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R.A.T.M.
국내 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모 아이들 그룹(HOT..-_-;;)이 표절했다는 그룹이 대체 누구냐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작은 관심은 소름끼치도록 강렬한 이들의 음악을 접한 순간 단번에 열광적인 지지로 수직상승 해버렸었다. 이런 경험은 비단 나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계에 대한 분노'라는 뜻의 밴드명부터 심상치않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리더인 톰 모렐로(Tom Morrello)의 기기묘묘한 기타 연주와 부른다기보다 내뱉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잭 델라로차(Zack De La Rocha)의 샤우트 래핑, 뛰어난 쵸핑 테크닉을 구사하는 티미 C.(Timmy Commerford;매 앨범마다 다른 이름을 사용. 2집에서는 Tim Bob, 3집에서는 Y Tim K)의 베이스와 브래드 윌크(Brad Wilk)의 드럼 루핑이 빚어내는 율동적인 그루브감은 묵직한 충격파가 되어 가슴을 치고 들어온다. 하드코어 팬치고 그 통쾌한 분노의 사운드에 중독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이들이 92년에 발표한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은 하드코어계의 폭탄이었다. 너바나(Nirvana)가 시애틀 그런지 사운드로 얼터너티브의 폭발을 일으켰던 것처럼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하 RATM)은 강력한 카운터 펀치를 날리며 등장했다. 굳이 통계적으로 따져보자면 이 앨범은 세계적으로 3백만장 이상 팔렸나갔으며 빌보드 앨범차트에 무려 89주간이나 머물렀다. 국내에는 2년이나 지나서야 소개됐지만(그들의 과격한 노선을 생각한다면 이것도 상당히 빠른 발매가 아닐까 싶다) 그 충격파는 전혀 사그러들지 않아서 수많은 언더 밴드들이 유행처럼 그들의 곡을 카피 연주하곤 했었다. 이어진 2집 앨범 [Evil Empire](96) 또한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핫샷 데뷔하는 기염을 토했고 순식간에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9일 멤버들 자신의 입으로 '밴드 최고의 앨범'이라고 밝히고 있는 세 번째 앨범 [The Battle Of Los Angeles]가 발매되면서 역시나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덜컥 올라섰다. RATM은 이제 명실공히 콘(Korn), 데프톤즈(Deftones), 배드 릴리젼(Bad Religion) 등과 더불어 하드코어계의 최고 강자로 자리잡은 것이다.
결 성
RATM은 1991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록 업(Lock Up)의 멤버였던 톰 모렐로,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의 보컬리스트였던 잭 델라로차, 톰 모렐로와 함께 록 업에서 활동했으며 잠시 동안 펄 잼(Pearl Jam)의 드러머로 활약하기도 했던 브래드 윌크, 그리고 베이시스트 티미 C.가 모여 결성한 4인조 랩메틀(Rap-Metal) 밴드이다. 전투적인 속사의 랩핑을 구사하는 멕시코계 미국인 젝 델라로차는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해 인류학자인 어머니의 손에 자라났다. 10대 시절 그는 어머니의 직장 때문에 백인 거주지역인 캘리포니아의 서부도시로 이주하는데 학교에서 백인 친구들로부터 경멸적인 인종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이해한 그의 어머니는 델라로차에게 조언을 해주었고 상당히 조용한 학생으로 지내던 그는 이때부터 인종차별과 같은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펼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응어리진 분노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분출구는 음악이었다. 듣고 있자면 저절로 흥분을 고조시키는 그의 랩스타일은 직접 쓴 신랄한 독설의 가사를 담아 송곳처럼 날카롭게 사회의 치부를 들쑤셔대고 있는데 개인적인 체험이 바탕이 됐기에 더욱 설득력을 지닌 듯 하다.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배드 릴리전(Bad Religion)의 음악과 힙합을 즐겨듣던 그가 처음 몸담은 그룹은 오렌지 카운티 지역의 밴드 인사이드 아웃이다. 그러나 [No Spiritual Surrender](90)라는 데뷔앨범 1장만을 발표한 채 인사이드 아웃이 해체(98년 2집 [Dancing on a Floating Island]를 발표하며 활동재개에 나섰다)되어 버리자 그는 밴드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톰 모렐로와 의기투합해 새로운 밴드 RATM을 결성하게 된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라는 밴드명은 인사이드 아웃의 미발표곡 제목이기도 하다.
