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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사무엘
사무엘 선지는
이스라엘 역사의 과도기에 활약하였던 인물입니다.
무정부상태였던 사사시대 말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혼란의 극에 달하였던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 한나가 아들 없음이 서러워
성전으로 가서 눈물로 기도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녀의 눈물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주신 아들입니다.
하나님께 눈물로 응답 받은 아들이라 하여
사무엘이란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 모두가 사무엘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눈물로 기도드리면
응답받는 길이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일에 바쳐져
성전에서 수종드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그가 자라던 시절의 모습을
다음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사무엘상 2장 26절)
〈아이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사무엘상 2장 21절)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서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더라〉
(사무엘상 3장 19절)
사무엘서에는 4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엘리 대제사장, 사무엘, 사울 왕, 그리고 다윗입니다.
이들 4명 중 둘은 실패한 인생으로 끝나고
둘은 성공으로 나갔습니다.
실패한 둘은 엘리 대제사장과 사울 왕입니다.
성공한 두 사람은 사무엘 선지와 다윗입니다.
우리가 사무엘서를 읽으면서
엘리와 사울은 왜 실패하였고
사무엘과 다윗은 왜 성공하였는지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사무엘서가 시작되면서
2 가정의 이야기가 번갈아 등장합니다.
엘리 대제사장의 가정과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의 가정입니다.
사무엘서가 시작되는 자리에서는
엘리의 가정은 당대 최고의 가정이었고
엘가의 가정은 벽촌에 있는 빈곤한 농가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서가 진행되어 가면서
두 가문의 처지가 역전되어 갑니다.
그 이유인즉 자녀 교육 탓이었습니다.
엘리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란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전통에서는
제사장직은 아들에게 승계되는 전통이었습니다.
아버지 엘리가 대제사장이었기에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당연히 제사장직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들 두 아들들이 타락한 아들들이었습니다.
제사장직에 있으면서 비행을 저지르고
심지어는 성전에서 제사를 돕는 여인들에게
나쁜 짓을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노하셨습니다.
그런데 엘가나 한나 부부는 달랐습니다.
사무엘서가 시작할 때는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0여키로 떨어진 시골 마을에서
옹색하게 살아가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부부에게는 훌륭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그의 어머니 한나가
아들 없음이 한스러워 성전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드려 그 응답으로 얻은 아들입니다.
한나는 아들 주시기를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하면서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만일 아들을 허락하시면 평생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바치겠노라 서원하였습니다.
결국 아들을 낳게 되자
하나님께 호소하여 얻은 아들이란 뜻을 지닌
〈사무엘〉이라 지었습니다.
그 사무엘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인 전환기에
민족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엘리 대제사장의 아들들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길을 걸었습니다.
어제 글에서 사무엘이 어린 시절부터
국민들의 관심과 칭찬을 듣는 인물로 자랐습니다.
그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인물이었습니다.
나는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일꾼들 중에서
사무엘과 여호수아를 가장 좋아합니다.
특히 나도 성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사무엘처럼 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사무엘을 닮았으면 하는 마음에는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는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
한 시대를 이끌면서 어떤 이권이나 청탁이나
뇌물에 관여함이 없이 Mr. Clean으로 살았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절실히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순수하게 소박하게 사는 삶이
행복한 삶에의 필수 조건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무엘상 12장에 사무엘의 은퇴 설교가 나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말합니다.
〈내 평생에 경우를 벗어나 처신한 적이 있느냐?
뇌물에 관여한 적이 있느냐?
권한을 남용한 적이 있느냐?
그런 적이 있으면 말해 주라.
내가 보상하고 은퇴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 있었던 회중들이 답하였습니다.
〈당신은 그런 적이 전연 없습니다.〉고 답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그가 역사의 전환기에 지도자로 살아가면서
최고로 명예로운 삶을 살았음을 드러내 줍니다.
깨끗한 삶과 순수함을 지켜 나가는 삶이
세월이 갈수록 자신을 빛나게 하여 줍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사무엘을 본받고 싶습니다.
둘째는 그가 평생토록 영적 지도자로서의
분수를 지켜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점입니다.
그가 활약하였던 시대인 사사시대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혼란에 지친 백성들이 사무엘을 찾아와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위치와 사명이 영적 지도자이지
정치 지도자가 아님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왕이 되는 대신에
왕을 세웠습니다.
