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한 가지 법
바리사이들은 엄격하고 열정적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 열정이 지나쳐 때로는 기이하게 보일 정도다. 그런 예중 하나가 오늘 복음에 나온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마태 23,24) 마시는 물에 혹시 보이지 않는 부정한 벌레가 들어 있을까 염려해서 채로 걸러 마셨다는 거다. 그렇게 율법을 엄격하게 지킨 만큼 하느님을 사랑하게 됐으면 좋았을 텐데, 예수님이 한탄하시는 걸 보면 기대와는 달랐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는 될수록 법과 규칙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법과 규칙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진다. 복잡한 전례가 가장 좋은 예다. 미사 성찬례는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통째로 우리 죄인들에게 내어주시는 은혜롭고 감사하는 시간인데, 여러 규칙을 지키기 위해 신경 쓰느라고 그 큰 하느님 사랑을 잊어버린다. 거기에 실수한 이들을 나무라고 잘 못하는 이들을 비난한다. 이런 우리를 보시고 하느님은 참 마음 아파하실 거다. 미사에는 빵과 포도주 그리고 사제와 물 조금만 있으면 된다. 요즘 돈 천 원으로 뭐 사기도 어려운데, 하느님은 20원짜리 빵에 당신을 담아 주신다. 오늘도 나를 위해서 당신 목숨을 바치시는데, 그 거룩하고 지극히 고마운 자리에서 마음으로 남 잘못을 지적이나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규칙을 철저하고 엄격하게 지키면 사랑이 커질까? 내 경험으로는 그 반대다. 그럴수록 심판과 판단이 더 커진다. 나는 지키는데 너는 왜 안 지키는 거야. 그런 심판은 교만을 낳는다. 다 지키고 다 해냈다고 자만하느니 잘 지키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주님께 용서를 청하는 게 백배 더 낫다. 채로 거른 물은 과연 깨끗할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어떨까? 정말이지 그릇만 닦을 게 아니라 그릇을 닦는 마음을 닦고 비워내야 한다. 하느님이 나와 너 우리 죄인을 위해서 외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음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 같은 작은 풀까지 십일조 규칙을 적용하는 건 규칙을 지키기 위한 규칙을 만들어냈던 거다. 그것은 하느님 법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들은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했기 때문이다.(마태 23,23) 우리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셨던 거처럼 이웃을 사랑하려고 애쓴다. 이웃사랑이 곧 하느님 사랑은 아니지만, 이웃을 사랑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기대하는 건지 모른다. 첫째가 터울이 크지 않은 동생을 돌보며 엄마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거처럼 말이다. 복잡한 전례 규칙을 잘 지키는 거보다 거기 그 시간에 당신을 내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고 그분의 사랑을 봐야 한다. 오십 보, 백 보,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이런 우리를 친구요 형제자매로 부르시는 주님의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 저희에게 필요한 법은 하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사랑에는 품이 많이 듭니다. 나누고 도와주고 내어주고 희생하려고 노력합니다. 거기에 인내와 이해하려는 노력은 기본입니다.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 계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총을 전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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