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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사현정 TIP 오노승의 방법집단이 되었기에, 닛코 상인으로부터 시작된 후지 문류는 정법정의를 지켜야 할 사명이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후지 종문의 역사는 올바른 실천을 잃고, 탁류에 휩쓸려 암흑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
암흑의 후지 종문 역사 上 (창가학회 출현 이전의 역사) (1333년~1928년)
1) 닛코 상인과 니치모쿠 상인의 서거 (1333년)
닛코 상인은 88세의 나이로 천화하기 일주일 전 닛코 유게치문을 남겼다.
니치렌대성인 불법을 지켜, 영원히 청류가 흐르게 하는 것은 오직 제자의 올바른 수행 외에는 없기에 그 규범을 26개조에 이르는 유계치문으로 남기신 것이다.
그리고, 닛코 상인이 서거하신 1333년 제3조 니치모쿠 상인도 생을 마감하셨다.
스승의 유지를 이어 천황에게 국가간효를 하기 위해 가던 도중에, 눈 덮인 설원 위에서 쓰려져 74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2) 제4대 니치도 시대부터 분열 시작(1333년)
종조 니치렌대성인의 어서, 개조 닛코 상인의 유계치문, 제3조 니치모쿠 상인의 순교의 정신을 근본으로 했다면, 종문은 청류의 흐름을 이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제4대 니치도 시대부터 종문의 암흑사가 시작되었다.
니치모쿠 상인이 눈길에서 순교하자, 니치모쿠 상인과 동행했던 니치고는 대석사로 돌아와 자신이 진정한 후계자라고 주장하며, 야심을 드러냈다.
한편, 스승의 국가간효 길을 수행하지 않았던 니치도는 권좌를 지키려고 니치고 무리에게 맞섰다.
이렇게 하여, 후계자 자리를 놓고 내분이 일어났다.
이는 무려 70년에 걸쳐 승려끼리 싸웠던 '대석사 토지 소유권 분쟁'의 시작이었다.
결국 종문은 이 다툼으로 인해 니치도파와 니치고파로 갈라서게 된다.
대성인과 닛코 상인, 니치모쿠 상인으로 이어져 온 불석신명의 정신은 사라지고, 종문은 반으로 쪼개진다.
대석사는 니치도가 제4대 자리를 역임했고 대석사를 떠나간 무리들이 요법사를 세웠다. 요법사는 훗날 천태종 신앙으로 변했다.
3) 종문에 침투한 법주혈맥 사상 (1419년~1482년)
제9대 니치우 상인 시대에 변종 천태종 출신의 방법 승려 사쿄 닛쿄가 대석사에 들어왔다.
사쿄 닛쿄는 천태종의 법주혈맥사상을 대석사에 퍼트렸다.
종문은 이때부터, 대석사에 원래 없었던 법주신앙에 물들어 주지승려를 '법주상인'이라고 부르게 된다.
법주절대론 탄생
당대의 법부를 만나 뵈을 때, 본불(本佛)을 만나는 것이니라. (사쿄 닛쿄가 쓴 유취한집사(類聚翰集私) 중에서) |
4) 어린 법주 시대 - "대성인의 능력을 가진 소년들"(1482년~1573년)
사쿄 닛쿄의 영향으로 법주신앙이 시작된 종문은, 제12대부터 14대까지 어린아이들을 법주를 세웠다.
제12대 닛친 - 열 살에 등좌
제13대 니치인 - 열 네 살에 등좌
제14대 닛슈 - 닛슈는 신찰을 숭배하는 진구사 출신으로, 열 세 살 때 데려와 법주자리에 앉힘.
인재난에 허덕이던 종문은 이 어린아이들이 대성인의 위대한 신통력을 가졌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 근거로 사쿄 닛쿄가 주장한 법주절대론을 내세웠다.
* 어린이 법주를지켜 준 법주절대론 당대의 법주에게 본존의 체(體)가 있으며, 이 법주를 삼가 만나는 것은, 니치렌대성인을 대신하여 태어나셨으므로, 생신(生身)의 대성인을 만나는 것이다. (후지종학요집 제2권에 수록된 사쿄 닛쿄의 법주절대론) |
5) 타종파 법주 시대 (1596년~1692년)
제15대 닛쇼부터 제23대 닛케이까지 무려 96년간은 타종파 승려들이 법주가 된 이상한 기간이었다.
이 시기에 종문을 지배했던 법주들은 모두 신비로운 법주혈맥을 주장하는 천태문류 출신이었다.
이로 인해, 니치렌대성인 불법은 더욱더 법주신앙으로 변질되었다.
타종파 법주 시대 동안, 제17대 닛케이는 석가불상을 조립해 본존으로 모시는 등 방법행위가 계속되었으나, 법주절대론을 그들의 위치를 지키는 근거가 됐다.
6) 단가제도 시행(1641년~1867년)
절복 중단 --> 장례식 종교로 변화
종문이 절복을 중단하고, 다른 일본 불교들과 똑같이 장례식과 탑파공양에 매달리게 된 배경에는 단가제도가 있다.
일본 에도 시대(1603년~1867년)에 생겨난 단가제도는 민중을 철저히 통제하기 위해서 국가가 만든 것이다.
<단가제도의 통제방식>
(1) 모든 사람이 무조건 절에 호적을 등록한다.
(2) 승려와 절에 순종하지 않으면, 호적이 말소된다.
(3) 호적이 말소되면, 기독교인으로 몰려 처형된다.
(4) 민중은 승려와 절에 순종할 수 밖에 없다.
(5) 막부는 불교를 이용해 민중을 구속했다.
* 파사현정 TIP
종문과 단가제도
종문은 1641년에 단가제도를 전격 수용했다.
