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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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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일반 이야기 게시판 단군의 개국연대가... 과연 맞는 건가...?
궐한 추천 0 조회 477 13.11.14 12:09 댓글 4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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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1.14 19:44

    첫댓글 모든 문제는 의문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아주 좋은 발상같습니다. 단군 개국년도는 여러 설이 존재하며, 당요 즉위 25년, 또는 50년 등이다라는 설이 있으나, 이는 우리나라의 대종교에서 시작된 것으로, 삼국유사와 년대와 같다고 보아지는데, 저의 생각은 이와 다릅니다. <단군은 곧 당요이다>라는 것이 제 주장이며, 이것은 혈통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당요의 아버지는 제곡고신씨로 고구려의 시조입니다. 제곡고신씨의 할아버지는 소호씨이며, 소호씨의 아버지는 바로 헌원입니다. 이러한 혈통으로 보면 "당요는 곧 단군이다"라는 것이 됩니다. 원전(대륙이나 우리나라에 현존하는)은 기록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 작성자 13.11.15 01:37

    당요씨가 곧 단군이라면...
    모화사상엔 따라올 자들이 없었던 조선사가들이 당요씨와 단군을 그리 분리해 기록했을리 없다 봅니다.
    고구려 혈통이 재곡고신설...소호금천씨 설이...
    오히려 후대 조선사가들의 모화사상에 의해 은근슬쩍 껴든 내용은 아닐까도 검토해야 한다 보입니다.

  • 13.11.14 19:57

    또 단군에 대한 여러 기록은 <대종교에 의한 것이 진실화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전설화"가 되어버렸다고 생각됩니다. 실제 단군과 관련된 기록은 아주 희귀할 정도인 것을 생각해 보면, 의도적으로 기록들을 파손시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광서 31년은 1906년이며, 명치 38년은 1906년>입니다. 우리나라는 1910년(명치 43년)에 합병이 되었으니, 잘 생각해 보시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됩니다. 무슨 말씀인지 충분히 예견이 됩니다. 그러나 원본(님께서 참고하신)의 오기도 있을 수 있으므로 여러가지 참고사항을 더 추적해 보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작성자 13.11.15 01:32

    그러게여 1년 오차가 있어 1906년 같은데...
    광무9년이 ...떡허니 1905년 을사조약 때라 나온 자료들 땜에 헤깔렸습니다.

  • 13.11.15 19:53

    문무님의 의견과 같습니다.
    요임금이 우리의 조상인데 일본놈들이 지들 조상을 단군으로 만들어 버리고서
    그 기록을 우리의 역사에서 심어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해방후에
    일본놈들이 환단고기를 자기들의 고대사라고 번역해서 역사 왜곡을 했던 것을
    우리나라 사학자들이 삼국유사(일본놈들이 조작해 놓은)를 보고서 또 그렇게 배워서
    조선의 역사라고 난리를 치면서 번역에 열을 가했던 것이 오늘날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실록에도 약간만 언급이 되어 있고 결국 일본놈들은 우리가 자기들의 속국이라는
    것을 심어주기 위해서 만든 역사인데 우리는 속은 거죠. 실지로 단군이라는 것을 빼버리고 역사를 보면
    쉽습니다.

  • 13.11.15 20:00

    율곤 선생님도 잘 나가시다가 애써서 단군으로 엮으려고 하다보니 오류가 나오기 시작했죠.
    일본놈들이 기이는 건드릴 수 없으니 그 다음에 조작질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임진년인데 정사년에 등극을 한 것으로 나오죠. 최남선이 이걸 보고 가짜 같다 라고
    주석을 달앗죠. 이는 일본놈들이 조작해 놓은 것을 알지 못 했을 겁니다.
    동시대에 나온 삼국사기에는 단군이라는 말이 한 자도 없습니다.
    하지만 단군을 가리키는 말은 나옵니다. 단어 자체가 다르죠.
    삼국사기는 외국에 복사본이 있기에 조작질이 힘들지만 삼국유사는 없기에 조작이
    가능했던 겁니다. 고조선이라는 것을 넣고 애써서 같은 시기인 요임금 때 단군을 년도도
    틀리게 넣죠.

