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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지목(牛山之木)
우산의 나무라는 뜻으로, 우산의 나무는 원래 아름답다는 말로 인간의 심성은 본래 선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牛 : 소 우(牛/0)
山 : 뫼 산(山/0)
之 : 갈 지(丿 /3)
木 : 나무 목(木/)
세월이 참 무섭다. 가슴 아린 아픔도 세월로 무뎌지고, 가슴 그득한 추억도 세월로 흐려진다. 그러다 어느새 까마득해진다. 뭔가를 잃는 순간은 안타깝지만 그 또한 세월이 흐르면 그게 원래 내것인지조차 아리송하다. 인간은 그렇게 뭔가를 잃어가며, 또 잊어가며 산다.
맹자는 본래 인간의 심성이 선하다고 믿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인의예지의 단초다. 인간은 사단(四端)을 품고 있기에 본성이 선하다는 게 맹자의 생각이다. 이른바 성선설(性善說)은 인간을 바라보는 맹자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그건 믿음이면서 동시에 희망이다. 탐심이 가득하고 혼탁한 세상에서 인간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맹자 시대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악이 판을 친다. 현실이 그러하니 성선(性善)을 주창하는 스승에게 보내는 제자들의 눈빛에는 의구심이 그득했다. '세상을 보고도 그런 말씀이 나오느냐'는 눈빛이었을 듯 싶다.
어느 날 맹자는 제자들에게 본성이 선한 인간이 사는 세상이 왜 이리 혼탁해졌는지, 그 까닭을 들려줬다. 옛날 우산의 나무(牛山之木)는 원래 아름다웠다. 한데 큰 나라 수도의 교외에 있는 까닭에 도끼로 그 나무들을 찍어댔으니 아름다워질 수가 있겠는가. 밤낮으로 자라나고, 우로(雨露)를 받아 싹이 돋기도 하지만 다시 소와 양을 끌어다 자라는 족족 먹이니 저리 빈둥해진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 민둥산을 보고는 원래 거기에는 나무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우산지목(牛山之木)은 말 뜻 그대로 '우산의 나무'지만 '인간 본래의 선함'을 비유한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하고 우산의 나무처럼 아름다운데 이기심과 탐심과 권력욕이란 도끼로 연일 본성을 찍어대니 어찌 선함이 유지될 수 있겠느냐는 거다.
맹자는 탄식했다. "사람은 자신이 기르던 가축이 집을 나가면 온 집안이 다 찾아나서지만 정작 양심이 마음을 떠나면 찾아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맹자는 또 "잡으면 남아 있고 버리면 없어진다"고 했다. 인간이 태어날 때 품고 나온 선(善)도 스스로 붙잡지 않으면 결국 없어지고, 언젠가는 선을 품고 나왔다는 사실조차 잊는다는 뜻이다.
맹자는 속세의 낮에 생긴 사특한 기운을 고요한 밤에 걸러내면 타고난 선이 간직되지만, 밤사이에도 그 기운이 걸러지지 않으면 인간은 하루하루 짐승에 가까워진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인간을 '원래 짐승'으로, '원래 악한 존재'로 규정지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물질을 얻는 대신 '인간'을 하나 둘 잃어간다. 손톱만한 이익을 취하려 중한 목숨을 버리고, 사소한 것을 쥐려고 귀한 우정을 버리면서 '그게 본래의 인간'이라고 자위한다. 오래 잊혀지면 그게 당초 내것인지도 모른다. 악에 깊이 빠지면 그의 대척에 선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인간은 물질이나 권력을 얻으려고 '인간'을 잃어가기도 한다. 작은 이익을 취하려 중한 목숨을 버리고, 사소한 것을 쥐려고 귀한 우정을 버리면서 '그게 본래의 인간'이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선한 본성도 지키지 않으면 조금씩 사라지고, 악함도 수시로 돌아보고 깨우치면 선 쪽으로 다가간다.
