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고 35회 동창회 4월 모임(진주)에 참석하고
그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시적 의미와 어원도 잘 모르면서 T.S. Eliot의 그 유명한 ‘황무지’ 첫줄“April is the cruelest month”을 무턱대고 인용하며 또한 4월 혁명(4,19)의 잔인한 참상에 각인된 4월이 정말로 내게 2010년 4월 하순 ‘아내의 승천’으로 인하여 잔인하게 다가오게 되었다.
이제는 노천명이나 박목월의 4월의 기대를 읊조려보기도 하지만 아직도 내 곁엔 4월의 잔인함과 침통함이 고스란히...
중춘 4월에 승천한 아내의 기제사를 세태변화와 여러 사정상 서울 아들집에서 모시기로 한 후 이번이 첫 번째로 20대 총선 바로 뒤 상경한 김에 마침 서울 청사모(청계산 사랑 모임) 트래킹 일자와 타이밍이 맞아서 하산 후 만나는 옛골 기와집에서 회원들이 그 날 따라 많이 빠졌다지만 그런대로 오랜만에 회우를 가져 졸업 후 50년의 감회를 나누고 돌아 왔었겠다.
카페에서 진주 동기들 동정을 살피니(부산은 아직 카페 미개설) 마침 4월 23일 진주 모교운동장에서는 개교91주년 기념 제 40회 비봉대축제가 개최되지만 오래전부터 원로 선배기는 참석이 저조하니 기별 텐트도 없고 원로 합동텐트에 와서 인사만 하고 가는 실정으로 우리 35기는 행사장에 인사만 나누고 우리끼리 따로 만나 친선경기를 가지는 것이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모두 은퇴한 후라 학교 운동장 얻기도 어렵고...
올해는 부부동반하여 선학산 →말티고개→의곡사 → 모교정문을 경유하는 간단한 하이킹 후 경찰서 옆 청산우가에서 따로 모여 모임을 갖게 되어 있어서 전부터 보채는 ‘어곰’의 제의대로 새아내 대면 인사도 시킬 겸 또한 그날 저녁 집안의 결혼식 피로연도 있어서 겸사겸사 진주행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부산에서 출발하면서 아무래도 12시가 넘어서 모여지겠지 생각하면서 어스렁 대면서 진주톨게이트를 빠져나가면서 청산우가에 전화를 걸었더니만 벌써 모두 도착하여 시작되었다기에 그때부터 서둘러 갔지만 거의 10분이 늦어 있었다.
총무를 맡고 있는 김교장의 안내로 부부 50 여명이 참석한 진주 모임에 오랜만의 인사를 올리며 합부인들게 그 옛날 감회를 드렸지만 냉랭한? 반응에 기대효과는 얻지 못 한 것 같다.
30여 년전(1985) 35회 우리 주관기(주관기 직전 회장으로 승천한 아내의 큰 도움과 눈총도 많이 받으면서 준비) 행사를 거행한 후 86년에 추억 깊은 진주를 떠나 근무지 따라 부산으로 이사를 하였으니...
부산으로 이사한지 꼭 30년 만에 새아내와 같이 진주동창회에 참석해보니 그 옛날 본인이 회장할 때 친구들과 부인들의 협력으로 그해따라 부곡에서 부산 마산 진주 합동 야유회를 가진 일이며 야유회시 그 많은 음식준비를 책임져준 승천한 아내며... 신안동 공설 운동장에서 65년도에 졸업한 동년기의 제 11회 3개교 친선체육대회(대아고, 동명고, 진주고) 하며 참 많은 추억과 에피소더도 많았었음을 떠 올리면서...
그 후 부산으로 이사해 와서도 진주에서 주최하는 지리산 자락(신천초등학교)의 하계연수회에는 개인적으로라도 가급적 아내와 같이 참가하였고 부산에서 주최하는 행사에도 진주팀을 비롯해 울산 등 서로 참가토록 하여 소통도 잘되고 하였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멀리 단체로 움직이는 것만도 마음 약해서 인지 어느 날 소통도 멀어져가다 보니 졸업 50주년도 유야무야 별다른 전체모임 없이 친구들의 서로의 근황 특히 승천도 모르고 지나가는 수도 많았으니... 이거 되겠습니까? 졸업60주년(개교 100주년) 특별한 모임을 희망해 보자고 외쳐보지만 벌써 늙은이 행세한다고 별다른 반향도 없다.
예부터 친하게 지내고 오랜만에 손꼽으며 보고 싶었던 택이를 비롯한 몇몇 친구들은 진주에 가도 보이지 아니하여 만나볼 수도 없었고 그나마 기회 되면 만나기도 한 ‘어곰’과 평생 총경으로 승진 못하는 이름이 ‘순경’인 친구와는 옛날 같으면 이유 불문곡직하고 2차에 돌입할 것인데 다음을 기약하면서 그대로 헤어짐은 지나간 세월에 나이 들어감에 오기가 빠져나감을 실감하면서 건강을 챙기는 나이 값을 하게 됨은 어쩔 수 없는 바람직한 행태라고 판단되고도 남는다.
만약에 승천한 아내와 동반하였더라면 그 옛날 진주에서의 행사추억과 지리산 기슭에서 흔들거리는 본인의 술에 얽힌 에피소드 등 부인들의 입놀림도 심하였을 건데...
정말 오랜만에 진주에 계시는 친척들이 상당히 참여한 집안 친척의 피로연에 참석하였지만 지금은 그 잘 나가던 아버지 사촌모임도 자손들이 이어 받지 못하여 다 깨진 상태로 변 한 것 같았고 집안의 새로운 종부가 된 새아내를 인사시켜도 핵가족화 된 세상과 풍습의 변화에 순응되어지고 옛풍속에 익숙한 가부장적인 아저씨들은 그진 다 승천하고 살아계시는 아지매들과 그 새파랗던 이제는 몰라보게 출가외인 된 칠순이 되어버린 집안 누나들도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 서먹서먹만 한가보다.
뒷날 고향생가에서 집안 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또 빠른 재차 방문을 약속하면서 텃밭 주위의 머위 쑥 민들레랑 종고모께서 심어둔 부산에 가서 이웃과 나누어 먹으려고 권하는 상추를 넉넉히 뽑아서 부산으로 돌아오면서 다행히 전번에 우연히 들러 음식 맛이 좋다면서 또 들리게 된 진성의 ‘진주성’에서 늦은 점심을 후딱 해치우고 오후에 부산으로 돌아와 또 이웃과 정을 나누며 부산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아무튼 친척도 친구도 자주 만나야 정을 쌓아 갈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적조하지 말고 정을 나누면서 마음만이라도 풍요롭게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친구들이여! 너무 서둘러 이승을 떠나지 말고 항상 여유를 가지고 친구들이나 만나면서 제3모작 인생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즐기도록 합시다.
2016년 4월 26일 (진주고 개교 91주년을 보내고 100주년을 기다리며), 최 주 수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