  • 13.11.15 20:13

    날까로운 지적입니다. 사실 식민지 통치기간에 "애국적 학자니 뭐니 하는 분들"을 보면, 식민지사관을 확고하게 만드는 것에 동조한다거나, 조선사를 더욱 헷깔리게 만든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애국적인 분이라고 하시는 분들의 주장이나 그 책을 보면, 반도사관과 무엇이 다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거든요,.

  • 13.11.15 20:01

    헌원황제는 역사통설(반도사관과 현재 역사해설)에서 중국인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헌원황제와 전욱고양씨(진나라 선조), 소호금천씨(신라의 선조), 제곡고신씨(고구려 선조), 제곡고신씨의 아들 "당요"등은 모두 <동이>로써 조선인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현 중국측에서는 자기들도 "동이계"라고 억지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4-6천년 역사시간에서 25년이나 50년 정도는 무시해도 관계없을 정도로 미미한 시간입니다. 제 사견입니다만 "당요"와 "단군"은 동일인이다라고 여깁니다. 이것을 후대의 사가들이 조선을 반도로 차버리면서 분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포대사님의 말씀에 아주 의미있는 설명이 있군요.

  • 13.11.15 20:10

    환단고기는 원래 일본인 학자가 처음 번역하여 소문이 나는 바람에 국내에서 임승국이란 분이 번역과 해설을 하여 나왔는데, 그 책은 제가 여러 번 읽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번역과 해설이 되었습니다. 환단고기 또는 한단고기라고도 합니다. 조선사를 조선인에 의한 조선민을 위한 역사로 만들려 한다면, 과거 우리가 배웠던 지식은 모두 버려야 가능할 것입니다. 기존 지식을 생각하고 새로운 지식을 넣으려다 보니 그 충돌로 인한 오류가 발생하지요. 따라서 우리들은 여전히 헤매게 됩니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지식은 깡그리 지우고 새로운 역사지식을 각인시켜 나가야 비로소 조선사가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작성자 13.11.15 22:10

    제가 위 글에 인용한 단종시기의 왕조실록이 후대의 조작이라면...
    그 연대가 환단고기나 대종교것과 맞아야 하는데...300년의 오차가남은...
    오기는 있을 수 있어도 조작은 아닐것이란 반증도 됀나 봅니다.
    요임금이 동이족이든...제곡고신 소호금천이 동이족이든...
    요임금과 다른 단군임금은 있었다고 전 예상합니다.
    모든 고사서들이 다 그러나 아직은 그리 믿을 수 밖엔 없어 보입니다.
    요임금이 바로 단군이라면 역사연구 한방에 끝나는 쾌거겠지만...그리 녹녹치가 않아 보이비다...^. .^

  • 작성자 13.11.15 22:16

    단군왕검 이전 환웅이 있고...그 분은 환인의 서자(庶子)라 했습니다.
    그럼, 환웅의 나라는 환인의 환국(桓國) 방계집단 역사란게 뻔한 겁니다.
    그럼...환인의 직계문명은 어디냐가 문제인데...유독, 당대 년호기준을 요임금을 자꾸 내세움으로 봐서...
    요임금이 환인의 환국(桓國) 직계 적통이요...환웅을 이은 단군은 그 방계였다 보이는 대목입니다.

  • 작성자 13.11.15 22:20

    엄연히 단군신화에도...
    환인의 서자(庶子)인 환웅이 환인에게서...
    천부삼인(天府三印)...즉, 통치에 필요한 옥새를 받아왔단 얘기가 기록됐고...새로운 신 영토를 배정받은게 나오는데...
    후대 사가들이 오히려 민족주의적 해석으로...
    서자인걸 자꾸 못들은척 하고...제후로서의 세가지 옥새를 받아 가지고 온걸...
    뭔 철학적 종교적 의미로 해석하면서...역사연구가 어려워진다 봅니다.

  • 작성자 13.11.15 22:32

    환인이 다스리던 동서 2만리...남북 5만리의 환국(桓國)의 중심인 천산일대가 바로 중국(中國)인 셈이고...
    직계가 아닌 서자인 환웅이...동쪽에 봉지를 받아 동이를 다스리다가...단군시대 단군왕검이 개국하고...
    그 시대가 환국의 경기지역 중국임금 요임금 즉위 25년 때다...
    이렇게 해석하는게 더 부드럽지 않을까 싶습니다.

