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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땅끝 사랑 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복된 가정 만들기(2) 창2:20-25, 골3:18-19
어느 날, 철학자 소크라테스 집에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악처 크산티페가 소리를 지르니까 소크라테스는 “손님이 왔으니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크산티페는 더 소리를 지르면서 물동이를 집어 들고 소크라테스에게 물세례를 퍼부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손님들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살려고 합니까? 빨리 갈라지세요.” 그때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천둥이 친 후에는 비가 오고, 비가 온 후에는 곧 날이 갤 것입니다.” 가정생활 하다보면 항상 평안 하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 언짢을 때도 있고, 큰 소리 치며 싸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음의 여유와 인내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사랑이 필요합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가정의 중심이 되는 바람직한 부부 관계를 통해 어떻게 복된 가정을 이룰 것인지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부부는 서로 도와야 합니다.
구약 본문 창2:8에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아담은 하나님과 아름답고 온전한 교제를 나누며 살고 있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아담에게 배우자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어 아담을 위해 하와를 창조하시고 돕는 배필로 주시어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부부관계를 통해 자녀를 낳아 기르게 하셨습니다.
가정은 사회의 초석입니다. 건강한 가정이 있는 곳에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반면에 병든 가정은 병든 사회를 만듭니다. 가정은 우리의 가치를 형성하고 언어를 가르치며, 남성과 여성의 다양한 역할을 자연스럽게 감당하며 배워갑니다. 남편으로, 아내로, 아버지로, 어머니로, 아들과 딸, 형제자매의 역할, 의무, 예절, 도리, 리더십 등을 가정에서 배웁니다. 그리하여 더 큰 공동체나 사회 속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줍니다. 가정이 병들고, 파괴되면 건강한 사회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가정, 건강한 가정의 구성원은 교회생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합니다. 건강한 가정이 건강한 교회를 만듭니다. 그래서 교회의 일군의 자격을 말할 때 가정에서의 역할이 어떠한가를 살피도록 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딤전3:5)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잠시라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라고 해서 결코 우리는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서로 서로 돕는 일이 필요합니다. 제가 요즘 철이 좀 들어서 아내를 돕기 위해 청소, 빨래, 설거지 하는 일을 돕게 되니까 아내가 많이 좋아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남편은 아내의 도움이 필요하고, 아내는 남편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부부는 서로에게 "당신은 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성의 돕는 배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미국 사람들 사이에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한 번은 미국의 대통령 클린턴과 그의 부인 힐러리가 차를 타고서 고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향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기름이 떨어져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기름때 묻은 더러운 옷을 입고 얼굴에 비지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를 자세히 보니까 힐러리의 옛날 고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기름을 다 채우고 난 뒤에 차를 타고 가면서 클린턴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힐러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만일 당신이 저런 남자와 결혼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소? 당신이 나를 만난 것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시오!"
그 말을 들은 힐러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만일 그 남자와 결혼했더라면 지금쯤 그 남자가 백악관 집무실에 앉아 있을 거예요." ㅎㅎ 돕는 배필로서의 아내의 역할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영어로 Wife라고 합니다. Wife(아내)가 돕는 배필로서의 역할을 잘하면 남편에게 Life 즉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돕는 배필로서의 역할을 잘하지 못하면 Life(삶)가 아니고, 남편에게 찌르고 상처를 주는 흉기 Knife 즉 칼이 됩니다. 우리말로 아내는 안에 있는 해, 곧 태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서로 서로에게 돕는 배필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 이루시길 소망합니다.
2.각자 해야 할 도리를 감당하면서 상대방의 허물과 약점을 감싸 주어야 합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자기를 존중해 주기를 바라거나 자기는 상대를 배려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만 자기를 이해하고 배려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고쳐야 할 잘 못된 태도입니다. 배우자가 서로 존중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책임감을 가지고 존경받을만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돈에 욕심이 없는 것은 좋지만 아내와 자녀의 먹고 사는 문제는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일을 위해서라면 일터에서 어떤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참고 감당해야 합니다. 부모가 도둑질 하거나 사기 치지 아니하고 3D 업종에 종사해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책임감이 있는 모습을 보면 큰 존경심을 보낼 것입니다.