단가제도의 특징을 알면, 오늘날 닛켄종 신앙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단가제도의 특징
단가제도 ① 계급의식-'승려가 위, 신도는 아래!'
단가제도로 인해, 매년 사람들은 소속 절에서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증명서를 못 받으면, 취직을 하거나 다른 지역을 통행할 수도 없었고, 결국은 호적이 말소되어 처형까지 당했다.
삶의 기반을 지키려면, 승려와 절에 복종해야 했다.
단가제도는 소소의 승려가 다수의 민중을 지배하는 철저한 계급의식을 낳았다.
종문 승려들이 가진 '승려가 위, 신도가 아래!'라는 차별의식.
그 뼛속 깊은 인간차별의 뿌리는 여기서 출발한다.
* 대성인의 정신
절대평등 사상
승려도, 일반신도도, 비구니도, 여인도 한 구절이라도 남에게 말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여래의 사자입니다. (어서 1448쪽, 통해)
* 닛켄종의 정신
인간차별 사상
승려와 신도 사이에는 대성인 불법에 입각한 본래적인 차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학회파문을 앞두고 1991년 1월 12일에 종문 후지모토 총감이 학회에 보낸 문서 중에서)
단가제도 ② 절복 금지
단가제도 때문에 모든 사람은 소속 절이 정해져 있었다.
신앙을 바꾸는 것은, 소속 절을 바꾸고 호적까지 변경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단가제도는 이를 금지사항으로 정했다.
단가제도 하에서 절복은 위법행위였다.
종문이 무려 3백 50년에 걸쳐서 절복을 못했던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파사현정 TIP
니치렌 대성인 불법교단은 말법시대 절복의 교단이다.
절복을 하지 않으면, 그 존재의 의미가 없다.
단가제도가 절복을 못하게 하는 악법이면, 교단의 운명을 걸고 국가간효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종문은 이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했던 것이다.
단가제도 ③ 장례식은 승려가 주도해야 한다
단가제도로 모든 장례식은 승려의 도사로 진행했다.
승려는 고인의 후생선처, 성불에 대해 "후생선처가 되었군!" "아직 성불이 안 되었소!"하고 판단을 해줬다.
그리고 승려들은 고인의 기일을 전부 기록하여 과거장을 만들었다.
기일이 다가오면, 절에서는 신도들이 법요와 공양을 하러 오는지 전부 감시했다.
절에서 세운 장례식 방침과 회기법요 공양 등에 불응하는 신도는 호적이 말소되고 추방되었다.
그래서, 모든 일본인은 불교식 장례를 치러야만 했고, 이 때부터 일본 불교는 전형적인 장례식 종교가 되었다.
단가제도 ④ 공양지옥의 시작
장례식과 제례의식은 승려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승려들은 이를 독점한 채, 갖가지 명목으로 공양금을 수탈했다.
신도들 입장에서는 '부모와 선조, 고인을 위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다.
일본인들에게는 전통적으로 '13주기'라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각 절은 이를 이용해 사망한 해부터 13년 동안 법요를 해주고, 돈을 받았다.
그런데 승려들은 공양수입을 늘리기 위해 이 기간을 연장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30주기 혹은 40주기가 생겼고,나중에는 50주기까지 법요 기간이 늘어났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이 아니라, 고인을 빌미로 삼아 유가족으로부터 수 십 년 동안 돈을 뜯은 것이다.
당시,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평생에 걸친 공양수탈이었다.
* 파사현정 TIP
닛켄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탑파공양, 과거장, 계명수여, 회기법요, 피안회 등 대부분의 것들이 본래, 대성인 불법과 관계가 없었다.
하나같이 단가제도, 일본 장례식 불교의 것들이다.
7) 성승(聖僧)의 정신 파괴 (1871년 ~ 현재)
1870년, 메이지 신정부가 국가신도를 확립하기 위해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승려의 육식과 두발에 대한 질서가 무너지고 승려가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말(末)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처자를 가진 비구(比丘)도 남의 귀의(歸依)를 받고 (어서 936쪽)
대성인은 처자식을 가진 사람이 성승(聖僧)행세를 하는 것을 '말세의 현상'이라고 엄하게 비판했다.
성승이셨던 대성인과 닛코 상인은 출가한 제자들의 결혼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종문은 제56대 니치오를 시작으로 출가승들이 일제히 결혼하기 시작했다.
처자식이 생긴 종문 승려들은 사유재산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보신의 성향은 더욱 강해졌다.
이러한 성향은 훗날 닛켄종 중들의 공양금 쓸어 모으기로 이어진다.
8) 미노부파와 통합된 종문(1872년 ~ 1900년)
1868년 메이지 천황 시대가 시작되어,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신사를 숭배했다.
한 나라를 멸망시킨 군국주의의 망령이 고개를 든 것이다.
정부는 사상통합을 위해, 종교계를 유사한 종파끼리 통합하기 시작했다.
이 속에서 1872년, 미노부파와 종문의 통합도 추진됐다.
종문은 대석사와 승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국가의 뜻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대성인과 닛코 상인을 배신하고, 국가의 남묘호렌게쿄 통합정책에 찬동했던 것이다.
미노부파도 종문도 남묘호렌게쿄를 부르기 때문에, 같은 종교로 간주되어 뒤섞여버린 것이다.
남묘호렌게쿄 종파는 본래 90% 이상이 미노부파 였기에, 종문은 이에 흡수통합 되는 형편이었다.
이후 1900년에 가까스로 독립했으나, 28년 동안 오노승의 무리와 한 패가 된 종문은 정사의 근본을 잃게 된다.
