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혼탁 시킨 일제 그림자
“찌찌, 애매, 우동, 짬뽕, 무대포, 야지, 단도리, 쎄쎄쎄, 빵꾸, 삐까삐까, 자바라, 찌라시, 다마, 곤로, 구루마, 빤스, 다라이, 신쭈, 유도리” 이들은 어떤 공통점을 지녔을까. 공연한 헛수고 말고 아래를 살펴보면 금세 해답을 찾으리라.
“찌찌(ちち : 젖가슴, 유방), 애매(曖昧 : あいまい : 모호), 우동(うどん : 가께우동, 가락국수, 국수), 짬뽕(ちゃんぽん : 얼큰 탕, 뒤섞기), 무뎁뽀(無鐵砲 : むてっぽう : 앞뒤 생각 없이 무턱대고 하는 모양), 야지(野次, 彌次 : やじ : 야유), 단도리(段取 : だんどり : 채비, 준비), 쎄쎄쎄(せっせっせ : 짝짝짝, 야야야), 빵꾸(パンク : puncture : 펑크, 구멍), 삐까삐까(ぴかぴか : 삐까번쩍, 번쩍번쩍), 자바라(じゃばら : 주름물통, 주름대롱), 찌라시(散 : ちらし : 전단지, 광고지), 다마(珠, 球, 玉 : たま : 구슬, 알, 전구, 당구), 곤로(爐 : こんろ : 풍로, 화로), 구루마(車 : くるま : 차, 마차), 빤스(ペンツ : pants : 팬티), 다라이(たらい : 대야, 함지), 신쭈(眞鍮 : しんちゅう : 놋쇠), 유도리(ゆとり : 융통성, 여유) ”
위 내용에서 공통분모가 일본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것이다.
일제 36년의 지배가 끝나던 해에 태어난 해방둥이다. 그런 내가 어느덧 희수(喜壽)에 이르렀으니 일제의 지배를 받은 세월의 두 배를 넘게 살아왔다. 국권을 빼앗겼던 시절 그들은 대놓고 우리문화 말살정책을 펼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우리말과 글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려던 획책이 극에 달해 수많은 우국지사들을 비분강개하게 했다. 해방이 되고 꽤 많은 세월이 흐른 여태까지도 그 잔재들이 “쓿은쌀 속에 등겨가 벗겨지지 않은 채로 섞인 벼 알갱이”인 ‘뉘’처럼 입말로 쓰이고 있다. 물론 해방 직후엔 일본말이 무절제하게 뒤섞여 쓰였던 까닭에 “뉘가 많이 섞인 쌀”인 ‘뉘반지기’를 떠올릴 지경이었다.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거의 걸러져 정화되었음에도 아직도 잔재가 남아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도 지금 6,7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 많이 듣고 입에 올리며 접했던 말의 조각이다.
벤또(べんとう : 도시락), 바께쓰(バケツ : bucket : 양동이), 가미소리(剃刀 : かみそり : 면도(칼)기). 가이당(階段 : かいだん : 계단, 층계), 게다(げた : 나막신), 노깡, 도깡(土管 : どかん : 토관), 닌징( にんじん : 당근), 다꽝(たくあん : 단무지), 다다미(たたみ : 일본식 방에 까는 두꺼운 깔개), 단스(簞 : たんす : 옷장, 장롱), 마호병(魔法甁 : まほうびん : 보온병, * 마호 ⇨ 마법이나 마술을 뜻함), 멕기(鍍金 :めっき : 도금), 몸뻬(もんぺ 허드렛 바지, 들일이나 허드렛일을 할 때 주로 여성들이 입는 일 바지), 사라다(サラダ : 샐러드의 일본식 발음), 사시코미(差翔 : さしこみ 콘센트), 센베이(煎餠 : せんべい : 전병과자), 소바(蕎麥 : そば : 메밀(국수)), 싯뿌(濕布 : しっぶ : 찜질), 쓰리(摸 : すり : 소매치기), 쓰봉(ズボン : jupon : 양복바지), 오뎅(おでん : 어묵), 오카네(おかね : 돈), 우와기(うわぎ : 윗도리, 상의, (양복)저고리), 자부동(ざぶとん 방석), 장깸뽀(じゃんけん : 가위바위보), 조끼(チョッキ : jug : 잔), 조로(如雨露 : ぞうり : 물뿌리개), 쯔메기리(つめぎり : 손톱깎이), 하꼬(箱 : はこ : 상자. 함지), 함바(はんば : 현장식당, 노무자 합숙소), 헤라(へら : (구두)주걱), 후키(吹 : ふき : 분무기, 뿜질) 따위가 언뜻 떠오른다.
