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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지리산의 계곡들
지정애 추천 0 조회 17 11.09.04 01: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리산의 계곡...칠선계곡 | 지리산의계곡들
2005.07.05

 

지리산 최대의 계곡미를 자랑하며 갖가지 형용사들이 동원돼 표현된다.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과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손꼽힌다.

 

지리산의 대표적인 계곡이면서 험난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 그리고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을 끼고 있는 칠선계곡은 7개의 폭포수와 33개의 소가 펼쳐지는 대 자원의 파노라마처럼 천왕봉정상에서 마천면 의탄까지 장장 18km에 걸쳐 길게 이어져 있다.


  지리산자락 가운데 유독 여성을 상징하는 지명이 가장 많으면서도 들어가면 갈수록 골이 더욱 깊고 날카로운 칠선계곡은 그 험준함으로 인해 숱한 생명을 앗아 가기도해 죽음의 골짜기로도 불릴 정도이다.

 

그래서 지리산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칠선계곡을 꼭 등반하고 싶어 하지만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특히 전문 산악인들도 히말라야등 원정등반에 앞서 겨울철 칠선계곡에서의 빙폭훈련등반을 거칠 정도로 겨울의 칠선은 고난이도의 등반 기술을 요구한다.

 

일반인들의 경우 칠선계곡을 등반하려면 여름철에도 계곡 아래서 천왕봉으로 향하는 루트는 피하고 주로 다른 코스로 천왕봉에 올랐다가 하산 길로 칠선계곡을 택한다.

 

칠선계곡의 총 연장은 18km이지만 등반코스는 추성동에서부터 천왕봉까지 14km이다.

 

지난해 까지만해도 버스편에 의한 마을까지 밖에 연결이 안됐지만 지금은 한시간 간격으로 추성동-함양읍간을 운행하는 버스편이 있어 등산로가 4km줄어든 셈이다.


 

   추성동에서 시작되는 칠선계곡 등반로는 전체적으로 계곡등반의 위험성 때문에 상당 구간이 계곡과 동떨어져 있다.

 

이는 등산로를 벗어나서는 마음놓고 발길을 둘곳이 없을 정도의 험난한 산세 때문이다.

 

추성동에서 등산로를 따라 곧장 가면 칠선계곡에서 처음 만나게되는 용소를 놓치기 쉽다.

 

등산로에 용소가는 길을 표기해 놓았으나 등산로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계곡으로 거슬러 가면 5백여m 지점에 위치한 용소는 산신제를 지낼때 산돼지를 집어 넣는 곳으로 전해진다.

 

계곡을 따라 2km남짓 오르면 두지동(두지터라고도 함)이 나오는데 등산로는 계곡길 떨어져 별도로 나있다.

 

주로 등산로를 이용하고 있는데 두지동은 마을 모양이 식량을 담는 두지같다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옛날 화전민들이 기거하던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담배건조장과 농막등만 남아 이 마을이 등산객들의 휴게소로 각광받고 있는데 담배 건조장이 분위기 있는 찻집으로 변해있어 눈길을 끈다.

 

두지동에서는 창암산 능선을 넘어 백무동으로 갈수도 있다.

 

한동안 계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등산로를 따라 가다보면 암반과 소가 어우러진 곳에 설치된 쇠다리를 만날 수 있다.

 

여기서 경사진 도로를 따라 힘겹게 오르다보면 잡초와 감나무, 호도나무가 어지럽게 뒤덮인 마을터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곳이 옛 칠선동 마을 터로 한때 독가촌이 산재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울창한 잡목 숲을 따라 조금 더 가면 계곡 물 소리는 아득한 발 아래서 들릴듯 말듯 하며 널따란 바위를 만날 수 있는데 여기가 전망좋은 쉼터인 추성망 바위이다.

 

여기서부터는 계곡등반이라고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의 험난한 산 길이 계속돼 추성동에서 4km 지점인 선녀탕까지 계속된다.

 

일곱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 지금은 돌과 모래등으로 메워 져 전설속의 선녀가 목욕했을 정도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초라하다.