* 파사현정 TIP
일련정종(日蓮正宗)이라는 이름을 얻은 과정
종문이 미노부에 흡수 통합됨(187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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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묘호렌게쿄 총본산이 승렬파와 일치파로 갈라져, 종문은 승렬파가 됨(187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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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렬파가 4개 파로 쪼개질 때, 종문은 흥문파에 붙음 (187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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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파가 다시 8개 파로 분리 독립하면서, 종문도 독립(1900년 2월)
※ 종문이 28년 만에 독립했기 때문에, 종문의 당시 법주 니치오는 대외적으로 후지파 초대 법주라고 불렀다.
↓
종문은 '일련정종'이라는 명칭을 1912년 6월에 역사상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9) 법주들의 혈맥전쟁(1922년~1928년)
법주혈맥이라는 특수한 사상을 신봉해온 종문은, 그 최고 권좌를 빼앗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거듭했다.
미노부파의 하수인 역할을 해오던 제57대 닛쇼는 갑자기 악성종양으로 죽음을 앞두게 되자, 급히 법주자리를 닛츄에게 넘기려 했다.
그런데 이때, 야심가인 아베 니치카이가 이를 차단했다.
이렇게 하여, 닛츄는 지키려는 법주파와 야심에 가득찬 니치카이 쿠데타파 사이에 이른바 혈맥전쟁이 시작됐다.
결국, 제58대 법주 닛츄는 니치카이파의 공격에 밀려 2년 만에 퇴좌했고, 종문은 차기 법주를 선거로 뽑게 된다.
그러나, 니치카이파와 닛츄파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일어났다.
선거장소에 경찰이 개입하여 9명의 승려가 연행되었고, 양측은 맞고소를 거듭했다.
1920년대에 종문은 닛츄파와 니치카이파로 갈라져, 법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혈맥전쟁을 벌였다. |
그리고 2년 후 재개된 선거에서 드디어, 야심가 아베 니치카이가 선거조작으로 법주자리를 빼앗았다.
이후, 법주자리를 둘러싼 분쟁은 더욱 격해졌고, 최후에는 일본 문부성까지 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 파사현정 TIP
대성인의 정신을 잃고, 사원과 승려 등 형태만 남게 된 종문은 대성인이 남겨주신 대어본존과 어서 등을 간직한 불교 유적지가 되고 말았다.
암흑의 후지 종문 역사 下 (창가학회 출현 이후) (1930년 ~ 1990년)
1) 종문의 군국주의 협력, 전쟁찬양(1939년 ~ 1945년)
일본 군부가 니치렌대성인의 어본존과 어서를 불경죄로 적발하자, 제62대 법주 스즈키 닛쿄와 종문은 동요했다.
권력탄압에 두려움을 느낀 종문은 스즈키 닛쿄 법주와 대석사를 보호하기 위해 대방법을 저질렀다.
■ 종무원 원달사항 제2176호 (1941년 8월 22일)
근행 관념문 수정
-. 조좌 관념문 삭제
-. 삼가 황조천조대신, 황조진무천황 및 역대 천황 등 국가신도 예배형식 관념문 사용
■ 종무원 원달사항 제2177호 (1941년 8월 24일)
-. 그후 어서 간행을 금지한다
■ 일령정종 교학부 제8호(1941년 9월)
니치렌대성인이 말법의 부처라는 의미가 담긴 어문과 천조태신 및 정팔법의 작은 신에 불과하다는 내용 등 14개에 이르는 어문에 대해 불경죄를 걱정하여, 해당 어서 모두 삭제.
이에 모자라 스즈키 닛쿄 법주는 훈유 제29호를 전국 말사에 통달해 신찰수용을 지시하고,
"대일본제국군의 탄알 한 발 한 발이 적군을 쓰러트릴 수 있도록 기원합시다" (제62대 법주 스즈키 닛쿄)
라고 호소하며, 천황조 찬양과 태평양전쟁 승리를 위해 창제회를 거듭 개최했다.
종문은 법주와 대석사, 그리고 승려를 지키는 것이 정법을 유지하는 것으로 판단해 대성인의 불법정의를 모조리 파괴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회의 마키구치 초대회장과 도다 이사장을 불러들여 신찰을 받도록 지시했다.
2) 대석사 화재 (1945년 6월 17일)
일본이 원자폭탄 투하와 함께 멸망하기 직전.
1945년 6월 17일 그 동안 국가에 충성하고 영합하며 온갖 방법을 저질렀던 '대석사'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인해 대석사 대방 객전 등 총 5백여 평이 화염 속에서 잿더미가 되었다.
그리고 천황숭배와 신사참배, 어서 삭제에 앞장을 섰던 제62대 법주 스즈키 닛쿄도 불에 타 처참하게 죽었다.
3) 대석사 관광화 획책(1950년 ~ 1952년)
피폐해진 종문은 일본 패방 직후, 농지개혁으로 소유하고 있던 토지 대부분을 잃은 상태에서 공양금을 기부해 주는 사람도 없어, 재정파탄으로 몰리고 있었다.
종문은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대석사 관광지화를 위한 회의를 1950년 11월부터 개최했다.
대석사를 불교 유적으로 만들고 대성인의 어본존을 유물로 하여, 관광객에게 보여주고 돈을 받아 모으는 계획이었다.
도다 회장은 경제적 원조가 없다면, 이 한심스러운 중들의 계획은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창가학회는 월례등산을 통한 경제적 원조를 시작하여, 종문을 파산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이로써 무참한 대석사 관광지화 계획도 백지화 됐다.
4) 오가사와라 지몬 사건 (1946년 ~ 1952년)
오가사와라 지몬은 소설 <인간혁명>에 가사하라 지코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는 닛켄의 어버지인 니치카이의 오른팔 역활를 해 주다가. 승려들의 혈맥전쟁이 일어난 상황에서 니치카이를 배신하고, 화당회라는 사조직을 만들었다.
