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는 빨리어로 아리야사짜(Ariyasacca)라고 합니다.
빨리어 아리야(Ariya)는 성(聖)스럽다는 뜻으로, 아리아 사짜는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사짜(Sacca)는 진리, 진실, 제(諦)라는 뜻인데,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말합니다.
1) 사성제는 네 가지 성스런 진리라는 뜻입니다.
2) 사성제는 성자(聖者)에 의해 발견된 진리라는 뜻입니다.
3) 사성제는 성자가 되었을 때 바르게 알게 되는 진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성제는 수다원 이상의 성자들이 알 수 있는 진리입니다.
사성제는 괴로움(苦)의 원인(集)을 소멸(滅)하는 길(道)의 성스런 진리입니다.
수행자가 열반을 얻기전 까지 사성제를 이해하는 것은 관념적인 이해입니다.
실제로 수행을 해서 열반을 체험하고 사성제를 성스런 법으로 이해할 때
사성제를 바르게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우선 사성제에 대해 듣고 사성제에 대한 관념적인 이해가 생깁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실제 수행을 하다보면 의식이 고양되고,
괴로움을 법으로 보는 안목이 생깁니다.
이렇게 수행을 통해서 고집멸도 사성제에 대한 이해가 점차 깊어집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최초로 법을 펴신 초전 법륜경에서
다섯 비구에게 가르치신 것이 사성제입니다.
괴로움과 그 원인, 그리고 괴로움의 소멸과 그 방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불교는 괴로움에 대한 바른 이해로
괴로움을 소멸하는 지혜를 얻어서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대념처경에 사성제에 대한 법념처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여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라고
1)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 - 고성제(苦聖諦)
붓다께서는 대념처경에서
그리고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고귀한 진리란 무엇인가?
태어남은 괴로움이다.
늙음은 괴로움이다.
죽음은 괴로움이다.
슬픔, 비탄, 아픔, 비통, 심한 고뇌는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것,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은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못 갖는 것 또한 괴로움이다.
요컨대, 집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가 괴로움이다.
부처님은 또한 초전법륜경에서 고성제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빅쿠들이여, 나는 둑카의 실제진리를 정확하게 이해해야한다 라는,
이전에 결코 들은 적이 없는 담마에 대한 眼目이 생겼고,
知가 생겼고, 慧가 생겼고, 明이 생겼고, 光이 생겼다.”라고
다시 말하면 매 순간 경험하는 괴로움을 법이라고,
알아차릴 대상이라고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괴로움은 일어날만한 조건이 성숙되어서
와서 보라고 나타난 dhamma이며,
그안에는 무상, 고, 무아의 Dhamma가 들어있습니다.
괴로움은 빨리어로 둑카(Dukkha)입니다.
이 둑카가 의미하는 뜻은 매우 다양해서 적합한 우리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둑카" 라고 하거나 괴로움, 고통, 고뇌, 불편, 불행, 고(苦) 등으로 부르지만,
그래도 가장 적당한 우리말은 ‘불만족’입니다.
둑카는 만족스럽지 못할 때 경험하는 느낌으로,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범부는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바라기 때문에 항상 불만족(苦. 둑카)일 수밖에 없습니다.
빨리어 둑카(Dukkha)의 두(Du)는 '하찮은'이란 뜻이며 카(Kha)는 '비어있음'이란 뜻입니다.
사실 우리가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것을 법으로 받아들이면
아무 것도 아닌 하찮고 비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내 것이라 붙잡고 피하거나 없애려고 하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수행자가 5개와 5온과 12처와 7각지를 알아차릴 대상인 법으로 알아차릴 수 있으면,
이제 현재 경험하는 괴로움을 법(dhamma)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둑카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는 한
현실적으로 상존할 수밖에 없는 성스런 진리라고 알게 됩니다.
자신에게 무명과 갈애가 남아있는 한 항상 둑카가 따르기 마련이며,
둑카는 실재하는 법, reality로 받아들여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을 없애려 하기보다,
괴로움은 삶에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라고 괴로움을 인정하고,
그 괴로움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한다면, 수행자는 그 괴로움에 휩쓸리지 않고,
그 괴로움에서 오히려 괴로움을 극복하는 지혜가 나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덟 가지 괴로움인 생노병사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취온고가 있습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상존하는 괴로움을 법으로 수용하여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괴로움은 항상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그 순간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원래 그럴 수밖에 없도록 이미 조건지어진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괴로움을 객관적으로,
하나의 현상으로, 와서 보라고 나타난 법으로 맞이하여 알아차리는 것이 고성제에 대한 법념처입니다.
이와 같이 괴로움을 법으로 알아차림으로서
괴로움의 생멸을 보고 실체없음을 보아 괴로움을 극복할 때,
수행자는 의식이 고양되며, 괴로움이 지혜의 씨앗이 되며,
수행자에게 괴로움이 성스런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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