 

선녀탕의 전설은 선녀에게 연정을 품은 곰과 선녀를 도운 사향 노루가 등장하는 동화같은 얘기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일곱 선녀가 이 곳에서 목욕하는 것을 본 곰이 선녀들이 하늘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옷을 훔쳐 바위 틈에 숨겨 버렸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맬때 사향 노루가 자기 뿔에 걸려있는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 주어 선녀들이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곰이 바위 틈에 누워있던 노루의 뿔을 나뭇가지로 잘못알고 선녀들의 옷을 숨겼던 것이다.

 

그 후 선녀들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 노루를 칠선계곡으로 이주 시켜 살게 했으며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아 버렸다고 한다는 전설이다.


 

   선녀탕에서 조금 지나면 1백여평 남짓한 소와 매끈한 암반이 있는데 칠선계곡에서 가장 빼어난 옥녀탕이다.

 

하늘을 뒤덮은 듯한 울창한 수림과 넓은 소가 연출해 내 는 옥녀탕의 전경은 위로 무명 소들과 이어져 깎아지른듯한 벼랑으로 연결되면서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벼랑으로 조심스럽게 오르다 보면 비선담이 또 색다른 모습으로 반긴다.

 

계곡등반의 묘미를 한껏 맛볼 수 있는 구간이다.


비선담을 지나면 다시 옛 목기막터가 있었다는 산죽밭을 지나 오른편 계곡으로 건 너게 되는데 계곡주변에 조그마한 바위굴이 있다.

 

과거 목기를 만들던 인부들이 지내던 곳으로 청춘홀이라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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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계곡...구룡계곡 | 지리산의계곡들
2005.07.06


구룡계곡은 용호구곡 또는 구룡폭포 라고도 한다.

 

이처럼 이름을 달리 하는 것은 옛날 음력 4월 8일이면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군데 폭포에서 한 마리씩 자리잡아 노닐다가 다시 승천했다는 전설 때문이다.

   용호구곡을 곡별로 소개하면 ..

제1곡 : 주천쪽 지리산 국립공원 매표소에 조금 못미치고 있는 송력동폭포를 1곡이라하며, 이곳을 흔히 약 수터로 불린다.


 

제2곡 : 매표소를 조금 오르면 높이 5m의 암벽에 이삼만이 썼다는 용호석문 이란 글이 음각되어 있는 절벽아래 흰 바위로 둘러싸인 못이 2곡으로 불영추라 한다.


 

제3곡 : 육모정에서 300m 지점에있는 황학산 북쪽에 암석층이 있는데 이 암벽 서쪽에 조대암이 있다.

 

이 조대암 밑에 조그마한 소가 바로 4곡인데, 학들이 이 곳에서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 해서 학서암이라 한다.


 

제4곡 : 학서암에서 300m쯤 오르면 유난히도 흰 바위가 물에 닳고 깎여 반들 거리고, 구시처럼 바위가 물살에 패여있다.

 

또 거대한 바위가 물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가 하면 건너편 작은 바위는 중이 꿇어 앉아 독경하는 모습같다 하여 서암이라고 하며, 일명 구시소 로 더 알려져 있다.


 

제5곡 : 구시소에서 1km지점에 45도 각도로 급경사를 이룬 암반을 미끄러지듯 흘러내린 곳에 깊은 못이 5곡인 유선대이다.

 

유선대 가운데에 바위가 있는데 금이 많이 그어져있기 때문에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때 신선들이 속세의 인간들에게 띄지 않기 위해서 병풍을 치고 놀았다 하여 은선병 이라고도 한다.


 

제6곡 : 유선대로부터 500-600m쯤 거리에 구룡산과 그 밖의 여러갈래 산줄기에서 흘러내린 게곡 물이 여기에서 모두 합류한다.

 

그 둘레에 여러 봉우리가 있는데 제일 뾰족한 봉우리가 계곡물을 내지르는 듯하여 그 봉우리 이름을 지주대라 하고, 이곳을 6곡이라 한다.