오가사와라는 1937년 신본불적론을 발표했다.
국가권력에 충성한 것이다.
<오가사와라 지몬의 신본불적론 요약>
① 천조대신이 근본이고 부처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② 천조대신은 남묘호렌게쿄를 구현한 지존이시다.
③ 그것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한 분이 니치렌대성인이다.
④ 천조대신 보다 위에 있는 범천 제석은 제거해야 한다.
⑤ 어본존은 천조대신을 멸시하므로, 불경죄에 해당한다.
오가사와라는 자신과 정반대로 신찰을 거부하고, 국가간효를 단행한 마키구치 초대회장을 불경죄 용의자로 밀고해 옥사하게 만들었다.
1952년 창가학회 청년부들은 '너구리축제'에서 그와 마주치게 되자, 천하의 악승이 처분도 받지 않고, 종문 내부에서 버젓이 활보하는 것에 분개했다.
분노한 청년부들은 오가사와라를 마키구치 회장의 묘 앞에 데려가서 사죄하게 만들었다.
종문은 이에 대해서, "승려와 신도 사이에 존재하는 질서를 위배했다."며, 모든 책임을 도다 회장에게 돌렸다.
종문 임시종회 '너구리축제 사건' 관련 결의사항
도다 조세이 처단 의결, 3개 항목
도다 조세이로부터 사죄문을 받는다
도다 조세이를 대강두직에서 파면.
도다 조세이 등산 정지.
5) 창가학회의 진력(1952년 ~1991년)
1952년 학회가 대석사 관광지화를 막은 이래, 1991년 종문이 학회를 파문할 때까지 학회는 일관되게 외호를 해 주었다.
멸망해 가던 종문이 회생한 것은 전부 학회의 외호 덕분이었다.
가. 대석사 영지 86%를 학회가 기진
현재 대석사 소유지 대부분이 학회에서 기진한 것이다.
나. 700년 만에 재개된 광선유포의 절복전
아래의 데이터 처럼, 창가학회가 75만 세대 절복전을 일으키기 전까지, 오노승의 후예들인 미노부가 남묘호렌게쿄 신앙자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학회의 대절복전에 의해, 방법종단 미노부파는 상대적으로 쇠퇴했고 남묘호렌게쿄는 닛코 문류에 정의가 있음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만약, 학회가 출현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우리들은 여우나 귀신을 본존으로 창제하는 종교를 만났을 것이다.
다. 학회에 대한 역대 상인들의 감사함 표명
"학회가 없었다면, 일련정종은 멸망했을 것"
만약, 도다 회장과 창가학회가 없었다면, 일련정종은 멸망했을 것입니다.
어본존께서 진정으로 빛을 본 것은 학회가 출현한 후부터입니다. 학회 덕분에 본존님의 진정한 힘이 나오게 된 것이 참으로 고마울 뿐입니다.
"종문은 학회의 대은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된다"
창가학회에게 대은(大恩)을 입었다. 그 덕택에 총본산은 관광지가 되는 것을 면했다. 학회 덕분에 대법(大法)은 청정하게 오늘날까지 왔다. 종문은 창가학회의 대은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된다.
니치준 상인이 1961년 11월, 서거 직전 남긴 유언
"말법 광선유포를 실현하는 것은 학회"
영법구주(令法久注)를 사신홍법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계단의 대어본존을 수지하여 절복을 하고 있는 것은 학회입니다.
모든 방법의 난을 파절하고, 육난구이를 몸으로 행하여 말법 광선유포를 실현하는 것은 학회입니다.
라. 종문의 학회 파문 ◇ 닛켄종의 출현 (1991년 ~ 현재)
1991년 11월 28일 종문의 가짜 법주 아베 닛켄과 하수인들은 광선유포에 진력해 온 학회를 파문했다.
유감스럽게도, 파문의 근본 원인은 '질투'였다.
(관련내용은 '제2장 천마의 소행 - C작전' 참고)
창가학회와 종문의 결별은 '세계광선유포를 실현하는 인간주의 종교'와 '편협한 일본 불교의 폐습을 고집하는 권위중의 종교'의 결별이었다.
6) 학회의 종문 외호에 대해
<질문>
* 학회는 부패한 종문을 왜 지켜 주었지요?
* 학회가 외호를 해 주고, 많은 공양을 해서 오히려, 종문이 더욱 타락한 것 아닌가요?
가. 승속화합의 이상
종문을 몰락의 위기에서 구한 것은 학회었다.
그리고, 학회가 외호를 시작한 1950년대에는 종문 내부에도, 일련정종의 본 모습을 찾으려는 승려들의 노력이 공존하고 있었다.
게다가, 창가학회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는 승려가 많았다.
이 속에서 승려도 학회원도 승속화합의 단결로 광선유포의 참된 화합승단을 부흥시키려는 이상향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학회는 종문 내부에 엄연히 존재하던 악류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격의 손을 쓰되, 닛코 문류 전체가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도록 인내했던 것이다.
나. 착각에 빠진 승려들
학회원은 니치렌 대성인을 향해, 광선유포를 위해서 공양을 했다.
그런데, 이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중들이 등장했다. 게다가 종문이 학회의 도움으로 파산위기를 넘긴 1960년대 이후에 등장한 중들은 학회에 대한 감사함을 몰랐다. 학회의 헌신을 복종으로 여겼다.
