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산 멸치회무침
거제로 와 삼 년째 들어 주중 연사 와실에 지내면서 고현으로 나갈 일이 드물다. 첫해는 주말이면 고현으로 나가 창원 가는 시외버스를 이용했기에 자주 들렸다. 작년부터 이웃 학교에 지기가 창원에서 부임해 와 그와 함께 카풀로 오가게 되어서다. 이웃 학교 지기는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에 살아 이동 동선이 같아 서로가 좋다. 나는 오가는 길에 거가대교 통행료만 부담한다.
내가 고현으로 나가는 걸음은 당뇨 때문에 약을 타러 가는 경우다. 지난 이월 중순 이후 달포 만에 걸음이다. 사월 첫째 화요일 퇴근 후 와실로 들어 옷차림을 바꾸어 길을 나섰다. 연사 들녘을 지나 연초교를 건너 연초천 하류로 나갔다. 벚꽃이 저물고 잎이 돋는 천변에는 산책을 나온 이들이 더러 보였다. 해수와 육수가 만나는 기수역에는 썰물이 되자 횐뺨검둥오리들이 나타났다.
천변 산책로를 지나니 중곡지구 아파트단지를 거쳐 고현에 닿았다. 예전 카페리가 드나들던 고현항은 매립지가 되어 아파트를 짓고 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과 가까운 내과에 들려 혈당을 먼저 체크 했다. 식후 혈당이 89였으니 안정적이었다. 혈압도 정상치 범위 내였다. 주치의는 혈당과 혈압이 안정되어도 처방전을 끊어주어 약국을 찾아 약을 탔다. 의사와 약사에 코가 꿴 처지다.
고현으로 나간 김에 저녁을 끼니 때우고 와실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귀탕으로 반주를 들었던 실내 포장이 떠올랐다. 이후 일 년 넘게 들리지 않았는데 주인 아낙은 모처럼 찾아간 나를 기억했다. 공기밥과 함께 들 술안주가 무엇이 좋을까 여쭈니 멸치회무침을 추천했다. 한 번 먹어 보고 싶던 차에 잘 되었다. 안주가 나오기 전 차려진 밑반찬으로 맑은 술을 한 잔 따라 비웠다.
내가 거제로 와 먹어 본 해산물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거제 물정을 잘 모르던 첫해였다. 고현 수협 마트에서 활어를 썰어 팩에 포장해 둔 광어회를 사서 와실에서 맛본 적 있다. 작년 가을 연초 농협 마트에서 호래기가 신선해 보여 장거리로 사봤다. 와실로 들어 내장을 꺼낸 뒤 끓는 물에 데쳐 먹었다. 지난 삼월 초는 멍게를 까 비닐봉지에 담아 진열해 놓아 사 먹기도 했다.
멸치회무침은 얘기로만 들었지 여태 먹어 본 바 없다. 갈치가 그렇듯 멸치도 신선도 유지가 어려워 활어로는 일반 횟집에서 맛볼 수가 없다. 생멸치를 조림으로 해서 쌈밥을 해 먹는 차림은 시내에서 봤다. 아마 냉동이나 냉장 상태로 보관된 생멸치지 싶다. 작년 봄 대금산에 올라 하산길 상명마을 주막에 들렸더니 차림표에 멸치회무침이 보였다만 혼자라 안주로 시켜보지 않았다.
밑반찬으로 나온 두릅 순과 깻잎장아찌로 자작으로 잔을 비우는 사이 멸치회무침이 나왔다. 생멸치의 뼈와 내장을 발라내고 미리 준비해 놓은 듯했다. 생멸치를 초장에 버무리기 전 미나리와 상추를 썰어 넣어 파릇한 색이 감돌았다. 잔을 비우고 멸치회무침을 입 안에 넣으니 살점이 사르르 녹았다. 음식 솜씨가 좋은 주인 아낙이었다. 뒤이어 들어온 손님들도 멸치회무침을 시켰다.
맑은 술을 한 병 비우고 한 병 더 시켜 밥공기와 같이 비웠다. 식당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5인 이상은 합석이 금지였다. 뒤늦게 들어온 손님들은 회무침 재료가 동이 났다고 하니 아쉬워하면서 멸치조림을 시켰다. 나는 혼자 맑은 술을 두 병 비우고 밥공기로 저녁까지 잘 해결했다. 식당을 나와 연사까지 걸어가도 되겠으나 수협 마트에 들려 시장을 봐갈 게 있었다. 쌀을 사야 했다.
마트에 들려 수산물 코너를 살피니 선도가 좋은 생멸치가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다. 작은 쌀 포대와 함께 생멸치와 풋고추를 집어 계산을 마쳤다. 와실로 들어 생멸치 봉지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멸치회무침은 맛보았으니 생멸치 조림은 손수 해 볼 작정이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라도 오늘 저녁엔 생멸치 조림에 도전해 봐야겠다. 긴 긴 봄날 퇴근하고도 남은 게 시간뿐이렷다. 21.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