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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작가가 될까? ------------------------------------------------------- 문숭리
여기 졸업생 문학도로서(2009. 02. 25 졸업. 본명 이동근, 필명 문숭리) 좋은 생각 4월호를 읽다가 국문학과 선후배를 막론하고 한 번쯤 읽어보면 정말 좋은 글이라 생각되어 그 글을 인용하여 창작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이미 졸업을 한 학우들이나 현재 재학 중인 학우들이 방송대 국문과에 등록하게 된 목적이 대략 세 가지( 1.학위, 2.자기개발. 3. 창작에 대한 꿈)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인데 그 세 번째에 해당하는 국문학도라면 꼭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글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여러 경로로 등단 후 재학 중에 있는 학우들 또한 자신의 등단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되 새겨 볼 수 있는 좋은 글이기도 할 것입니다.
필자는 방송대 국문과가 내 인생에 두 번째 대학인지라 3학년에 편입학을 하여 2학년 과정에 나오는가(?) 하는 작가론(作家論)을 정규과정으로는 배우지는 않았다. 그냥 독학으로 작가론을 섭렵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책 한권을 다 읽고도 잘 이해가 안 되었던 작가론을 여기에 인용한 한 페이지를 읽는 순간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좋은 생각 2009년 4월호(P.104)에 실린 [어떤 사람이 작가가 될까?]라는 전문을 함께 살펴보기로 합시다.
어떤 사람이 작가가 될까? 전성태 님 | 소설가
파도와 바위가 부딪치면 항상 파도가 이긴다. 그것은 파도가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단에 얼굴을 내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어느 잡지사로부터 이런 원고 청탁을 받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신의 콤플렉스를 써 달라.' 그러니까 자기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털어놓으라는 다소 특이한 청탁이었다. 무엇을 쓸 것인지 바로 떠올랐으므로 나는 흔쾌히 응했다. 작가란 언어로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다. 심하게 말해 어느 정도 노출증에 걸린 사람들이 아닐까. 더구나 내게 어떤 사건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콤플렉스, 혹은 상처는 시간이 한참 흐른 일이었고, 이제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감일에 임박해서도 원고는 한 줄도 써지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쓰고자 했던 상처가 날것 그대로 가슴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콤플렉스가 아닌지도 모른다.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손을 들고 말았다. 마치 그 원고 청탁이 저주이자 주술이라도 된 양 그때부터 나는 과거의 기억에 사로 잡혔다. 상처를 들여다보며 자책하고 원망하고 분노했다. 다른 생각은 불가능했다. 글 한 줄 쓰지 못하고 지내는 일상이 해를 넘겨 지속됐다. 그러다가 어느 하루 문득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그 기억과 상처로부터 멀리 우회하는 소설이지만 어째든 나는 소설을 끝까지 써 나갔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비로소 진정한 작가가 된 느낌도 들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충분히 헤아릴 수 는 없었다. 작가가 되겠다고 뒤늦게 습작생이 되는 분이 많다. 그분들을 만나다 보면 의외로 상처가 많다. 자신의 소설을 동료들에게 발표하는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리는 이들도 있다. 가슴속에 박힌 대못 하나를 뽑아서 쓴 소설임에 틀림없다. 많은 습작생이 궁금해 한다,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나요? .나는 이 질문을 이렇게 돌려놓고 싶다 어떤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가? 물론 문장력을 갖추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이라든가 상상력도 빼어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다 갖추어지면 작가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의 상처와 화해해서 그것을 글로 팔아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작가는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그 일을 성실히 수행해 내는 사람이라 믿는다. 작가의 그런 자세를 통해 독자는 소설 속에서 삶의 어떤 기미를 감동적으로 체험하는 것일 테다.