다. 타락의 원인
학회는 대성인께 보은하고, 광선유포를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공양을 했다. 일본과 세계 각지에 지어진 대부분의 절을 학회가 기진한 것도 대성인의 염원대로 어본존을 더 많은 사람에게 유포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당시까지 모든 어본존은 절에서 하부했기 때문이다. 학회의 공양은 모두 광선유포를 위한 것이었기에, 승려들의 생활이 호화스럽게 될 이유는 애처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종문 승려들이 이것을 착복한 것이 문제였다.
파사현정 TIP
대성인께서 진정한 문하들로부터 받은 공양을 중들이 중간에서 가로챈다.
학회가 외호를 거듭할수록, 종문이 구제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진 근본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파사현정 TIP
"일련정종이 혈맥이 끊어진 단체라면, 20세기에 출현한 학회는 어디에 정통성을 물려 받았는가?"
이러한 생각 자체가 종교의 미망이 존재한다.
① 정통성을 물려받은 특별한 인간이 존재한다는것은 일본 천태종에서 탄생한 법주혈맥사상에 불과하다.
② 대성인 불법의 정통성은 후계의 행동으로 계승된다.
③ 학회는 독보적인 정통성 따위를 주장하는 단체가 아니라, 대성인의 가르침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며, 대성인의 염원을 몸으로 실현해 온 단체다.
(계속)
4 닛켄종을 파한다
본 장에서는, 닛켄종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교의들에 대해 그 뿌리를 조명하고, 대성인 불법 본래 가르침에 의거, 그 사의(邪義)를 명백히 밝힌다.
법주혈맥신앙에 대해
1) 법주혈맥신앙이란?
법주 단 한 사람에게만 대성인의 특별한 혈맥이 흘러내리고, 이 혈맥을 받은 법주를 통해서만 중생이 구제될 수 있다는 교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대성인의 가르침이 아니다.
2) 법주혈맥 신앙의 뿌리 - 혈맥주머니
대성인 재세 시에 일본 천태종은 혈맥주머니를 만들었다.
천태종은 그것을 물려받는 법주 단 한 사람에게 비밀스러운 힘이 전수된다고 주장했다.
니치렌대성인은 이러한 특별한 법주혈맥을 엄하게 파절하셨다.
일심삼관의 혈맥이라고 하여, 자의에 맡겨서 책을 만들어 비단주머니에 넣어서 목에 걸고, 상자 밑바닥에 묻어 고가(高價)로 매매하는 고로, 사의(邪義)가 국중(國中)에 유포하여 천태의 불법이 파실(破失)하느니라. (입정관초, 어서 532족)
대성인은 천태종이 특수한 법주혈맥 사상 때문에 파괴되었음을 분명히 하셨다.
3) 혈맥상자(상승함)
종문에는 역대 법주가 이어받는 혈맥상자가 존재해 왔다. 이 상자는 검게 옻칠을 한 나무상자로 길이 45센티미터 크기의 정육면체다.
이 안에 들어있는 문서와 물품은 대중에게 전혀 공개되지 않으며, 법주 외에는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
이 비밀스러운 상자를 가진 사람의 몸에는 대성인의 능력이 빠짐없이 흐른다고 주장한다.
천태종이 가진 혈맥주머니와 역할이 일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문의 혈맥상자는 닛켄이 법주자리를 도둑질하던 시기에 자취를 감추었다.
1980년대 초에 닛켄이 법주혈맥을 가진 증거로 삼기 위해 이 상자를 백방으로 찾았으나, 원본 상자가 없어진 상태다.
3. 법주혈맥신앙, 왜 잘못 되었는가?
① 법주라는 단어 오용
대성인 불법 정통교에서는 법주는 대성인만을 의미했다.
닛코 상인 이래 종문 초기에는 이것일 지켜졌으나, 대성인 시대 이후 2백 년이 지나면서 천태종의 영향을 받아 '때의 관수', 대석사 주지승려를 '법주'라고 부르고 말았다.
② 대성인 불법이 아니다
비밀스러운 법주신앙은 원래 일본 천태종에서 만든 것이다.
이것을 종문이 나중에 받아들인 것이다.
제9대 니치우 상인시대에 천태종 출신 방법승려 사쿄 닛쿄가 대석사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믿던 천태종 법주신앙을 종문에 퍼트렸다.
이때부터, 신비로운 혈맥이 법주승려에게만 흐른다는 망상이 뿌리내렸다.
종문은 법주혈맥사상은 이렇게, 대성인이 입멸하신 후, 2백 년이 지나서 생겨난 것이다.
③ 신비주의
법주혈맥은 오직 선임 법주와 다음 법주 사이에서만 전수되기 때문에, 일반 중생은 도저히 알 수도 없고, 공개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비밀주의, 신비주의다.
성불하는 이외에 신통과 비밀이란 없다. 이 무작의 삼신을 일자(一字)로 얻었으나, 소위 신(信)의 일자다. (어서 753쪽, 통해)
니치렌대성인은 비밀이란 중생의 성불 이외에는 없다고 단언하셨다.
그리고, 성불은 신심으로 얻는다고 확언하셨다. 대성인은 성불의 근원적인 구극의 생명을 대어본존으로 도현해 일체중생에게 남기셨다.
게다가, 현대에는 극설, 비전에 해당하는 어의구전과 모든 상전서들이 어서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다.
민중구제를 제일의 원업으로 하는 대성인 불법에 은밀히 숨겨놓는 비밀주의는 결코 없다.
파사현정 TIP*****
신심의 혈맥과 별도로 존재하는, 법주들만의 비밀핼맥은 애초부터 잘못된 일본 천태종의 가르침이었다.
④ 생사일대사 혈맥을 파괴
대성인은 세계의 민중에게 생사일대사의 혈맥을 차별 없이 전하기 위해 광선유포의 길을 여셨다.
