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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밤에 이루어 진다" 뭔 덧걸이 하려고 상투적인 멘트를 날리는가? 인생은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시없는 장미는 없다. 세상은 도처에 고통이 널려 있지만, 극복하는 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마다 모양과 성질이 다르다. 그것이야 말로 신의 최대걸작이다. 성품과 개성이 다르게 한 것은 인간 개체의 독립성과 독창성을 가지고 다양하고 다채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신이 배려한 창조 신비성의 백미다.
좋은 것만 해도 지겨울 때가 있는데, 고뇌는 인간에게 있어야 하는가? 술에 의해서 언행이 지배될 때 자기의 통제력은 그만큼 약해지는 것이다. 남의 말을 가끔은 듣는 게 자신을 위해서나 단체를 위해서는 바람직하다. 국가간의 분쟁이 정치적으로 해결이 안될 때 전쟁이 발발하는 것 처럼 개 개인간의 갈등이 증폭될수록 막연한 대립보다 대화가 필요하다. 그 대화가 말하는 사람에 따라 일파만파가 되고 줄서기의 신호탄이 된다. 4월 27일 충성문학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라는 문자 후 전화를 하자, 암 투병 중에도 잠시 참석하겠다는 동문이 있는가 하면 전화를 계속 받지 않는 동문이 있다.
왜 우리나라는 '전부(全部)'아니면 '전무(全無)'를 택하는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국민이 선출했던 엄연한 대통령을 무조건 끌어 내리는 풍토가 그것도 철창에서 무려 52일간 구속 중 석방되는 지구촌 유일의 국가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에 아연실색할 정도다, 나이가 몇갠데 어리버리한 별 3개 달린 빛나리 어벙벙을 겁박하여 별 쑈를 하는가 하면 배우 김광규는 부사관으로 전역 후 장돌뱅이, 나이트클럽 웨이터, 영업사원, 택시기사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특히 택시기사를 5년 동안이나 했다. 연기의 뜻을 굽힐 수 없어 30살의 나이에 늦깎이 대학생으로 과감히 진학을 결심해 31살에 부산예술대학에 가서 연기를 공부하고 본격적인 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영화 '친구'는 곽경택 감독, 유오성, 장동건 주연으로 2001년에 개봉되었고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어린시절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조폭 두목의 아들인 이준석(유오성)과 장의사의 아들 한동수(장동건), 샌님 모범생 정상택(서태화), 분위기 메이커 김중호(정운택) 등 출신이 전부 제각각이었던 친구 4인방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 이들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기까지의 이야기를 담는다.
1976년 부산, 같은 동네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친구인 네 친구는 밀매업을 하는 중호네 아버지가 숨긴 포르노 테이프나 잡지를 팔기도 하고 상점의 물건을 훔치기도 하는 그다지 착하다고는 볼 수 없는 좀 불량기 있는 아이들.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과 바다 거북이 중 누가 더 빠른지' 말싸움을 하는 장면이 유명하다.
1981년 이들은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면서, 한주먹하던 준석과 동수는 학교를 접수해버리고 상택은 여전히 모범생으로 중호는 그냥 저냥 준석과 동수를 따라다니고 있다. 어느 날 근처 여고의 축제에서 밴드인 레인보우에게 반해 준석의 집에서 만나기도 하고 준석, 동수, 상택, 진숙의 4각관계가 시작된다. 상택은 진숙과 롤러장에서 놀다 이웃 학교의 양아치들에게 시비가 붙게 되나 뒤늦게 찾아온 준석과 동수로 인해 위기를 넘긴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영화관까지 레이스를 벌인 네 친구. 화장실을 갔다가 상택과 중호는 학교 단체관람을 온 인원 중 롤러장에서 마주친 양아치들과 조우하고 네 명의 친구들은 무지막지한 패싸움을 벌인다.