처음엔 사울을 왕으로 세웠으나
사울이 시작할 때와는 달리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권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모습을 대하고는
다시 다윗을 미래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왕이 되지 아니하고
왕을 세우는 킹메이커가 되었습니다.
나는 사무엘의 이런 처신을 높이 평가합니다.
자신이 정치 지도자인 왕이 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자신은 영적 지도자의 자리를 지키고 왕을 세워
자신의 분수를 지킨 점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무엘 선지를 닮았으면 하는
3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보는 관점으로는 사무엘의 일생 중에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 생각합니다.
사무엘서 12장에는 그가 은퇴하여
고향인 라마로 내려가면서 말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평생을 깨끗하게 살았던 자신의 삶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후 고향인 라마로 내려간 그는
여느 노인들처럼 한가로운 노후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라마-나욧이란 이름의 공동체를 세우고는
뜻 있는 젊은이들을 모아 낮에는 함께 노동하고
밤에는 함께 기도드리며 국가와 백성들의 미래를
하나님께 기도로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욧이란 말은 공동체 혹은 기숙사 등을 뜻하는 말입니다.
사무엘이 고향에 세웠기에 〈라마-나욧〉이라 불렀습니다.
사무엘이 은퇴한 노후에 세운 이 공동체가
이스라엘 역사에 위대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 운동의 발상지가 되었고
메시아적 정치를 꿈꾸는 못자리판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은퇴 후 고향 땅 라마에 세운 공동체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뜻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낮에는 노동으로 자립 경제를 이루고
밤에는 함께 기도드리며
겨레와 백성들이 나갈 길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 라마-나욧 공동체에 다윗이 찾아왔습니다.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쫓기다 못한 다윗이
사무엘 문하로 피신하여 왔습니다.
사울 왕에게 쫒기는 사정을 들은 사무엘은
다윗을 라마-나욧 공동체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다윗이 라마-나욧에 살고 있다는 정보가
즉시 사울 왕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사무엘의 국민적 존경이
워낙 깊은지라 나욧 안으로 들어가
다윗을 체포하지 못한 채로
밖에서 지키고만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워낙 노쇠한지라
사무엘이 죽기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사무엘이 죽자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알기 전 다윗은 도망하였습니다.
도망간 그는 우여곡절을 거쳐
아둘람 굴로 찾아가 숨었습니다.
그곳이 이스라엘의
미래의 역사를 만드는 곳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헤치려는 사울을 피하여
라마 나욧의 사무엘에게로 피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을 찾아온 다윗을
공동체인 라마-나욧에 함께 살게 하였습니다.
아마 그곳에서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지도자가 될 기본 자질을 교육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에 별과 같이 빛나는 왕인
다윗 왕은 사무엘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죽자 사울 왕의 사람들이 눈치 채기 전
다윗은 라마-나욧을 떠나 아둘람 굴로 피신하였습니다.
아둘람 굴은 국경 지방에 위치한 불모지로
먹을 양식은커녕 마실 물조차 귀한
열악한 조건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곳에 숨어 있다는 소식이
입에서 입으로 알려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무엘상 22장에서는 이르기를
400명이나 모여들었다 하였습니다.
그들은 빚지고 쫓기는 자, 원통한 일 당한 자,
재능은 있으나 쓰임 받을 길이 없는 자,
그리고 자신이 품은 비전을
펼칠 길을 찾는 자들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그들을 영적으로나 비전으로나 뜻으로
하나로 뭉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무너져 가는
다윗 왕국을 일으키는 꿈을 길러 나갔습니다.
아둘람 굴에 모인 400명으로
다윗은 그들을 중심 세력으로
삼아 다윗 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사울 왕에게 쫓긴 다윗이 아둘람 굴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자
각지에서 뜻은 있으되 펼칠 길이 없는 사람들과
빚에 쪼들려 도망 다니는 자들과
억울한 일 당한 자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 수가 4백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다윗은 그들을 라마-나욧에서
사무엘로부터 배운 바대로 실천하였습니다.
그래서 기껏해야 의적 무리로 머물 사람들이
다윗의 비전과 인격과 지도력에 감동되어
뜻으로 뭉치는 사명 집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로부터 다윗 왕국이 탄생케 되었습니다.