닛코 상인 이후, 역대 관수는 이 광선유포의 길을 지켜가며, 민중에게 헌신해야 하는 책임직이었다.
그런데 관수의 사명을 신비화한 법주혈맥 신앙은 법주에게 충성할 때에 성불의 길이 겨우 열리고, 법주의 뜻에 어긋나면 혈맥이 끊겨 악도에 빠진다고 가르친다.
본래관수의 역할
대성인의 불법정의를 신명을 바쳐서 대대로 지켜가는 것이 관수의 사명
↓
변질된 법주신앙
법주가 곧 불법정의, 그러므로 법주에게 복종하면 혈맥이 흐른다.
이렇게, 법주신앙은 때의 관수를 어본존과 중생 사이에서 성불을 좌지우지하는 신통력(혈맥)의 소유자로 만들고 말았다. 대성인 불법 본연의 혈맥이 파괴된 것이다.
⑤ 극단적인 차별의식
법주를 통해서만이 각자의 성불이 좌우된다는 믿음을 결국 법주를 절대권력의 지배자로 만들었다.
법주사상은 대성인의 정신에서 빗나간 계급의식을 만들었다.
혈맥법주
ㅣ
고귀한 승려
ㅣ
최하급의 모든 민중
단가제도로 굳어진 종문의 계급의식
최고봉의 법주 밑에는 그에게 복종하는 승려집단이 있다.
그리고, 승려 밑에는 구제받기 위해 순종하는 최저 계급의 민중이 있다.
오늘날 닛켄종은 이 질서체계를 근본으로 하며, 이 복종체계에서 벗어나면 교만 방법으로 간주한다.
남녀승니(男女僧尼)를 가리지 말지어다. (어서 11345쪽)
절대다수의 대중이 극소수의 승려를 우러러 받드는 폐쇄적인 법주신앙은 니치렌대성인의 보편적 평등사상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그리고, 법주신앙의 심각한 인간차별은 결국 민중을 극단적으로 멸시하고, 승려 자신이 가장 특별하고 위대하다는 망상을 만들었다. 이것은 증상만으로 이어져, 광포에 매진해 온 학회원을 모두 숙청하는 천마 닛켄을 낳았다.
⑥ 법주혈맥을 비웃는 종문의 역사
법주에게 대성인과 같은 청정한 생명과 권능이 이어진다는 법주혈맥은 종문의 역사가 그 허황됨을 증명하고 있다.
앞 장에서 다룬 것처럼, 역대 종문의 법주들은
① 타종파 승려들이 1백 년 이상 그 자리를 차지하거나,
② 석가불상을 본존으로 받들고, 혹은
③ 법주끼리 자리를 빼앗기 위해 혈맥전쟁을 일으켰으며,
④ 20세기에는 군국주의를 찬양한 법주가 불에 타 죽었다.
이들은 모두 법주에게만 흐른다는 혈맥을 받은 사람들이다. 법주혈맥은 그 자체가 허상이라는 것을 역사는 말고 있다.
탑파공양의 실체
1. 탑파의 뜻
탑파는 원래 부처의 사리를 안치하는 불탑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사람의 무덤 앞에 나무판자를 세워두고 탑파하고 불러왔다.
같은 단어를 쓰지만, 일본의 탑파와 불교 본래의 탑파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 나무로 만든 탑파는 일본 민속신앙에서 생긴 것이다.
2. 탑파공양의 뿌리
17세기 단가제도로 인해, 모든 장례식이 철저히 불교식으로 치르기 시작했다.
장례식 때마다 나무판자를 세우던 일본인들은 불교사원에도 나무판자를 두었다.
이렇게, 불교 장례식과 일본민족의 풍습이 합쳐져 생겨난 것이 오늘날 일본불교의 탑파공양이다.
3. 탑파공양의 폐단
닛켄종 신도들은 탑파공양이 대성인 불법 정통의 수행인 것처럼 속아 왔다. 탑파공양의 폐단을 정리해 본다.
① 탑파공양은 원래 대성인 불법의 정통신앙과 무관한 일본 민속신앙의 장례풍습이다.
② 대성인이 탑파에 대해 짧게나마 언급하신 것은 <나카오키입도소식>과 <초목성불구결> 단 두편뿐이며, 당시 일본인들에게 유행한 풍습으로서 인정하셨을 뿐, 그것이 대성인 불법의 올바른 수행이라는 내용은 어서 어디에도 없다.
③ 하나의 관습에 불과한 것을 대성인 불법의 중요한 수행인 것처럼 신도들에게 속이고 있다.
④ 닛켄종은 일본인의 장례풍습인 탑파공양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강요하여, 돈벌이 수단의 하나로 공양금을 쓸어 모으고 있다.
파사현정 TIP*******
"방법(謗法)의 자를 부양함을 불종을 끊는" (d서 1467쪽)
진실한 마음일지라도 공양을 받는 사람이 나쁘다면 공덕으로 되지 않고, 도리어 악도에 떨어지는 일이 있노라.(어서 1486쪽)
닛켄종 삼보론 파절
삼보(三寶)는 불도수행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존숭하는 세가지 보물을 말한다.
삼보는 불(佛) * 법(法) * 승(僧)이며, 불교 종파마다 삼보가 다르다.
예시) 각 종파의 삼보 비교
천태종 - 미노부파 일련종 - 닛코 문류
불 - 석가부처 - 석가부처 - 니치렌대성인
법 - 법화경 - 남묘호렌게쿄 - 어본존
승 - 천태대사 - 니치렌 보살님 - 닛코 상인
그러므로, 삼보에 차이가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종파라는 의미가 된다.
또한, 어느 한 종파의 삼보가 세월이 지나면서 변했다면, 그 종파의 가르침이 변질되었다는 뜻이 된다.
