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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 제2회
* 본 회에서는 『팔상성도로 본 부처님 일대기』는 분량이 많은 관계로 2회차에 나누어 게재하겠습니다. 이번에는 1 ~ 4( 도솔래의상 ~ 유성출가상 )까지 올립니다.
Ⅰ. 팔상성도八相成道로 본 부처님 일대기一代記
1. 도솔래의상 兜率來儀相
2. 비람강생상 毘藍降生相
3.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4.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5. 설산수도상 雪山修道相
6. 수하항마상 樹下降魔相
7. 녹원전법상 鹿苑轉法相
8. 쌍림열반상 雙林涅槃相
단양 구인사 설법보전 說法寶殿 천태종 제3대 김도용 종정 "나를 내려놓고 기도해야"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 가운데 탄생, 출가, 열반등을 여덟 폭의 그림으로 나타낸 것을 팔상도八相圖라고 합니다. 또 일대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점이 깨달음의 순간이기도 하며,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인연이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으로 부처님의 일대기가 곧 깨달음으로 연결되므로 팔상도를 팔상성도 八相成道라고도 부릅니다.
팔상도는 사찰의 팔상전八相殿이나 영산전靈山殿 내부에 많이 봉안되는데, 벽화로서 법당 외벽을 장식하는 소재로도 자주 등장합니다. 각각 ① 도솔래의 ② 비람강생 ③ 사문유관 ④ 유성출가 ⑤ 설산수도 ⑥ 수하항마 ⑦ 녹원전법 ⑧ 쌍림열반의 여덟 장면입니다.
이 여덟 장면은 부처님께서 어떠한 인연으로 세상에 태어나셨으며, 부처님의 성장과 수행과정, 중생제도와 열반들 많은 사건들 가운데 주요한 사실만을 간추려 놓은 것입니다.
1. 도솔래의상 兜率來儀相
도솔은 하늘세상 도솔천兜率天을 일컫습니다. '도솔래의'란 도솔천을 떠난 부처님께서 마야왕비의 몸으로 잉태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도솔천은 부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시기 전에 머물던 곳으로, 그곳에서는 호명이라는 이름으로 수행하시며 부처님이 될 인연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부처님에게 호명보살이란 이름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담에는 수 많은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부처님께서도 과거 오랜겁 동안 최상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셨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이름으로 등장하셨습니다.
배고픈 나찰귀에서 자신의 몸을 바치는 조건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게 된 설산동자, 과거불인 연등부처님에게 꽃을 바치고, 또 진흙길에서는 묶었던 머리를 풀어 펼치며 밟고 가시기를 청한 선혜동자등 부처님의 전생은 수행과 자비의 실천을 몸소 보이시던 진정한 보살이었습니다.
끝없는 수행의 결과로 마침내 부처님이 되시던 때, 그 직전의 모습이 바로 호명보살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도솔천에 머물던 호명보살에게 수 많은 하늘의 신들이 찾아왔습니다.
"호명보살이시여,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제 부처님이 되어 주십시오." 이렇게 천신들이 간곡하게 청하자, 드디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갈 것을 결심하고, 정반왕이 다스리던 카필라국에 태어나기로 정했습니다. 당시 카필라국의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 숫도다나)과 마야(摩耶, Māyā) 왕비에게는 20년이 넘도록 왕자가 없었습니다. 왕자가 태어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느 날, 마야왕비는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왕자를 가지게 될 태몽이었습니다. 이 때 호명보살이 사바세계로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천상의 모든 행복을 다 버리고, 보살의 지위마저 내려 놓으며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인간 세상은 온갖 괴로움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천상의 세상은 너무나 행복한 곳이기에, 오히려 그곳의 중생들은 힘들게 수행을 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나쁜 세상이라고 불리는 축생, 아귀, 지옥 같은 곳의 중생이 수행을 한다는 것도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오직 행복과 불행이 함께 있는 인간 세상의 중생에게 진리를 수행하는 길이 열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도 인간의 모습으로서 세속의 모든 쾌락과 장애를 벗어나 능히 깨달음을 이루어, 모든 중생은 마침내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참모습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이 모든 번뇌와 괴로움을 참고 이겨내야만 하는 감인堪忍의 땅, 사바세계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2. 비람강생상 毘藍降生相
해산할 날이 가까워지자 마야왕비는 당시에 풍습에 따라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긴 행렬은 카필라 성에서 멀지 않은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잠시 쉬어가게 되었습니다. 봄기운 완연한 4월의 동산에는 온갖 나무와 들풀마다 피어난 꽃과 향기로 모든 이들의 심신을 달래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동산의 이곳 저곳을 거닐며 봄날의 여유를 만끽했습니다.
