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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1부 4
수위의 죽음은 어처구니없는 징조들로 가득 찬 한 시기에 종지부를 찍었고, 초기의 놀라움이 조금씩 낭패감으로 변해서 비교적 더 어려운 시기로의 진전을 암시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 시민들은 나중에야 할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의 이 조그만 도시가 하필 쥐가 밖으로 나와서 죽고 수위가 괴상한 병으로 죽는 그러한 도시로 특별히 지정되리라고는 결코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그런 점에서 시민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었고, 그들의 생각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었다. 모든 일이 거기서만 끝났더라도 아마 그 일은 습관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 가운데 그 밖에도 몇몇 사람, 그것도 반드시 수위나 가난뱅이가 아닌 사람들이 미셸 씨가 먼저 밟은 길을 따라가야만 했다. 그때부터 공포와 더불어 반성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사건들을 자세히 설명하기 전에, 필자는 여캐까지 적어온 기간에 대해서 또 다른 목격자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의 첫머리에서 이미 나왔던 장 타루는 몇 주 전에 오랑에 자리를 잡고 그때부터 번화가의 커다란 호텔에 묵고 있었다. 분명히 그는 여러 가지 수입으로 제법 넉넉하게 살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오랑 시에서 그의 얼굴이 조금씩 익어가고는 있었지만, 그가 어디서 왔으며 왜 왔는지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모든 공개 장소에서 그를 보았다. 봄이 되면서부터 대개는 바닷가에서 즐겁게 수영하고 있는 타루를 볼 수 있었다. 호인이며 항상 웃는 낯인 그는 정상적인 오락이라면 무엇이든지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저 알맞게 즐기는 듯이 보였다. 사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의 유일한 습관이라곤 우리 도시에 있는 수많은 스페인 무용수와 악사들의 집을 열심히 드나드는 것뿐이었다.
아쨌든 그의 수첩에도 그 어려웠던 기간에 관한 일종의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보잘것없는 일만을 다루기로 작정한 듯 보이는 유별난 기록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타루가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사람이나 사물을 보려고 애썼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전반적인 혼란 가운데 그는 결국 사건이 없는 것에 대한 얘기꾼이 되려고 애썼던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그 작정을 한심하게 여기고 그 마음의 고갈 상태를 의심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 기간에 대한 기록으로서 그 수첩이 제2차적인 상세한 자료를 무수히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으며, 그 사소한 자료들이 제각기 중요성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해괴하기조차 한 이 흥미있는 인물을 경솔히 판단하기를 주저하게 될 것이다.
장 타루가 적은 초기의 기록들은 그가 오랑에 도착한 날부터 시작된다. 그 기록들은 처음부터 도시로서는 이렇게도 누추한 곳에 왔다는 점에 대한 묘한 만족감을 보여준다. 시청을 장식하고 있는 두 마리의 청동 사자상에 대한 세세한 묘사와, 나무들이 없는 점이라든가 볼품없는 집들이라든가 도시의 부조리한 면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를 거기에서 읽을 수 있다. 타루는 또한 설명도 붙이지 않고 전차나 거리에서 얻어들은 대화도 거기에 섞어서 적어놓았다. 다만 좀 뒤에 가서 캉이란 사람에 관한 그 대화들 가운데 하나에는 예외로 주를 붙여 놓았다. 타루는 두 사람의 전차 차장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자네도 캉을 잘 알지 왜?”
그중 하나가 말했다.
“캉? 키가 크고 검은 콧수염이 난 사람 말인가?”
“맞았어. 전철 일을 보고 있던 사람이야.”
“그래, 바로 그렇군.”
“그런데 그 사람이 죽었대.”
“저런 대체 언제?”
“그 쥐 소동이 난 다음이지.”
“허, 그거! 그런데 왜 죽었대?”
“모르지, 열병이래. 게다가 그 사람, 몸도 튼튼하지는 못했어. 겨드랑이 밑에 종기가 났었는데, 그만 견디지 못했던 모양이야.”
“그래도 보기에는 여느 사람하고 다를 게 없었는데.”
“천만에. 그는 폐가 약했지. 그러면서도 그대로 남성 성가대에서 나팔을 불었어. 줄곧 나팔 불기란 못 견딜 일이지.”
“거참!” 후자가 말끝을 맺었다. “아플 때는 나팔을 불어서는 안 되지.”