우선 윗글에서 작가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작가란 언어로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다.' 그러니까 작가라 하면 시인, 수필가, 소설가, 극작가등 어떤 형태로든 언어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등단, 미 등단을 떠나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이 생활화 되어 있는 현대는 카페,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 게시판, 플래닛 등 다양한 명칭아래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잡지나 문예지나 신문에 자신의 글 한편을 실리려면 하늘의 별따기 보다 더 어려웠지만 요즈음에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유료로 운영할 수 있는 개인 홈페이지 내지 서버가 아니더라도 포탈 인터넷 업체가 제공하는 무료 홈페이지나 여러 형태의 게시판을 통해서 자신의 글을 수 만개라도 올려놓고 전 세계인이 시차를 막론하고 읽어 볼 수 있는 시대가 됨으로써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은 시대가 된 것이다.
그 다음에 글을 읽다 보면 작가라는 사람들의 심리가 나오는데
'심하게 말해 어느 정도 노출증에 걸린 사람들이 아닐까.'라는 표현이 있다. 즉, 자신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라고 일부러 초미니 스커트를 입고 다리를 드러내는 여성들의 심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작가들의 심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을 항상 가지고 있기에 그 꿈을 한 번 실현 시키고자
'작가가 되겠다고 뒤늦게 습작생이 되는 분이 많다.'고 하는 표현이 나온다.
아마 이 경우가 나이 들어 방송대 국문과에 입학을 하는 상당수 학우들에게 해당되는 말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문학에 대한 기본 소양과정을 마치기도 전에 할 수만 있다면 등단을 하고 싶어 한다. 물론 국문학과를 나와야 작가나 등단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작가란 누구나 될 수 있고 언어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 놓는 순간 그는 이미 작가가 된 것이기에 말이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고도 훌륭한 작품을 남긴 작가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습작생이 궁금해 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나요? 하면서 소위 문단에 어떻게 하면 등단을 할 수 있을까? 물어보는데 전성태 소설가는 이렇게 그 답을 우회적으로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가?' 하고 말이다.
한마디로 작가에 대한 자질 론을 이야기 하는 것인데 일반적으로는 세 가지를 갖추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위 글에서 보듯이 1)문장력 - 맞춤법, 어법, 표준어 등, 2)이야기 구성능력 - 시 라면 정반합, 기승전결, 초장, 중장, 종장 소설 이라면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 3)뛰어난 상상력 -개연성 있는 허구, 가공된 이야기등 세 가지 능력이 작가에게 요구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능력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해서 과연 작가라 할 수 있을까? 하고 전 성태 소설가는 질문을 하면서 한마디로 말해서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신의 상처와 화해해서 그것을 글로 팔아먹을 수 있는 사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이해를 해 보자. 즉, 작가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수 없는 치부까지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속마음도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어찌 한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느냐는 것으로 생각해 보면 쉬울 것이다.
시인은 자기를 감추고도 관념이나 사물을 언어로 표현할 수도 있다. 시인은 진리(이데아)로부터 3단계 떨어진 모방자라고 하여 플라톤은 시인은 사회에 악이라는 바이러스 감염자로 취급하여 시인 추방론을 피력한 바 있다.
어떻게 보면 시도 자기감정의 발로이기에 시를 쓴다는 것은 자기를 표현하는 행위인데 그 속에 시인의 마음이 감추어져 있고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는 것이 본인 이외에는 실제 시가 의미하는 내용을 추측할 뿐이다. 플라톤은 고대에 태어났기에 망정이지 현대에 태어났더라면 시인들에게 돌에 맞아서 열 두번은 더 사망을 했을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글속에 감추어 가장 경제적이고 집약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이 시로써
하지만 소설은 그럴 수가 없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주제)가 정확하게 언어로 표현되지 않으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아무런 감동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이야 말로 자기 마음속에 있은 잠재의식을 상상력과 결합하여 언어로 표현한 것이기에 전성태 소설가는 이 글에서 작가라고 하면 소설가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인 듯싶다.