이 영화의 액션 씬 중에서 가장 스펙타클한 장면으로 준석과 동수는 정학 처분을 받아 학교를 떠나고 중호는 강제전학을 당했으며, 상택은 등교중지 처분을 받았다. 동수는 아버지의 장의사 일을 돕다가 뛰쳐나와 학교에서 담임 김광규의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라는 훈육에 깽판을 치며 "길에서 내하고 만나지 마소!"라고 부르짖고 자퇴를 선택한다. 한편, 상택은 자기 때문에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준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의 아파트 전세금을 몰래 훔쳐 가출한 다음에 준석을 찾아가서 아파트 전세금을 가지고 같이 서울로 올라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준석은 과거에 아버지 부하였던 조직폭력배들이 주변에 우글우글하던 덕에 평범하지 않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상택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낸다.
1984년 상택은 대학교에 중호는 전문대에 들어가게 된다. 준석이는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이 대단해 보였는지 "우와, 직이네. 내 친구들이 둘씩이나 엘리트 대학생들이네."라고 말한다. 준석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충격으로 인하여 마약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있는 상태였고 동수는 무슨 일인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마약에 빠져있는 준석은 진숙에게 온갖 모욕과 폭언을 내뱉으며 진숙을 학대하다시피 하고 진숙은 그것을 속으로 삭이고만 있다, 이후 준석의 아버지 철주가 사실상 조직을 은퇴하기로 선언하고 형두가 그 뒤를 잇게 되자 준석은 형두의 밑에 들어가게 된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동수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는 준석에게 찾아갔고 자신은 고아가 되었다며 슬퍼하는 준석에게 넌 이제 어른이 되었잖냐며 무심한 듯하면서도 위로해준다. 이에 준석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게 되었지만 동수는 차상곤의 제안으로 조폭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한다. 이에 준석은 차상곤의 조직은 건달이 아니라 양아치라면서 만류하지만 동수는 장의사보다는 차라리 그쪽이 더 낫다면서 거절하게 된다. 결국 그렇게 해서 동수는 동수의 길로, 준석은 준석의 길로 걷게 되면서 앞으로 벌어진 두 사람의 파국을 암시한다. 그러면서 친구로서의 악수를 나누며 헤어질 때 준석이 고맙다고 말하자 동수가 멋쩍으며 갈 길 가는 모습은 두 사람의 우정이 비극이 될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1990년 아버지의 사망 이후로 정신을 차리고 마약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아버지가 세운 조직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준석. 그런 준석을 우연히 길에서 만난 상택은 새출발을 했다면서 큰소리치는 준석과 술을 마시다, 술이 취하자 '너흰 건달이 아니라 깡패새끼'라고 평소 상택답지 않게 준석에게 쓴소리를 하고, 이런 상택의 말에 준석의 부하들이 발끈하지만, 준석은 되려 그런 부하들을 나무라고 "상택이 니 말이 맞다"면서 자조섞인 반응을 보인다.한편 준석네 조직과 라이벌 관계인 동수네 조직의 피튀기는 혈전들도 점차 심화되기 시작하는데... 동수네 조직이 준석네 조직의 구역을 조금씩 침범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 상황에서 상곤이 형두를 밀고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준석의 부하이자 친구인 도루코가 차상곤을 그냥 둘 순 없으니 밑의 놈을 작업해서 경고를 날리자며 동수를 죽이자고 돌려 말하지만, 부모를 여의며 장례를 치른 탓에 친구인 동수를 죽이는 건 반대하는 준석에게 면박만을 듣고 불만이 많은 듯 뒤에서 무언가를 꾸미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모른 채 상택과 중호와 만나 회포를 풀 겸 서로간의 감정의 골을 풀고자 동수가 옷을 고르던 중인 옷가게로 찾아와 동창 친구들과의 회포를 풀자고 넌지시 제의했지만 동수는 쓸데없는 자존심과 감정의 골을 버리지 않고 거부한 탓에 준석은 씁쓸하게 자리를 떠난 후 상택과 중호와 함께 술자리에서 회포를 풀며 상택의 유학 이야기와 추억을 회상하는 자리를 가진다. 이때 준석과 동수 사이가 어떤지를 질문하는 상택에게 중호가 노태우 정부부터 시작된 범죄와의 전쟁 선언 때문에 조직이 비상에 빠진 상황에서 동수가 선을 넘는 방식으로 준석의 조직까지 건드리며 승승장구하느라 조직 내의 인망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음을 설명했고 그러는 동안 준석은 18번 곡인 마이웨이를 부르는 데 준석의 조직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우는 모습과 상택에게 애써 웃는 모습을 보이는 준석을 통해 준석이 동수로 인해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날 밤 동수를 살려둘 생각이 없던 도루코가 조직원들을 동수의 집으로 파견해 습격을 시도하지만 이를 예상한 동수가 역으로 모조리 학살한 탓에 실패로 돌아간다.