 

제7곡 : 지주대로부터 왼쪽으로 꺾이면서 북쪽으로 1km 지점에 거의 90도 각도로 깎아지른 듯한 문암이라는 암석층이 있는데, 이에 속한 산이 반월봉이고 여기서 흘러내린 물은 층층암벽을 타고 포말려 비폭동이라 하며 이를 7곡 이라 한다.


 

제8곡 : 비폭동에서 600m쯤 올라가면 거대한 암석층이 계곡을 가로질러 물 가운데 우뚝 서 있고, 바위 가운데가 대문처럼 뚫려 물이 그 곳을 통과한다 해서 석문추라 하는데, 바로 이 곳이 8곡이다.

 

경천벽이라고도 부른다.


 

제9곡 : 경천벽에서 500m 상류 골짜기 양켠의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있다.

 

멀리 지리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두 갈래 폭포를 이루고, 폭포 밑에 각각 조그마한 못을 이루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 두 마리가 어울렸다가 양쪽 못 하나씩을 차지하고 물 속에 잠겨 구름이 일면 다시 나타나 서로 꿈틀 거린 듯하므로 교룡담이라 하고, 이 곳이 바로 9곡이다.

  아홉 마리 용이 살다가 승천 했다는 전설과 함께 일명 구룡폭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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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계곡...도장골 | 지리산의계곡들
2005.07.06

5월의 철쭉 향연이 베풀어지는 세석가는 길목, 거림마을에서 오른편으로 인적 드문 길을 접어들면 도장골이 나온다.

 

촛대봉과 멀리 연하봉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크고 작은 골을 이뤄한데 모여 거림마을까지 이어지는 계곡이다.

 

지리산 억겁의 신비가 담겨있는 듯한 골짜기로 알려져 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웅장함의 계곡미를 자랑하며 일반의 발길을 좀처럼 용납치 않고 비경을 간직한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물론 지리산 대다수 계곡이 그러하듯 이곡 도장골 역시 등산인구가 급증하면서 차츰 차츰 사람들의 발길에 멍들어 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여름철 피서인파들은 이미 도장골 입구인 밀금폭포까지 진입, 천하제일의 피서지임을 찬탄하며 이곳을 찾은 현명함을 자랑삼아 늘어놓고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으니 멀지않아 다른 모습으로 둔갑할것은 명백한 현실이다.


  도장골은 거림마을 주민들이 식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놓고 있어 마을주민들은 등산객들이 이 골을 오르는 광경을 매우 싫어하고 있다.

 

주민들은 지리산 수많은 골짜기 가운데 이 골만큼은 자연 그대로 남아있기를 원하며 갖가지 경고성 문구를 등산로어귀에 내걸어놓고 있는데 이러한 일련의 조치 덕분에 그동안 잘 보전돼 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줄을 잇는 등산객들의 무차별적인 입산은 마을 주민들의 소극적인 보존책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으니 도장골의 운명도 여느 계곡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마을주민들이 자신들의 식수원인 도장골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소극적 으로 일관할 경우 도장골도 이제 더이상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남기 힘든 지경에 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을주민들이 등산로를 개방해 놓고도 말로만 출입통제를 외칠 뿐 특별한 제한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역시 분명한 입장 정리를 해주지 않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실제 도장골을 가려면 거림마을에서 왼쪽 거림계곡으로 가는 것 못지않게 쉽게 찾아갈 수 있는것은 물론 가는 길도 잘 만들어져 있어 한번 가본 사람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며 다른 동료들까지 동행해 오고 있다.

 

도장골의 묘미가 다른 어느 골짜기보다 더 압도적임을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는 길은 누구든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와룡폭포까지는 별다른 어려움없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편이다.


  계곡 초입부터 거대한 수량의 밀금폭포가 버티고 있으며 용소·웝용소를 지나다 보면 반들반들한 반석들이 푸른 녹음과 어우러져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두어시간 가량 오르면 깊은 계곡에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높이의 폭포수를 맞이할 수 있다.

