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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전 학교 다닐 때에도 공부를 지질이도 못했다.
지금에서야 국사/역사를 혼자서 다시 공부하려니 왜그리 아리송하게만 글 썼는지 모르겠다.
하나의 예다.
나는 '서원'과 '향교'의 차이를 몰라서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조선조 후기 말 흥선 이하응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려서 전국에 걸쳐 많은 서원을 없애고, 47개만 남겼다고 한다.
서기1868 ~ 1871년에 걸쳐서 서원을 철폐했다는데 도대체 몇 개의 서원을 부쉈다는 것인지.
600여 개, 1,000여 개, 1,700개?
* 증보 문헌비고 : 674곳,
조두록 : 701곳,
동국원우록 : 587곳
일제시대의 기록인 전고대방 : 690여 곳
심지어는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책 115쪽에는 1,721곳이라는 숫자도 나온다.
* 서원을 뜻하는 용어 : 서원, 사우, 영당, 이사, 서재, 정사, 세덕사, 효사 등등.
그 숫자가 제각각이다.
서원철폐령으로 몇 개를 부쉈다는 구체적인 숫자는 없고, 단지 남긴 숫자만 47개소 나온다.
조선조 26대 고종(둘째아들 명복). 그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이 '서원'을 때려부셔야 했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용어의 뜻부터 확인해야겠다.
유식한 자들이나 득세한 세상에서 무식하게 살아야 하는 나는 날마다 답답하다.
뉴스, 사이버 세상에서 남이 쓴 글을 읽으려면 왜그리 어려운 단어와 괴상한 말로 배배꼬는지를 모르겠다.
어렵게 말하고, 괴상하게 글 써야만이 더 유식해 보이는 것일까?
나는 '서원'과 '향교'의 뜻조차도 구별하지 못했으니...
서원 :
조선 중기 이후 학문연구와 선현제향(先賢祭享)을 위하여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운영기구.
우리나라의 경우는 주세붕은 1541년(중종 36)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이곳 출신의 유학자인 안향을 모시는 문성공묘(文成公廟)를 세워 배향해오다가 ,1543년에는 유생을 가르치려고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것이 그 효시이다.
향교 :
향교라는 이름과 형태로 설립된 것은 숭유억불과 유교문화이념을 정치이념으로 표방한 조선시대부터였다.
중앙의 성균관과 함께 지방 유교 교육의 산실로, 중앙 정부의 관심 아래 지방 수령에 의해 운영이 지원되었다.
충남 보령 산골마을 태생인 나.
사방이 야트막한 높이의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이다. 구부렁거리는 다랑이-논을 따라서, 산 하단 고라당을 따라서 내려가면 곧 노천리 사그내에 도착했고, 그 앞에는 웅천천 강물이 흘렀고, 조금만 더 내려가면 바닷물과 합쳐지는 갯벌과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나는 산골, 농천, 갯벌, 갯바다를 이해할 수 있는 곳에서 자랐다.
내가 살았던 시골에서는 서원, 향교, 절, 교회, 학교, 역 등의 건물을 보지 못했다.
산길을 넘어서 구장터, 새장터로 걸어나가야만이 그때서야 초등학교가 나왔고, 면소재지가 나왔고, 새장터의 기차역을 보았다.
읍내에는 서원, 향교... 이런 것은 전혀 없었다.
만나이 72살이나 먹은 내가 아직도 '서원, 향교' 등의 낱말을 잘 모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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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쓰면서 이따금 조선조 후기의 마지막 임금인 26대 고종, 27대 순종가 죽었을 때 치룬 장례식에 관한 사진을 보면... 정말로 한심스럽다. 그래 귀신 등 무슨 혼령이 있기는 하냐?
혼령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자.
조선조 6대 단종과 7대 세조의 기록을 보면....
아버지인 문종이 일찍 죽자 그 뒤를 이어서 12살에 왕위에 오른 단종. 어린 조카를 보살피는 게 아니라 오히려 15살인 조카의 왕위를 강탈하고는 이것도 모지라서 강원도 영월로 귀향살이 보냈다가는 부하를 시켜서 화살줄로 목을 옭아서 죽였다. 조카나이 17살. 그 시체를 운반해서 강물에 내다던졌다. 단종의 비(왕비)는 공노비로 전락시켜서 노비로 삼았고...
그런데도 조선왕조 세조실록편에는... 단종이 사약으로 사사했다고 기록했다.
'사사'가 무슨 뜻이냐? 어려운 한자말로 써야만 했니?
어려운 낱말을 쓰는 글은 대체로 가짜, 짝퉁, 거짓, 사기, 엉터리 등의 내용이 줄줄이 이어진다.
정사인 기록조차도 이렇게 허위로 두루뭉술하게 기록하냐?
만나이 72살인 나조차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단종(1457년 사망), 세조(1468년 사망)이 죽은 뒤에는 모두 귀신이 되었을 터.