    삼황오제가 괸히 회자돼는게 아니라...
    그들이 바로 환인제국의 적통인 중국직계들이라 중요하게 따진 것이고...
    이중 동이지역 치우의 구리국이 한번 도전했고...단군문명도 또 도전해서...
    결국, 천산유역(中國)... 백악산 아사달을 차지했다 보입니다.

  • 작성자 13.11.15 22:40

    역사를 보면...환국은 틀림없이 있고...
    배달국은 신개척지를 봉 받았다면서도...그 환국이 배달국이나 단군조선에 흡수됐단 말도 없습니다.
    고로, 역사에 나오는 동이의 서쪽 중국이란 삼황오제의 그 문명이...바로 환국의 중심부 문명 얘기가 아닐지 전 예상해 봅니다.
    고로, 삼황오제는 중국인이자 환국 직계이지...방계인 동이족은 아닐것이란 제 생각입니다.
    물론, 현 짱께족은 동이족도 중국(환국의 중심)족도 아닌 서남아 잡족들이겠고여...
    단군조선 이후론...
    그 중국지역인 환국의 중심지는 단군조선이 자리잡았다가 서역 주나라 진나라에 빼앗겼다를 반복했다 보입니다.
    고구려전성기는 이 지역을 차지한 천자국이겠고요...

  • 13.11.15 23:09

    서자(庶子)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되느냐 ...이것부터 규명이 되어야 할것 같습니다. 서자(庶子)=방계라 함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홍익학당의 강의 내용 참조)

  • 작성자 13.11.16 01:06

    후대의 후손들이 직계조상을 높혀서 하는 해석이...오히려 역사의 진실에 다가가는데 방해가 됀다 봅니다.
    그냥 역사서 그대로 서자로 보고...환인의 적통은 요임금 정도로 보는게 역사가 쉽게 풀리 수 있다고 봅니다.
    서자면 어떻습니까...나중엔 다 그 동이 서자들이 천자가 돼는 건데여...ㅡ. .ㅡ

  • 13.11.15 23:11

    위의 문무님과 마포대사님의 글을 보건데 이른바 한단고기의 의한 단군의 역사가 중국 요순의 역사사에 편입된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라는 것인지요...?
    단군의 역사와 요순의 역사가 중첩된점이 있고 하나의 역사일 가능성은 충분합니다만 진서(晉書)에 비리국 양운국 구마한국 일군국 등이 나오는것을 보면 한단고기의 12한국의 내용이 거짓은 아니다라고 생각됩니다.
    한단고기의 출발이 일제에 의한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한단고기의 지역적 배경이 현 만주와 한반도에 비정된것이라 생각되고, 이는 일제가 고조선의 강역을 현 만주와 한반도에 국한시키려는 의도로 출발했다 보여집니다.

  • 13.11.17 09:34

    환단고기가 모든 점을 다르게 쓸 수는 없었을 겁니다.
    아마 그렇게 썼다면 사장 되었을 가능성이 높죠.
    올고 그름을 가리기 힘든 부분은 독자적으로 쓰고
    명확한 것은 원전을 배끼고 그랬을 겁니다.
    그들의 목표는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자기들의 주장을 높여
    진실을 만들기 위함이니 중요한 것만 취하면 되기 때문이죠.
    그들은 분명 일본의 역사를 더 소급 적용하려고 했을 겁니다.

  • 13.11.15 23:14

    ‘과거의 역사지식은 깡그리 지우고 새로운 역사지식을 각인시켜 나가야 비로소 조선사가 보인다’ 라는 문무님선생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그것은 또한 기존의 지명들(예를 들면 옥문관, 백룡퇴, 상곡, 공동산, 등등)도 새로운 검증이 필요하단 생각입니다.
    기존의 지명들을 쫒아가다보면 역사의 사건들을 하나로 꿸수가 없어 마치 사막속에서 길을 잃는것과 같다는 생각입니다.