그리고 그는 모름지기 아마추어 작가보다는 글 쓰는 것을 생업으로 해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사람 즉, 전업 작가를 지칭하고 있다. 그 전업 작가에게는 자신의 글이 책으로 출판되어 나와서 누군가가 그 책을 사 주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창작이나 문학에 열정을 가지고 국문과에 입학을 했거나 졸업을 한 학우에게 한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작가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경력이나 글의 수량이나 편수에 관계없이 소정의 절차만 밟으면 여러 형태의 작가로 등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춘문예나 상금이 걸린 수상이 아닌 경우라면 추천형식을 밟으면 되니까 말이다.
시 창작을 몇 년 동안 몇 편을 했는가? 하는 문제를 떠나서 몇 편만 가지고도 등단이 가능한 것이 시인이다. 물론 소설가도 한편으로 등단을 할 수 있는 것이 한국문단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가 아닐까? 한다. 등단은 하기는 했는데 그 후로 시작이나 소설을 꾸준히 발표하지 않는다면 작가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작품 활동을 전제로 등단을 먼저 한 경우인데 그 후에는 이름만 작가이지 실제 작가라고 하지에는 너무나 가까이 하기에 먼 당신이 많이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되는가?"에 대한 초점을 맞추고 싶다.
한, 두 편의 글로서 등단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줄 것이 아니라 최소한 작품수와 문단활동 기간을 감안하여 사후 평가를 하여 등단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적어도 작가가 등단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한다면 30년에 이르는 창작 활동을 통한 시는 적어도 한 달에 한편 정도라면 적어도 360편 정도를 놓고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고 소설은 적어도 단편은 일 년에 한편 정도에 30편, 장편이라면 5년에 한편정도 6편은 되어야 작가로 등단할 수 있는 자격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이전에는 그야말로 습작생으로서 작가로 태어나기 위한 도자기로 말하자면 흙으로 모양을 만들어 가지고는 불가마속에 30년 동안 열을 가해서 그 후 밖으로 꺼냈을 적에 제대로 된 도자기라면 세상에 내 놓아야 할 것이고 아니면 그냥 망치로 부수어서 길가에 버려져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이유로 방송대 국문과 학우들은 국문과 카페에 시나 소설이나 수필 할 것 없이 본인이 직접 쓴 - 이미 다른 게시판에서 원문 그대로 옮겨오지 말고 옮겨올지라도 그것을 원형으로 삼아 전성태 소설가가 말했듯이 재창작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보여주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돈을 주고 사서 읽고 싶을 만큼 그 일(글쓰기)을 성실히 수행해 내는 사람들이 되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작가의 그런 자세를 통해 독자는 비로써 소설이나 시나 수필이 되었든 그 속에서 삶에 대한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 글을 쓰는 작가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 현재 한국 문단에서 이 글에 가장 부응한 소설가가 공지영이라는 여류작가가 아닌가 한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 성이 다른 세 자녀를 키우면서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과 가정,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번민과 갈등을 있는 그대로 그녀만의 음식으로 만들어 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아 독자에게 먹어보라고 내 놓을 수 있었기에 개인으로 보면 실패한 인생일지는 모르지만 그의 소설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1989년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풀빛) 1993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푸른숲) 1994년 《미미의 일기》(한양출판) 1994년 《인간에 대한 예의》(창비) 1996년 《고등어》(웅진씽크빅) 1996년 《상처없는 영혼》(푸른숲) 1998년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1》(푸른숲) 1998년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2》(푸른숲) 1998년 《봉순이 언니》(푸른숲) 1999년 《착한 여자 1》(푸른숲) 1999년 《착한 여자 2》(푸른숲) 1999년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창비) 2001년 《작가 공지영과 다시 만난 어린왕자》(세상모든책) 2001년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김영사) 2004년 《별들의 들판》(창비) 2005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 2005년 《사랑 후에 오는 것들》(소담출판사) 2006년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황금나침반) 2007년 《책로역정(冊路歷程)》 스쿱 연재 중 2008년 《즐거운 나의 집》(푸른숲) 2008년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오픈하우스) 2008년 《괜찮다, 다 괜찮다》(알마)
이상입니다. 다음에 다른 글로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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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공감되는 좋은 글이네요.
