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하고 조용한 일요일 오후.
티비앞에 앉아서 낄낄대고 있는 승희, 혼자서 윷놀이를 하고있는 준후,
성경을 암송하고 계시는 신부님.
그리고 그런 그들을 나른하게 지켜보는 할일없는 현암.
"어디좀 갔다올게. "
심심함을 참지못하고 빠르게 밖으로 뛰쳐나가는 현암. 그뒤를 따라나오려다가
다시 윷판 앞에 걸터앉는 준후. 아마도 윷놀이에 빠졌나보다.
준후가 윷판앞에 다시 앉는걸 본 현암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걸어나갔다.
시원한 바람을 쐬며 공원앞을 지나던 현암은, 왠 귀여운 소녀가 하얀캡모자를
눌러쓰고, 하얀원피스를 입고 화분을 들고있는걸 보았다. 뭔가를 작게 웅얼거리는 소녀.
하지만 이내 입을 다물고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놀란현암이 소녀에게로 다가가물었다.
"너, 여기서 뭐하니? "
역시나 들릴듯말듯 뭔가를 웅얼거리는 소녀. 현암은 더 자세히 듣기위해 소녀의 얼굴에 귀를 들이댔다.
"꽃...을....팔..아..ㅑ..해..ㅇ..ㅛ "
아주 띄엄띄엄 말을 늘어놓는 소녀. 많이 더워하는것 같았다.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땀을흘리고 있었으니.
"꽃? 내가 사줄게. 얼마니? "
"2천..원..ㅇㅣ요.."
"2천원? 알았어. 여기, 그 꽃 이리줘봐. "
현암은 심하게 구겨진 2천원 두개를 소녀의 작은 손에 쥐어주고 화분을 받았다.
'엉? 이건 처음보는 종륜데.. 새로나온 품종인가? '
현암이 화분을 왼손에 들고 일어서자, 소녀역시 일어서며 작게 미소짓고 천천히
어디론가를 향해 걸어갔다. 멍하게 그모습을 지켜보던 현암은 이마에 난 땀을 닦으며
집으로 향했다.
"어머! 현암군! 이거 뭐야? 너무 예쁘다! 이 하얀 색좀봐! "
"승희누나! 꽃좀 그만 흔들어! 그러다 꽃 다 시들어 죽겠다! "
"야!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너야말로 물좀 그만줘! 뿌리 다 썩는단 말야! "
현암은 말씨름을 벌이는 그 둘사이에 껴서 아무말 않고 화분을 자신의 방에 뒀다.
뒤에서 준후와 승희가 자신에게 뭐라고 꿍얼거리며 둘이서 장단을 맞추며 낄낄대는 소릴 듣긴했지만, 현암은 무시했다.
아주 조용한 밤. 현암은 침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서 눈을 감고있었다.
하지만 자는건 아니였다. 찰칵찰칵, 시계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정도로 조용한밤이였다.
막 현암이 잠들려는 순간,
뭔가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뜬 현암.
침대에 그대로 누운채 고개를 반쯤 들어보니 화분이 보였다. 하지만..
아무 이상 없는것 같았다. 단지.. 뿌리가 화분 밖으로 기어나오고 있다는게 이상했지만...
"뿌리?! "
현암은 멍하니 있다가 눈을 퍼뜩 뜨며 침대에서 튕겨지듯 일어났다.
"뭐..뭐야 , 이건.. 이 꽃.."
현암은 당황하며 화분을 주시했다. 하얀꽃이 들썩 거리더리 흙이 사방으로 튀고,
뿌리가 기어나오고 있었다. 아니, 꽃이 기어나오고있었다. 뿌리를 다리삼아서.
잔뿌리들이 수없이 나있는 가느다란 뿌리. 꽃은 잔뿌리들을 이용해 걷고있었다.
현암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뒷걸을질 쳤다. 꽃은 현암을 벽쪽으로 몰아붙이고있었다.
완전히 벽에 다달아 뒷걸음질조차 칠수없게된 현암은 꽃은 밟아버리기로 결심했다.
오른발을 위로 올리는 순간.. - 꽃은 그대로 점프를 해서 현암의 목덜미에 달라붙어
팔쪽으로 스멀스멀 내려오기시작했다. 현암은 벌레가 기어내려오는듯한 느낌이들었다.