  • 13.11.15 23:16

    북방 유목민족이 남방 농경민족으로 처 내려오는 길은 두군데로 보여집니다. 하나는, 현 신강성쪽에서 하서회랑을 통하여 현 서안과 낙양인 중원지방으로 오는 길과, 현 내몽골에서 산서성으로 곧장 내려와 현 서안을 위협하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실제 현 만리장성도 그렇게 위치해 있고요.. 그런데 본 사이트의 글들을 보면, 대부분 서북쪽(신강성쪽)과의 관련된 글들이 주로 보이지 현 내몽골에서 산서성으로 곧장 내려오는 침략(전쟁사)의 글은 별반 없는것 같습니다. 좀 아쉽더군요....

  • 작성자 13.11.16 01:02

    동감입니다.
    틀림없이 동북으로부터의 침략사도 나오는데...너무 서북에만 치중한 감도 있습니다.
    평요고성쪽도 상당히 중요하다봅니다.

  • 13.11.17 08:33

    환단고기의 기록으로 보면 웅족은 서쪽에 있고, 상대적으로 동쪽에 있던 호족이 웅족에게 밀려서
    도태가 됩니다. 이게 환웅이 지배를 해서이고 여기서 단군이 나왔다라는 민족 혼합설이
    환단고기입니다. 그 예로 중국에서는 안 하던 주장들을 20여년 전부터 하는데요.
    그게 고아시아족이라고 하는 주장들입니다. 일명 퉁그스계열 족을 시발점으로 해서
    고아시아 인들이 원래 호족이고 현 인류가 웅족이다. 라고 주장을 하게 된 것이고
    그 바탕에 웅이국의 왕인 소전의 후손인 황제가 정사에 승리하여 정권을 잡은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주장을 하는 것이죠 동북공정의 시발점인 샘입니다.

  • 13.11.17 09:40

    @마포대사 고아시아 족이라고 들어 보셨는지요?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아실 겁니다.
    고아시아 족들이 아시아의 동북에만 존재합니다.
    근대에까지도 상식이었기에 환단고기에도 그렇게 기록했던 겁니다.
    동북에 살고 있는데 그들이 고대 아시아 민족이라고 부릅니다.
    즉 원주민들이요. 상식적으로 보아도 서쪽에서 밀고 와서 동북으로 쫓아낸
    것입니다.

  • 13.11.15 23:17

    현 요령성(요서지방)의 홍산문명이 단군조선의 문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것이 많이 밝혀지고 있다 합니다. (홍익학당의 강의중에..) 하물며, 현 중원지방의 유물 유적이 제 빛을 본다면 조선의 참 역사는 반드시 밝혀지리라 생각됩니다.

  • 13.11.17 08:38

    솔직히 아무런 근거 없습니다. 단, 중국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꺼라고 억지로 우기는 것 빼고는 없죠.
    생활 풍습 어느 하나 독자적인 우리 풍습과 같던가요? 중국에서는 자기들 것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고대 문명은 일어섰다가 망했다가 합니다. 만약 그 문명이 어느 한 나라의 전통이라면 그 후대들도
    그대로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이질감이 있죠? 그것은 곧 망한 족속들의 선조라는 겁니다.
    마치 잉카가 망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잉카의 후손들이 아닌 것 처럼 말이죠.

  • 13.11.17 11:35

    여러분들의 좋은 의견, 잘 보았습니다. "서자"란 말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서자"와는 당시 사회에서의 "서자"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당요는 제곡고신씨의 세번째 부인인 진풍씨의 경도(이름)에 의해 태어났는데, 제곡고신씨가 죽자 네번째 왕비인 "추자씨"의 여인인 상의에 의해 태어난 "지"를 "帝(제)로 옹립했으나, 폐위되고, 동생인 "방훈"이 帝(제)가 되었는데, 이 분이 바로 "당요"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당시 사회의 제왕가에서는 적자니,서자니 하는 분별이 오늘날과는 전혀 달랐다고 보아집니다. 또 "서자"는 "방계"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 13.11.17 17:00

    우리가 서자 하면 조선시대의 서자로 생각들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전 시대도 같은 기준으로 보는 견해가 있어요.
    물론 조선시대 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 고대에도 심하기는 했을 겁니다.
    그런데 방훈은 서자가 아니라 적자 아닌가요? 서자라는 것은 결혼 외의
    태어난 자식을 서자라고 하지 않나요? 조선시대에 첩실의 후실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을 서자라고 하잖아요. 태조의 경우 자식을 3명이나
    낳고서 나중에 정실에게서 얻은 아들에게 대권을 물려주잖아요.