▣ 맹자의 마음론, 우산지목(牛山之木)
세상을 살다보면 정말 이해 못할 사람들의 이해 못할 행동을 많이 보게 됩니다.'인간이라면 도저히 저럴 수가 없는데...'라며 인간에 대한 불신과 함께 허탈한 쓴 웃음을 지어 보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인간은 정말 원래부터 악한 존재였을까요? 아니면 이 풍진 세상이 그토록 악하게 만든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춘추전국시대 맹자가 살던 시대에도 맹렬하게 벌어졌던 논쟁 중에 하나였습니다. 순자의 성악설과 맹자의 성선설, 뭐 여러분들 많이 들어보신 이야기입니다. 맹자의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논리를 한 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착하다는 믿음이야 말로 어떤 사람을 끝까지 신뢰하고 포기 하지 않는 심리적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맹자가 말하는 논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인간들은 원래 착하게 태어났다. 그런데 모진 풍파와 세월이 인간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악하게 만들었다.당신은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믿어야 한다. 당신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원래 선하게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맹자는 자신의 논리를 당시 제후들에게 설득하기 위하여 우산지목(牛山之木)이란 고사성어를 꺼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소우(牛), 뫼산(山)자, 우산(牛山)이란 산은 풀 한포기 나지 않는 민둥산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 산이 원래부터 민둥산은 아니었다. 나무가 울창했던 이 산은 대도시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나무를 베어갔다. 나무를 잃은 우산(牛山)은 사람들이 안 오는 밤에 이슬을 머금고 부지런히 싹을 틔어내고 풀을 키웠다. 그러나 이번엔 낮에 목동이 소와 양을 끌고 나타나 조금 자란 그 풀마저 모두 뜯어먹고 말았다. 나무도 풀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된 우산. 그러나 그 산이 원래부터 민둥산은 아니었다.
어떻습니까? 맹자가 말하는 이야기, 한 편의 동화 같지 않습니까? 민둥산인 우산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간은 원래 따뜻한 사랑과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산에 도끼가 들어와 나무를 마구 베었던 것처럼 세파의 도끼가 우리의 양심을 찍어댄 것이지요.
우리들의 마음은 하루하루 황폐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 되면 찍혀지고 상처 난 내 영혼을 다시 추스르곤 합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면 또다시 세속에 험난한 파도에 부딪혀 그나마 살려낸 내 아름다운 영혼은 점점 빛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 상처받은 영혼은 원래부터 황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맹자는 잃어버린 우리의 선한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집에서 기르던 개나 닭을 잃어버리면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人有鷄犬放則知求之). 그런데 마음을 잃어버리면 도대체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은 모르고 있습니다(放心而不知求)." 돈이나 명예를 찾아다니기 보다는 잃어버린 마음, 방심(放心)을 거두어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맹자는 또 이런 예를 듭니다. "당신에게 구부러져서 펴지지 않는 무명지라는 손가락이 있다고 합시다. 그것이 당신의 신체에 결정적인 장애가 아니더라도 만약에 그 구부러진 무명지를 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천리가 멀다 않고 찾아가 무명지를 펴 달라 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당신의 손가락이 남들과 다르기 때문이지요. 당신의 손가락 하나가 남들과 다른 것은 부끄러워 펴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 왜 구부러진 당신 마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노력도 안하십니까?"
맹자의 이런 날카로운 외침 뒤에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인간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됩니다. 인간은 착하게 살아서는 생존할 수 없다고 자신에게 포악하게 대하는 것을 맹자는 자포(自暴)라고 합니다. 나는 불가능하다고 자신을 버린 사람을 자기(自棄)라고 합니다.
일명 맹자가 말하는 자포자기(自暴自棄)는 인간이 선하다는 신념을 버리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포자기의 상태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그 조직은 포기 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 됩니다. 우산은 원래 민둥산이 아니었다. 낮과 밤으로 도끼와 소들이 들어와 나무를 베고 풀을 뜯어먹어 상처를 입고 민둥산이 되었다. 인간을 바라보는 맹자의 아름다운 시선입니다.
