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메
소나무들이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아오던 솔숲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습니다.
솔숲의 일부는 살아남고 일부는 잘려나갔습니다.
불행히도 나는 잘려나간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전기톱이 내 몸을 사정없이 자르던 날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합니다.
나는 전기톱을 든 사내가 내 곁에 다가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바람일 뿐 전기톱을 든 사내가 천천히 내게 다가와
내 밑동을 잘라버린 것은 참으로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나는 너무 아파 비명도 지르지 못했습니다.
혹시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는 않을까 하고 기대한 나 자신이 너무나 어리석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쓰러진 채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저기 어러 벗들이 쓰러져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곧고 늠름하게 일직선으로 잘 자란 나무들이었습니다.
몸통이 휘어지고 구부러진 나무들은 어디로 옮겨 심는지
실뿌리까지 하나 하나 조심스럽게 다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평소에 곧게 쭉 뻗은 내 몸매를 자랑한 일 이 후회되었습니다.
구불구불 몸매가 굽은 못생긴 벗들을 놀리고 얕잡아보았던 일 또한 후회되었습니다.
굽은 나무가 살아남을 줄 알았더라면 일부러 허리를 부러뜨려서라도
굽은 나무가 되었을 것을 이제 아무리 후회해보아도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곧 서너 토막으로 잘린 통나무가 되어 어디론가 떠나갔습니다.
그곳은 나무들의 도살장이었습니다.
나무들은 모두 아무소리도 하지 못하고 운명인 양 제재소 톱날 아래
자신의 몸을 누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제재소에 가자마자 마당 한 구석에 처박혀 몇 년을 보냈습니다.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그대로 비를 맞았습니다.
한 여름에는 뜨거운 햇볕에 몸이 말라비틀어지는 것 같았으며,
추운 겨울 날에는 온몸이 얼음덩어리처럼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그래도 참고 지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간혹 밤하늘의 별들에게 이것이 어쩔 수 없는 나의 운명이라면
하루속히 제재소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부탁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나와 함께 있던 통나무들이 하나 둘 다른 데로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나만 떠나지 못하고 제재소 바닥에 그대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녀석은 그대로 둬!" 하는 제재소 주인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제재소 주인이 왜 내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속으로 무척 단단해졌습니다.
내가 무엇이 되기 위하여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고통을 참고 견디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단단해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가을 이었습니다.
"으음, 이게 좋겠군. 아주 좋겠어"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나는 곧 대패로 잘 다듬어진 뒤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간 곳은 서울 종로에 있는 보신각이었습니다.
내가 종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 사람들이 다가와 내 몸을 번쩍 들어올려
종각의 천장에 매달았습니다.
그때 나는 비로소 내가 무엇이 되었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종을 칠 때 사용되는 나무봉인 종메가 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린아이인 양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드디어 12월 31일 제야의 밤이 되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는 0시가 되자 흰 장갑을 낀 서울시장이 처음으로 힘껏 종을 쳤습니다.
아, 새해의 밤하늘에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그러나 종소리는 아름다웠지만 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서른세 번 종을 칠 때마다 나는 거의 까무라칠 뻔 했으나
아무도 내 아픔을 아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후 새해가 다가오는 일이 나는 두려웠습니다.
두려움 가운데서 새해를 맞고 내몸이 으스러지도록 제야의 종소리를 울리는 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내 몸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어디 한 군데 멍들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나는 만신창이가 된 나 자신이 너무나 불쌍해 이제 더 이상의 제야의 종소리를
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거야. 이대로 버려져 썩어버려도 좋아.
나는 그런 결심을 하고 바람이 불어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보신각 종이 슬픈 목소리로 내게 말했습니다
"종메야, 네가 그런 결심을 하면 내가 어떻게 되니."
나는 못 들은 척 가만히 있었습니다.
"종메야, 그러지 마. 네가 그러면 난 종소리를 낼 수가 없어."
"내 몸을 좀 봐. 온통 상처투성이야. 한 번씩 종을 울릴 때마다 나는 거의 초주검이 돼.
난 이제 그러기는 싫어."
나는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보신각 종에게 말했습니다.
"종메야. 너만 아픈 게 아니야. 나도 아파. 넌 왜 너의 아픔만 생각하니?"
"너도 아프다고?"
"그래 나도 아파. 네 몸이 내게 부딪힐 때마다 나도 옴 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느껴."
나는 보신각 종이 자기도 아프다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종을 칠 때마다 나만 아픈 줄 알았지 나 때문에 종이 아픈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보신각 종의 말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아파도 참는 거야. 우리가 참지 않으면 아름다운 종소리를 낼 수가 없어.
우린 서로 함께 아픔으로써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는 거야.
어떻게 고통 없이 아름다워질 수가 있겠니."
나는 보신각 종의 말을 듣자 나의 아픔만 생각한 나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미안하다. 나의 아픔이 곧 너의 아픔이구나. 우리가 서로 한 몸인줄 잘 몰랐구나."
"괜찮아. 실은 나도 너 때문에 내가 아프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
서로 한 몸인 줄을 모르고 널 원망한 거지.
그런데 사람들도 그걸 모르고 다들 종이 되려고만 해.
다들 종이 된다면 이 세상에 종소리는 존재할 수 없는데도 말이야."
"맞아. 나 같은 종메가 있어야 이 세상에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거야."
나는 그제서야 나 자신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온 몸에 멍이 들면서 종이나 치는 신세가 되었다고 원망했던 날들이 후회스러웠습니다.
내가 왜 전기톱에 온 몸이 잘린 채 숲 속을 떠나오게 되었는지,
왜 제재소 뒷마당에 처박혀 나 혼자 오랫동안 외로운 생활을 했는지
그제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힘껏 종소리를 울렸습니다.
이제 그 어떤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책을 읽다가 이 느낌을 여러님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적어봅니다.
[종메] 중에서 부분적으로 간추려서 문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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