  • 13.11.17 11:36

    수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13.11.17 11:56

    @마포대사 글쎄요. 제곡고신씨는 첫째, 둘째, 셋째, 넷째순으로 네 명의 부인을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서자"의 일반적인 뜻은 "본부인(정실)" 이외의 여인에게서 태어난 자식을 말합니다. 적자란 정부인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을 말하는 것이구요. 따라서 당시의 사회상과 관계가 깊을 것이란 말을 한 것입니다. 후궁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이 대룰 잇는 경우도 굉장히 많은 데, 항상 정통성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왕들은 정통성을 주려고 별의별 짓을 다했습니다. 당시의 사회상과 깊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13.11.16 19:07

    삼황오제는 조선의 역사이며, 이를 왜곡함이 환인이니, 단군이니 하는 것으로 각색되지는 않았을까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환인이니, 단군이니 하는 것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환인천황이니, 단군왕검이니 하는 옛 왕조의 군주들이 "별도"로 존재했다면 결국 그 후대의 조선은 대륙의 동해 바닷가 또는 현 하북성과 북방삼성 그리고 반도에 있었던 왕조일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우선 중요하게 생각해 볼 것은 대륙의 한족왕조는 존재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위 <한족왕조라는 것들이 자꾸 머리속에서 맴돌다보면, 결국 조선은 반도왕조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 13.11.16 19:14

    그러나 옛 원전에서 "한족 왕조"라는 정체는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 스스로 조상이라고 우겨대던 삼황오제 역시 "동이계" 라면, 한족 역시 동이계일 수밖에 없는데, 한족이란 종족 자체가 소수민족으로 물가를 따라 살던 소수민족이란 점입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한족왕조를 생각한다면, 조선 역시의 진실은 찾을 공간이 없습니다. 단군이 카자흐스탄에 있었다는 등....이런 주장은 대륙과 중아지방이 조선이었다는 점을 생각치 못하는 것에서 나오는 오류입니다. 카쟈흐에서 단군시절의 제도, 유사성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당연히 단군통치시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니 당연한 것이겠지요.

  • 13.11.16 19:19

    단군통치를 받았던 지역에서, 단군통치시대의 제도나 유사한 언어, 풍속의 유사점이 발견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입니다. 반도에서 카자흐.........대륙과 카자흐..........어느 것이겠습니까? 당연히 대륙의 왕조였던 "조선"의 영향으로 이런 것들이 발견되는 것이지요. 참 답답한 일들이 한 두가지 아닙니다. 무슨 큰 발견을 한 것처럼 떠들지만 그 내용을 보면........보지 않은 것만 못한 경우가 수두룩하니........반도조선을 생각하니 이런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아집니다.

  • 13.11.17 09:52

    저는 한 왕조의 존재를 인정하는 쪽입니다.
    한고조 유방과 기자조선 마지막 왕 애왕의 휘호는 둘다 準 입니다.
    둘다 같은 시기에 진나라에서 도읍합니다. 이게 가능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둘중 하나는 각색이 되었다고 봅니다.
    애왕이 마한을 다시 세운 왕입니다.
    우리 사관은 마한에서 고구려가 나왔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같은 분입니다. 같은 땅 같은 시기 같은 휘호
    그리고 대만에서 발행하는 사기 사전에는 유방의 아들이 위만이라고 나옵니다.
    유방의 아들은 혜제조. 무후가 섭정을 해서 4년 보위에 오르지만 망하죠.
    그리고 무제 때 까지도 한이 아니니 다른 나라로 불리웁니다. 6대 째 비로서
    한으로 국호를 바꿉니다.

