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은 세상의 삶을 배우는 날의 시작이다
얘들아!
참으로 멋지구나
당당한 걸음 걸음에 축복이 넘치기를,...
아름다운 세상에 꽃이 되어라
너희들은 이 땅 꽃이다
늘 향기를 피우고
모두에게 기쁨을 주고
방긋방긋 웃고
꿀도 나누고
아름다운 씨앗을 품고
꿈을 키우며
꽃처럼 살아라
꽃처럼 살려면 배워야 한다
배움은 사랑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삶은 사랑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All the flowers of the tomorrows are in the seeds fo today.
내일의 모든 꽃들은 오늘의 씨앗 안에 있다
입학식은 사랑의 씨앗을 심는 날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세상 삶을 배워라
날마다 배우고 익힘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배워서 자신이 아름다워지고
남을 도울 수 있기에 공부에 전념하라
삶의 기초를 배워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어라
그래서 세산 살 동안
참되고 진실하게(眞)
선하고 인자하게(善)
사랑으로 아름다워 져라(美)
무엇 보다도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살아라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세상은 너희들 것이다
너희들 가슴에 달려있는 하얀 손수건
마음을 맑고, 밝게 하라는 거야
남들의 눈물을 닦아 주라는 거야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리라는 거야
더러운 것을 덮어 세상을 아름답게 하라는 거야
초등학교 입학식 날 하얀 손수건은 시쳇말로 필수템이었다.
새 옷을 입고, 새 가방을 맺고
엄마 손 잡고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얼굴에도 분칠 하였지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다
너는 할 수 있어
멋지고 당당하게 아름답게 살아라
마흔 줄을 넘어선 이들은 딴 건 몰라도
그날 그 손수건의 기억은 간직하고들 있지 싶다.
삼월 꽃샘추위 속 운동장에 뻘쭘하게 선 코흘리개들은 왼쪽 가슴에 너나없이 하얀
‘가재 손수건’을 달고 있었다.
옷핀에 얌전히 매달린 손수건은 조무래기들의 콧물을 닦는 용도였다.
잔손이 많이 갔어도 손수건 귀퉁이에 아이 이름을 자수로 떠 놓는
곰살맞은 엄마들도 있었다.
기실 손수건 입학식은 ‘국민학교 세대’의 공유 풍경이다.
이제는 도시의 초등 입학식에 이색 체험 이벤트로 종종 등장한다.
초등 입학 선물은 국민소득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했다.
시대의 경제 상황을 에누리 없이 반영하는 지표였다.
텔레비전 인기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가방,
전래동화 전집 등이 인기 선물 목록으로 오래 자리를 지켰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보자면
대중문화 코드가 반영된 입학 선물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들면서.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이 500만~1000만원이었다.
아름다운‘초등 입학식 문화사’가 명맥을 이어갈지 걱정스럽다.
올해 1학년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초교가 전국에 157곳.
지역 내 입학 연령 아동이 한 명도 살지 않아
아예 입학식을 건너뛰는 학교가 2년 전보다 30%나 늘었다.
그런 학교가 가장 많은 지역은 전북(34곳), 경북(27곳), 강원(25곳), 전남(20곳),
충남(14곳), 경남(12곳) 등 순이었다.
서울, 광주, 대전, 울산, 세종은 ‘신입생 0명’의 상황은 가까스로 면했다.
예비소집을 마친 전국의 초1 입학생은 36만 9441명.
2023년도 보다 3만 2000여명이 또 줄어 40만명 선이 깨졌다.
2년 뒤에는 30만명 선이 무너질 것이란 전망치가 벌써 나왔다.
한 학년이 완전히 비거나 학생이 거의 없는 학급이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진다.
교육정책도 이대로 손놓고만 있을 수 없다는 걱정들이다.
초중고교를 통합 운영하는 학교 등이 입에 오르내린다.
아쉽고 답답한 것은 교육재정 비효율의 문제만이 아니다.
인구가 줄면서 속수무책 잃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진다.
생애 첫 자립의 상징과 출발의 설렘.
초등 입학식을 볼 수 없어진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사회적 메타포 하나를 통째 잃는다는 뜻 아닐까.
아이들과 어울려 놀며 세상 삶을배워라
학원 다 잊고 친구들과 세상 삶의 아를 다움을 배워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주어라
놀이를 통해 삶의 지혜를 익히게 기회를 주어라
내 어릴 적은 어땠던가.
지금처럼 컴퓨터도 없고,
책도 많지 않던 시절에 우리가 놀 수 있는 것은
그저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전부였다.
자치기, 오자미,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핀치기, 비석치기, 사방치기, 구슬치기,
공기놀이, 딱지치기, 병정놀이, 소꿉놀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우리 집에 왜 왔니… 처럼 놀이도 많았고 또래도 많았다.
골목마다 아이들의 함성이 폭죽처럼 터졌고,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골목은 그렇게 매일 아이들의 생의 에너지로 들썩였다.
아이들은 그랬다.
그 놀이를 통해,
규칙과 협동과 단합을 배우고 승패를 인며 스스로 답을 찾고
사회적 기술들을 익혀 나갔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놀이들은 찾아보려야 볼 수가 없다.
골목에서도 노는 아이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아파트 놀이터에는 야구나 축구를 하지 말라는 주의문이 나붙어 있기도 하다.
아이들은 뭐 하고 놀까?
내가 아는 대개의 아이들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제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만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타인과의 유대나 배려, 규칙, 승패에 승복하는 일 같은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덕목들을 익힐 기회를 갖지 못한다.
학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부터 의사반을 만들어 지랄 용천을 떠니
아이들에게 놀 시간이 있기는 할까.
유아 때부터 놀이방으로,
유치원으로, 학원으로 시간 맞춰 다녀야 하는
아이들에게 노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금기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잘 놀아야 창의성도 그만큼 는다는데,
아이들이 노는 방법마저 잊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찌감치 재능을 찾아 수련하고
오감을 자극하는 놀이방에서 감각들을 훈련하면서 다들 영재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고립적이고 폐쇄적일 것이다.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아이들이 조직 생활을 유연하게 할 수 있을까.
아니, 삶이 행복할까.
마음을 죽이는 교육은 하지 말라
삶을 배우는 놀이를 시켜라
고독한 천재와 유쾌한 범인(凡人).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인지는 알 수 없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추구하는 바가 다르므로.
하지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남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놀이를 통해 협상과 협동 같은 자기 조절 기술들을 배우면 좋겠지만,
시대가 변했으니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최소한이나마 단체 생활과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규율과 배려 같은 기본적 덕목들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성숙한 시민 의식에서 비롯된 살 만한 나라, 좋지 않은가.
그 나라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삶을 영위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면
먼저 아이들이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가진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놀이를 통해 그런 교육이 일찌감치 이뤄졌으면 좋겠다.
놀이는 규칙과 법, 규율과 배려, 협상과 협동 등 인간 삶의 기본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놀이는 삶을 배우는 것이다
세상의 보배들아
한야 손수건이 빛나게
가슴 뛰는 삶을 살며(Live), 사랑하며(love), 배우며(learn), 웃으며(laugh),
그리고 베풀고(give), 생각하고(think), 일을 하며(try) 즐기며(enjoy)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오감을 열고, 진정으로 사랑하라.
‘사랑하면 보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