그순간, 꽃의 굵은 뿌리가 현암의 팔을 꿰뚫었고, 현암은 째지는듯한 소리를 질렀다.
꽃은 굵은 뿌리로 피를 빨아들였고, 꽃잎은 붉게 변해갔다. 그때, 꽃의 수술들이 모여있는 중심에
왠 눈이 하나 만들어지더니, 눈을 번쩍 뜨는것이 아니겠는가.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방을 가득매웠고, 누군가가 현암의 방문을 두드렸다.
현암은 필사적으로 꽃을 떼어내려고 애를쓰며 방문을 열려고했다. 그때,
꽃의 잔뿌리들이 길어지더니 현암의 몸을 칭칭 감쌌고, 현암은 눈앞이 휘청거리는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앞으로 넘어졌다. 꽃은 아직도 현암의 팔에 붙어서 필을 뽑아들이고 있었고, 현암은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그대로 기절을 하고 말았다..
"현암형! 현암형! 눈좀떠봐! "
준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깨어난 현암. 팔은 붕대로 칭칭 감싸서 있었고, 하얀꽃은 불에 탄듯이 꽃잎하나 남지않고 그슬려있었다.
"...어떻게...된거지. "
"현암군, 괜찮아? 아유, 내가 문을 부시고 들어와서 봤더니, 현암군은 완전 새파랗게 질려있고, 저 꽃은 지독하게 피를 빨아대고.."
'아, 그랬었지.. 꽃.. '
"꽃은? 꽃은, 어떻게.."
"준후가 홀라당 태워버렸는데, 글쎄 불이 좀 번져서, ...현암군방이, 하하하! "
승희는 멋쩍다는 듯이 관자놀이가있는쪽을 긁으면서 준후를 슬쩍 쳐다봤다.
준후는 아예 휘파람을 불며 딴청을 하고있었다. 현암은 주위를 둘어봤다. 자신의 팔옆에는 박신부가 식은땀을 흘리며 웃고있었고,
자신의 방은- 완전히 새카맣게 타있었다. 자신의 옷도 그을려있었고, 박신부의 옷도 너덜너덜해진걸 보니,
준후가 꽃을 태운답시고 방에 불을질러서, 현암이 위기에 빠졌고, 박신부가 불속에서 현암을 건져온것이였다.
현암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준후를 쳐다봤고, 준후는 딴청을하며 오른손에 들린 윷가락을 만지작 거리고있었다.
20대 후반쯤 되보이는 여자가 공원앞을 지나고있다. 공원 근처에서
하얀꽃을 들고있는 소녀. 소녀는 하얀모자를 쓰고있었다. 하얀원피스도 입고있었다.
하지만 하얀모자,하얀원피스는 물감을 묻혀서 번지게 한것처럼 빨갛게 반쯤 물들어있었다.
뭔가를 작게 웅얼거리는 소녀. 그러다가 털썩 주저앉는다. 여자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너, 여기서 뭐하니? "
"꽃...을....팔..아..ㅑ..해..ㅇ..ㅛ "
소녀는 작고 희미하게 웅얼거렸다. 소녀의 작은 입은 약간 미소를 짓고있는듯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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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팬픽[단편]
(( 화분에 핀 하얀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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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2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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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 섬뜩했습니다. 꽃을 팔아야한다고.. 꼭 현암이 아니더라도 다른사람을 등장시켰어도 충분히 섬뜩했을듯 하네요.. 잘봤습니다^ㅡ^ 하늘냥의 글이 생각나는군요
아아...공원을 조심해야겠군요; 잘 봤구요. 건필하시길-
결국 그 여자는 옷을 염색하고 싶어하는 건가요..=ㅈ=.....[탕-!] 20대 후반정도면... 말세때 승희나이인가....=_=.....;;;;
그그..그럼...현암은 거의 40대고,승희는 한 20대 후반이라면...흐흑!ㅠ _-!우리 동네에는 공원이 없어서 다행이다;[열악한 생활환경이 도움이 될 때가 있군]
이제부터 꽃은 안 살렵니다 ? -_-? 건필하세요 -
역시 꽃은 무서워요;; 그 꽃가루는 또 얼마나 무서운지; 내용 좋네요 ㅎㅎ 더웠는 데, 지금은 조금 추울 정도로 ㅎ 건필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