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8일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축일 (마태 2,13-18)
♡하느님의 뜻에 충실한 사람♡
우리는 살아가면서 생각하지 못한 많은 일을 접하게 됩니다. 기쁜 일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일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정말 분하고 원통하기 짝이 없는 일도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 마음을 흔들어 괴로워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날이 지나면 괜찮을까 해도 어느 날 갑자기 떠올라 속이 쓰리고 아픕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원망해 봐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위로도 소용이 없습니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소리. 라헬이 자식을 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마태2,18).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헤로데 임금은 이스라엘의 두 살 이하의 아기를 죽이도록 명령하였습니다(마태2,16). 그것은 자기의 권력을 넘보는 싹을 잘라버리겠다고 한 행위입니다. 이런 일이 이미 이스라엘이 한창 피어날 때 이집트에서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힘과 생명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이 계집아이를 낳으면 살려두되 사내아이를 낳으면 모두 강물에 집어넣어라”(탈출1,22). 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아들들을 죽이도록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파라오의 학살에서 구출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도 헤로데의 잔악한 행위에서 살아 남으셔서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온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십니다.
사람들은 파라오의 행동을 욕합니다. 헤로데임금의 악한 행동에 분노합니다.
헤로데 왕이 베들레헴과 그 근방에 사는 아기들을 무자비하게 죽입니다. 왕의 위치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요?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께서 장차 유다의 왕이 되시리라는 예언을 듣고는 제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했기에, 이런 엄청난 악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자기 왕위를 유지하려고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입니다.
과연 행복했을까요? 정적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잠시의 평화와 기쁨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안에서 최악의 왕으로 기록될 뿐입니다. 당연히 하느님께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헤로데 왕처럼 세상의 기준만을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늘 새로움으로 지금을 기쁘게 살 수 있는 주님의 기준인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큰 행복을 차지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의 기준안에만 살면 새로움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순간의 만족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준안에서 사는 사람은 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순간의 만족을 벗어나 계속된 만족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