▣ 우산지목(牛山之木)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면서 우산지목(牛山之木)이라는 말을 동원합니다. 사람의 본성은 원래 착하지만 주변의 외물(外物)로 인해 끊임없이 위협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 본성은 마치 우산(牛山)이 원래 수목이 우람차고 무성한 숲을 이뤘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중국 산동 성의 임치(臨淄)라는 대도시를 끼고 있어 쓸 만한 나무를 재목으로 베어가고 땔감으로 찍어 넘기면서 그루터기만 남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산은 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에 싹이 돋고 다시 숲이 우거지는 복원력을 갖습니다. 그러나 소와 양을 풀어놓아 그루터기마저 남아나지 않게 되면 본래 숲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맙니다. 결국 민둥산만 남게 되는 데 이게 우산의 운명입니다. 맹자는 우산의 무성한 숲이 벌거숭이가 돼 가는 과정을 사람의 양심에 비유합니다. 숲이 퇴락해 가는 것과 인간의 인의(仁義)가 무너져가는 과정을 겹쳐놓고 본 겁니다.
산이 본 모습을 유지하는 길은 자명합니다. 남벌(濫伐)을 막고 어쩌다 숲이 훼손됐다고 하더라도 그 싹을 키워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나무를 베는 것과 나무가 자라는 것 사이의 뜸이 필요합니다.
베는 일이 낮의 일이라면 숨을 고르고 양육의 시간을 주는 것은 밤의 역할일 것입니다. 밤낮이 교차하고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는 그 요철(凹凸)이 톱니바퀴를 굴리는 이치와도 같습니다. 도끼로 쉴 새 없이 나무를 찍어내는 일과 양심을 잃어버리는 것이 흡사하다고 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일이 다 야기(夜氣)가 부족한데서 오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야기란 밤의 기운을 말하는데 어둠이 내리고 만물의 활동이 멈추면서 비로소 생기는 평정하고 맑은 기상을 이릅니다. 낮의 시간이 발산하고 소진하는 기운이라면 밤의 시간은 수렴하고 온축하는 영역에 해당한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우산의 아름다움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도끼질을 멈추는 격절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야기가 부족하다는 것은 바로 그 휴지(休止)의 시간을 잃어가고 있다는 경고나 다름없다고 하겠습니다. 맹자는 우산의 예를 들어 자칫하면 도둑맞기 쉬운 인간의 본성을 지키는 일을 강조합니다. 굳이 보이지 않는 양심을 거론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돌아보면 야기가 부족해 일어나는 사고가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 맹자 고자장구상 - 8. 牛山
(孟子 告子章句上 - 8. 牛山)
산의 모습은 대체로 200년마다 바뀐다고 한다. 나무와 풀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라 무성하다가 번개나 자연발화로 불타서 민둥산이 되었다가 산에는 다시 나무들이 들어선다. 산은 원래 푸른곳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산의 나무를 벌목하거나 없애기 때문에 산은 황폐해지는 것이다.
맹자(孟子)는 일찍이 사람은 원래 착하고 선하게 태어난 존재라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였다. 그는 그 성선설을 우산의 나무(孟子集註 告子章句上 牛山之木)에 관한 고사(故事)로서 설명하였다.
孟子曰 : 牛山之木嘗美矣, 以其郊於大國也, 斧斤伐之, 可以爲美乎? 是其日夜之所息, 雨露之所潤, 非無萌櫱之生焉, 牛羊又, 從而牧之, 是以若彼濯濯也. 人見其濯濯也, 以爲未嘗有材焉, 此豈山之性也哉?
맹자 말씀하시길, “우산의 나무들이 일찍이 아름다웠으나 제나라 대도(大都)에 가까이 있어서 도끼로 벌채되었으니 어찌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되었어도 그 낮과 밤이 지나면서 자라나고 비와 이슬이 내려주어 싹이 돋아 살아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소와 양을 끌어다가 방목하여 이로써 저처럼 벌거숭이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벌거숭이가 된 산을 보고 일찍부터 재목이 있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
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 可以爲美乎?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 梏之反覆, 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不遠矣. 人見其禽獸也, 而以爲未嘗有才焉者, 是豈人之情也哉?
비록 사람에게 있어서의 것도 어찌 인의의 마음이 없겠는가? 사람이 그 양심을 잃어버리는 것은 또한 도끼들로 나무를 찍는 것과 비슷하니 날마다 날마다 벌채하면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가? 그 낮과 밤마다 자라게 하여 맑은 기운이 감돌지만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 씀씀이가 더불어 사람들과 서로 가까운 일은 드물다. 곧 그 낮에 한 소행들이 양심을 속박하여 기능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그 속박하는 일이 반복되면 곧 그 야기(夜氣; 日夜之氣와 平旦之氣)가 보존되지 못한다. 야기가 보존되지 못하면 곧 금수(禽獸)와 멀지 않은 곳에 있게 된다. 사람들이 그렇게 된 금수를 보고 일찍이 재질이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어찌 사람의 성정이겠는가?