 

이 폭포는 와룡폭포라 한다.


 

   대다수 등반객들이 주로 거림마을에서 와룡폭포 구간까지 산책정도로 등반하고 하산하고 있다. 이곳부터 다소 험난한 등산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와룡폭포에서는 촛대봉으로 올라 세석펑전까지 갈 수 있으며 멀리 연하봉까지 오를수 있으나 연하봉으로 가는 길은 거의 찾는 이가 없다.

 

전문 등반가들이 가끔 연하봉으로 가는 길을 찾아나서지만 쉽지는 않다.

 

촛대봉으로 가는 길은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쯤 시도할 만한 등산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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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계곡...거림계곡 | 지리산의계곡들
2005.07.06


거림계곡은 세석고원의 남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흘러내린다.

 

촛대봉과 영신봉 두 봉우리 사이로 광활한 고원지대를 형성하는 이 고산대의 세석과 남부능선 사이로 아기자기한 골을 만들며 거림마을까지 이어진 계곡이다.


  촛대봉과 연하봉 사이에서 만들어진 도장골과 거림마을에서 합류한 거림계곡은 변해 8km아래 곡점 까지 계속된다.

 

거림계곡은 깊은 물줄기와 울창한 원시림을 따라 세석고원까지8km 가량 계속되면서 중간 중간 남부능선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받아들인다.

 

거대한 수림으로 뒤덮인골이란 뜻의 거림계곡은 세석고원으로 가는 길 가운데 가장 가까운 길이다.


  거림마을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따라 8km 3시간 가량 걸으면 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만발해 있는 세석에 도달한다.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에서 시작되는 한신계곡 루트의10 km 의 거리보다 가까운 데다 등반로도 완만해 철쭉시즌이 되면 거림계곡은 수많은 등산객들로 붐빈다.

  등산로 입구 마을의 어지러운 현실과는 달리 등산로에들어서면 억만겁의세월을 두고 보내온 수림과 계곡의 청류는 모든 일들을 망각케 해준다.

 

계곡을 건너면 등산로를 가운데 두고 들어선 음식점 집뒤편에서부터 본격적인 등산로가 나온다.


  5월말까지 통행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문구와 함께등산로는 철조망으로 폐쇄돼 있지만 누구든 이를 개의치 않고 왼편 계곡을 이용 등산로를 잘도 찾아 오르고 있는게 현실이다.

 

형식적인 산화예방조치임을 단번에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등산로가 시작되자마자 노송과 어우려진 신선바위가 반긴다.


  그 옛날 고운 최치원선생이 넘 나들면서 시한수를 읊었을 법한 풍류와 운치가 있는 곳이다.

 

계곡 건너편에는 빼어난 경관을 방증하듯 굿당이 있어 거의 매일 치성객들이 밀려와 굿판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있다.

 

등산로는 싱그런 족음과 함께 호젓한 오솔길처럼 이어지며 길을 따라 계속되는 계곡에선 녹음을 찬탄하듯 우렁찬목소리가 한 편의 장엄한 교향곡 처럼 들려온다.


 

  아름다움과 싱그러움에 취해 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면 표고 "850m, 세석 5.5km, 거림2.5km" 지점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그리고 한쪽에는 "통행금지"표시를 해 놓았다.

 

이 곳 통행금지 표시의 길이 바로 남부능선으로 연결 되는 "자빠진 골"을 따라

한벗샘으로 가는 등산로다.

세석과 삼신봉을 잇는 남부 능선의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한벗샘까지 이곳에서 갈 수 있다.


 

거림에서 세석으로 곧장 가는 것보다 거림계곡으로 가다가 남부 능선을 일부 걸어 음양수샘을 거쳐 세석으로 가는 코스도 색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거림계곡의 단조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등산로나 이용객은 드물다.

 

거림 세석간 등산 코스의 묘미를 더할 수 있는 부분에서 오른편 계곡을 따라 깊숙한 수림을 따라 가다 보면 다소 험난하고 희미한 산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암층이 시작되는 시루봉이 나온다.

