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희는 비척비척 우유를 따라 마시고, 크게 기지개를 켰다.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한 탓인지 그만 일찍 깨고 말았다. 현암은, 음, 다시 잠들었겠지? 그녀는 어쩐지 요즘들어 눈이 나빠지고 있는 것 같다고 투덜거리며 화장실로 쏙 들어갔다.
촤악-!
차가운 물이 그녀의 얼굴에 끼얹어졌다. 정신이 확 들고, 곧 배가 출출하다고 생각하는 승희. 그녀는 얼마 후면 일어날 다른 일행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흠흠흠~♬"
콧노래를 부르며 양파를 써는 승희. 그러나 그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세 개째의 양파를 썰다가 곧 손을 탁! 내리쳤다.
"흐흐흑, 양파, 넌 왜 이렇게 매운거야…."
그녀는 결국 양파썰기를 관두었다.
다시 감자를 썰고, 국을 끓이고, 밥을 짓고, 반찬들을 꺼내고… 현웅 화백의 사망 후로 이 집에 오는 일이 아니라면 대게 혼자서 식사를 해결하던 승희답게 곧 척척 먹음직스러운 아침상이 차려졌다.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훗,훗,훗. 역시 난 대단하다니까? …혀, 현암군도 좋아할까?"
곧 원체 일찍 일어나는 현암이 스르르 깨어나고, 일요일임에도 불구 평소의 부지런한 습관이 몸에 베어버린 준후가 부스스 일어났다. 박신부는 피곤했는 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지만, 역시 그도 꽤나 일찍이라고 할수 있는 때에 깨어났다. 생전 처음이라 할 수 있을정도로 오랜만에 일찍 깨어난 승희였기에, 그녀는 이 세 사람의 부지런함에 혀를 내둘렀다.
"정말 엄청난 바른생활들이라니까…."
곧 모두 씻기를 마치고, 승희에게로 다가왔다.
"승희누나! 전부 누나가 차린거야?"
"물론이지. 한 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니지?"
승희가 어깨를 으쓱이며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녀의 옆에서 흐음- 하고 식단을 감평하듯 서 있던 현암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할 땐 잘 하면서 왜 이렇게 게으른 지 몰라…"
"현암군!"
그는 곧 승희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받으며 입을 탁 다물었다. 그는, 여러 악귀나 적들의 눈빛보다도, 승희의 째림이 더 무서웠다.
"잘 먹겠습니다!"
네 사람이 식탁에 뱅그르르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박신부는 서로 옆에 앉은 현암과 준후를 보며 '후후후'하고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지었다.
"준후야."
"예?"
박신부는 준후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저 두사람, 신혼부부 같지 않으니?"
"…풋!"
준후는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승희는 몰라도, 그 예리한 청각 덕에 소리를 듣지 못할 리 없는 현암은 본인의 얼굴을 확확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단지 승희만이,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을 뿐이다.
***
"자아, 자, 뚝! 착하지?"
승희는 아기들을 달래며 활짝 웃었다. 어린 아기들이 곧 승희를 따라 환하게 웃었다. 승희는 때때로 아기들을 돌보고 있을 때면 거의 무아지경 상태에 다다라 자신도 모르게 아기들의 마음을 보곤 하는데, 그 때마다 그녀는 몹시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온통 하얗고 밝은, 그리고 따스한 것 만이 가득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것은 몹시 기분이 좋은 것이었는데, 박신부는 그 것이 아이들의 순수함이 아닐까, 하고 말한 적이 있었다.
현암은 아이들에게 줄 분유를 타다가(!) 승희가 웃는 모습을 보고 아침의 일이 생각나 다시 얼굴을 붉혔다. 으음…, 어쩐지 고민상담 상대로서, 월향이 그리워지는 그였다.
그 때 그의 옆으로 박신부와 준후가 다가왔다.
"형!"
"응? 왜 불러? …신부님까지?"
현암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박신부가 쿡쿡 웃으며 말했다. 그는 아직 놀라운 회복력을 자랑하는 현암에 비해 상당히 회복이 덜 된, 다시말해 위험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그는 자주 걷기를 원했고, 이렇게 준후만 데리고 다니며 평소처럼 행동했다.
"현암군… 이제 승희하고도 잘 되고 있는 데 말야, 오늘은 일도 없고 하니, 둘이서 어디 놀러라도 다녀오지 그러나?"
"예?"
현암은 당황했다.
"하, 하지만 저 아기들은 누가 돌보고요… 또 그, 그건…"
"아기들은 내가 돌볼 수 있어!"
준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암은 준후를 한 대 쥐어박아 주려다가, 곧 한숨을 쉬었다.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하긴, 그 일이 있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데이트 한 번 못해봤으니, 승희는 조금 화가 나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자, 그럼 화이팅일세, 현암군."
"현암형, 힘 내-."
준후는 박신부와 시선을 교환하며 킥킥 웃었다. 현암은 어느새 손에 들고 있던 젖병을 빼앗긴 채, 박신부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는 지 환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승희를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현암군! 영화보러 가자구? 무슨 바람이 분 거야?"
"아…"
현암은 입만 벌린 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
"승희야!"
현암은 팝콘을 한아름 안고, 얼굴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승희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승희의 이름을 부르고 말았다. 승희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왜?"
"…아, 아니."
무적현암은, 어째서 승희의 앞에만 서면 한 없이 작아지는가!! 그는 속으로 절규하며, 차라리 백귀야행(百鬼夜行)의 한가운데에 던져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쩔 줄 몰라하며 시선을 시계로 돌렸다. 곧 영화가 시작할 시간이었고, 그는 차라리 스크린을 들여다 보고 있는 편이 마음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현암은 미소를 지으며, 승희의 손을 잡아 끌었다.
"영화 시작할 시간이야, 들어가자."
"으… 응!"
한 편, 승희는 긴장이 되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꾸만 웃음이 나왔고, 현암의 얼굴만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팔불출 증세일까! 그녀는 웃고 있는 현암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얼굴을 붉혔다. 굉장히, 굉장히 행복했다.
사실, 그녀는 영화를 보러 오긴 했지만… 도대체 이 영화가 무슨 내용인 지도 알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저, 현암군…"
승희가 막 입을 떼었을 때였다.
"꺄아아악!! 사, 사람이!! 사람이!!"
"무, 무슨 일이지?"
현암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극장 한 귀퉁이에서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승희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우며 그 곳으로 다가섰다. 그 곳에는…
"미, 미라!"
마치 '세크메트의 눈' 때처럼 바싹 마른 미라가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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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1- 1- 1 같은 건요.
첫번째는 파트번호. 두번째는 이 파트에서 몇편째 글인가, 마지막건 파트를 따지지
않는 총 합계입니다;;
첫댓글 흐음...승희의 꿈 속에 나왔던 연희가 했던 말이 맘에 걸리네여...
스...승희가 무아지경의 경지에..=ㅁ=!!![<-언덕위의 하얀집으로]
꺄아~ >_< 승희의 행복한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와요.. 넘 조타~ 이런 행복이 지속되버렸음 한다는...
저도 아마 현암군이였다면 저런 생각을 -_- ... 백귀야행이라 .. 푸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