한편 하는 일이나 직업을 지칭하던 몇 가지를 대충 간추린 내용이다.
가오(顔 : かお)마담 : 얼굴마담 : * 카오 ⇨ 얼굴, 체면), 꼬붕(子分 : こぶん : 부하, 종), 나까마(仲間 : なかま : 거간꾼, 중간상), 데모도(てもと 미장이나 목수의 조수, 심부름꾼), 뎃빵(鐵板 : てっぽん : 우두머리, 두목, 철판), 시다(下 : した : 보조원, 조수), 시로도(素人 : しろぅと : 초보자, 신출내기, 풋내기), 신마이(親前 : しんまい : 신참, 풋내기), 오야(爺 : おや : 우두머리, 두목, 계주), 오야붕(親分 : おやぶん : 우두머리, 두목, 책임자), 오야지(親爺 : おやじ : 우두머리, 책임자, 공두(工頭)) 따위를 열거할 수 있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소용되는 이런저런 개념이나 생각들을 나타내는데 사용되는 말들을 여기저기서 설렁설렁 그러모았다.
겐또(見當 : けんとう : 가늠, 어림짐작), 간빠이(かんぱぃ : 건배, 축배), 겐세이(牽制 : けんせぃ : 견제), 고바이(勾配 : こうばぃ : 언덕, 오르막, 비탈), 곤조(根性 : こんじょう : 근성, 본성), 구라(くら : 거짓말, 속이다), 기스, 키스(きず : 흠, 흠집, 상처), 쿠세(くせ : 버릇, 습관), 깡(換 : かん : 환전, 바꾸다), 나가리(流 : ながり : 취소, 깨짐, 유찰, 허사, 무효), 나라비(ならび : 줄서기), 나시(なし : 민소매, 소매 없는 옷), 네다바이(ねたばぃ : 사기, 날치기), 다스, 타스(タス : dozen, 12개, 타(打), 묶음), 데코보코(でこぽこ : 요철, 올록볼록), 덴싱(でんぜん : 올 풀림, 줄나감), 마끼(まき : 두루마리, 감은 것), 만땅((滿タンtank) : 만탱크, 가득 채움), 붐빠이(分配 : ぶんぱい ; 분배, 나눔), 시마이(仕舞, 終 : しまい : 마감, 끝냄), 신삥(新品 : しんぴん : 새것, 신품), 싱(芯 : しん : 심(지), 속), 시찌부(七分 : しちぶ : 칠분, (전체의)칠할), 쇼부(しょうぶ : 승부, 결판, 흥정), 아다리(當 : あたり : 적중, 체하다, 단수 바둑), 야마시(山師 : やまし : 속임수, 사기), 야메(やみ : 뒷거래, 암거래), 우라까이(うらがえ : 뒤집기), 야사시(やさし : 아름다운, 우아한), 와리깡(わりかん : 나눠 내기, 각자부담, 각추렴), 입빠이(一杯 : いつぱい : 한잔, 가득, 양껏), 하야카시(冷 : ひやかし : 희롱, 꼬신다), 후로쿠, 후루쿠(フルク : fluke : 요행, 엉터리) 등을 들 수 있지 싶다.
우리의 일상에 소용되는 잡다한 물건이나 사물에 대한 명칭은 엄청 다양하게 쓰였던 흔적에 어안이 벙벙했다. 젊은 시절부터 공사현장을 전전하며 삶을 꾸렸던 초등학교 친구가 있다. 그는 일본말을 배운 적이 전혀 없음에도 토목이나 건축에 관련된 용어 사용은 박사급이다. 그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 대부분이 그렇다고 했다. 아직도 특정 분야에는 이런 현실을 논외 하더라도 그 폐해 증적이 입때까지 어른거렸다.