<'나는 자신의 상처와 화해해서 그것을 글로 팔아먹을 수 있는 사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이해를 해 보자. 즉, 작가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수 없는 치부까지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속마음도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어찌 한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느냐는 것으로 생각해 보면 쉬울 것이다. >작가를 꿈꾸고 있다면 꼭 한 번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추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인천 국문과 창작문학동아리 카페로 모셔갑니다.
이동근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김영미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제 자신의 얘기와 꼭 같아서요. 제 글들, '아버지의 호박밭''노란 주먹별이 걸린 배나무, ' 새순, 웃고 있어도 눈물나는 것에 대하여' ' 내 인생의 가난한 텃밭에서' 글들 속에는 정말, 진실로, 밝히기 싫은 제 가족사, 인생사가 담겨 있습니다. 제 자신에게 정직하고 싶었고, 다른 이들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고 싶었기 때문에 저를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었습니다. 작가가 꿈인 분들은 자기를 다 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자전적인 글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작가와 좀 더 친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결국 좋아히게 되고 맙니다.
[즐거운 우리집]은 푸른 숲에서 단행본으로 나오기 전에 중앙일보에 연재된 첫 번째 남편(-논리야 놀자.-의 저자 위기철(공작가와 연세대 영문과 동기동창)과 이혼하고 방황하던 날에 쓴 자전적 가정소설 인데. 바로 다음에 그 소설을 저녁에 집에 들어 가서 링크를 해 놓겠습니다. 저는 연재되는 동안 인터넷 신문에서 다 읽었는데 눈물 정도가 아니라 산다는 의미를 되돌아 보게 했던 소설이지요. 세상 사람이 다 행복한데 나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일깨워준 소설이랍니다. 꼭. 읽어보시라. 감사!
저는 문학적으로 공지영님의 글을 좋아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녀의 자유분방한 삶의 방식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42살밖에 안되었는데 너무 보수적인가요? 저는 그녀의 삶은 들여다보기 싫고 작품만 보고 싶습니다.
저 또한 공작가의 개인 적인 삶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상한 척하면서 남의 글이나 베껴다가 자기가 쓴 것처럼 언어유희나 하는 소설가 보다는 자기 속마음을 다 털어서 글을 쓴다는 뜻입니다. 요즈음 대부분 소설가는 손가락 하고 머리로만 글을 씁니다. 공작가도 처음에는 문단에서 왕따를 당하다 시피 했는데 젊은 세대가 그녀의 솔직함에 반해서 책이 대박이 나니까 이제는 작가들이 너도 나도 벤치마킹 한다고 합니다... ㅎㅎㅎ
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낙서 같은 글을 써온 수필가 지망생입니다. 저는 문학 공부가 너무 하고 싶은데 형편이 못 되어 특목고 상업고를 나와서 직장 생활하다가 혼자 책 읽고 습작해왔습니다. 저는 책 많이 팔려서 돈 벌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사이버 신춘문예나, 백일장, 공모전에 응모해서 장학금 같은 상금은 타봤습니다. 책이 너무 갖고 싶었으니까요. 그 상금으로 책 많이 사서 읽었습니다. 저는 문학을 사랑하는 순수한 문학도로 살다 죽고 싶은 욕심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글은 눈물과 피와 가슴과 발로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실한 글, 살아숨쉬는 문학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이 아닐까요?
김미경 별꽃님은 방송대 국문과에 정말 잘 오신 겁니다. 저도 방송대 국문과가 아니였으면 언감생심 다른 대학 국문과 생각도 못해 보았을 겁니다. 말이 일년에 등록금 1000만원이지 딸, 아들 두명 대학생도 벅찬데... 저는 그래서 징검다리로 2년 과정에 거의 10년이 걸려서야 졸업을 했습니다. 그래도 졸업을 했다는 저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그 사이 말도 잘 안 되는 글이지만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쓰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 책이나 문예지를 많이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문학도의 행복한 시간들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김미경 별꽃님의 그 마음에 사의를 표합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됩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