故苟得其養, 無物不長; 苟失其養, 無物不消. 孔子曰 :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그러므로 진실로 잘 배양하면 자라지 않는 것이 없고, 구차하게 그 배양함을 잃어버리면 소멸하지 않는 것이 없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잡으면 있고 놓으면 없어진다. 출입을 때 없이 하여 그 향할 바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오직 마음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의 심성(心性)은 하늘이 부여한것으로서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것인데 맹자는 이것을 선(善)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그 근거로 사람이 누구나 남의 불행을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고 이로부터 4단(四端)과 4덕(四德)을 이끌어낸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의 실마리이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義)의 실마리이며,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禮)의 실마리이고,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智)의 실마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선한 성을 타고 나지만 외물(外物)에 의해서 혹은 어떤 영향에 의해서 모두가 선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인의예지의 4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그 본성(本性)에 차별이 있어서가 아니라 선의 실마리를 한껏 배양하고 확충하지 않은 결과라고 보고 이것을 군자(君子.지배자)와 소인(小人.피지배자)을 구분하는 근거로 삼았다. 즉 군자는 그것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반면 소인은 보존하지 못하고 상실한다는 것이다.
▶ 牛(소 우)는 ❶상형문자로 뿔이 달린 소의 머리 모양을 본뜬 글자로 소를 뜻한다. 뿔을 강조하여 羊(양)과 구별한 글자 모양으로, 옛날 중국에서는 소나 양을 신에게 빌 때의 희생의 짐승으로 삼고 신성한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글자도 상징적이며 단순한 동물의 모양은 아니다. ❷상형문자로 牛자는 '소'를 뜻하는 글자이다. 牛자의 갑골문을 보면 뿔이 달린 소의 머리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었다. 갑골문에서부터 소전까지는 이렇게 소의 양쪽 뿔이 잘 묘사되어 있었지만, 해서에서는 한쪽 뿔을 생략해 '절반'을 뜻하는 半(반 반)자와의 혼동을 피하고 있다. 농경 생활을 하는 민족에게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다. 느리지만 묵직한 힘으로 밭을 갈거나 물건을 옮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소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牛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제물(祭物)'이나 '농사일'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牛(우)는 성(姓)의 하나로 ①소(솟과의 포유류) ②별의 이름, 견우성(牽牛星) ③우수(牛宿: 28수의 하나) ④희생(犧牲) ⑤고집스럽다 ⑥순종(順從)하지 않다 ⑦무릅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소 축(丑),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소의 젖을 우유(牛乳), 소의 뿔을 우각(牛角), 소와 말을 우마(牛馬), 소를 부려 밭을 갊을 우경(牛耕), 소를 잡는 데 쓰는 칼을 우도(牛刀), 소의 가죽을 우피(牛皮), 소 걸음이란 뜻으로 느린 걸음을 우보(牛步), 소의 궁둥이로 전하여 세력이 큰 자의 부하에 대한 비유를 우후(牛後), 소의 수컷으로 수소를 모우(牡牛), 소의 암컷으로 암소를 빈우(牝牛), 털빛이 검은 소를 흑우(黑牛), 소싸움 또는 싸움 소를 투우(鬪牛), 식용할 목적으로 사육하는 소를 육우(肉牛), 주로 일을 시키려고 기르는 소를 역우(役牛), 쇠귀에 경 읽기란 뜻으로 우둔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이독경(牛耳讀經), 소가 물을 마시듯 말이 풀을 먹듯이 많이 먹고 많이 마심을 우음마식(牛飮馬食),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으로 큰 일을 처리할 기능을 작은 일을 처리하는 데 씀을 이르는 말을 우도할계(牛刀割鷄), 소가 밟아도 안 깨어진다는 뜻으로 사물의 견고함의 비유를 우답불파(牛踏不破), 소를 삶을 수 있는 큰 가마솥에 닭을 삶는다는 뜻으로 큰 재목을 알맞은 곳에 쓰지 못하고 소소한 일을 맡기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을 우정팽계(牛鼎烹鷄), 소 궁둥이에 꼴 던지기라는 뜻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가르쳐도 소용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우후투추(牛後投芻),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등에 쓰인다.