그때 동산을 거닐던 마야왕비는 한 나무 아래 걸음을 멈추었고, 무지개처럼 길게 드리운 나뭇가지의 끝을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 하늘에서는 눈처럼 꽃비가 흩날렸습니다. 때마침 출산의 느낌을 받게 되자, 시녀들은 급히 출산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왕비는 어떠한 산통도 느끼지 않고, 서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아기를 낳았습니다. 사람들은 마야왕비에게 아무런 산통도 없이 출산하게 한 나무를 근심을 없앤 나무라는 의미로 무우수無憂樹라고 불렀습니다.
비람毘藍이라는 말은 룸비니(Lumbini, 藍毘尼람비니) 동산을 뜻합니다. 옛날 인도 말을 소리 나는 대로 한자로 옮긴 음역音譯으로써 비람이라 적은 것입니다. 따라서 비람강생이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셨다는 의미입니다.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난 아기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는 우랑차게 외쳤습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내 오직 존귀하나니, 온통 괴로움에 쌓인 삼계三界 의 세상을 내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
*삼계 : 불교의 세계관 가운데 하나. 삼유(三有). 미혹한 중생이 윤회(輪廻)하는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세계.
아기의 걸음마다 커다란 연꽃이 피어올라 발을 받들었으며, 하늘과 땅은 진동하였고 온 세상이 밝게 빛났습니다. 하늘에는 오색구름이 피어 오르며 천신과 동자들이 축하하였고,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아홉 마리의 용이 물을 뿜어 아기를 깨끗하게 씻겨 주었습니다.
왕자가 때어난 지 닷새가 되자 정반왕은 여러 바라문을 초청해 왕자의 관상을 살피게 하였습니다. 나라를 이끌 왕자와 이 나라의 장래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왕자를 살펴 본 관상가들은 하나같이 "서른 두 가지의 모양이 잘 갖추어졌으니, 무력을 쓰지 않고도 전 세계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실 상입니다. 왕자님은 어떤 목적이든 다 성취할 것이고, 전륜성왕의 출현으로 이제 이 나라는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라고 아뢰었습니다.
* 전륜성왕轉輪聖王 : 인도신화에서 통치의 수레바퀴를 굴려, 세계를 통일, 지배하는 이상적인 제왕
이에 왕자의 성姓은 고따마(Gotama,瞿曇구담), 이름은 싯다르타(Siddhat-tha, 悉達多실달다)로 지었습니다.
이 말은 '온갖 성스러운 징조를 빠짐없이 갖추어 모든 것을 뜻대로 이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왕자가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 마야왕비는 인간세상의 짧은 수명을 다하고, 하늘세상 도리천으로 올라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왕자는 이모였던 마하빠자빠띠(Mahapajapau, 大愛道대애도)의 손에 의해 키워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당시 히말라야 깊은 숲 속에는 아시따Asita라는 선인이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오랜 수행으로 덕이 높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신통력으로 세상을 살펴보았더니 카필라 왕궁에서 찬란한 기운이 뿜어 나오고, 하늘의 천신들이 환희에 가득 찬 모습으로 왕자의 탄생을 기뻐하며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카필라국에 왕자가 탄생한 것을 알아차린 아시따 선인은 왕자의 얼굴이 몹시 궁금해 서둘러 궁궐로 향했습니다. 급하게 달려와 숨을 헐떡이는 그에게 정반왕이 물었습니다.
"아시따 선인이여, 무슨 일로 이리 급히 오셨습니까?"
"왕자는 어디에 계십니까? 저도 왕자의 얼굴을 뵙고 싶습니다." 아시따 선인은 왕비의 품에서 왕자를 받아 안고, 찬찬히 싯다르타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리고는 말없이 왕비에게 돌려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갑작스런 아시따 선인의 행동에 정반왕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선인이여, 어찌 그렇게 우십니까, 혹여 왕자에게 무슨 일이라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왕자는 결코 불행한 운명을 갖고 태어난 분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자님은 인간 가운데 가장 높은 분, 가장 뛰어난 분입니다. 궁궐에서 왕위를 잇는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어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출가하여 수행을 닦는다면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이익되게 하고, 중생을 연민하여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다만 저는 너무 늙었으니 왕자님이 최상의 법을 굴리기 전에 죽고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깨달은 이의 가르침을 듣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큰 불행입니다. 그래서 지금 슬퍼하는 것입니다."