아내가 게으르거나 일하는 것을 싫어하여 가족의 건강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보살피지 않고 개으름을 피고 밖으로 나돌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한다면 건강하고 복된 가정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을 보면 든든합니다. 집밖에서는 강한 것이 매력이지만 집안에서는 자상하고 든든한 것이 매력입니다. 요즘 매 맞는 남편도 많다지만 대체로 남자가 힘이 있어 약한 아내를 괴롭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약 본문 골3:18에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 하며 괴롭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남편들이 가정 밖에서는 큰소리를 쳐도 가정 안에서는 부드럽고 의지할만한 남편과 아빠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싸우는 일터가 아니라 쉬고, 위로를 받고, 서로 의지하며, 용기를 주며,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며 사는 안식처요, 보금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벧전3:7에 보면 “아내를 귀하게 여길 때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하지만 누구보다 우리 식구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식구들은 허물이 없이 가까이 지내다 보니 허물과 약점도 많이 눈에 띠기도 하고, 밖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화풀이 대상으로 함부로 대하기 쉽습니다. 좋은 가정을 이루려면 식구들을 귀히 여기며 허물과 약점을 덮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옛날에 12살 먹은 꼬마신랑이 있었습니다. 신부는 18살인데, 꼬마 신랑이 항상 졸졸 따라다니면서 누룽지 달라고 보채고, 같이 놀자고 보채니까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장터에 나갔을 때 신부가 밥을 하는데 옆에서 꼬마신랑이 또 계속 놀아달라고 하니까 신부가 귀찮아서 신랑을 번쩍 들어다가 지붕에다 올려놓았습니다. 그러자 꼬마신랑이 지붕 위에서 엉엉 우는데 저쪽에서 시어머니가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신부는 간이 콩알만 해졌습니다. “저 꼬마가 울다가 어머니에게 일러바칠 텐데 큰일 났다.”생각하며 조바심이 났습니다.
드디어 시어머니가 가까이 왔습니다. 신부가 초조하게 있는데 꼬마 신랑이 눈물을 그치고 말했습니다. “색시야! 여기 호박 큰 놈 딸까? 작은 놈 딸까?” 그래도 신랑이라고 시어머니 앞에서 자기 아내 허물을 싹 덮어주는 모습을 보고 신부는 생각했습니다. “신랑이 지금은 어려도 앞으로는 든든한 남편이 되겠구나!” 결국 그 일의 계기로 꼬마 신랑을 잘 받들어서 훌륭한 남편으로 성장시켰다고 합니다.
부부는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서로 높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좋은 내용도 많지만 나쁜 속담도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입니다. 요새 그 속담은 바뀌어야 합니다. “암탉이 울면 알을 깐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일어난다.”해야 합니다. 요즈음 맛 벌이 부부가 많습니다. 그리고 집 안에 있어도 돈을 잘 관리해서 돈 버는 사람 보면 거의 여자입니다. 집 안이 잘 되려면 암탉이 울어야 합니다. 암탉이 우는 것은 대개 보면 수탉이 자기가 할 일을 재대로 못하거나 책임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부모가 책임감이 없으면 자녀의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면 자녀도 그 모습을 배워 책임감이 있는 멋진 자녀로 잘 자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 해야 할 도리를 잘 감당하면서 상대방의 허물과 약점을 감싸주어 복된 가정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하나 됨의 신비함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구약 본문 창2:23-25 에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부 관계로 맺게 하셨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하나님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사랑의 신비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과 주의 백성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로 비유했습니다. 주님과 성도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비유했습니다. 부부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보’라고 자처했던 양주동 박사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서울의 기독교 계통 어느 여학교 학생을 열렬히 짝사랑하였습니다. 시적인 문장력으로 실력을 다해서 연애편지를 여러 번 썼습니다. 여학생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좋은 문장을 골라서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회답은 없었습니다. 기숙사에 호랑이 같은 사감 선생님이 있어서 연애편지가 날아 들어오는 족족 읽어보고 그 여학생한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양주동은 묘안을 궁리했습니다. ‘미션스쿨이니 성경구절이라면 그 무서운 사감 선생님도 본인한테 전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성경 구절에다 내 마음을 담아 보내면 될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써 보낸 성경 말씀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 12:9),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요일 4:18), 그리고 마침낸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막 10:7-9) 하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그 여학생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남자면 좋다.’ 그래서 둘이 결혼했다고 합니다. 부부는 서로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새로운 출발의 신비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결혼은 새로운 출발입니다. 지금까지 부모의 돌보심 가운데 살았지만 이제 독립해서 부부로 새 가정을 이루어 살게 됩니다. 새롭게 변화 된 삶을 살게 됩니다.