밴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톰 모렐로는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수재이지만 평탄한 직업을 구하는 대신 음악계에 투신한다. 그의 아버지는 케냐의 독립을 위해 마우마우 게릴라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명망높은 인물이며 어머니는 음악 검열제도에 대항하는 사회단체 '패어런츠 포 록 앤 랩(Parents For Rock & Rap)'의 설립자이다. 게다가 큰아버지는 케냐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해 그가 일찍이 사회, 정치적인 분야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또한 흑인이라는 급진적인 어려서부터 지미 페이지(Jimmy Page)같은 기타리스트를 꿈꾸었던 모렐로는 섹스 피스톨즈(Sex Pistlos)와 클래쉬(The Clash)같은 펑크 밴드들의 음악을 들으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로스 앤젤레스로 건너가 몇몇 밴드를 전전한다. 그러다가 록 업(Rock Up)이라는 밴드의 오디션에서 브래드 윌크를 만났고 록 업의 백 보컬로 활동하던 중 클럽에서 잭 델라로차의 살벌한 공연을 관람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1991년, 모렐로는 자신처럼 섹스 피스톨즈 등에 경도돼 있던 드러머 브래드 윌크를 끌어들이고 델라로차는 자신이 속해있던 인사이드 아웃의 열혈팬이었던 티미 C.를 포섭, 마침내 RATM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기계에 대한 분노
이들은 밴드를 결성한 후 자비를 들여 12트랙짜리 데모테이프를 제작한다. 이 테이프가 라이브 공연장에서 5천장 이상 팔려나가며 RATM은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유명 밴드의 라이브 공연에 서포팅으로 출연하기도 하고 롤라팔루자 페스티벌(Lollapalooza Festival) 무대에 올라 관중을 열광시키던 이들은 92년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데뷔 앨범 [Rage Against The Machine]을 발표한다.
펑크(Punk)와 메틀 리프에 힙합 리듬과 랩을 결합한 RATM의 공격적인 사운드는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음악에 담긴 주된 관심사는 도심 저소득층의 상실감과 인종주의, 검열주의, 정치선전, 아메리칸 인디언의 실상 등 여러 가지 사회 이슈들. 독재 정권에 대항해 분신자살하는 베트남 승려의 사진이 박힌 앨범 재킷을 비롯해 부클릿에 가사 표기가 되어있지 않을 만큼 위험천만한(!) 선동가 'Killing In The Name'이나 'Bullet In The Head', 'Take The Power Back' 같은 히트곡들은 밴드의 성격과 지향점을 명확하게 드러내준다. '기계'로 통칭되는 이들의 분노의 대상은 '운전자에게서 차를 뺏을 수 있는 경찰에서부터 사람들로 하여금 돌아오는 주말과 6팩짜리 맥주만을 기다리게 만드는 자본주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의 비판적인 생각을 가로막고 억압하는 제도적인 권위와 편견, 산업시스템 등을 아우르고 있다.
가장 급진적인 행동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프론트맨 잭 델라로차를 비롯해 RATM의 멤버들은 각종 사회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집 앨범의 수록곡 'Freedom'만 해도 FBI 요원 두명을 살해한 혐의로 20년째 복역중인 인디언 인권 운동가 레오너드 펠티어(Leonard Peltier)를 모티프로 삼은 것이다. 정치적인 모함이며 인종차별적인 편견이 개입됐다고 의심받고 있는 펠티어의 석방을 위해 이들은 기금마련 자선공연을 펼치는 등 음악의 사회정치적인 행동주의를 정열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앨범 발표 이후 RATM은 매진사례를 이룬 영국 투어에 이어 펄 잼(Pearl Jam), 바디 카운트(Body Count), 툴(Tool), 수어사이덜 텐던시스(Suicidel Tendencies)같이 사회참여적인 밴드들과 공연을 함께 한다. 93년 롤라팔루자 투어중 필라델피아 공연에서는 음악 검열제도에 대한 항의로 가슴에 P-M-R-C(Parents Music Resource Center;앨범 등급 검열 위원회)란 글자를 쓴 멤버들이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벌거벗은 채 서서 20여분간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며칠 후 이들은 팬들을 의한 무료공연을 열었다). 또 프랑스 세관에서는 니카라과 반군이 제작한 티셔츠를 반입하다 압수당하기도 하고 공공연하게 스페인의 혁명가 체 게바라에 대한 존경의 염을 밝히는 등 RATM의 극좌노선은 굽힘없이 계속됐다.
