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뜯은 산나물
금요일 퇴근길 거제에서 창원으로 복귀하니 25호 국도변 벚나무는 꽃이 지고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도청을 지난 창이대로 가로수 느티나무들은 연두색으로 물들어 사월 하순과 같은 계절감을 느꼈다. 아파트단지 맞은편 상가에서 예전 근무지 동료와 만나 안부를 나누는 잔을 기울였더니 평소보다 늦은 시간 잠에 들었다. 이튿날 잠을 깨 날씨부터 검색해본 사월 셋째 토요일이다.
올봄 들어 세 번 주말 연속해 강수가 예보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비가 오지 않음만도 다행이었다. 아침나절 근교 산행을 위해 길을 나섰다. 도청 뒤 용추계곡이나 비음산이 떠올랐다. 달천계곡이나 천주산 진달래 군락지로 가 볼까도 싶었다만 마음을 돌렸다. 이왕 가는 산행이라면 산나물을 몇 줌 채집해 옴이 당연한데 그런 곳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 나에게까지 돌아올 몫이 없다.
발품을 팔아 인적 없는 곳으로 가길 위해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 김밥을 마련했다. 진전 둔덕으로 가는 76번 농어촌버스를 탔다. 버스는 마산 시내를 관통해 밤밭고개를 넘었다. 진동 환승센터를 둘러 진전 오소에서 일암과 대정을 거쳐 골옥방에서 이십여 분 멈췄다. 시동을 다시 건 기사가 둔덕을 둘러나갈 때 내렸다. 함안 군북으로 통하는 지방도 공사현장을 지나 오실골로 올랐다.
당산나무를 지난 계곡에서 머위를 뜯었다. 현지인이 먼저 캐 갔을 머위는 잦은 봄비에 움이 새로 돋아 잎을 펼쳐 있었다. 군락을 이룬 머위 자생지라 짧은 시간 배낭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배낭에 넣어둔 김밥과 우산은 보조가방에 넣고 손에 들었다. 배낭을 짊어지고 오곡재로 오르는 지방도를 따라 걷다가 미산령으로 가는 임도로 드니 점심나절부터 온다던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이미 산중으로 들렀기에 되돌아갈 수 없는 형편이라 미산령을 넘기로 마음을 굳혔다. 점심때가 일렀지만 소나무 가지가 비를 가려주는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김밥을 비웠다. 도시락을 비워야 새로 뜯을 산나물이 들어갈 공간이 생겨났다. 빗방울은 성글게 내려 우산을 펼쳐 쓸 정도는 아니었다. 도심 가로수 벚꽃들은 졌으나 해발이 높은 지대 산벚나무들은 아직 꽃잎을 달고 있었다.
산벚나무꽃 열병을 받으며 걷는 길섶에는 빗속에 제비꽃과 양지꽃이 무리지어 꽃잎을 펼쳐 화사했다. 미산령 정자를 저만치 앞두고 개척 산행을 감행해 오곡재에서 오르는 산등선으로 올랐다. 숲으로 드니 빗살서덜취와 바디나물이 보여 몇 줌 뜯었다. 오리방풀과 고비고사리도 보였다. 보라색 각시붓꽃이 피어 눈길을 끌었다. 숲을 헤쳐나간 산비탈에서 두릅나무 자생지를 찾아냈다.
등산로로부터 떨어진 숲속이라 두릅 순은 다른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온전했다. 순은 데쳐서 먹기 알맞을 만큼 자라나왔다. 가시를 조심하면서 두릅 순을 따 모았다. 오곡재에서 미산봉으로 오르는 길과 합류하니 거기도 두릅나무 군락지가 나왔다. 길섶이라 선행주자가 먼저 따 가도 남겨둔 두릅 순을 몇 줌 더 보탰다. 미산봉에 오르니 등산로는 상데미봉과 미산령으로 나뉘어졌다.
미산령으로 내려서니 맞은편 여항산에 걸쳐진 운무가 장관이었다. 미산정에서 보조가방에 담긴 산나물과 두릅 순을 꺼내 검불을 가려 함안으로 가는 북사면 비탈을 걸었다. 비가 많이 와 우산을 펼쳐 썼다. 빗속에도 우산과 배낭을 길섶에 두고 임도를 벗어나 두릅나무를 찾아내 순을 더 땄다. 두릅 순으로 채워진 보조가방은 묵직해졌다. 한 손엔 가방을 들고 한 손엔 우산을 들었다
골짜기를 내려가다 바위틈에 흐르는 석간수를 엎디어 마셨더니 갈증이 가셨다. 세차지도 않은 가는 빗줄기는 계속 내렸다. 파수마을 동구에 이르니 군내버스가 들어와 되돌아가려 해 가야읍으로 나갔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함안역까지 걸어 열차를 탈 셈이었는데 버스가 와 마음을 바꾸었다. 가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마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비는 창원에 닿아도 그치지 않았다. 21.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