정반왕에게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혹시 왕자가 출가할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걱정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3.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싯다르타는 어릴 때부터 여러 스승으로부터 온갖 학문을 모두 익히고, 병법과 무예를 익히며 차츰 전륜성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농경제農耕祭가 열렸습니다. 나라의 한 해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주요한 행사인 만큼 모든 왕족이 참석했고, 궁에서만 살던 싯다르타도 아버지와 함께 행사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성 밖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사실 아시따 선인의 말이 항상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던 정반왕은 싯다르타에게 출가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도록 온갖 좋은 것들로 왕자의 주변을 가득 채워두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어떠한 괴로움도 알지 못하는 천상의 중생들처럼, 오직 즐거운 세상만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농경제에 나온 싯다르타의 눈에 들판에서 힘겹게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몰골은 초췌하기 그지 없었고, 겨우 바지만 입은 채 쉼 없이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파헤쳐진 땅 위로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 다녔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새들이 날아들어 발버둥 치던 벌레들을 사정멊이 쪼아 먹는 것입니다. 쟁기를 맨 소는 농부의 채찍질로 등짝에 피가 맺혔고, 농부 역시 온통 흙 투성이로 힘겨워 보였습니다.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온 싯다르타는 농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힘든데 쉬었다 하시지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제 삶에 휴식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려면 쉴 틈이 없습니다 ..."
태자는 더 이상 농부를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긴 한숨을 쉬며 잠부나무 아래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백성들은 귀족의 횡포아래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구나. 이 미물들은 또 서로를 잡아먹고 있구나...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八相殿(좌)은 석가모니의 팔상을 그린 그림과 존상(尊像)을 봉안한 법당이다. / 석가팔상도 釋加八相圖(우)
머리가 온통 복잡해진 태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왕자는 이 사색을 통해 이때 선정의 첫 번째 경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나는 눈물과 고통을 초래하는 저런 탐욕에 사로 잡히지 사로잡히지 않으리라...'
싯드르타가 보이지 않자 신하들과 함께 찾아다닌던 정반왕은 커다란 잠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깊은 강물과 맑은 하늘처럼 깊고도 고요한 태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하였고, 정반왕은 숙연한 마음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지켜 본 정반왕은 오히려 왕자를 더욱 세상과 멀리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태자의 나이 열하홉이 되었을 때, 야소다라Yasodhara와 혼인을 시켰습니다.
야소다라는 꼴리야족의 공주였습니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반왕도 둘의 결혼을 축하하며, 계절마다 지낼 수 있도록 세 곳의 궁전을 지어 주었습니다. 각각의 궁전마다 연못과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으며, 온통 호화로운 것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봄이었습니다. 태자가 마부 찬나와 함께 궁전의 동쪽 문을 나섰다가 길 한가운데 서 있는 백발의 노인을 만났습니다. 거무죽죽한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졌으며,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한 몸으로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비참한 모습인가?"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마부 찬나의 대답을 듣고, 싯다르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겠지...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구나. 사람으로 태어나 어느 누구도 늙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나 또한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흥겨운 봄나들이였지만, 태자는 홀로 숲을 거닐며 생각에 빠진 채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다시 나들이를 나서던 참이었습니다. 남쪽 성문으로 길을 나서는데, 길가에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온몸의 종기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괴로움에 신음하며 더군다나 자기가 토해 놓은 오물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를 막고 피하기만 할 뿐 누구하나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괴로운 병이 들었는가?"
"살다보면 누구나 병이 들 수 있고, 병들면 저렇게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게 됩니다."
'저 사람 역시 지난 시절엔 나처럼 건강했을 것이다. 나의 젊고 건강한 이 육체도 영원한 것이 아니구나. 나 또한 누구하나 가까이 오지 않을 중병에 걸릴 수 있으리라. 어찌 저 괴로움의 신음소리를 저버리고,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풍류가락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에도 태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들이에서 돌아왔고, 더 이상 웃음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정반왕은 문득 아시따 선인의 예언이 떠 올라 불안해하며, 앞으로 태자가 성 밖을 나설 때는 미리 길가에 모든 것들을 눈에 띄지 않게 치워두라고 명했습니다.
하루는 서쪽 성문을 나서 뒷산으로 올라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장례행렬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죽은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늘이 무너질 듯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태자의 마음도 덩달아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슬픈 일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결국 내 곁에서 떠나가겠지 ...'
"찬나야. 사람은 모두 죽는구나. 세상엔 온통 고통의 아우성만 들리는구나. 그만 돌아가자."
이제까지 태자가 만난 늙고, 병들고, 죽는 일들은 결국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생겨나는 고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생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깊은 생각 속에서 정반왕이 있는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아바마마, 저에게는 네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태자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동안 나는 태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 주었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들어줄 것이니라."