훗날에 다윗 왕국의 대제사장, 군대장관을 위시하여
각급 참모들이 아둘람 굴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익이나 이권으로 뭉친 이익 집단이 아니라
뜻으로 뭉치는 이념 집단이 되고 사명 집단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루하루를 어떤 정신으로 살았는지에 대하여
시편 57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사무엘상 22장 1절과 2절)
사울 왕에게 쫓기던 다윗이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기에
온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사무엘을 찾아갔습니다.
그 시절의 사무엘은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
현직에서 은퇴를 한 후
고향인 라마로 낙향하여 머물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를 만나 사울 왕이 자기를 제거하려고
갖은 방법을 다 사용하는 사실을 낱낱이 일러 주자
사무엘은 그를 공동체인 라마-나욧에 머물며
신변보호도 받고 사무엘로부터 지도 받도록 조처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고 받은 사울 왕은
당장 다윗을 잡아들이고 싶었으나
사무엘의 영적 권위와 국민적 추앙이 대단한지라
어쩌지를 못하고 노쇠한 사무엘이 죽을 날을 기다리며
라마-나욧 주변에 군대를 파견하여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사무엘이 숨을 거두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정탐꾼들이 알기 전에
다윗은 도망하였습니다.
우여곡절을 거쳐 다윗이 숨은 곳이 아둘람 굴입니다.
그곳은 국경 지방의 척박한 땅이어서
먹을 양식은커녕 마실 물조차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땅굴에 숨어 숨을 죽이고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위
에 인용한 사무엘상 22장 1절과 2절의 말씀은
다윗에게로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 숨어 있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가자 사람들이 모여 들었는데
급기야는 4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다윗은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동고동락하며
함께 기도드리고 함께 고난을 이어 나가는 동지들이 되었습니다.
그때 모인 400명의 동지들이
다윗 왕국을 세우는 기둥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최악의 삶의 조건을 함께 극복하여 나가며
생사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전사들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그들로 그렇게 뭉칠 수 있게 한 것은
〈라마-나욧〉에서 사무엘로부터 전수한 영적 지도력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윗 왕이 위대한 왕인 줄은 알아도
다윗을 길러 낸 사무엘은 쉽사리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윗 왕이 그렇게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라마-나욧〉에서 사무엘로부터 전수 받은
영적 지도력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은 사무엘 선지의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다윗과 그의 동지 400명이
아둘람 굴이란 최악의 조건에서
위대한 꿈을 꾸고 비전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위대한 꿈을 공유(共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둘람 굴에서 어떤 꿈을 꾸고
어떤 비전을 함께 나누었는지에 대하여
시편 57편에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의 박해로 숨어 다니느라
온갖 고생을 다하던 다윗은 사무엘 선지를 찾았습니다.
아마 사무엘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워낙 두드러진지라 사무엘 문하에서
몸을 피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던 듯합니다.
다윗을 맞은 사무엘 선지는 앞뒤 사정을 다 들은 후에
다윗을 보호하기로 작정하고
라마-나욧 공동체에 다윗을 맞아들였습니다.
사무엘이 늙은 나이에 고향으로 낙향한 후에
여느 노인들처럼 자신의 편안함을 좇지 아니하고
공동체를 세워 뜻 있는 젊은이들을 모아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낮에는 노동으로 자립 경제를 이루고
밤에는 합심 기도하고 토론하며
겨레의 나갈 길을 하나님께 묻고
백성들의 안위를 위하여
자신들이 헌신할 길을 찾는 공동체였습니다.
다윗은 라마-나욧 공동체에서 사무엘을 멘토로 모시고
겨레의 미래를 꿈꾸고 위대한 왕국을 건설할 비전을 길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워낙 노쇠한지라 사망하게 되자
그는 밖에서 염탐하고 있는 사울 왕의 군사들이
사무엘의 죽음을 알기 전에 도망하였습니다.
도망 후 우여곡절을 거쳐 아둘람 굴에 은신하였습니다.
아둘람 굴은 국경에 위치한 열악한 땅이었습니다.