타루는 이런 몇몇 가지를 지적한 다음, 왜 캉은 명백하게 자신의 이익에 상반되는 성가대에 들어갔으며, 미사 행렬에 생명을 걸도록 그를 이끈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어서 타루는 자기의 창문과 마주 보고 있는 발코니에서 가끔 일어나는 광경에 좋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사실 그의 방은 작은 옆 골목을 향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벽의 그늘 밑에서 고양이들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나 매일 점심을 먹은 후 도시 전체가 더위 속에서 꾸벅거리며 조는 시간이면 길 저편의 발코니 위에 자그마한 노인이 나타났다. 얌전히 빗질한 흰머리에 군복 같은 옷을 입고 근엄하고 꼿꼿한 자세의 그 노인은 쌀쌀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비아, 나비야…”하고 고양이들을 불렀다. 고양이들은 아직 몸은 움직이지 않은 채 졸려서 뿌옇게 된 눈을 치뜬다. 노인은 거리에 종이를 찢어서 뿌리고, 그것을 본 고양이들은 그 흰 종이 나비에 끌려 맨 마지막 종잇조각들을 향해서 주춤거리다가 한 발을 내밀면서 길 한복판으로 걸어 나온다. 그러면 그 작은 노인은 고양이 위에다가 힘껏 가래침을 내뱉고, 가래침 하나가 목표물에 맞기라도 하면 웃어댔다.
결국 타루는 그 도시의 외관, 경기, 심지어 쾌락까지도 상거래의 필요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그 상업 도시로서의 성격에 완전히 매혹된 모양이었다. 그 특이성(이것은 그 수첩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다)은 타루의 칭찬의 대상이었고, 그의 찬사로 가득 찬 고찰 가운데 하나는 ‘마침내!’라는 감탄문으로 끝나 있기까지 했다. 그것은 그 시기에 그 영행자의 기록이 개인적인 성격을 띤 유일한 구절이었다. 다만 그 말의 뜻과 성실성을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죽은 쥐 한 마리의 발견이 호텔의 회계원으로 하여금 정부에 한 줄을 잘못 적게 했다는 것을 상세하게 기록한 다음, 타루는 여느 때보다 좀 무딘 글씨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물음—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느가? 답—시간이 길다는 것을 느낄 것. 방법—치과 병원 대기실의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한나절을 보낼 것. 일요일 오후를 자기 방 밖의 발코니에서 보낼 것.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하는 강연을 들을 것. 가장 길고 가장 불편한 기차 여정을 골라서, 물론 서서 여행할 것. 극장 매표구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가다 표는 사지 말것 등등.’ 그러나 그 언어 또는 사색의 탈선에 뒤이어 수첩에는 우리 도시의 전차에 대해서 그 조각배 같은 형태나 그것들의 빛깔이나 언제나 불결하다는 등의 상세한 묘사로 시작해서 아무 설명도 될 수 없는 ‘그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라는 구절로 그의 관찰이 끝난 글이 적혀 있었다. 어쨌든 쥐 사건에 대해서 타루가 적어놓은 것은 다음과 같다.
오늘 맞은편 집의 늙은이는 실망했다. 고양이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수없이 발견되는 죽은 쥐들에게서 자극을 받고 고양이들은 정말 사라져버렸다. 내가 보기에 고양이들이 죽은 쥐들을 먹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내 집의 고양이들이 그것을 싫어하던 생각이 난다. 아무튼 고양이들은 거리가 아니라 지하실에서 뛰어다니고 있을 테니 그 노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빗질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풀이 죽은 노인은 어딘지 불안해 보인다. 잠시 후에 그는 들어가버렸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허공에다 가래침을 뱉었다.
오늘 시내에서 전차 한 대가 돌연 멈추었다. 어떻게 거기 기어들었는지 모를 쥐 한 마리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부인들이 두어 명 내려버렸다. 사람들은 쥐를 밖으로 내던졌다. 전차는 다시 떠났다.
호텔의 야경원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 - 은 쥐들 때문에 어떤 불행한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내게 말했다. “쥐들이 배에서 없어질 때……”나는 그에게 배에서는 그런 일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도회지에서는 그런 일이 증명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확고부동했다. 그는 불행이라는 것을 예측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는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 불행이 지진이라 하더라도 자기는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도 가능하다고 인정했더니, 그것 때문에 불안하지 않느냐고 내게 물었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이렇게 나는 그에게 말했다. “바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 일이지요.”
그는 나를 완전히 이해했다.