 

시루봉에서 왼편으로 보면 세석고원의 광활함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아기자기한 암층을 따라 붉게 물든 철쭉을 보며 촛대봉에 이를 수 있다.

 

촛대봉에서 바라보이는 세석의 묘미는 사뭇 대자연의 신비가 느껴지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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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계곡...단천골 | 지리산의계곡들
2005.07.06


지리산 화개동천 깊숙이 감춰진 곳에 단천골이 있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무대로 등장하기도 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장터로 전해지고 있는 화개장터에서 섬진강과 합류하는 화개 동천은 지리산 줄기에서 장장 50여리에 걸쳐 흐른다.

 

그 화개천 속에는 크고 작은 골짜기들이 수도없이 많다.

  신흥 마을에서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 화개 동천은 동쪽으로는 촛대봉과 영신봉 칠성봉 덕평봉 형제봉 그리고 삼신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하나로 모여 내려온다.

 

서쪽으로는 토끼봉과 불무장등 능선의 물줄기가 범왕골을 타고 내려와 신흥에서 모인다.

 

신흥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선유동천 단천계곡 대성계곡 빗점골 등을 거느리고 있다.

 

그 가운데 단천계곡은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선유동 계곡과 영험이 깃들여 있다는 대성계곡 사이에 있다.

 

인접한 두 계곡과 함께 단천골은 남부능선에서 서북 방향으로 흘러 내리고 있다.


  특히 단천골은 남부능선상의 박단샘과 삼신봉 사이에서 발원해 지계곡 이라기 보다는 독립된 계곡과 같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단천골은 그러나 화개동천의 수많은 골짜기 가운데 이렇다할 특징을 보이지 않고 평범한 지리산 계곡중의 하나로 조용히 남아있다.

 

하물며 지도를 펴놓고 보아도 인접한 선유동, 대성계곡등은 등산로와 함께 표기돼 있으나 단천골은 단천마을 이외의 표기란 찾아 보기 힘들 정도다.

 

그만큼 단천계곡은 지리산 계곡 가운데 일반에 덜 알려진 무명계곡으로 남아 오래도록 등산객들의 발길도 뜸했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단천계곡을 따라 등산을 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 보기 힘들었다.

 

요즈음엔 교통의 발달과 등산 인구의 급증에 힘입어 이 계곡을 찾는 등산객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는 평범 하면서도 찾아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고 매력이 넘치는 계곡의 정겨움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선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찾아나섰던 화개동천 어느 언저리에 있을 것으로 여겼던 청학동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하는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을 만큼 살기 좋은 느낌이 드는 곳이 이 계곡의 입구 단천마을 이다.

  단천골 가는 길은 화개천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 고운 최치운의 숱한 행적이 남아 있는 신흥마을에서 잘 포장된 오른쪽 도로를 따라 국립공원 간이 매표소를 지나 선유동 계곡 입구를 거쳐 단천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단천골 입구가 나타난다.

 

급커브 포장도로를 돌아서면 곧장 오른편에 콘크리트 도로가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2km 남짓 차량을 이용해 오르면 광활한 계곡과 함께 단천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병목처럼 좁다란 계곡안에 비교적 넓은 농경지를 끼고 남향으로 위치해 있는 마을 풍경이 그저 정겹고 풍성하다.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이렇게 큰 마을이 숨어 있으리란 생각은 쉽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해 보인다.

   단천교에서 시작되는 단천계곡은 다시 단천마을 입구에서 도로와 만난다.

 

계단식 논과 개간한 밭, 그리고 우리네 전형적인 농촌마을을 연상케하는 죽림이 어우러져 이곳이 바로 청학동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

  20여 가구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따사로운 해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리산에서 보기드물게 포근함을 느끼게 만드는 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계곡 언저리의 비교적 넓은 면적의 농경지와 산비탈을 이용해 벼농사와 가축사육, 송이와 산채를 채취하고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을 상대로 민박을 해주면서 삶을 영위해가고 있다.