귀신이 된 이들은 저승에서도 다시 만났을 터. 서로 어떤 사이가 되어서 치고받을까? 상상만해도 웃길 게다.
먼저 귀신이 된 순서로 서열순위를 다툴까? 먼저 귀신이 된 자가 기득권을 활용해서...
이 글을 쓰다가는 쉬려고 거실에 나갔다.
TV 바둑을 보던 아내가 짜증을 내며 거칠게 내뱉었다.
'일본놈한테는 이겨야지, 왜 거기에다가 돌을 놔?'
한국인 조훈현이 일본기사한테 밀리나 보다. 승패우열을 가리는 예상 막대기가 일본기사한테 많이도 기울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기사한테 진다는 뜻.
'일본놈'이라는 아내의 말에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자칫하다가는 친일파 패거리들한테 혼날 수도 있는 말투이다.
1945년 해방 후 일본인이 모두 일본으로 되돌아가지는 않았을 터. 아마도 수십만 명 이상이 한국인으로 신분세탁했을 터.
어쩌면 일본인, 친일파 등이 아마도 백만 명을 훨씬 넘을 터.
이승만이는 해방 후 친일을 청산하지 못했다.
* 예컨대 조선사람과 결혼한 일본인들이 어쩔 수 없이 조선을 선택해서 남았다면 성명 이름을 모두 바꿨을 터.
- 한국전쟁(1950년 6월)은.... 읍면의 사무소가 불타서.. 많은 호적서류가 불타서 유실되었고... 신분세탁하려면 불을 질렀을 터....
아내가 거침없이 내뱉는 말속에는 과거부터 왜놈들의 소행이 줄줄이 이어져 내려온다는 뜻일 터.
지금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배달민족인데도 지금은 38선 이북과 이남으로 땅이 반토막이 되어 서로 총뿌리를 겨누게 된 근본원인이 1910년 8월의 조선조 합방일 게다. 그 휴우증으로 남북한이 반토막으로 갈려졌고... 그게 70년을 넘어 80년 가까이 이어지는 오늘의 현실이다.
<일본놈한테는 이겨야지!>
나는 이 말을 또 살짝 비튼다.
'그럼 다른 나라한테는 져도 괜찮고, 오로지 일본만큼은 꼭 이겨야 하는 거여?'
아닐 게다. 다른 사람한테는 이겨야 하고, 일본사람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뜻일 게다.
삼국시대의 역사 가운데 백제편을 보면 우리나라인 백제가 일본한테 많은 문화와 문명을 전수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특히나 고려말의 왜구침입과 조선조 임진왜란, 특히나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조선조를 허약하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1910. 8. 10.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빼앗겼다.
세계 2차대전을 일으켰던 일본은 1945. 8. 6일과 9일에 원자폭탄 두 방을 맞고는 무조건 항복했고, 한국은 덕분에 일본식민지로부터 해방되었다. 아쉽게도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한 이승만이는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채, 오히려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장기집권을 했다가 1960년 4·19 학생혁명으로 내쫒겼다.
친일을 청산하지 못했고, 21세기가 진행 중인 지금은... 그나마 이런 문구조차도 잊혀져 간다.
우리나라 학교 역사교육은 반토막 교육인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는 두루뭉술하게 가리친다는 느낌이다.
감출 것은 감추고, 숨길 것은 숨기고.. 모르는 체하면서 은근슬쩍 넘어간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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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철폐령.
도대체 서원에서 무슨 짓을 했기에?
조선조는 전기 중기 후기로 시대를 나누면
전기에는 제법 국운이 강했다. 아쉽게도 1500년대 중기로 들어선 뒤에는 주자학/성리학을 받드는 자들이 득세를 했고, 나약한 조선으로 질질거렸고, 후기에는 숱한 반란/민란이 일어났고, 서양세력이 등장했다. 쪼다들인 왕족, 사대부 양반... 들은 동서남북 사색당파로 싸움질을 하면서 자신들의 욕심을 채웠다.
급기야는.... 서기 1863년에 등장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왜 서원 47곳을 남기고는 전국의 대다수는 때려서 부쉈을까? 왜 47곳은 남겨뒀을까? 이마저도 때려부수고는 신식문명 개화기사상을 받아들였더라면 왜놈들의 국가인 일본한테 나라를 거져 줬겠는가?
<쪼다 조선>의 마지막인 고종, 순종은 일본한테 그냥 넘겨주었을까? 왕이 스스로 자살이라도 했더라면 상황은 어느 정도껏은 변했을 게다.
조선이 망한 뒤인 1919년 고종의 장례식을 보아라.
1926년 순종의 장례식을 보아라.
얼마나 호화찬란하던가? 초상 치루는 게... 정말로 지랄이다. 그 거대한 장례절차와 행렬을 보면... 정말로 욕이 나온다.