가꾸(額 : がく : 틀, 액자), 간끼리(罐詰 : カンきリ : 깡통따개), 구찌베니(口紅 : くちべに : 연지, 립스틱), 곤냐쿠(蒻 : こんにゃく : 곤약), 기지(きじ : 옷감, 천, 원단), 네지(螺子 : ねじ 나사(못)), 다이(だい : 선반, 받침대, 진열대), 덴뿌라(てんぷら : 튀김), 도쿠리(德利 : とくり : 긴 목 셔츠, 조막 병(甁)), 란닝구(ランニング : running shirts : 러닝셔츠), 미깡(蜜柑 : みかん : 감귤, 귤, 밀감), 모찌(もち : 찹쌀떡), 보단(ボダン : button : 버튼, 단추, 누름쇠), 사라(さら : 접시), 사시미(さしみ : 생선회), 세꼬시(背串し : せこし : 뼈 회, 뼈 채로 써는 회), 스시(壽司 : すし : 초밥, 김초밥), 아나고(穴子 : あなご : 붕장어, 바닷장어), 아다라시(新 : あたらしぃ : 새것), 아이롱(アイロン : iron : 다리미, 머리 인두), 앙꼬(あんこ : 팥소 등과 같이 속을 채우는 물건), 오차(おちゃ : 차), 와리바시(わりばし : 소독저), 요지(ようじ : 이쑤시개), 와이로(賄賂 : わいろ : 뇌물), 우나기(鰻 : うなぎ : 뱀장어), 우라(うら : 안감, 뒤), 에리(えり : 깃, 칼라), 지리(ちり : 냄비요리의 일종) 등을 쉬 접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내용 중에 아래의 예들 역시 뇌리에서 쉬 지워지지 않아 되돌아본다는 맥락에서 정리해 봤다.
간조(勘定 : かんじょう : 계산, 셈, 대금지불, 회계), 구치비끼(籤引 : くじびき : 제비뽑기, 추첨), 바가(ばか : 바보), 바가야로(ばかやろう : 멍청이, 멍텅구리), 빠꾸(バック : back : 뒤로, 퇴짜), 뽕구라(ぽんくら : 멍텅구리, 바보, 얼간이), 기레빠시(切端 : きれぱし : 자투리, 조각, 토막), 기마이(氣前 : きまえ : 선심 쓰다, 선심을 보이다), 뗑깡(てんかん : 억지, 생떼, 행패, 방해), 마에가리(前借 : まえがり : 가불), 사바사바(さばさば : 속닥속닥, 뒷거래), 아다마(頭 : あたま : 머리), 엥꼬(えんこ : 떨어짐, 바닥남, 고장 나서 꼼짝 않고 그 자리 섰다), 오사마리(納 : おさまり : 끝맺음, 결말), 와리(割 : わり : 나눔, 분배), 이찌방(一番 : いちばん : 일번, 첫째, 일등), 하바(幅 : はば : 폭, 너비), 히야시(冷(ひ)やし) : 차게 함, 차게 한 것) 등등이 입에 낯익었지 싶다.
통한의 역사였던 일제 36년 지배로부터 독립한지 어언 일흔 해가 훌쩍 지났음에도 그 질곡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 시절 우리 전통을 통째로 부정한 채 창씨개명(創氏改名) 같은 무지몽매한 정책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던 통치의 폐해는 너무도 깊고 컸다. 다른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우리말이나 글에서 일제의 그림자를 아직도 완벽하게 지우지 못한 현실이다. 한 나라의 문화나 언어가 넓은 세상의 다양한 문물을 폭 넓게 수용하며 대승적인 차원에서 미래의 발전 방향을 겨냥해야 하리라. 그럴지라도 말과 글 부문에서 우리의 영혼과 얼을 모지락스럽게 짓밟으며 혼탁 시킨 일제의 그림자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소명일지어다.
2021년 1월 26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