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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자유게시판 스크랩 나누고 싶은 글 법전종정예하 하안거 해제법문
[應天] 추천 0 조회 64 06.08.03 23: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노조의 면벽은 통하지 않는 소식”
법전종정예하, 하안거 해제법문 내려
전국 94개 선원, 2225명 용맹정진

대한불교조계종 법전 종정예하는 8일(음력 7월 15일) 병술년 하안거 해제일을 맞아 하안거 해제법문을 내렸다.

법전 종정예하는 평소 납자들이 오면 벽을 향해 돌아 앉는 송나라 대 안휘성 보운선사와 보원선사의 일화를 예로 들으며 사비(玄沙師備) 선사가 착어(着語)인 “만약 그 때 내가 남전 선사를 보았다면 등짝에다가 뜸 다섯 장을 떠주었을 것이다.”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이 말이 노조의 면벽과 같은 도리이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도리이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종정예하는 이어 “만일 이를 제대로 알아차린 납자가 이 해제대중 속에 있다면 산승은 그 납승에게 ‘그대의 불법이 갈 곳이 있다’고 허락할 것”이라고 설했다.

또 종정예하는 “병술년 하안거 해제대중들은 만약 그 뜻을 아직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절대로 귀신 굴속에서 알음알이로 헤아리지 말 것이며, 만행 길에도 걸망 속에 꼭꼭 집어넣고 다니면서 참구하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종정예하는 말후구에서 “노조가 벽을 향함은 통하지 않는 소식이거늘(魯祖面壁不通消息이니)
발을 옮겨 앞으로 가려면 한 바탕 가시밭이라(移步進前一林荊棘이라”라고 일갈했다.

한편 전국선원수좌회가 전국선원의 정진 대중 현황을 집계한 <병술년 하안거 선사방함록>에 따르면 전국 94개 선원, 정진 대중 총 2,225명(비구선원은 해인총림선원 등 59곳, 비구니선원은 견성암선원 등 35곳에서 큰방 대중 1,883명이, 외호 대중은 342명)이 수행에 동참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태동기자 tdyeo@ibulgyo,com


다음은 조계종 법전 종정예하의 병술년 하안거 해제 법문 전문.

안휘성(安徽省) 지주(池州) 노조산(魯祖山) 보운(寶雲) 선사는 평상시에 납자가 오기만 하면 얼른 벽을 향해 돌아앉았습니다. 그러자 그 납자는 바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남전보원(南泉普願) 선사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평상시에 수행자들에게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시기 이전의 경지에서 알아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납자는 아직도 한 개는 커녕 반 개도 얻지 못했구나. 그래서야 나귀 해(驢年)가 되어야 한 개나 반 개를 얻으리라.”

노조보운 선사는 무릇 납자들이 오기만 하면 문득 벽을 향해 앉았으나, 이는 달마가 9년 동안 앉았던 이후로는 아무도 이 영(令)을 다시 시행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노조 선사가 제방에서 부처와 조사를 묻는 선지식들로 하여금 아픔과 가려움을 느낄 줄 알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것이었습니다. 남전과 노조는 마조의 제자로 사형사제간입니다.

사람들이 바늘과 송곳으로 노조를 찔러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남전이 한 마디 보탠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의 지나친 도도함을 꾸짖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를 칭찬하면서 마주보고 몽땅 내어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아무리 말로 충분하게 설명한다고 해도 어찌 한 차례 직접 가보는 것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영산(靈山)은 달을 그린 것과 같고 조계산(曹溪山)은 달을 가리킨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달마의 면벽과 노조의 면벽은 면벽 그대로가 바로 법문입니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노조선사가 납자들이 찾아오기만 하면 벽을 향해 앉았고 역시 남전이 와도 벽을 향해 앉았습니다. 대부분의 납승은 말없이 그냥 돌아갔지만 남전은 이에 대하여 한 마디 던진 것입니다. 남전 선사는 알맞은 시기를 잘 식별하고 길흉을 잘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사실 노조 선사의 속뜻은 몰랐다고 할 것입니다.

하긴 금을 팔려고 한다면 금 사는 사람을 만나야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 선사는 납자가 오기만 하면 왜 꼭 벽을 향해 돌아앉은 것이겠습니까? 앉아있는 것이 선이겠습니까? 벽을 향한 것이 도이겠습니까? 돌아앉는 것이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까? 사람들을 위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것이 납자를 제접한 것입니까? 납자를 제접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현사사비(玄沙師備) 선사는 이렇게 착어(着語)를 하였습니다.
“만약 그 때 내가 남전 선사를 보았다면 등짝에다가 뜸 다섯 장을 떠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이 노조의 면벽과 같은 도리이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도리이겠습니까. 만일 이를 제대로 알아차린 납자가 이 해제대중 속에 있다면 산승은 그 납승에게 “그대의 불법이 갈 곳이 있다”고 허락할 것입니다. 병술년 하안거 해제대중들은 만약 그 뜻을 아직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절대로 귀신 굴속에서 알음알이로 헤아리지 말 것이며, 만행길에도 걸망 속에 꼭꼭 집어넣고 다니면서 참구하시길 바랍니다.

노조가 벽을 향함은 통하지 않는 소식이거늘(魯祖面壁不通消息이니)
발을 옮겨 앞으로 가려면 한 바탕 가시밭이라(移步進前一林荊棘이라)

2550(2006)년 하안거 해제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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