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도시의 인구는 대략 26만 정도 된다.
1993년 가을, 1기 신도시가 막 입주를 시작했을 무렵 그때부터 이곳에서 살기 시작했으니 햇수로 32년 쭘 된다.
한 곳에서 오래 살았다.
정작 내 자녀들을 낳은 곳은 '고양시'였지만 강보에 쌓인 애기들을 데리고 와서 양육했으니 애들에겐 '산본'이 고향이었다.
내가 3040 시절엔 운동을 참 열심히 했었다.
마라톤, 울트라, 트레일런, 철인3종, 산행, 트레킹, 수영 등등 매번 뜨겁게 도전했고 매 순간을 감사하며 즐겼다.
운동하면서 만났던 '용띠'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도시에 살았던 동갑내기 운동 메이트들이 처음엔 예닐곱 명 정도 였지만 인간 사는 세상이 늘 그렇듯 '유유상종'이란 단어가 어디 갈 리 없었다.
'배려'와 '양보' 그리고 '헌신'에 특화된 세 명만이 최후까지 남았다.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자석처럼 서로를 강하게 견인했다.
지난 금요일 저녁엔 사랑하는 형제들과 관악산에서 '야등'을 했었고, 토요일엔 죽마고우들의 정모가 있었으며 일요일엔 칡을 캐러 '파주'에 다녀왔다.
예의 그 삼총사들이 다시 힘을 합쳤다.
이번에 파주로 행선지를 잡은 이유는, 삼총사 중에 두 명은 이미 부모님이 안 계셨고 한 친구만 양친이 계셨는데 그 어르신들이 파주에서 살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연로하신 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그곳에서 칡도 캘 요량으로 겸사겸사 파주로 향했다.
간만에 뵌 친구의 부모님은 진심으로 우릴 반갑게 맞아주셨다.
부모님의 눈엔 환갑인 아들들이 아직도 철부지 청년들 같아 보이시는가 보다.
커피를 마시며 잠간 동안 정담을 나누는 그 시간조차도 "무리하지 말아라", "힘든데 조금만 캐고 내려와라", "다치지 말아라", "만두국 끓여 놓을 테니 일찍 와서 함께 먹자", "그냥 편히 쉬다 가지 그러느냐" 등등 연방 당부에 당부를 이어가셨다.
부모님의 깊은 사랑과 관심의 발로임을 우리가 어찌 모르겠는가.
운동으로 다져진 우리 삼총사는 파주 본가에 있는 각종 연장들을 챙겨 산으로 갔다.
나무를 타고 올라간 굵은 칡순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많이 띄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업됐다.
"니들 오늘 다 죽었쓰"
우리는 파이팅을 외치며 각자의 포스트에서 열심히 삽질을 시작했다.
지난 10여 년 이상 매년 봄철에 '칡캐기 행사'를 진행했던 터라 서로 손발이 잘 맞았다.
오래 하다보니 삽질과 곡괭이질에 일가견이 생겼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어느 누구도 요령을 피우거나 자신의 편함을 구치 않았다는 점이었다.
매번 그랬다.
바로 이런 면면들로 인해 우정과 신뢰가 오래 갈 수 있었고, 헌신과 열정이 몸에 밴 사람들이라 한 방울이라도 땀을 더 흘렸으면 흘렸지 일행의 눈치를 살피며 수고를 아끼려 하는, 그런 얌체같은 님비형 인간은 없었다.
그래서 지난 25년 이상 우리들만의 향기로운 우정이 가능했던 거였다.
오후 4시까지 꼬박 6시간 동안 열과 성을 다했다.
허리가 쑤셨다.
어깨도 아팠고 온몸이 뻐근했다.
그래도 행복했고 감사했다.
2시간에 한번씩 막걸리에 간식을 곁들이며 잠간씩 숨을 돌리기도 했지만 세 명 모두가 진력을 다했다.
결과물도 풍성했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우리 동네로 돌아왔다.
헤어지기 전에 "부모님의 건강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칡즙을 많이 보내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진심이었다.
대단한 선물은 아닐지라도 우리들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것이었기에 꼭 부모님께 먼저 전달해 드리고 싶었다.
금정역 앞 전통시장 내에 건강원이 있었는데 그곳에 캐온 칡을 맡기고 30만원을 지불했다.
그리고 수요일 저녁에 칡즙 50팩 들이 15 박스를 차에 실었다.
수고한 세 명에게 각각 4박스씩을 분배했고 파주의 부모님께 3박스를 보내드렸다.
칡즙이 필요해 칡을 캐는 건 아니다.
매년 늦가을에 한 해도 빼먹지 않고 '김장'을 하듯이 매년 이른 봄엔 '칡캐기'를, 매년 가을엔 '송이채취'를 하자고 합의하여 우리의 연례행사로 진행하는 것 뿐이다.
운동도 같이하고, 부부동반으로 여행도 자주 하지만 남정네들만의 '원초적인 고행'과 '야생의 체험'이 우리에겐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한 삶의 테마이기에 그렇다.
그런 다양한 액티비티와 이벤트 안에 소통이 있고 공감대가 있으며 알록달록한 추억들이 진하게 녹아 흐르기 때문이었다.
건강원에 칡을 맡긴 뒤에 각자의 집으로 가서 샤워하고 환복했다.
그리고 우리의 아지트 맛집에서 부부동반으로 6명이 다시 모여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다를 떨었다.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동고동락했던 한 마을 세 부부 여섯 명.
이제는 친형제들 보다 더 소중한 친구요 더 신뢰 깊은 자매가 되었다.
6월달에 있을 '지리산 종주'도, 내년도에 떠날 5천 미터급 이상 '따꾸냥봉' 등반도 우리 삼총사에겐 잊지 못할 또 하나의 멋진 추억록이 될 것이다.
산속에서 긴 시간 동안의 삽질과 곡괭이질, 해보면 안다.
결코 쉽지 않다.
예닐곱 시간 가량 강도 높은 십질을 하고 나면 몸은 이미 파김치로 변하고 심신은 곤죽이 되어 너덜거리기 일쑤였다.
옷은 온통 흙투성이 범벅이고 입에선 계속 단내가 풀풀 거렸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참 미친 놈들의 미친 짓거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하"
그래도 즐겁고 감사한 걸 어쩌겠는가.
'NO PAIN, NO GAIN'이라고 했다.
진리다.
장시간 동안의 삽질에 땀을 많이 쏟았고 그 탓에 삭신이 쑤시고 결리지만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건강한 결과물인 자연산 칡즙과 칡주를 나눠주다 보면 "그래, 이게 사는 맛이지" 싶다.
나눔과 소통 속에 진정한 행복과 감사가 깃드는 법이니까 말이다.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조금씩 전달하고 나면 정작 내가 맛 볼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멋진 사내들과 어질고 예쁜 아내들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연로하신 파주의 부모님께도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 언제까지나 건강하시길 기도해 본다.
각 가정에 신의 은총과 가호가 충만하기를 소망하며.
갓 브레스 유.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