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꽃향기 속에서(551) – 남한산성 노루귀
노루귀
봄날 밤
꿈꾸고 피었는가
다시 온 꽃
(春の夜の夢見て笑や歸花)
―― 지요니(千代尼)
2026년 3월 25일(수) 맑음, 미세먼지 나쁨
일주일 전에 남한산성을 갔을 때는 황량한 동토였다.
그런데 오늘 오후 늦게 가서 보니 노루귀가 어느새 자라 꽃을 활짝 피웠다.
남한산성 동문 계곡 북사면 자락에 자생하는 노루귀는 불과 몇 개체가 되지 않지만
모두 귀품이다.
꽃에 대한 하이쿠 몇 수를 함께 올린다.
하이쿠 해석과 해설은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이 시를
읽다』(연금술사, 2014))에서 인용했다.
달그림자조차
잠시 멈추었다
꽃의 새벽
(月影もたたずむや花のぁさぼらけ)
―― 지요니(千代尼)
봄날 새벽에는 달그림자가 길어져서 마치 꽃을 보려고 하늘에서 멈춘 것처럼 보인다.
새벽의 꽃 앞에 달만 멈춘 것이 아니라 시인도 멈추었다.
종소리 멎고
꽃향기 울려 퍼지는
저녁이어라
(鐘消えて花の香は撞く夕哉)
―― 바쇼(芭蕉)
바쇼는 종소리에서 꽃향기를 듣는다. 문향(聞香), 향기를 ‘듣는’ 것이다.
꽃은 피는데
생각나는 사람들
모두 멀어라
(花笑いて思ひ出す人皆遠し)
―― 시키(子規)
꽃 지고 나서
다시 평화로워진
사람의 마음
(花ちりて靜かになりぬ人心)
―― 고우니(古友尼)
그대 돌아오지도 못할
어느 곳으로
꽃을 보러 갔는가
(君歸らず何處の花を見にいたか)
―― 소세키(漱石)
자살한 동료를 애도하며 쓴 이 하이쿠는 그 후 동일본 대지진을 비롯해 수많은 추도식에서
낭송되고 인용되어 왔다
(둥근털제비꽃)
얼마 동안은
꽃에 달이 걸린
밤이겠구나
(しばらくは花の上なる月夜かな)
―― 바쇼(芭蕉)
만개한 꽃, 그 위에 달이 걸려 있다. 단순한 꽃구경이 아니라 보름달이 상징하는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 담겨 있다. 달과 꽃은 수시로 위치를 바꾼다. 바쇼는 『오이노코부미』에 썼다.
“보는 것 모두 꽃 아닌 것이 없으며, 생각하는 것 모두 달 아닌 것 없다. 그 꽃을 보지 못한
사람은 야만인과 다름없다. 또한 그것을 보는 마음이 꽃이 아니라면 새나 짐승과 다를 바
없다.”
‘달과 꽃의 시인’으로 불린 사이교는 썼다.
꽃에 물든 마음만 남았어라
전부 버렸다고 생각한 이 몸속에
첫댓글 노루귀의 한창철이 지나가고 있네요. 슬슬 바람난 여인네를 찾아다녀야겠습니다.ㅎㅎ
올려주신 하이쿠 느낌이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람난 여인네들 찾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