신앙생활 역시 새로운 출발입니다. 아브라함이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산 것처럼 부부 생활 역시 새로운 출발입니다. 그래서 좋은 부부는 좋은 쪽으로 변화를 경험합니다.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는 신앙이 없었는데, 당신을 만난 이후에 완전히 새로운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옛날에는 강팍하고 거친 사람이었는데 당신을 만난 이후에는 내가 온유한 양같이 되었어요.” “나는 과거에 게으르고 놀기만 좋아 했는데,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었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 몸의 신비입니다.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4절)했습니다. 부부의 관계는 한 몸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세 가지 관계로 만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주로 모십니다. 그래서 나는 주의 종이 됩니다. 종은 일하고 삯을 받고, 칭찬을 받으며, 상을 받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관계입니다.
이 보다 더 나은 관계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십니다. 아버지 자녀가 되면 생명을 받고, 보호를 받으며 상속을 받고, 도움을 입습니다. 이것은 돌봄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깊은 관계가 있는데 이것은 신랑과 신부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사랑의 관계요, 한 몸의 관계요, 행복의 관계입니다.
성전을 보면 성전 뜰이 있고,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뜰에서 만나는 하나님, 성소에서 만나는 하나님, 지성소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가정으로 말하자면 마당에 서 있는 사람은 종입니다. 거실에 앉아있는 사람은 자녀입니다. 안방에는 있는 사람은 신랑과 신부입니다. 여기는 신비의 세계입니다. 안방은 행복의 세계입니다. 한 몸의 세계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 안에서 주님과 내가 하나 된 신비를 말한 것입니다. 주님이 나의임이 되고, 나의 사랑이 되고, 나의 생명이 되고, 나의 전부가 된 것입니다. 주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주님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됩니다. 깊은 사랑으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폴란드의 귀족 출신인 캐서린은 스웨덴의 왕자 존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권력다툼에 휘말리면서 그의 형 에릭에 의해 평생토록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이 같은 일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인 캐서린은 급히 스톡홀름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나아가 간청했습니다. “폐하, 저를 남편이 있는 감옥에서 함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왕이 대답하였습니다. “캐서린, 그대의 남편은 평생 동안 햇빛을 볼 수 없소. 그것을 알고 간청하는 것이오?” 캐서린이 말했습니다. “폐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무죄이건 유죄이건 그는 저희 변함없는 남편입니다.”
왕을 측은하다는 듯이 다시 말했습니다. “캐서린, 그대의 남편이 감옥으로 보내진 순간부터 그대는 그와의 서약에서 이미 풀려났으니 이제 그대는 더 이상 그의 아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러자 캐서린은 손가락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들고서 말했습니다. “폐하, 부디 이 반지에 새겨져 있는 글을 읽어 주십시오.” 거기에는 ‘오직 죽음으로만’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결국 왕은 그녀를 설득시키지 못하고 감옥에 보냈습니다. 캐서린은 17년 동안을 그녀의 남편과 함께 힘든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국왕 에릭이 죽은 후 햇빛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직 죽음만이 이들 부부를 갈라놓을 수 있을 뿐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이들의 사랑을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 모습이 한 몸이 된 부부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 됨의 신비를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가정의 중심이 되는 바람직한 부부 관계를 통해 어떻게 복된 가정을 이룰 것인지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부부는 서로 도와야 합니다.
◆.각자 해야 할 도리를 감당하면서 상대방의 허물과 약점을 감싸 주어야 합니다.
◆.하나 됨의 신비함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아멘.
<2019. 5. 16. 호현낙선. http://cafe.daum.net/sungsansar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