 

예전에는 숯도 구워 화개장터에 내다팔기도 했으며 산 너머 덕산까지 이어지는 길목에서 오가는 길손을 위한 주막역할도 했으리란 짐작은 쉽게 간다.

 

단천골은 예부터 산청 덕산방면으로 가는 삶의 고갯마루 입구 역할을 했다한다.

  산을 사이에 두고 지척에 있으면서도 화개에서 덕산을 가려면 멀리 진주를 거쳐야 했던 탓에 단천골을 따라 삼신봉에 올라 거림골로 내려가 덕산장으로 가는 길은 우리네 선조들의 애환이 깃들여 있다.

 

단천골에는 그래서 계곡 곳곳에 집 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단천마을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마을 오른쪽 대밭을 따라 이어진다.

 

마을을 지나면 노송과 기암이 우뚝 선 쉼터가 나오는데 단천교에서 시작되는 계곡은 벌써 3km남짓 지난 위치다. 2km는 차편으로 왔기 때문이다.


 

   이곳 쉼터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널따란 계단식 논과 그 사이로 흐르는 계곡미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멀리 남부능선의 스카이 라인을 올려보며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금방 계곡과 만난다.

 

단천계곡에는 지도상에 표기될 만큼 명소가 많은데 그 첫번째가 단천교를 조금 지나 도깨비소가 있으며 단천마을에 이르기까지 독아지소, 종개지소 등 이름까지 특이한 소가 즐비하다.

 

이들 명소는 그러나 등산로와 떨어져 있어 찾아보기 위해서는 단천교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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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계곡...빗점골 | 지리산의계곡들
2005.07.06

빗점골이라는 숨은 골짜기가 있다.

 

지리산의 수많은 골짜기 가운데 아마도 가장 깊고 깊은 곳에 숨어있는 계곡으로 짐작된다.

 

그 빗점골은 또한 더 깊숙이 들어가면 절터골과 산태골, 온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더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 놓고 있다.

 

 "지리산의 빗점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남부군"이다.

 

한 시대의 획을 그을만한 빨치산의 행적이 가장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곳이 바로 빗점골이다.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했던 곳이기에 이곳 빗점골이 갖는 한국 현대사의 의미는 매우 크다 할수 있다.

 

이른바 빗점골 회의를 갖고 사령관에서 평당원으로 강등되며 그리고 그 자신이 최후의 순간을 맞이한 곳은 빗점골의 너덜지대로 알려지고 있다.

 

이 너덜지대는 "합수내 흐른바위"라고도 하는데 지리산의 가장 깊은 골짜기인 빗점골이 다시 절터골과 산태골을 빚어내는 곳이기도 하다.


 

   현지 주민들은 의신마을 상단부 계곡에서부터를 빗점골로 부르고 있는데 일부는 삼정마을까지를 의신계곡으로 부른다.

 

의신에서 삼정까지는 3km남짓한 거리로 비포장도로 변으로 좁은 계곡이 이어진다.

 

수만여평에 달하는 넓은 초지대를 염소방목장으로 활용하며 3가구가 살고있는 삼정마을을 지나 비포장도로는 2km남짓 더 계속된다.

 

이 도로는 벽소령까지 연결되는 작전도로를 마을 주민들이 보수, 정비한 것인데 이는 주민들이 고로쇠 수액채취와 수송을 목적으로 보수한 것이다.

 

아마도 멀지않아 삼정에서 7km지점인 벽소령 꼭대기까지 어떤 모양이던 도로가 정비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해 걱정이 앞선다.

 

이미 삼정마을에서 방목하는 염소무리들은 벽소령 꼭대기까지 오르내리며 그 활동 영역을 넓혀 놓고 있는 상태이고 보면 멀지 않아 차량까지 오르리란 추측은 어렵지 않다.

