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두희氏 피살 ]
●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뒤에 숨어 지내던 안두휘氏가 오늘 오전 자신의 집에서 끝내 피살됐습니다.
백범 암살 그 후 47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서였습니다.
먼저, 안두희氏 피살 소식을 정연국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오늘 오전 6시, 올해 79살인 안두희氏의 피살 용의자43살 박기서氏는 민족정기구현회의 권중희氏에게 안두희를 처벌 하겠다라는 전화를 했습니다.
오전 11시 30분 박氏는 안두희氏의 동거녀 63살 김명희氏가 수퍼마켓에 가기 위해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아파트 안으로 밀고 들어갔습니다.
그런 뒤에 안氏를 준비해간 방망이로 살해했습니다.
11시 40분, 박氏는 이런 사람은 살려둘 수 없다.
안두희를 죽였다라고 권氏에게 다시 알려왔습니다.
● 권중희氏: 무조건 가봐야 되겠다 해가지고 어차피 오는 거니까 해가지고 현장에 도착하니까 이미 일은 끝났고...
● 기자: 이렇게 해서 지난 49년 백범 선생 암살이후 파란만장한 삶을 영위해왔던 안두희氏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피살돼 시신으로 들려 나왔습니다.
피살 당시 안氏는 반듯한 자세로 두 손발이 끈으로 묶인 채 피범벅이 돼있었습니다.
안氏 옆에는 정의봉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40cm 길이의 피 묻은 방망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 조월호氏(이웃주민): 아저씨는 여기 머리통을 맞은 것 같애.
여기를 맞아갖고 피가 많이 흐른 것 보니까 이쪽이 피가 많이 흘렀더라고, 아저씨 얼굴도 피 투성이고...
● 기자: 안氏의 행적을 지속적으로 추적해온 권중희氏의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라는 책에 감명 받았다는 버스 운전기사 박기서氏 오늘 오후 7시 5분쯤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 한 성당에서 자수했습니다.
MBC 뉴스, 정연국입니다.
(정연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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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안두희와 박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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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006-10-24 01판 29면 1276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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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0년 전 일이다. 박기서는 안두희에게 물었다. “네가 안두희냐?”
도피와 병마에 지친 늙은 안두희는 소리 나는 쪽으로 겨우 고개를 돌렸으나, 자신이 안두희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정하지 못했다.
박기서는 ‘정의봉’을 꺼냈다. 순간 종교적인 번뇌가 스쳐갔다. 버스 운전으로 겨우 꾸려가는 가정형편과 고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결국 박기서는 정의봉을 휘둘렀다.
그는 ‘겨레와 조국에 죄를 지은 자가 하늘이 주는 수명을 다하는 것’을 결코 볼 수 없었다. 이 땅에서 ‘정의’가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안두희는 허망하고 처참하게 숨졌다. 1996년 10월23일이었다.
육군 소위이던 안두희는 1949년 6월26일 백범을 암살하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헌병 지프에 실려가서 무기형을 받았다. 그의 수감생활은 고기, 술, 담배가 원없이 제공되는 호화판이었다. 다음해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현역으로 복귀하여 대령까지 초고속 승진했고, 전역 후에는 검은 세력의 비호 아래 군납업에 손을 대 한때 강원도에서 두 번째로 세금을 많이 낼 만큼 큰돈을 만졌다. 자유당 붕괴 후, 그는 이름을 바꾸고 부인과 위장이혼하고 가족을 외국으로 빼돌렸다. 자신도 이민을 시도했다.
그는 백범 암살에 관한 일들에 대해 끝내 거짓과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죽음은 삶의 단순한 종결이 아니라, 삶의 한 과정이다. 죽음은 종국에 삶의 모습을 반영한다. 그래서 안두희의 죽음은 극적 상징성을 띤다.
박기서는 성당에서 자수했다. 그리고 법이 정한 대로 형을 살고, 예전처럼 운전대를 잡고 살고 있다. 그가 그날 한 일을 두고 개인이 개인을 사적으로 징벌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묻고 싶다. 과연 그가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저버리고, 개인적인 응징을 결심하고 실행할 때까지 이 나라와 이 사회는 무엇을 했는가라고 말이다. 그가 그날 한 일은 음모와 거짓과 침묵으로 점철된 거대한 악의 구조에 온몸을 던진 도전장이고, 불의에 면역되고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제 제발 진실을 향해 눈과 귀를 열라는 피맺힌 절규에 다름 아니다.
박기서가 안두희를 난생처음 만나고 영원히 헤어진 지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변했을지는 모르지만, 현실은 여전히 완악하고 진실은 아직도 멀리 있다. 이제라도 백범 암살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은폐했던 검은 세력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 그것이 겨레의 자긍심을 살리는 일이고, 역사의 진실을 찾아나가는 일이고, 또다른 박기서를 만들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선동/예원학교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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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 no.1은 퇴임후 어디가서 사실지. 찾아 오는 사람 많을 것도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