척박한 땅에 먹을 양식은 물론이려니와
마실 물조차 구하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곳에 머물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들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22장에서는 그때의 정황을 다음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사무엘상 22장 1절~2절)
〈사무엘이 자랄 때에,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사무엘이 한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
그리하여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주님께서 세우신 예언자임을 알게 되었다.〉
(사무엘상 3장 19절, 20절)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사무엘상 3장 19절, 20절)
성경 번역판에는 영어에서나 우리말에서나
번역의 내용이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위에 인용한 2 가지 번역 중에서 앞의 번역은
〈표준새번역 개정판〉입니다.
뒤의 번역은 한국교회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판〉입니다.
성경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하여는
때로는 여러 가지 번역판을 대조하여 읽으면서
본문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한글 성경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은
영어 번역판을 읽으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영어 번역판으로는 킹제임스 번역판을 제일로 손꼽습니다만
그에 매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NIV로 알려진 New International Version이나
예루살렘 바이블 판 등도 훌륭한 번역입니다.
그리고 영어의 초보자들을 위하여
영어 단어 500 단어 안에서 번역한
Living English Bible도 있습니다.
물론 원문 성경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익혀
원문을 이해할 수 있으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평신도들이 그 수준에 이르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한글 성경만 열심히 읽고 또 읽어도
성령께서 성경에 계시된 역사를 능히 깨닫게 인도하여 주십니다.
위에 인용한 말씀에서 사무엘은 어린 시절부터 말에
권위와 신뢰가 있어 그의 말을 통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예언자임을 알게 하였다 했습니다.
우리들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 속에
영적인 권위가 있고 듣는 이들로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고 힘을 얻게 도와주는 말이 될 수 있어야겠습니다.
사울의 박해를 피하여 아둘람 굴에 몸을 숨긴 다윗은
일생일대 최악의 조건을 극복하며
미래를 건설하는 기초를 닦았습니다.
후일에 성취한 다윗 왕국의 빛나는 전통은
아둘람 굴에서 잉태되었습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 머물며
미래에의 꿈을 기르고 있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전하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의 글에서 적은 바와 같이
빚진 자, 한 많은 자, 뜻을 품었으나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한 자들이
아둘람 굴로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모인 무리가 400명에 이르는 큰 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지도자 다윗은 영적 스승이었던
사무엘로부터 배운 바대로 지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둘람 굴이
위대한 다윗 왕국을 건설하는 산실(産室)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아둘람 굴에서 무엇을 꿈꾸며,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하여는 시편 57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두레가족들이 동두천 두레마을에서 하고져 하는 일이
한국의 아둘람 굴이 되어지기를 소망하며 이 글을 적습니다.
다윗의 아둘람 굴의 비전이
오늘 우리들의 비전이 되고 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시편 57편에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 400명은
아둘람 굴의 열악한 환경에서 환경을 탓하지 아니하고
미래의 비전을 길렀습니다.
첫째로 57편 1절의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그들은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 받고 있다는
신앙고백으로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먼저 배워야 할 바의 첫 번째입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윗이 위대한 왕인 줄은 알면서도
그가 위대하게 된 배후에는 사무엘이라는
걸출한 영적 지도자가 있었음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애초에 목동인 다윗에게 미래의 왕이 되라고
기름 부어 세운 분이 사무엘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사무엘은 다윗에게 위대한 왕이 될 수 있도록
동기부여(動機附與)한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한 생명을 건지려고
들개처럼 숨어 다녀야 하였던 다윗이 사무엘에게 의탁하였고
은퇴 후 낙향하여 노후를 보내던 사무엘이 숨을 거두자
다윗은 신속히 도피하여 국경 지방의 아둘람 굴에 숨어들었습니다.
그가 아둘람 굴에서 은인자중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지자 인재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400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의 지도자가 된 다윗은 그렇게 열악한 처지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시편 57편에 그 시절의 다윗의 신앙과 그의 동지들이
함께 품었던 비전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1절에서 다윗은 도망자로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에 보호 받고 있노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 다음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시편 57편 2절)
나는 다윗의 고백에서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는 사울 왕이 자신을 제거하기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를 헤치려 하였지만
그는 그런 사울 왕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시여
그 시대에 합당한 일꾼으로 사용하실 것이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의 상대는 사울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꼭 품어야 할 신앙입니다.
- 김진홍 목사의 아침 묵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