吉音시장에서 / 박중식
순교자 金宗三씨는 쓸개를 터뜨리며 외쳤다 <나는 집을 나왔다>라고.
-『독자 구함』, 가람기획, 1987.
감상 : 박중식은 박용래를 따르며, 박용래 시인의 눈물샘 주위에 거대한 시 바이러스 덩어리가 기생하고 있다는 「은하계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 눈물의 시인 박용래로부터 김종삼에 대한 얘기를 듣고 박중식은 헌책방을 뒤져서 그예 『시인학교』를 찾아내고 김종삼의 팬이 된다.
‘김종삼’이란 시까지 적어서 몸에 품고 지내던 박중식은 길음시장을 지나던 김종삼을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나눈다. 달동네 셋방만 전전하던 김종삼은 이 무렵에도 정릉동 산꼭대기 셋방에 살고 있었다. 서로 안면을 튼 이래 박중식은 길음시장에서만 서너 번 더 김종삼을 만나게 된다. 커피집에서 김종삼의 얘기를 들으면서 급격히 가까워진 두 사람의 인연은 김종삼의 사후에까지 이어지는데, 이 짧은 시 한편은 길음시장에서 들은 김종삼의 얘기 한 토막에 쓸개 운운하는 단 한 줄의 수사를 보탠 게 전부다.
시에서 길음(吉音)과 김종삼 이름 석 자를 한자로 적은 게 눈에 띈다. 길음은 소리가 좋다는 뜻이 아닌가. 김종삼은 밥보다 음악(音樂)을 좋아한 사람이다. 시와 음악에 투신하는 정도가 깊어갈수록 ‘집’으로 대변되는 생활을 돌아보는 면은 부족했다. 김종삼은 예술이란 명분을 내세운 바 없고 오히려 그 반대쪽에 가까웠다. 또한 생활의 방편을 마련하는 데는 철저하게 무지했다. 예술가 행세를 하면서 실제 삶에서도 잘나가는 경우를 탓할 이유는 없겠지만 김종삼은 이를 극단적으로 멀리한 사람이다.
김종삼은 예술이든 상처든 다른 무엇으로 인한 것이든 간에 자기세계를 구축하며 가족이나 건강 등 현실적인 것을 희생시켰으니 박해받는 순교자의 면모가 없지 않다. 박중식이 김종삼을 처음 만날 당시에 이미, 김종삼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현실적인 것 사이의 첨예한 갈등 속에 밥 대신 술을 찾았고, 가난한 알콜중독자의 속은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다. 가족의 원망과 걱정을 사면서도 김종삼은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 쓸개가 망가지는 육체적 고통은 가중되었다. 그 쓸개는 김종삼의 남다른 자존심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을 것이다.
박중식은 김종삼의 영향을 적잖게 받으며 시작 활동을 했다. 김종삼 사후 그의 시비 건립에 주도적으로 나섰고, 전집 발간도 도왔으니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에게 길(吉)한 것이었다고 해두자. (이동훈)
첫댓글 시인들의 이야기 재미있게 잘 감상했습니다
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