호텔 식당에 아주 재미있는 한 가족이 있다. 아버지는 시커먼 옷에 뻣뻣한 칼라를 단 여윈 남자였다. 대머리로, 한가운데는 벗겨지고 좌우에 백발이 한 움큼씩 있다. 작은 눈은 둥글고 엄격해 보였고, 코는 훌쭉하고 입은 한일자로 다물고 있는 모습이 마치 길을 잘 들인 올뻬미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는 언제나 앞장서서 식당 문 앞까지 다가와서는 까만 생쥐처럼 호리호리한 자기 아내를 들여보내고, 다음에 재주가 많은 개처럼 옷을 입힌 어린 아들과 딸을 뒤에 끌고 들어온다. 자기 식탁에 가서도 그는 아내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아내가 앉은 다음에 앉는다. 그러면 그 두 강아지들도 마침내 자기 의자에 새들처럼 걸터앉을 수 있다. 그는 아내와 애들에게도 존댓말로 이야기를 하며, 아내에게는 예의 바른 핀잔을 주고 자식들에게는 근엄한 잔소리를 한다.
“니콜, 그대는 너무 못되게 구는 군요.”
그러면 어린 딸아이는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래야만 한다.
오늘 아침에 어린 아이놈이 쥐 이야기를 듣고 흥분해 있었다. 그는 식탁 앞에서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
“필립, 식사 때는 쥐 이야기를 하지 않는 법이에요. 앞으로도 절대 이런 얘길 하지 말아요.”
“아버지 말씀이 옳아.” 까만 생쥐가 거들었다.
두 강아지들은 밥그릇에 코를 박았고, 올빼미 씨는 별로 진지하지도 않게 고갯짓으로 일용할 음식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시늉을 했다.
그런 훌륭한 본보기도 있기는 했지만, 시내에서 쥐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신문도 거기에 휩쓸렸다. 평소 다채롭던 지방 소식란은 이제 시청에 대한 논쟁으로 완전히 지면이 꽉 차게 되었다. ‘우리 시의 원님들은 서족(鼠族)의 썩은 시체들이 야기하지 모를 위험을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라는 식으로 비난을 퍼부었다. 호텔 지배인은 딴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난처해서 그러는 것이기도 했다. 이름난 호텔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쥐가 발견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언어도단인 것이다. 나는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 “그러나 모두 다 그 지경인걸요”라고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그가 나에게 대답했다. “우리가 이제는 남들처럼 되었으니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차차 불안을 느끼게 된 돌발적인 고열의 첫 사례를 나에게 말해준 사람이 바로 그 지배인이다. 자기네 호텔의 하녀 하나가 그 열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전염성은 아닙니다.” 이렇게 그는 황급히 못을 박았다.
나는 그에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선생님도 저 같으시군요. 선생님은 운명론자이시네요.”
나는 그 비슷한 말을 꺼낸 일도 없으며, 게다가 나는 운명론자도 아니다. 나는 그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 무렵부터 타루의 수첩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불안의 대상이 되어 있는 원인 불명의 열병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타루는 그 작은 노인이 쥐가 자취를 감추자 마침내 고양이를 다시 보게 되어 그 가래침 사격을 꾸준히 되풀이하게 된 것을 특기하면서, 그 열병에 걸린 환자의 수가 이미 10여 명을 헤아리고 그중 대부분이 사망했다는 것을 덧붙였다.
하나의 참고 자료가 된다는 구실로, 타루가 묘사한 의사 리외의 모습을 여기에 적어두어도 괜찮으리라. 필자의 판단으로는 제법 성실하게 본 표현이다.
서른다섯 살쯤 돼 보인다. 중키. 어깨가 딱 벌어졌다. 직사각형의 얼굴. 거무스름하고 반듯한 두 눈. 그러나 양 턱뼈는 불쑥 두드러져 있다. 코는 곧게 우뚝 서 있다. 아주 짧게 깎은 검은 머리. 활처럼 휘어진 입매. 꽉 다문 두툼한 입술.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검은 머리털, 한결같이 짙은 색이지만 그에게는 잘 어울리는 양복 빛깔 같은 것이 어딘지 시칠리아 농부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그는 걸음이 빠르다. 그는 자세를 바꾸지 않고 보도로 올라간다. 그는 자동차의 핸들을 잡고도 방심하기 일쑤여서, 흔히 길모퉁이를 돈 후에도 방향 지시들을 켜둔 채로 있다. 늘 모자는 안 쓰고 산전수전 다 겪은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