▶️ 山(메 산)은 ❶상형문자로 산의 봉우리가 뾰족뾰족하게 이어지는 모양을 본떴다. 옛 자형(字形)은 火(화; 불)와 닮아 옛 사람은 산과 불이 관계가 깊다고 생각한 듯하다. ❷상형문자로 山자는 '뫼'나 '산', '무덤'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山자는 육지에 우뚝 솟은 3개의 봉우리를 그린 것으로 '산'을 형상화한 상형문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山자를 보면 가파른 능선이 그려져 있어서 한눈에도 이것이 산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山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산의 이름'이나 '산의 기세'나 '높다'와 같이 '산'에서 연상되는 여러 의미로 활용된다. 그래서 山(산)은 (1)둘레의 평평(平平)한 땅보다 우뚝하게 높이 솟아 있는 땅의 부분(部分). 메 (2)산소(山所) (3)사물이 많이 쌓여 겹치거나, 아주 크거나, 매우 많은 것에 비유한 말, 또는 그것 (4)산이나 들에 절로 나는 것을 뜻하는 말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메(산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뫼 ②산신(山神: 산신령), 산의 신(神) ③무덤, 분묘(墳墓) ④절, 사찰(寺刹) ⑤임금의 상(象) ⑥산처럼 움직이지 아니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큰 산 악(岳),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내 천(川), 강 강(江), 물 하(河), 바다 해(海), 물 수(水)이다. 용례로는 여러 산악이 잇달아 길게 뻗치어 줄기를 이룬 지대를 산맥(山脈), 들이 적고 산이 많은 지대를 산지(山地), 산과 물으로 자연의 산천을 일컫는 말을 산수(山水), 물건이나 일이 산더미처럼 많이 쌓임을 산적(山積), 산과 숲 또는 산에 있는 수풀을 산림(山林), 크고 작은 모든 산을 산악(山岳), 산 꼭대기를 산정(山頂), 산 위에 쌓은 성을 산성(山城), 무덤을 높이어 이르는 말을 산소(山所), 산 속에 있는 절을 산사(山寺), 산과 산 사이로 골짜기가 많은 산으로 된 땅을 산간(山間), 산의 생긴 형세나 모양을 산세(山勢), 산 속에 있는 마을을 산촌(山村), 산에 오름을 등산(登山), 강과 산으로 자연이나 나라의 영토를 강산(江山), 높고 큰 산으로 크고 많음을 가리키는 말을 태산(泰山), 높은 산을 고산(高山), 산에서 내려옴을 하산(下山), 신령스러운 산을 영산(靈山), 연달아 잇닿은 많은 산을 군산(群山), 조상의 무덤이나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을 선산(先山), 산에 들어감을 입산(入山), 나무가 무성하여 푸른 산을 청산(靑山), 돌이나 바위가 없이 흙으로만 이루어진 산을 토산(土山), 유용한 광물을 캐어 내는 산을 광산(鑛山), 눈이 쌓인 산을 설산(雪山), 들 가까이에 있는 나지막한 산을 야산(野山), 산을 좋아함을 요산(樂山),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 뜻으로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산류천석(山溜穿石), 산에서의 싸움과 물에서의 싸움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온갖 고난을 다 겪어 세상일에 경험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산전수전(山戰水戰), 산빛이 곱고 강물이 맑다는 뜻으로 산수가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을 산자수명(山紫水明), 산과 바다의 산물을 다 갖추어 아주 잘 차린 진귀한 음식이란 뜻으로 온갖 귀한 재료로 만든 맛이나 좋은 음식을 일컫는 말을 산해진미(山海珍味), 경치가 옛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산천의구(山川依舊), 산천과 초목 곧 산과 물과 나무와 풀이라는 뜻으로 자연을 일컫는 말을 산천초목(山川草木), 산이 앞을 가로막고 물줄기는 끓어져 더 나아갈 길이 없다는 뜻으로 막바지에 이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산궁수진(山窮水盡), 산의 초목이 자줏빛으로 선명하고 물은 깨끗하다는 뜻으로 경치가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을 산자수려(山紫水麗), 산은 높고 물은 유유히 흐른다는 뜻으로 군자의 덕이 높고 끝없음을 산의 우뚝 솟음과 큰 냇물의 흐름에 비유한 말을 산고수장(山高水長),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산 