일제한테 항거조차 해 보지 않고는 호식호식하다가 죽었고, 일본경찰과 헌병의 지원하에 장사를 거창하게 지냈으니...
아직도 '성은이 망극하나이다'인가?
서원에 들락거리렸던 자들.. 두루마기
도포자락을 휘날렸던 조선조 껍대기들이 모이는 곳. 서원...
끼리끼리나 어울러져서 잘도 퍼 마셨을 터. 배부르게 쳐먹었을 터.
문학카폐...
카페에서는 쉬운 말로, 구체적인 뜻으로 쓴 글이 올랐으면 싶다.
그래야 무식한 나도 글 읽고는 알 수가 있기에...
나중에 보탠다.
지친다. 날씨가 울울하니 화가 극도로 치민다.
코로나-19가 다소 잠잠해지고 있다고 해도 나는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꺼려한다.
왜 코로나가 잠잠해졌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간 뉴스에는 종교집단에 의한 코로나 발생이 엄청나다고 보도했는데도 요즘 며칠간 뉴스에는 잠잠하다.
다행히다.
어제는 전립선비대증약이 떨어졌기에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들러야 했다.
아랫도리를 벗은 채 등을 옆으로 모로 누운 채로 무릎을 모우고는 엉덩이를 내밀었다.
남자 의사가 손가락으로 똥구녁(점잖은 말로는 항문)을 쑤시고, 배꼽 주위에 무슨 액체를 바른 뒤에 사진을 찍고...
우씨다. 오줌줄기가 약해졌기에 오랫동안 약을 먹고 있다지만 이렇게 빤스까지 내려서 부끄러운 물건까지를 다 까내놓고는 진찰을 받으려면 화가 난다. 눈 딱 감고는...
일주일 뒤에 다시 병원에 오란다.
늙는다는 거... 그거 아름답게, 예쁘게, 착하게 하면 안 돼냐?
어째서 인간은 추하게 늙으며서, 더럽게 죽어야 하는지...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신'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귀싸대기를 마구 후려 갈기고 싶다.
예쁘게 태어났으면, 죽을 때도 아름답게 죽게끔 하지 못하냐?
대장내시경 검사를 격년마다 받는다. 2020년말까지 받아야 했는데도 나는 해를 넘기고도 아직껏 병원에 가지 않았다. 걸어서 가는 곳에 있는데도...
올해 코로나가 주춤하면 그때어샤 대장내시경, 위내경 검사를 받아야 할 터.
혹시... 일정기간마다 검사하는 시기를 놓쳤다고 해서 검사비용을 왕창 물리지는 않을까? 이런 것도 나한테는 '코로나'가 남긴 손해손실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귀신들을 있다고 꾸며서... 괴상한 말로, 요상한 차림새로, 거대한 건물 등이나 지어서 똑똑한 자한테나 적용되는 돈벌이 세상이다. 나한테는 전혀 아니다.
조상 귀신(혼령, 혼, 넋 등)이 있다면 나를 그냥 놔뒀겠느냐?
몇천 억, 아니 수십 조나 되는 세적인 부자로 만들었을 터.
중동 어떤 나라의 어떤 자는 재산이 3,000조 원이란다. 1억 원 짜리가 3,000만 개.
그동안 내 조상의 귀신들은 무엇했다냐? 후손인 내가 이렇게 빌빌거려야 하는가?
이참에 47개나 남겼다는 서원 가운데 한 곳이라도 찾아가고, 또 향교에 나가서 옛 성현들한테 절이라도 올려야 하나?
그 서당, 향교 속에서 사는 귀신들이 나한테 손가락질할 게다. 숨어서....
'쟤, 별 거 아녀. 혼자서 씨부렁거리는 거여. 조금 있으면 쟤 ... 그냥 돌아갈 겨. 그동안 우리 귀신들은 꼭꼭 숨어있자구... '
* 어제는 삼양그룹의 회장 김상하 별세 소식이 떴다.
조선조 후기, 일제기간 중 최고 부자인 김연수의 손자.
김연수는 인촌 김성수의 친동생.김연수는 큰아버지한테 양자로 들어갔고...
인촌 김성수는 고려대, 고려병원, 동아일보사장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전분 고창군 부안군의 거부들... 간척사업, 농장으로 조선조 최고의 부자가 된 그들...
이들의 가문은 굉장하다. 21세기인 지금도 정계, 관계, 학계 등...
이 시기에 서해안 산골마을에서 살던 내 증조부, 조부는 무엇을 했을까?
찌질이 가문이기에...
다행히도 남의 집 '노비'는 아니었고, 남의 집 '머슴'이 되어서 돈 벌러 나가지는 않았다.
* 사노비는 1894년 해방되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195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 농사 지을 땅뙈기가 전혀 없는 노비들은 그냥 쥔집에 남아서 농사를 지었다.
내 시골마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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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원 합니다
초안인데도 벌써 댓글 주셨군요.
고맙습니다.
더 보태고, 다듬어야 할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