악의 제국
1집 앨범을 발표한 후 RATM은 각종 자선공연과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한때 톰 모렐로와 잭 델라로차 사이에 불화설이 불거져나오면서 밴드의 해체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2집 앨범 [Evil Empire](96)는 그런 소문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고 밴드에게 대중적인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발매하자마자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함은 물론 싱글 'Bulls On Parade'가 대대적인 히트를 기록했으며 정치색 짙은 'Vietnow'와 'Down Rodeo' 등은 전작보다 더욱 극렬한 분노의 사운드를 안겨주며 RATM의 투쟁이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증명했다. 'Bulls On Parade'는 그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하드록 퍼포먼스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Tire Me'가 베스트 메틀 퍼포먼스 부분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Evil Empire]는 타이틀에서 짐작되다시피 파시스트적인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과 경멸을 담고 있다. 공권력을 남발하고 인종차별이 횡행하며 무력으로 제3세계를 억합하는 미국은 '악의 제국'에 다름아니라고 노골적으로 규탄한 것이다. 1집 [Rage Against The Machine]에 이어 마르크스, 체 게바라, 말콤 엑스, 블랙 팬더(Black Panther;흑인무장단체) 등의 체제전복적인 사상을 흡수한 [Evil Empire]로 RATM은 시한폭탄처럼 위험한 존재로 부각되고 있었다.
[Evil Empire]를 발표한 이후에도 RATM은 레오너드 펠티어의 석방 운동과 티벳 독립을 지지하는 자선공연, 낙태에 대한 여성의 선택을 지지하는 'Rock For Choice'등 각종 시위와 사회운동 현장에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로스앤젤레스의 전투
역대의 많은 선배 그룹들이 그러했듯이 작곡과 작사를 분담하는 톰 모렐로와 잭 델라로차의 뛰어난 파트너쉽은 RATM의 선명한 정치색을 부각시키며 사회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환기시켜왔다. 요즘 이들의 최고 관심사는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블랙 팬더의 일원이자 저널리스트 머미아 아부 자말(Mumia Abu-Jamal)의 구명운동이다. 아부 자말은 81년에 필라델피아 경관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중인 인물. 레오너드 펠티어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은 아부 자말의 재판에 인종차별이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11월 9일 발매된 이들의 3집 앨범 [The Battle Of Los Angeles](99)의 첫 싱글로 커트된 'Guerrilla Radio'나 'Voice Of The Voiceless'는 바로 머미아 아부 자말 사건을 다룬 곡이다. RATM은 머미아 아부 자말을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 UN인권위원회에서 탄원 연설을 하는 등 사형 집행을 막는데 열성적으로 나서고 있다.
발매 첫 주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한 [The Battle Of Los Angeles]는 전작들에 비해 그루브감이 훨씬 진하게 파동치고 있는 작품이다. RATM의 강력한 파워는 여전하지만 순간순간 강약이 조절되면서 이 4인조가 한결 능수능란해졌음을 체감하게 하는 것이다. 마이너 키로 진행되며 멜로디는 서정적으로까지 느껴지는 'Mic Check'이나 정형성으로 굳어가던 델라로차의 랩스타일이 매너리즘을 탈피했음을 알려주는 'Maria', 'Born Of Broken Man', 'Calm Like A Bomb'같은 곡들이 바로 그런 지점들이다.
몇가지 이펙트 기구와 와미 페달(Whammy Pedal)을 이용한 기타 한 대로 신기할 만큼 다양한 전자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톰 모렐로는 90년대 가장 주목할만한 기타리스트라고 할 만하다. 그는 이번 3집 앨범에서 자신의 테크닉을 백퍼센트이상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도대체 신디사이저 소리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Calm Like A Bomb'에서의 플레이나 'Born As Ghosts'에서 들리는 드릴같은 소리와 뭉뚝한 기계음들, 키보드를 쓰지 않고도 이런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는 'Voice Of The Voiceless'등 모든 곡에서 뭐라 형언하기 힘든 음향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나온다. 