  • 13.11.17 11:46

    "漢(한)"에 대해서 이중재 선생님은 그렇게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사소한 의견의 차이이긴 합니다. 저의 사견은 "한족의 한왕조"는 <고구려(마한)를 각색한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제가 대륙설을 주장하면서부터 일관된 것인데, "한왕조"의 개국자인 "유방"과 그의 어머니인 "온"! 이 분은 고구려인이 분명하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또 유방이 초왕 항우와 결전을 벌 일때, 맥(후의 고구려)에서 강력한 기마대를 보내 지원합니다. "여 황후" 역시 고구려인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임을 볼 때, "한 왕조"는 고구려를 동북방으로 밀어내기 위한 각색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작성자 13.11.17 16:26

    어짜피 고구려와 한(漢)의 낙랑과 현도는 영토가 겹치니...같은 영역의 문명였다 볼수도 있겠고..
    그 관련 인물들도 겹친다 보일 수 있으나...
    그 통치 주체는 분명 다르게 나오니...별도라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지, 대 제국을 한(漢)이라 하기보단...어느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한 한(漢)이고...
    이는 한(漢)의 상대적 동쪽이나 어쩔땐 오히려 서북였단 동이족과는 다른 문명였다 보입니다.

  • 작성자 13.11.17 16:31

    조선사 내내...고구려를 영토적 전대국으로 하면서도...
    한(漢)을 더 존숭하려 의도하고...고구려 영토였던 북방문명을 오랑케라 하고...
    이런 정황으로 봐선...한(漢)은...
    고구려보단 그 적국이던 당나라와 가깝고...그 당나라를 고구려보다 더 사대한던 신라의 영향과...
    상당수가 신라인들였던 왕건고려의 영향으로...자꾸 한(漢)과 고려&조선을 어떻게든 연관지으려는 후대 조선사가들에 의해..역사가 더 애매해 진것은 아닌가도 예상합니다.

  • 13.11.17 22:53

    단지 저의 생각입니다만, 조선조 말엽 이른바 청(淸)나라로 갔던 연행사들의 정확한 루트를 찾는다면 조선의 주요 영역이 어디였는가는 밝혀지리라 봅니다. 연행사들은 어디에서 어디로 갔을까요...?
    많은 분들이 나름대로 그 루트를 추정합니다만 실제로 '여기서 거기로 갔다' 라고 말하는분은 별로 보질 못했읍니다. 가장 근세 조선의 일이고 또 많은 기록이 남아있으며 유물 유적도 많이 남아있을것이기에 어쩌면 북경(연경)찾기와 그 루트를 알기는 다른 역사적 사실을 아는것에 비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대륙조선의 실체를 밝히는 것은 어렵지 않을것입니다.

  • 13.11.17 23:11

    제 추정으로, 화음시(화산 북쪽)에서 황하를 건너 산서성 태원시 쪽으로 갔읍니다. 이 루트에는 봉황성(현 중조산) 온정평(현 융지시의 온천) 신성(현 상펀시 신성구) 청석(현 면산근처의 청석)등 이 있으며 가장 결정적인것은 북경과 관내의 암석이 모두 흰 돌로서 그것은 연행록에 보이는 연척이라는 옥돌로 바로 백두산의 흰 돌입니다. 난하의 흰 조약돌은 어디에서 찿을수 있을까요... 아마도 산서성 중부에가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 13.11.17 23:17

    기주는 천하지 중주요, 서하지동, 동하지서 남하지북 이라 했는데 그 곳은 어디겠읍니까...? 바로 지상의 박물관이라는 산서성이 아닐까요...

  • 13.11.17 23:25

    석주집 별집 제1권 칠언율시(七言律詩)
    <사상(使相)의 〈통군정(統軍亭)〉 시에 차운하다 2수>

    황하의 근원 아스라이 음산에서 나와서 / 河源迢遞出陰山
    물줄기 이 정자 앞에 이르러 굽이를 이룬다 / 流到亭前曲作灣 ~~~~후략~~~~
    여기서 보이는 '이 정자'는 통군정이며 황하의 물줄기가 굽어 나간곳이라 합니다. 바로 화산앞의 황하입니다.

  • 작성자 13.11.18 02:44

    제 생각엔여...
    구한말기 태평천국에 밀린 대륙조선이 현 북경(경성)으로 몰렸을 시기의 상대적 서경이자 이동됀 평양은...
    맑은영혼님이 말씀하신 평요고성이 맞다 보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엔...
    대륙조선 동북도인 함경도 어느 성도요...발해나 거란, 금나라,몽골의 동부지역 도시같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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