정반왕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왕자가 수행자의 삶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삿다르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병들지 않고 영원히 건강한 몸을 주십시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세상에 누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냐."
"아바마마, 비록 제가 왕자의 신분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지만, 결국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얻고 싶습니다."
기어코 아시따 선인이 말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 정반왕은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온갖 방법으로 설득했지만, 오히려 태자는 더욱 세상을 멀리한 채 사색에 빠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스물아홉이 되었습니다. 정반왕은 집안에만 머물러 초췌해진 태자의 건강이 염려되어 가까운 동산으로 나들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마차를 탄 싯다르타 일행은 북문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싯다르타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린 듯 평온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수행자를 만났습니다. 맨발에 비록 허름한 옷이지만 당당한 모습이었고, 손에 든 것이라곤 흙으로 빚은 그릇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너무나도 강렬한 눈빛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출가하여 도를 닦는 사문이라 합니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싯다르타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행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바람처럼 걸림없이 다닙니다. 마치 새들이 두 날개만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저도 그저 옷 한 벌과 그릇 하나만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떠돌아 다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의 고통을 겪고 나니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굴레에서 머문다면 그 슬픔과 고통에서 결코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평안을 얻으려 친족과 벗들의 울타리를 넘어 출가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세상의 욕심에 물들지 않고, 모든 생명을 자비로써 대 합니다. 어떤 고통이 닥치더라도 슬퍼하자 않으며, 어떤 기쁨을 만나도 즐거움에 들뜨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엄히 다스리며 태산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해탈의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습니다."
사문의 대답에 싯다르타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궁으로 돌아 온 때자는 수행자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마침내 그토록 갈구하던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 날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알 수 없는 평온함으로 가득했습니다.
4.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어느 날 깊은 밤, 싯다르타는 잠이 든 마부 찬나를 깨워 말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부인 야소다라와의 사이에서 라훌라를 얻은 지 얼마되지도 않은 때였습니다.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을 때, 싯다르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라훌라Rahula가 태어났구나.' 속박을 얻었구나.'
태자는 수행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지만, 이제 라훌라가 태어나면서 큰 걸림돌을 얻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속박이면서도, 싯다르타에게 있어 문제가 되는 상황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없더라도 왕위를 이어 줄 혈통이 생겼으니, 홀가분하게 출가할 결심을 더욱 굳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음력 2월 8일, 싯다르타는 부귀와 권력, 일가친척을 모두 버리고 기약할 수 없는 성불의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태자의 출가를 돕기 위해 하늘의 여러 천신들은 궁궐을 지키던 모든 병사를 잠들게 했고, 애마 깐타까는 땅을 박차고 올라 성벽을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마부 찬나는 놀란 나머지 말고삐를 놓치고 깐타까의 꼬리만 겨우 잡은 채 힘껏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늙고 병들고 죽어야만 하는 삶의 고통, 많은 중생이 삶과 죽음의 고통속에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결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위 없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어머니와 야소다라를 찾지 않으리라.'
성에서 멀리 떠나 강가에 다다르자 멀리서 동이 뜨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너희들의 할 일은 끝났다. 그 동안 시중드느라 수고 많았다. 그만 깐타까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거라."
하지만 찬나는 태자의 앞을 막아서며 함께 왕궁으로 돌아가자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상투를 찬나에게 줘어 주었습니다.
"나를 대신해 이것들을 부왕께 전해주거라. 내가 나라를 버리고 수행하는 것을 못난 짓이라 너무 나무라지는 마시라고 전해다오. 지금은 생사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훗날 최상의 진리를 얻게 되면 돌아갈 것이라고 잘 전해다오."
"저만 궁으로 돌아가면 벌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왕자님 부디 제가 계속 모시도록 해 주십시오."
슬피 울며 애원하는 찬나에게 싯다르타는 마지막으로 신고 있던 황금신발을 벗어주며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왕비님과 야소다라에게 전해 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만나면 헤어짐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더냐, 나를 낳아주신 어머님도 얼굴을 뵙지 못하고 죽음으로 이별했는데, 너와 헤어짐이 없을 수 있겠느냐. 더 이상 부질없는 연민으로 괴로워 말라. 이제 여기서 헤어지자. 궁으로 돌아가 내 말을 잘 전해다오. 너에게 하는 마지막 부탁이다."
마침 지나가는 사냥꾼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화려한 옷과 사냥꾼의 허름한 옷을 바꿔 입고는, 그렇게 싯다르타는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출처] <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 제2회|작성자 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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