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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그런 밤을 맞으라^^
출발 하기 일주일 전부터 머리속에 맴맴도는 말이었습니다 .
유난히 관심을 갖고 지켜봤던 일주일간의 일기예보 였지만
서해안 연일 계속되는 폭설에 바람이 많이불고
12월 5일 출발일인 금요일 서울 낮 최저 기온은 -9도로 올들어 가장 큰폭으로 떨어지던날^^
저녁 7시 50분 달빛 소나타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
밤 11시 30분 현장의 모습 ( 음향기기 , 와인 , 촛불 종이컵과 와인잔등을 챙기고 현장 진행하려다 보면 카메라를 못가져간다
상기 사진은 행사 종료후 컵라면 과 커피 타임에 혼자서 언릉 찍고 내려온거임 )
아무리 생각 해도 우리 행사를 위해 이 멋진 무대를 준비 해놓은것 같다 .
이곳에서 촛불 하트 ^^ 샴페인과 함께 달빛 소나타 메인 행사가 이뤄진다 .
오늘의 주제는 아듀 !! 2014년 갑오년 ^^ 이바리에 이렇게 있는것 만으로도 우린 청춘이다 .
우리 청춘을 위해 건배 "청바지 ^^ " 청춘은 바로 지금 부터였다 .
늘 여행을 기획하면서 밤 11시쯤이 메인인 행사를 기획한다는게 엉뚱하다
여러분들도 누구한테 저녁 8시에 출발하고 메인 달빛 행사는 11시 쯤이고
숙소는 12시 30분쯤 들어간데 ^^
이렇게 얘기 할수 있는 일정은 참으로 생소 할것이다 .
그것도 눈이 펑펑오고 , 살을 에이는듯한 바람이 부는 강변 갈대밭 언덕위에서....
그런 고민의 끝에 이번 행사의 주제는 " 그런 밤을 맞으라^^ " 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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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예술가들이 주로 묻혀있는 페리 라세즈 묘지공원 묘비에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884년 7월 12일 리보르노(이탈리아)생. 1920년 1월 24일 파리에서 죽다.
이제 바로 영광을 차지하려는 순간에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그 밑에는 잔느의 묘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잔느 에뷔테른느. 1898년 4월 6일생. 1920년 1월 25일 파리에서 죽다.
모든 것을 모딜리아니에게 바친 헌신적인 반려.”라고 적혀있는
두기의 묘가 나란히 있습니다 .
2014년 11월 소더비 경매에서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의 석조각 여신 두상은
7070만 달러(약 760억4000만원)에 낙찰돼 모딜리아니 작품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고,
2013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 (인상주의 와 모던아트) 에서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모딜리아니가 1920년 파리의 자선병원에서 죽기 1년 전인 1919년에 그린 초상화
'잔느 에뷔테른‘은 2천690만파운드(한화 458억원 상당)에 낙찰됐다.
1920
그에 관한 소문과 평판은 다양했다.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린 당대 최고의 미남,
어느 곳에도 안착하지 않은 보헤미안, 술과 마약에 중독된 결핵 환자,
인간의 내면과 꿈으로의 상승 의지를 그린 독특한 화가 등.
그는 바로 당대의 풍운아 모딜리아니였다.
안타깝고 절절한 러브스토리는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
이탈리아 출신으로 파리의 가난한 이방인이었던 모딜리아니는
서른두 살에 18살 잔느 에뷔테른느를 파리 몽파르나스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잔느의 우아한 자태와 잔잔한 미소를 보고 모딜리아니는 즉각 사랑에 빠졌다.
모딜리아니가 사랑을 고백하자수줍음 많은 소녀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모딜리아니는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가진 미남이었을 뿐 아니라
정열적인 화가로서 뭇 여인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점차 열렬한 사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극적인 순간에 우린 컵라면을 먹었고 ,
하지만 맛은 대박^^
마치 추위에 떨던 군인들이 야간 보초를 서고 와서 먹던 맛이라고나 할까 )
(금강 하구둑에서 밤을 달려 군산으로 넘어가는 밤 도로 ^^ 눈이 장난 아니었답니다 .)
밤 1시 20분 ^^영화 러브스토리 중- (Snow Frolic : 눈 장난 )
잔느는 모딜리아니의 모델이 되어주며 가난한 예술가를 보살폈습니다.
1917년 3월 모딜리아니와 잔느는 지중해 연안의 코트다쥐르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듬해 모딜리아니의 건강이 악화되자 니스로 옮겼고,
11월 29일에는 잔느가 첫딸을 낳았다.
이 시기에 모딜리아니는 얼마나 행복했던지
아기들과 소년, 소녀들을 주로 그렸다.
가난했지만 두 사람은 함께 견딜 수 있었고,
잔느는 1919년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한다.
1919년 7월 7일, 그들은 증인을 앞에 두고 결혼할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썼다.
그러나 겨울이 되어도 난로를 피울 수 없자 잔느는 친정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모딜리아니는 잔느가 그리워질 때면 잔느의 집으로 가곤 했다.
커다란 집 밖에서 아무리 잔느를 불러본들 안에서는 아무 기별이 없었다.
모딜리아니는 수많은 여인을 만났지만,
최후에 약혼녀가 된 잔느 에뷔테른느는 어떤 여자와도 달랐다.
잔느는 모딜리아니에게 그 어떤 계산도 없는
순진무구한 사랑을 바친 유일한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저주였음을 확인했을 때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1920년 1월 건강이 악화된 모딜리아니는 여러 날 바깥 출입을 못했다.
이상하게 여긴 이웃이 후배 화가와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 앓고 있었다.
1월 22일 파리 자선병원에 입원한 모딜리아니는
입원 이틀 만에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모딜리아니의 죽음은 예술가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
소식은 잔느에게도 전해졌다.
그녀는 시체 안치실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만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모딜리아니의 장례식은 파리의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장엄하게 치러졌고, 1월 27일 모딜리아니의 시체는 영원히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모딜리아니가 죽은 다음날 잔느는 당시 8개월된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지만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겠다”며 자신의 집 6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3년 후 모딜리아니의 무덤은 문을 열고 잔느의 시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영원히 하나가 되었다.
“영혼을 알기 전까지 눈동자를 그리지 않겠다”
눈동자 그리는 것을 꺼렸던
겨우 잔느 에뷔테른느의 눈동자를 그렸는데
죽음이 이들에게 다가온 것을 보면 하늘도 참 무심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림을 들여다볼수록 연민과 공허함이 느껴집니다.
보고 만지고 이야기하고….
얼마나 그렇게 해야 누군가의 영혼을 알 수 있을까요?
잔느를 모델로 한 그림은 모딜리아니가 잔느에게 속삭이듯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는 듯 하다 .
모딜리아니의 강렬한 색채와 선율이 발산하는 ..
꿈꾸는 듯한 그의 그림을 대하다 보면 ,
모딜리아니와 잔느가 죽은 1월 24일과 25일의 밤이 떠오른다 .
죽음으로 영원한 사랑을 완성한 두 사람처럼 ,
살아있는 이순간 모두 그러한 밤을 맞으리라.
2편에 이어집니다 ...
첫댓글 설국의 달빛소나타 멋지네요^^ 영화 러브스토리 한 장면 같군요
snow frolic 음악들으며 풍경 감상합니다
설경 환타지..이 아름다운 설화 풍경속에서 우리는 자연과 어울림 웃음 만발꽃!! 참으로 환상이였어요^^ 추억은 아름다운 마음의 꽃다발입니다.. 온하신 마음사랑 가득하신 대표님께 진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