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을 밀어낸 화학, 세계를 움직인 캔 하나 – WD-40]
1953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항공우주 회사 Convair의 외피 부식을 막기 위해 세 명의 엔지니어가 머리를 맞댔다. 그들이 속한 로켓 케미컬 컴퍼니(Rocket Chemical Company)는 방청과 수분 제거 기능을 갖춘 화합물을 만들고자 39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40번째 시도에서 결정적인 포뮬러를 완성했다. ‘Water Displacement, 40th formula’—줄여서 WD-40이라 불리는 이 조합은, 단순한 산업용 방청제를 넘어 전 세계 가정과 공장을 누비는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된다.
처음에는 군사와 항공우주 산업을 겨냥한 제품이었다. 냉전의 열기가 뜨겁던 시절, 대륙간탄도미사일(Atlas)의 외피를 보호하기 위해 Convair가 이 화합물을 채택하면서 WD-40은 실전에 투입됐다. 그 효과는 탁월했고, 일부 기술자들이 몰래 집에 가져갈 정도였다. 이를 눈여겨본 공동 창업자 노먼 라슨(Norman B. Larsen)은 1958년 WD-40을 에어로졸 캔에 담아 일반 소비자 시장에 내놓는다. 이는 미국 공구 상점과 스포츠용품점에서 조용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1961년, 허리케인 ‘카를라’가 텍사스를 강타하자, WD-40은 침수 피해를 입은 가전제품과 기계의 복구용품으로 투입되며 일약 전국적 인지도를 얻게 된다. NASA의 Friendship VII 우주선과 민간 항공기 정비에도 쓰이며 제품의 신뢰도는 더 높아졌다. 1969년, 회사는 사명을 아예 WD-40 Company로 바꾸고, 1973년에는 기업 공개(IPO)를 단행해 첫날 주가가 61% 급등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WD-40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비밀의 유지’다. 대부분의 산업용 화학제품이 특허로 보호되는 데 비해, WD-40은 특허를 아예 신청하지 않았다. 특허를 출원하면 조성 비율이 공개되고, 20년 후에는 누구나 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 제품은 70년 가까이 ‘기업의 영업비밀’로서 철저히 관리되었다. 포뮬러는 손으로 적힌 문서 형태로 보관되며, 단 두 차례(2003년, 2018년)를 제외하고는 회사 외부를 벗어난 적이 없다. 현재는 은행 금고에 보관되어 있으며, 배합 비율을 완전히 알고 있는 인물은 단 한 명뿐이라 전해진다.
이에 따라 WD-40은 수많은 경쟁자의 모방 시도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시장 지위를 유지해왔다. 대표적인 경쟁사인 CRC 인더스트리(Industries)는 WD-40의 초기 유통권을 갖고 있었으나 계약 해지 후 직접 유사 제품인 ‘5-56’을 출시하며 맞대응했다. 그 외에도 Liquid Wrench, Ballistol, Lestoil 등 수십 가지 유사 제품이 등장했지만, 브랜드 파워와 사용성 면에서 WD-40을 넘어서진 못했다.
WD-40의 제품군은 단순한 다용도 스프레이를 넘어 지속적으로 확장됐다. 2005년에는 뚜껑이 스트로우처럼 변하는 ‘Smart Straw’를 출시했고, 산업 현장에 최적화된 ‘Trigger Pro’, 구석진 곳을 위한 ‘EZ-Reach’ 등도 선보였다. 최근에는 자동차 정비, 전기접점, 녹 제거 등 전문 분야를 겨냥한 ‘WD-40 Specialist’ 시리즈도 성장세를 타고 있다.
기업의 재무 실적도 안정적이다. 2020년 코로나 여파로 소폭 하락했던 연매출은 2021년 19.5% 급등하며 4억 8천만 달러를 넘었고, 2024년에는 역대 최대인 5억 9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2025년 현재, WD-40은 176개국 이상에 유통되고 있으며, 미국 가정의 80% 이상이 한 통 이상을 보유한 것으로 조사된다.
결국 WD-40의 성공은 단지 ‘녹을 제거하는 화학물질’ 이상의 이야기다. 우주에서 지하실까지, 미사일에서 어린이 장난감까지. 이 다용도 스프레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40번의 시도, 비밀을 지키는 전략적 인내, 그리고 끊임없는 제품 혁신이 만든 상징이다. 오늘날에도 WD-40은 매주 1백만 캔 이상 판매되며, 그 특유의 냄새와 손맛은 여전히 “캔 속의 해결사”라는 별명을 지닌 채 우리의 삶 곳곳에서 마법을 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