'Ashes In The Fall'의 실험적인 우주사운드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연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1, 2집에서도 이미 충분히 감탄했었지만 이번 앨범에서야말로 톰 모렐로는 기타 사운드의 한계를 찾아 나서고 있는 듯하다(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RATM은 신디사이저, 키보드, 샘플링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여기에 소리가 흩어지는 것을 붙들어매주는 브래드 윌크의 둔중한 드럼 루핑과 티미 커머포드의 베이스 라인이 합쳐져 물결치는 그루브를 형성시키고 있다. '밴드 최고의 앨범'이라는 멤버들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시속 2백킬로로 질주하는 자동차같던 RATM은 새앨범을 제작하며 브레이크도 필요함을 깨달은 것 같다. 데뷔 앨범의 파괴력이 너무나 굉장해서 RATM의 밑천은 1집에서 다 드러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번 신보를 기점으로 이들은 더 이상 디딜 데가 없을 것 같던 도약의 계단을 밟았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현존하는 그룹들 중에 RATM은 가장 급진적이며 전복적인 밴드일 것이다. 음악을 무기로 자신들의 사상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RATM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반대급부적으로 RATM을 증오(?)하는 세력들도 만만치 않다. RATM이 공공연하게 적으로 규정한 자본주의자들과 공권력을 남발하는 제도권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 이들의 앨범에 'Parental Appearence'딱지를 붙이고 싶어 안달난 음반검열조직, 또 낙태를 반대하는 '록 포 라이프(Rock For Life)'의 지지자들, 기독교인들 등은 RATM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보이코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7백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며 남부럽지 않은 부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한 이들이 소외계층의 권익을 대변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메이저 레이블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RATM은 이런 비판적인 시각을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듯 하다. 사실 그들은 자비를 들여 데모테이프를 만들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신들의 행동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해 왔다. 머미아 아부 자말의 석방을 촉구하는 게릴라성 거리 공연을 비롯해 온갖 사회운동의 현장마다 팔을 걷어부치고 쫓아다니며 자신들의 명성과 특권을 십분 활용해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발매하는 것 역시 하나의 이용전략이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밴드 결성 9년째로 접어들어 중견 밴드가 된 RATM. 통합 미국과 문화적 제국주의, 정부의 억압에 항거하는 좌익의 외침을 펑크, 힙합, 쓰래쉬를 혼합한 특출한 사운드로 표현하고 있는 이들은 90년대에 가장 솔직하고 설득력있는 선언을 음악을 통해 표출하고 있다.
반역자들
반역자들 또는 종교적으로 배교자들을 지칭하는 '레니게이즈'[Renegades]의 강한 어감만큼이나 RATM이 처한 상황은 그리 좋지 않은 듯 보인다. 톰 모렐로(Tom Morello)와 함께 RATM의 사운드컬러를 지휘해온 잭 드 라 로차(Zack De La Rocha)의 탈퇴선언이 몰고 온 충격은 내년에 발매될 라이브앨범과 본작 [Renegades]에 대한 기대를 자아내긴 했지만 어쩐지 그가 없는 RATM은 그의 공백만큼이나 허전해 보이니 말이다.
Zack De La Rocha (Vocal)
Jan. 12, 1970 / Long Beach, CA
인류학 박사 어머니와 예술가이자 멕시코 농업자 보호 운동조직원 아버지 베토 덜 라 로차 사이에 태어났다. 잭이 1살때 부모님은 이혼했고 1983년에 아버지가 종교적 이상을 지나치게 쫒다가 신경쇠약에 걸리게 된다. 그는 일생동안 성경을 가지고 다녔다. 그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잭이 주말에 링컨 하이츠에 계신 아버지를 방문할 때면 잭은 문을 잠그고 커텐을 치고 방안에서 몇일동안 단식을 해야했다. 금요일에 식사를 하고 월요일에 그의 어머니에게 돌아갈때까지 식사를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Irvine에서 어머니와 계속 지내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서부의 백인 도시에 오게 된 잭은 상당한 문화충격을 받게 된다. 더이상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멕시코계 미국인 사회로부터 벗어나 멕시코계 미국인이 상대적으로 멸시받는(딸기나 팔고, 막노동을 주로 하는) 사회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잭은 "Hardstance"라는 그룹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았고 그 후 "INSIDE OUT"이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된다. 그리고 앨범 한 장만 발매한 후 해체한다. 그때가 바로 RAGE AGAINST THE MACHINE이 결성된 때이다. 그 이후로도 잭은 대학에서 그룹을 결성하였고 멕시코 민주화 운동권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공개발표도 해왔고 현재도 L.A에서 활동중이다.
