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에서 나온 쇼펜하우어의 <도덕의 기초에 관하여>라는 책은 무척 얇고, 작은 책이다. 쪽수로는 250쪽, 책 크기는 32절지 크기이다. 대충 A4반 정도이다. 여기에 비교하면 상실의 시대는 440쪽에 책 크기도 16절지, 즉 A4보다 조금 작은 크기이다. 내가 상실의 시대를 읽는데 걸린 시간은 약 12시간 정도, 여기에 비해 쇼펜하우어를 읽기 위해서는 약 일주일의 시간이 걸린다. 물론 문자만 소리내어 읽어간다면 그 양상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이런 이유는 하루키의 소설은 매우 훌륭히 이미지화 돼 있기 때문에, 그 이미지와 부합하는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그려지기만 하면 매우 술술 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서물은 이미지가 아닌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문장과 문장간의 메시지를 잡아내야 한다. 여기에서 독서의 어려움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서물이 나에게 주는 기쁨은 상실의 시대와 비교해도 만만치 않다. 칸트에 대한 무차별 공격, 아 정말 통쾌하다. 언제 읽어도 나는 쇼펜하우어를 사랑하며, 존경하고, 찬양하며 동시에 숭배한다. 이 책 35쪽에서 그는 "칸트는 <실천이성 비판>을 썼을 대, 늦었지만 받아 마땅한 명성을 마침내 얻었다. 그래서 그는 독자들의 무한한 관심을 확신했고, 늙은이의 수다스러움에 많은 활동영역을 호용했다"고 적고 있다. 33년 묵은 체증이라도 내려가는 느낌이다.
물론 쇼펜하우어의 생각 역시 완전하진 않다. 나는 그의 생각보다는 그가 공부하는 방법, 자세에 대해 관심이 매우 많다. 그는 염세주의자로 설명된다. 왜 하고 많은 것 중에 염세주의자였을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나는 그가 그 스스로 가진 생각에 대해서 불신했기 때문에 그를 염세주의자로 본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닌, 자신에 대한 불신.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는 무엇때문일까? 그것은 더 믿을만한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였다. 확고한 그 무엇. 확실한 것, 완전한 것, 완벽한 것에 대해 그는 끊임없는 애정을 던진다.
이런 그의 생각과 방법은 니체를 거쳐 비트겐슈타인에게 까지 이어진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에 의해 "분석"이라는 방법에 대한 철퇴가 가해지기는 하지만, 그들 3대의 업적은 언어와 논리의 극한까지 갔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물론 그들은 그 이후의 방법에 대해서는 무지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어적이지 않으며, 동시에 그것을 언어로써 말하기 위해서는 신비주의나 불가지론, 또는 신학으로의 회귀를 뜻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말할 수 없다. 어떤 재난으로, 혹은 어떤 불운으로 단순하고 명백한 진리보다 속임수가 더 쉽게 믿음을 얻는지를"
이 카스티의 말은 오늘날에도 역시나 그리고 대단히 유효하다. 쇼펜하우어도 이러한 물음을 통해 도덕 진리와 행복간의 함수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죽는날까지 노력했으리라.
나는 불교도이고, 쇼펜하우어 역시 이 글을 썼을 때는 불교, 브라만교, 산스크리트교를 알고 있었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나와는 이미 약 150년의 거리를 두고 있지만 왠지 얘기가 통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물론 나는 외국어를 잘 못하지만.....
이번 주말 나는 쑥뜯어 개떡을 쪄서, 쑥개떡 먹으며 쇼펜하우어를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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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요. 씹을 것도 많거니와, 씹을 수록 맛이 난다고 하는 것이 적당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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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전심이었나 봅니다. ㅋㅋ 이런 어려운 책을 읽으면 확실해지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번째, 아는 만큼 보인다. 두번째, 뵈는게 없다. 세번째, 무식이 넘친다. 네번째 역시나 찰랑댄다. ㅋㅋㅋ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입문을 다 읽은 날, 혼자서 책걸이를 했답니다. 소주 두병 놓고.... 4년 넘게 열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던 놈이었죠.... 우후후
형님, 쑥개떡 먹고 나면 다음 차례로 니체의 책을 다뤄 주세요. 기대하겠습니다.
니체... 아~ 이 끔찍한 삶이여, 언제라도 다시!.... 그에 대해 뭘 써야 할지.. 흐흐
쑥개떡 먹고싶다~~염불보다 잿밥^^*하루하루 레시피를 더해가는 무아님표 건강식의 재발견!!ㅋㅋ
ㅋㅋ 촌에서 이런 재미도 못보면 무슨 재미로 살겠어요. 검은콩 쿡쿡 박아 찐 쑥개떡.. 맛도 맛이거니와 향기가~ 흐흐
장난아니다..^^*검은콩에서 홀라당 넘어갑니다~~
저는 그분의 인생론을 읽었는데, 구시대적인 ( 물론 구시대였지만) 남녀 발언들이 좀 있어서 아주 짜증이 났었는데,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