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잠시 짬을 내서 '구디역' 앞에 있는 '헌혈의 집'에 갔었다.
3월을 넘기지 않으려고 서둘러 갔다.
금주에 하든, 내주에 하든 헌혈하는 건 똑같다.
하지만 내 자신과의 약속이 있었기에 어기고 싶지 않았다.
금주에도 매일 시간이 빡빡했다.
일도 많았고 애경사도, 챙겨야 할 주말 행사도 매주 줄줄이 다가오고 있었다.
SCDL이 복잡했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처리하다 보면 못할 일은 없었다.
문진하고 혈압을 쟀다.
정상이었다.
감사했다.
123에 84였고 맥박은 76이었다.
어제도 변함없이 400cc의 피를 공여했다.
나의 혈액이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잘 쓰여지기를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젊은 간호사님이 나에게 헌혈증을 건네주면서 93회째라고 알려주었다.
1987년 12월에 군대 전역하고 1988년 봄부터 지금까지 매년 서너 차례씩 중단 없이 했었다.
내 자신과의 준엄한 약속이었기에 흔들림 없이 묵묵하게 실천했다.
누군가에게 내 삶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다만 긴 인생길을 가면서 내 양심이나 철학에 향기로운 꽃을 심어야지, 다 타고 남은 재를 뿌릴 수는 없었다.
스스로에게 너무 관대하고 자꾸 변명을 일삼는 건 내가 내 영혼에 재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 말이 맞든 틀리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닐 터였다.
어차피 사람마다 생각과 기준은 다를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나는 20대 중반부터 환갑인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하며 살았다.
헌혈이 우리네 인생에서 그리 대단한 것이겠는가?
별로 중요치 않다.
하지만 청년기 때 한번 마음 먹은 바를 죽는 날까지 일관되게 실천하는 것은 정녕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루틴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언제나 새벽 04시에 기상해 출근하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사무실에서 홀로 Q.T를 진행하는 것 그리고 짧든 길든 일기를 쓰는 것은 삼십 몇 년째 지속하고 있는 나의 가장 소중한 일과였다.
퇴근 후 식사하고 야간에 뒷산 공터에서 2시간 가량 운동하는 것도 내겐 어떤 재화나 선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루틴이다.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쓰지 말자.
매번 환하게 웃으며 조용히 배려하고 한곁같이 실천하면 되리라.
법에서 정한 대로 만 70세까지는 헌혈을 할 수 있다.
몇 번을 채우겠다는 그런 목표도 없다.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건강한 피라도 적극 나누고 싶다.
아픈 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소망하고 생명을 살리는데 미력하나마 일조했으면 좋겠다.
그것 뿐이다.
세월이 총알 같다.
어느새 3월 29일이다.
근무일로 따지면 오늘이 1분기 마지막 날이다.
24년도 1분기를 잘 마무리 하고 더욱 아름답고 멋진 4월을 맞이해 보자.
4월에도 각자가 남기고 갈 숱한 발자국들에 열정, 사랑, 감사의 향기가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혼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그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