1. 기성불교의 삼보
기성불교 종파들의 삼보는 천태만상이다.
그러나, 종합해 보면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이 묶을 수 있다.
불보 - 석가부처
법보 - 석가부처가 설한 법
승보 - 승가 (구도의 사람)
기성불교에서는 머리를 깎고 출가한 승려들을 승보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와 함께, 불교 본래의 정신대로 일반신도를 포함해야 한다는 학설도 공존한다.
그러나, 기성불교와 대성인 불법과는 삼보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
니치렌대성인 불법의 정통 승보는 오직 닛코 상인만을 지칭한다.
파사현정의 TIP*****
이 차이를 모르고 '승보는 승려 아닌가'라고 현혹된다면, 기성불교의 삼보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된다면, 불보도 법보도 대성인과 어본존이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와 이전경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1. 대성인 불법 정통의 삼보
불보 - 니치렌대성인
법보 - 어본존
승보 - 닛코 상인
위 삼보를 지키는 신심을 닛코 문류의 정통으로 한다. 관수(법주)와 승려, 일반 대중을 막론하고, 모든 신앙자는 이 삼보를 지킬 때에 올바른 신심의 도상에 설 수 있다.
2. 법주신앙으로 변질된 삼보
불보 - 닛치렌대성인
법보 - 어본존
승보 - 닛코 상인과 대석사 주지(법주)
16세기부터 서서히 대석사 주지승려도 승보가 됐다.
법주가 승보로까지 된 것은, 이 시기에 법주신앙이 생겼기 때문이다.
즉, 특별한 핼맥을 이어받은 법주이기에 닛코 상인과 동격이 된 것이다.
3. 승속차별의 삼보
불보 - 니치렌대성인
법보 - 어본존
승보- 승려
20세기 창가학회에 의해 광선유포가 본격적으로 실현되자, 승려들은 홍교의 실천 대신 민중을 짓누르기 바빴다.
민중을 속박하기 위해 '승려는 위, 신도는 아래'라는 '승속 사제의'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모두 승보라고 사의(邪義)를 주장했다.
일련정종 승려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종규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본종(本宗)은 대만다라를 법보로 하고, 종조 니치렌대성인을 불보로 하며, 혈맥부법(血脈付法)의 사람 닛코 상인을 승보로 한다." <일련정종 종규(宗規) 제4조>
닛코 문류는 본래 닛코 상인 한 분을 승보로 지켜왔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법주가 승보가 됐고, 20세기에는 머리를 깎고 종문에 들어오면 모두 승보가 되었다.
4. 닛켄종의 삼보 파괴
불보 - 법주
법보 - 법주
승보 - 법주
대성인 불법 정통의 삼보는 종문이 변질될수록 그 파괴의 정도가 심해졌다.
닛켄이 법주가 된 후에는 삼보가 완전히 파괴됐다.
법주가 불보이고, 법보이며, 동시에 승보라는 '법주절대론'이 탄생했다.
대성인 불법과 전혀 다른 삼보론이다.
최근에는 법주절대론를 자제하고 있으나, 삼보를 이미 파괴한 이상 그들은 기존의 일련정종도 다른 신앙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닛켄종이라고 부르게 됐다.
법주본불론--
"법주는 현대의 대성인"
1991년 6월호 종문기관지 '다이니치렌'
"대성인과 닛코 상인, 역대 법주는 과거이기 때문에 적(赤)에 불과하다. 닛켄 법주가 바로 본(本)이다"
1991년 8월 종문 행학강습회
법주절대론--
"본불대성인, 계단의 대어본존, 역대 법주상인이 그 내증에서 일체불이 존체(尊體)에 계신다"
1991년 9월 6일자 능화문서.
"법주는 상승을 받은 이상, 생신(生身)의 석가 니치렌"
전국교사강습회(1997년 8월 28일)에서 닛켄 자신의 발언.
파사현정 TIP*****
니치렌대성인을 본불로 하는 대석사에서는 이를 악용해서 법주가 권위를 세우려 한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 중 가장 심한 것이 바로 지금의 법주절대론이다.
동양학술연구소 고바야시 마시히로
대석사 참배 파절
1. 대석사 참배의 본질 - 돈벌이 승부처
닛켄은 대석사 참배의 실적이 떨어지던1990년대 후반에 "30만 등산은 대성인의 명령!"(1998년 8월 29일 종문 교사강습회)이라고 망언을 내뱉었다.
현재까지 닛켄종은 해마다, 6만 등산, 10만 총등산, 30만 총등산, 50만 등산 등을 호소하고 있지만, 이러한 집단적인 성지순례는 대성인 불법에 원래 존재하지도 않았다.
총등산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문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면, O만 등산 00만 등산이라고 동원 목표를 대규모로 내걸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참배한 인원수만큼 공양수입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참배인원 목표는, 실은 공양금 수인 목표인 것이다.
2. 대석사 돈벌이 계획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종문은 경제파탄 지경에 몰리고 있었다.
1950년 11월, 종문 승려들은 대석사 관광지화를 논의했다.
일반 관광객에게 어본존 관람료를 받아서 재정위기를 극복하려는 계획이었다.
대성인 불법에서 돈 때문에 대어본존을 구경시켜주고, 돈벌이를 하는 것은 대방법 행위다.
그러나, 종문의 재정난을 내버려 둘 경우, 승려들의 대석사 관광지 추진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3. 대석사 총등산은 창가학회가 시작
도다는 대성인 불법 전체를 지키는 자각에서, 궁지에 몰린 승려들의 획책을 해결하기 위해 외호(外護)을 결심했다.