위에서 그리스도 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에 관하여 행한 설교를 일컫는 말을 산상수훈(山上垂訓), 산꿩과 들오리라는 뜻으로 성미가 사납고 제 마음대로만 하려고 해 다잡을 수 없는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산계야목(山鷄野鶩), 벼슬이나 속세를 떠나 산골이나 시골에 파묻혀 글읽기를 즐기며 지내는 선비를 이르는 말을 산림처사(山林處士), 산이 울면 골이 응한다는 뜻으로 메아리가 산에서 골짜기까지 진동한다는 말을 산명곡응(山鳴谷應), 산 밑에 절구공이가 더 귀하다는 뜻으로 물건이 그 생산지에서 도리어 더 품귀함을 이르는 말을 산저귀저(山底貴杵)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木(나무 목)은 ❶상형문자로 땅에 뿌리를 박고 선 나무 모양을 본뜬 글자로 나무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木자는 나무의 뿌리와 가지가 함께 표현된 상형문자이다. 땅에 뿌리를 박고 가지를 뻗어 나가는 나무를 표현한 글자라 할 수 있다. 중·고등용 상용한자에서는 木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가 많다. 쇠를 능숙하게 다루기 이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가공하기 쉬운 성질을 가진 것이 나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무와 관련된 한자를 보면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나무를 어떻게 활용했고 인식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木자는 나무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나무의 종류나 상태에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木(목)은 (1)무명으로 된 것 (2)오행(五行)의 하나. 방위(方位)로는 동쪽, 철로는 봄이다. 빛으로는 푸른색으로 가리킨다. (3)어떤 명사 앞에 쓰여 나무로 된 무명으로 된의 뜻을 나타내는 말 (4)성(姓)의 하나 (5)목요일(木曜日) (6)팔음(八音)의 한 가지이다. 지어(枳敔)와 같은 종류의 나무로 만든 일종의 마찰(摩擦) 악기 등의 뜻으로 ①나무 ②목재(木材) ③널(시체를 넣는 관이나 곽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관(棺) ④오행(五行)의 하나 ⑤목성(木星; 별의 이름) ⑥목제 악기 ⑦형구(刑具; 형벌을 가하거나 고문을 하는 데에 쓰는 여러 가지 기구) ⑧무명(무명실로 짠 피륙) ⑨질박하다(質樸;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다) ⑩꾸밈이 없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수풀 림/임(林), 수풀 삼(森), 나무 수(樹)이다. 용례로는 나무 인형을 목상(木像) 또는 목우(木偶), 나무 그릇을 목기(木器), 나무 도장을 목도장(木圖章), 나무를 다루어서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일을 목공(木工), 나무와 풀을 목초(木草), 나무토막으로 만든 베개를 목침(木枕), 나무를 다루어 집을 짓거나 물건을 만드는 일로 업을 삼는 사람을 목수(木手), 술청에 목로를 베풀고 술을 파는 집 목로주점(木壚酒店), 나무나 돌과 같이 감정이 없는 사람을 비유하여 목석(木石), 나무에도 돌에도 붙일곳이 없다는 뜻으로 가난하고 외로워서 의지할 곳이 없는 처지를 이르는 말을 목석불부(木石不傅), 나무에도 돌에도 붙일 데가 없다는 뜻으로 가난하고 외로와 의지할 곳이 없는 경우를 이르는 말을 목석난득(木石難得), 나무 인형에 돌 같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감정이 전연 없는 사람 또는 의지가 굳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목인석심(木人石心), 나무나 돌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이르는 말을 목우석인(木偶石人), 나무 인형에 옷을 두른 것이라는 뜻으로 아무 능력이나 소용이 없는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목우인의(木偶人衣), 나무나 돌처럼 아무런 감정도 없는 마음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목석간장(木石肝腸), 나무 껍질이 세 치라는 뜻으로 몹시 두꺼움을 이르는 말을 목피삼촌(木皮三寸)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