Tom Morello (Guitar)
May 30, 1964 / New York City
Parents for Rock and Rap 검열반대조직 설립자인 어머니와 케냐 해방 게릴라였던 아버지 밑에서태어난 톰은 유색의 피부를 가지고 다인종사회를 거니는 순간부터 정치적 교육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톰은 일리노이주 Libertyville 시카고 북부 조그만 교외에서 자랐다. 그가 유치원에 다닐때 어린 백인소녀가 그에게 계속 '깜둥이'라고 놀리자 그 의미를 몰라 어머니께 물어봤다.어머니는 그에게 말콤 X에 대한 기록들을 보여주고 그와 이야기를 하였다. 그 다음날 유치원에서그 소녀가 그에게 똑같이 놀리자 그가 대답해주었다 통쾌하게.."입닥쳐 백인녀석아"하면서 면상에주먹을 한방 먹였다. Libertyville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사는 동안 그는 드라마 서클에서 연극을하였고 막시즘 정치학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의 첫번째 기타를 경험하게 된 것은 그가 KISS의 음악을 들었을 때였고 그는 직접 연주해보고 싶었다. 그는 5달러를 주고 누군가로부터 배우기 시작했지만 그가 배운 것은 튜닝하는 법이었고 그 다음주에 5달러를 주고 겨우 C코드를 배울 수 있었다.그게 그에겐 전부였고 그는 그 후로 몇년동안 기타를 만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Sex Pistols 음악을 들었을 때 그는 그의 감정과 정치적인 생각들을 기타를 통해서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기타 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 들어갔고, 그곳에서사회학을 전공했다. 이때부터 그는 기타 연습에 몰입하였고 하루에 2-4시간씩 기타연습을 하였다.그의 하바드 친구들은 모두 졸업하여 박사나 변호사가 되었지만, 락밴드를 결성하려면 L.A로 가라는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곳에 갔다. 그는 하버드 동창 전화주소록 이외엔 아무 것도, 친구도 없이 락 밴드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몇몇 밴드에 몸담아봤지만 성공적이지 못했고, 돈을 벌기 위해기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마침내 그는 캘리포니아 상원 비서로 취직하게 되었으나, 곧 해고되었다. 한 여자가 '깜둥이'가 주위에 자주 들어온다고 불평하자, 그는 '문제는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문제는 그녀가 인종차별주의자였던 것이었다. 그후로 TOOL의 기타리스트와 "Lockup"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였는데 이 그룹에서 톰은 백보컬을 맡았었다. 그 후로 그는 RATM을 결성하였다.
Timmy C. (B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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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아버지는 우주비행/항공기술자이고 어머니는 수학자이다. 어머닌 팀이 20살때 뇌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그녀가 암에 걸린 후 이혼하여 재혼하였다. 그 후 팀의 가족은 문제가 많았고, 팀은 INSIDE OUT(잭의 첫밴드)를 듣고, 재즈도 좋아하였다. 현재 그는 일렉트릭 베이스보다는 upright bass를 치고있다. 그는 그의 감정을 시와 글, 그림에 표현하며, 사람들을 취급하는 방식이맘에 안 들어 경찰들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는 경찰들에게 하고 싶은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그는그들이 너무 무섭다고 말한다. 곧 그의 작품들을 발표할 것이다. 팀은 매 앨범마다 이름을 바꿀 계획이라고한다(1집 Timmy C, 2집 Tim Bob, 3집 Y Tim K)
Brad Wilk (Drums)
Sep. 5, 1968 / Portland, Oregon
브래드는 1968년에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브래드는 밴드 멤버중 음악적으로 가장 폭넓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정치보다는 음악적으로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1994년 롤라팔루자시즌중 돌아가셨는데 그것은 브래드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아버지가 돈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정말 중요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돈에 대하여 많은 가치를 두지 않으려 한다.그는 어렸을때부터 아버지가 직장을 자주 바꾸는 바람에 많이 돌아다녔다. 그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중시하는 밴드 멤버중에 한명이다. "난 때론 병신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그는 말했다.
Bombtrack - Rage Against The Machine
It's just another bombtrack
And suckas be thinkin' that they can fade this
But I'm gonna drop it at a higher level
'Cause I'm inclined to stoop down
Hand out some beat-downs
Cold runna train on punk ho's that
Think they run the game
But I learned to burn that bridge and delete
Those who compete at a level that's obsolete
Instead I warm my hands upon the flames of the flag
As I recall our downfall
And the business that burned us all
See through the news and the views that twist reality
Enough
I call the bluff
Manifest destiny
Landlords and power whores
On my people they took turns
Dispute the suits I ignite
And then watch 'em burn
With the thoughts from a militant mind
Hardline, hardline after hardline
Landlords and power whores
On my people they took turns
Dispute the suits I ignite
And then watch 'em burn
Burn, burn, yes ya gonna burn
Burn, burn, yes ya gonna burn
Burn, burn, yes ya gonna burn
Burn, burn, yes ya gonna burn
It goes a-one, two, three
Another funky radical bombtrack
Started as a sketch in my notebook
And now dope hooks make punks take another look
My thoughts ya hear and ya begin to fear
That ya card will get pulled if ya interfere
With the thoughts from a militant mind
Hardline, hardline after hardline
Landlords and power whores
On my people they took turns
Dispute the suits I ignite
And then watch 'em bu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