이렇게 하여, 1952년 10월부터 1991년 C작전이 전개될 때까지 약 40년간 총 7천만 명의 학회원이 외호등산을 했다.
파사현정 TIP****
학회의 월례 등산
1945년 연간 등산객 총 102명, 종문 경제난 계속
1950년 승려들의 대석사 관광지화 회의 시작
1952년 도다 회장에 의해 학회원 월례 등산 시작
1965년 월 평균 20만 명의 학회원 등산
1990년 학회원 등산 누계 7천만 명
1991년 3월 16일 종문의 창가학회원 등산 규제 통보
4. 본래의 의미를 잃은 등산
학회가 출현하기 전에는 대규모 등산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도 않았다.
승려들이 등산의 필요성을 호소한 적도 없었고, 학회원 스스로 자발적으로 해준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닛켄종에서 진행하는 참배는 승려들이 오히려 목표를 내걸어 신도들을 동원하고 있다.
게다가 니치묘 성인 등 대성인을 찾아온 제자들의 사례를 가지고 엉뚱하게도 대석사 참배의 필요성을 부르짖고 있다.
5. 민중을 속이는 새빨간 거짓말들
<진실의 반론>
"대석사에 참배하지 않으면 공덕이 없다."
반론
어서에 그러한 가르침은 눈 씻고 찾아 보아도 없다. 완전한 사의(邪義)이다.
그리고 참배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1952년 학회가 등산을 시작하기 전까지, 7백 년 동안 왜 실시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세계 광선유포의 시대에 수천 만 명이 신심을 해서 공덕을 받으려면, 그 많은 사람이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야만 하는 이상한 종교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등산하여 대어본존을 배알하는 것이 전통이다"
반론
본래 대석사 대어본존을 총본산의 중보 창고에 보관되어 6백 50년 동안 비공개로 보존해 왔다.
언제일지도 모르는 본문계단 건립의 시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한 대석사 대어본존이 사람들에게 공개된 것은 1952년부터 창가학회의 요청에 의해 실현된 일이다.
전통이라는 말 자체가 새빨간 거짓말이다.
대석사 등산해서 대어본존을 배알하는 행위가 신심적인 면에서 중요한 듯이 꾸며내고 있지만, 본래부터 신앙심도 없는 일반 관광객에게 공개하여 관람비를 받으려 했던 것(1952년)이 종문이 아니었던가.
결국 그때의 망상처럼, 지금 몇 십만이다, 몇 만이다. 매년 돈벌이 인원 목표를 내걸고, 신도를 동원해서 관람비를 계속 뜯어내고 있지 않은가.
신앙의 근본을 보여주고 돈을 받는 것은 일을 수도 없다.
대어본존 배알과 신심의 관계성은 논할 자격이 있는가.
6. 방법자들의 공양수탈 - 대석사 참배 중단하라!
현재 대석사는 학회를 파문한 닛켄종의 본거지가 되었다.
'대방법의 마산(魔山)'으로 타락한 것이다.
그 곳에 참배하고 공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실하지 않은 것을 공양하면 대악으로는 되지만 선으로 되지 않으며." (어서 1596쪽)
"법화경의 적을 대자비의 보살이라도 공양하면 반드시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어서 1133쪽)
대석사 참배의 실체는 공양금 목표를 채우기 위한 신도 총동원이다.
이 참배행위는 개개인의 행복과 무관하다.
방법집단의 세력을 불려주는 행사일 뿐이다.
방법에 공양하면 공덕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타지옥의 인(因)을 쌓고 만다.
그러므로, 불행의 인을 쌓는 방법의 공양을 막기 위해 참배저지가 필요한 것이다.
(신 교선 매뉴얼 85 - 110쪽)
첫댓글 종문이 4세 니찌도 상인님부터 혈맥이 단절되었는데 뭐하러 창가학회는 26세 니치칸 상인님이 서사하신 어본존님을 복사 포토샆 처리 해서 본존으로 불단에 모시고 제목 부르고 있나요 여보세요 말좀 되는 소리 하세요 어서에 비추어 보면 창가학회는 명백한 대방법의 단체이네요 지난날 창가학회 회장들이 지도한 내용 올려놓고 말해볼까요 만년에 땅을 치고 후회하지 말고 속히 방법을 멈추고 대어본존님과 유수일인의 혈맥을 상전하신 당대 예하님의 어지남에 신복수종하여 불도를 구하세요 불도수행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는 그런 이기심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속히들 정신 차리십시요. 불도수행(부처님의 길에 들어가기 위한 수행)
불법은 부처님이 설하신 법입니다 불도수행이란 성불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입니다 깊이 깊이 사색해 보세요
방법은 14비방에의거하여볼때 닛켄종이야말로 방법이지요 닛켄종 중이하는행동은
불보 닛켄종우두머리
법보 닛켄종우두머리
승보 닛켄종우두머리
말로만 불보니찌렌대성인
왜동문서답하시나요 저에말은 법론대결하자고하고 위게시글을왜 삭제시키고 활동정지시켜냐이거지요
그러므로 입정안국님은 입정안국님이 걷다르고 속다르다이거지요 법론대결은 여기서할게아니라
닛켄종카페에서 하는게 맞는거아닌가요
제가볼때는 어서해석을 닛켄종에 유리하개만 해석하고았어요
입정안국님 불도수행은 나도성불하고 타인도 성불하는것이 목적입니다 생각해보십쇼
제대로 알지도못하시면서 지부장까지하시고 법화경의 정의는 만인성불입니다
대성인의 불법은 일체중생 성불이 목적입니다
본존님상모는 집적쓰는거보다 그래두 난거아닌가요
입정안국님은 신심의 기본도 모르시는분이심니다 설산동자도 모르심니니까
참 갈수록 태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