동수네 조직은 이에 대한 복수로 도루코가 관리하는 항만 창고를 습격해 준석의 측근 도루코, 조직원인 짱가를 살해하고 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까지 마구 폭행하거나 회칼로 찔러서 살해하였다. 이때 동수가 창고를 습격하는 과정과 준석이 자기 조직의 신입 조직원들을 교육시키는 과정이 교차되면서 보여지는데, 준석이 조직원들에게 칼 쓰는 법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오고 그 바로 다음 장면에서 동수가 도루코를 준석이 말한 대로 잔인하게 찔러서 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루코는 칼을 잘 쓰는 칼잡이인데도 칼에 찔려서 살해된 것이다.
조직 간의 다툼이 격화되자 준석은 도루코의 장례식을 치르고 주변 물건을 정리하며 상택에게 작별인사 편지를 보낸 후, 동수와 직접 만나 대화를 시도한다. 먼저 당일 미국으로 떠나는 상택의 얘기도 꺼내며 친구 사이란 걸 넌지시 강조하지만, 동수는 서로가 적임을 자각하게끔 냉소적인 태도로 선을 긋는다. 그러자 준석은 장례식때 동수가 건넨 위로가 뭔지 기억나냐며 자신은 절대 한평생 동수를 원망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동수라면 미워했을 거라며 이해심을 표함과 동시에 2인자의 삶을 사는 자신들의 처지를 씁쓸히 말한다. 이에 동수가 윗사람이 준석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시킨거냐며 빈정댔지만 준석은 오늘이 아버지 제사라며 친구로서의 마지막 부탁으로 동수에게 먼저 하와이에 가서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있으라고 권하지만, 동수는 심드렁한 말투로 "니가 가라 하와이"라며 제안을 거부한다.
이에 준석은 동수가 더 이상 자신을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만 알게 되며 씁쓸해하면서 자신이 갈테니 몇 년있다 보자며 일어선다. 나서려는 순간 동수의 지시로 자신을 담그려는 동수의 부하들을 보다 동수를 노려봤지만 동수는 태평하게 아버지 제사라며 선심쓴다는양 준석을 보내준다. 결국 동수가 완전히 선을 넘은 쓰레기가 된 것을 씁쓸히 여긴 준석은 결단을 내리게 된다. 한편, 준석이 나가고 난 후 동수는 자신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준석의 호소를 떠올리더니 이내 준석이 처음부터 자신을 친구로서 지켜주고 기다렸음을 깨달으며 그제서야 준석에게 사과할 겸 친구들과의 오랜만의 재회를 위해 부하 은기에게 "공항까지 얼마나 걸리노?"라며 미국으로 떠나는 상택의 배웅을 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나이트 클럽 앞에서 심복이었던 은기가 배신을 하면서 준석이 심어둔 칼잡이들이 달려들어 동수의 배를 칼로 찌른다. 동수는 느닷없는 습격에 당황하여 도망치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칼에 찔린 동수가 멀리 도망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대로 붙잡혀 사시미칼에 30회 이상 찔린 후 "마이 무따 아이가..고마해라..."라는 유언을 남겼고 칼잡이가 도망치는 사이에 준석이 결국 자신을 완전히 버렸다는 배신감과 절망, 그리고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렸다는 후회를 표정으로 드러낸 채 과다출혈로 쓰러지며 숨을 거둔다.
