고 하산하는 길에 약간 외진 곳으로 갔다.
비교적 넓은 바위가 있었고, 그곳에서 김밥과 안주, 막걸리를 나누며 기모의 지난 28년 간의 '인생여정'을 낱낱이 들었다.
대학 때 ROTC에 지원했고, 최 전방에서 장교로 오랜 세월 군생활을 했으며 그런 까닭에 동창생들과 거의 교류를 하지 못했노라고 했다.
지금은 군복을 벗었고 통영의 어느 큰 조선소에서 '예비군 중대장'을 하고 있으며 친구들이 그리워 하나 둘씩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군에 있을 땐 몰랐는데 세상으로 나오니 옛날의 벗들이 너무도 그립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정중하게 부탁 하나를 건넸다.
"친했던 동창생들과 모임을 하나 만들고 싶은데, 그 모임 결성과 초창기 리더십, 헌신, 열정의 역할을 나에게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좌고우면할 것도 없었다.
그 산상에서 세 명이 힘차게 악수를 나누며 격하게 동의했다.
'청솔회'는 그렇게 태동했다.
계룡산 3인방과 코드가 맞는,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던 친구들 12명을 초대했다.
그리하여 '청솔회'는 15명이 되었다.
모임이 결성된지 어느새 14년이 흘렀다.
세월은 번개였다.
지난 주말,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느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마니또 게임'을 진행했다.
A가 B에게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건네면서 본인이 써 온 손편지를 낭독했다.
B는 다시 C에게, C는 또 D에게, 이런 식으로 모든 친구들이 한 사람, 한 사람씩 순차적으로 손편지를 읽었다.
때론 폭소가 터졌고, 때론 가슴이 뭉클했다.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친구도 있었다.
환갑을 맞은 친구들의 '마니또 게임'이라니.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내용은 대개 비슷했다.
깊은 위로와 격려,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위한 동행과 반려, 건강 당부, 인생2막을 향한 진솔한 나눔과 교제, 상호 존중과 우정의 완성으로 모아졌다.
인지상정이었다.
편지 낭독이 끝나면 자신의 최애 노래도 한 번씩 불렀다.
시종일관 즐겁고 다감한 시간이었다.
친구들 70-80%가 이미 은퇴를 했거나 금년에 은퇴를 앞두고 있다.
개인사업을 하는 친구들을 제외하면 앞으로 1-2년 새에 대부분 현업을 떠날 것이다.
남은 인생길, 같이 가자 했다.
서로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맞잡은 채 함께 가자 했다.
속절없는 세월이 급류처럼 흐를 것이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모두가 늙고 아프고 병들 테지만 그럴지라도 긍정과 열정과 감사로 한번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을 '감동'과 '사랑'으로 엮어가자 했다.
경향 각지에서 어제도 오늘도 자신만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는 친구들.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해 본다.
내 논에만 물을 대지 말고, 들판 전체를 생각하며 묵묵하게 행동하는 인생 2막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오래 된 기도 내용이다.
그리 간구했다면 반드시 그리 살자.
인생, 별거 없다.
오늘도 많이 웃고 한번 더 주변을 배려하는 그런 멋진 목요일이 되길 빈다.
오늘은 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이며 가장 젊은 날이니까 더욱 힘차게 달려보자.
'청솔회' 친구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하며.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우리의 봄은 지금부터~~
멋진 친구들, 멋진 남자들의 만남이네요.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