상택의 나레이션처럼 사람들에게 잊혀진 사건으로 전락할만큼 사건이 벌어진 지 3년 뒤인 1993년 상택은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해 그간 있었던 일들을 횟집을 운영하는 중호에게서 전해 듣는다. 결국 준석은 동수에 대한 살인교사 혐의로 검거되고, 재판이 이어지게 된다. 혐의를 무조건 극구 부인하라는 친구 상택과 중호의 도움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준석은 법정에서 자신이 지시한 것임을 덤덤하게 자백한 후에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수가 되면서 수감된다. 결말에선 상택이 찾아와 동수에게 미안해서 스스로 전부 뒤집어 쓴거냐며 울부짖지만 준석은 동수가 배신을 당해 죽은 점을 감추어 그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려 했다며 말한다. 그렇게 서로간의 기약할 수 없는 작별을 나누고 돌아간 뒤, 조오련과 바다거북의 대결을 두고 바다 위에서 헤엄치다 돌아가는 회상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요즘도 뜨는 배우 김광수는 영화 '친구'에서 준석과 동수의 야비하고 폭력적인 담임선생으로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동수가 퇴학당한 후 방망이를 들고 학교에 나타나자 앞을 막아서지만 동수가 복도에서 난장판을 부린 후 "길에서 내하고 만나지 마소!"라고 살기등등하게 경고한 후 사라지자 식겁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걸로 출연이 끝난다. 여담으로 김광규가 대머리라서 나이에 비해 늙게 보이는지라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유오성보다 동생이다. 사족으로 느그 아부지 부분의 임팩트가 꽤 되어서인지 호구라는 이름으로 퍼진 패러디가 제법 압권이다.
배우 김광규가 주식 실패와 전세 사기로 전 재산을 잃었던 사연을 털어놨다. 지난 며칠 전 공개된 사회탐구 영역 대표 강사 이지영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김광규는 “1999년 서울에 왔다. 주식으로 전 재산을 다 날려 돈이 없어 압구정 고시원에 살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때는 ‘성공하고 싶어? 그럼 절벽 끝에 너를 세워’라는 말이 유행했다. 한강 다리에 얼마나 섰는지 모른다. 양화대교까지 갔지만, 죽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래 살고 싶기는 인지상정이다.
김광규는 20대에 직업 군인과 택시 기사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뒤 30대에 배우의 꿈을 꾸게 됐다. 그는 “중고등학교 때는 꿈이 없었다. 집에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국방부 장학생으로 군대를 5년 동안 가서 직업 군인이 됐고, 전역 후 바로 돈을 모으려고 택시 기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다 서른 살쯤 ‘돈을 떠나서 한 번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배우의 길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에 올라와 오디션에 계속 낙방하고, 주식 실패로 전 재산을 잃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몸이 아파 병원까지 갔지만, 병원비가 없어서 울었던 적도 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내가 얼마나 큰 인물이 되려고 이런 시련이 오는 걸까”라며 “나중에 자서전이 잘 팔리겠네”라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졌다고 전했다. 김광규는 “성공에 관한 책을 읽어보니 많이 나오는 말이 ‘성공으로 가는 첫길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었다”며 “그때부터 압구정에서 스스로를 안아주며 ‘얼마나 잘되려고 이런 시련이 오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전세 사기를 당했던 경험도 털어놨다. 그는 “겨우 모은 출연료로 마련한 집에서 전세 사기를 당했다”며 “그때도 ‘얼마나 잘되려고’라고 생각하며 버텼다”고 말했다. 2010년 그는 전세 사기로 10여년간 모은 1억 1000만원을 잃었고, 당시를 떠올리며 “3개월간 내 뺨을 얼마나 때렸는지 모른다. 12년 동안 출연료를 모아 마련한 전세였는데 사기를 당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김광규는 “포기하지 않아서 이렇게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책이나 유튜브, 방송에서 들었던 이런 말들이 조금씩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