 

더욱이 산 너머 마천면 삼정에서는 등산객들을 상태로 지프형 택시가 10만원을 받고 벽소령 꼭대기까지 영업하고 있는 사실은 하동지역 역시 곧 인위적으로 보수될 것임을 예고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삼정에서 조금 지나면 차량의 진입이 더이상 불가능하고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는데 차가 언제든지 몇대씩 세워져 있다.

이 주차장 조금 못미쳐 계곡과 도로 사이가 꽤 넓은 곳이 있는데

사람이 살던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이곳이 바로 옛날 빗점마을이다.

빗점마을은 한때 지리산 화개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으나

지금은 모두 이주하고 집터만 남아 있다.

 

전란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면서 당국이 삼정 또는 의신마을로 집단 이주시켰다 한다.

의신마을에 사는 조봉문씨(39)같은 이는 어릴적 빗점마을에서 산 기억을 갖고 있 기도 하다.

빗점골은 빗점마을 위 주차장에서부터 본격 산행을 시작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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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계곡...연동골 | 지리산의계곡들
2005.07.06

섬진강변의 화개장터에서 화개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신흥마을이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따라 가면 범왕리 목통마을이란 곳이 있다.

 

물레방아 도는 지 리산의 전형적인 산간마을이다.
  

목통마을을 휘감고 도는 물줄기가 있는데 이 골짜기가 연동골(일명 목통계곡)이다.

 

골짜기 안에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연동마을이란 곳이 있었다고해 연동골이라 불린다.

 

지금은 오히려 목통마을의 이름을 따 목통계곡으로 더 알려져 있다.

 

연동골은 화개재 가는 길목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그 물줄기는 화개재를 좌우로해 두 봉우리를 타고 이어지는 두 줄기 능선에서 흐른다.

 

해발 1,360m의 화개재 동쪽으로는 1,533m의 토끼봉 정상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1,550m의 삼도봉이 솟아있다.


  토끼봉 정상에서 흘러내린 능선은 칠불사까지 내려와 목통마을에서 꼬리를 감춘다. 이 능선을 칠불사 능선으로 부른다.

 

삼도봉에서 뻗어내린 능선은 불무장등(1,446m), 통꼭봉(904m), 당재를 거쳐 황장산(942m)으로 이어진뒤 화개장터가 있는 탑리까지 내려와 섬진강에 닿는다.

 

불무장등 능선이라 부른다. 칠불사 능선과 불무장등 능선사이의 골이 연동골이다. 물론 연동골은 화개동천의 지류에 해당된다.

  화개동천은 크게 신흥마을에서 두 계곡으로 나누어지는데 왼쪽이 범왕계곡 연동골로 이어지며 오른쪽으로는 의신계곡(대성골, 빗점골, 절골, 산태골 등등)이 있다.

 

지리산 최대의 계곡답게 화개동천에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계곡미를 간직하고 이름까지 독립적으로 갖고 있는 지계곡이 최소한 10개에 이를 정도로 많은 지류를 거느리고 있다.

 

그 가운데 한 지류를 형성하는 연동골은 해안지방과 내륙 산간지방을 잇는 최단거리 역할을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화개재가 지리산 능선가운데 가장 낮은 해발인 만큼 넘나드는 길목으로 유용하게 활용된 것이다.

 

그 화개재를 기점으로 해 연동골과 내륙의 뱀사골은 훌륭한 길목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조상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져 있는 길이었던 셈이다.

 

경남과 전북의 경계지점 이기도한 화개재는 옛날부터 화개장터가 크게 번창한 탓에 그 지명이 화개재로 불렸다.

 

그런데 그 화개재의 지명이 지금은 이상하게도 "뱀사골 정상"이란 얼토당토 않은 지명으로 등장해 있다.

 

이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이정표를 세우면서 오랜 옛적부터 전해져 오고 있는 화개재 대신 "뱀사골 정상"으로 표기한데서 비롯됐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지명은 나름대로의 사연과 지형 지세,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해 명명 돼왔던 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구태여 말도 되지 않는 지명을 만들어 혼란스럽게하고 있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측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도 화개재에 가면 지리산 이정표에 뱀사골 정상, 반야봉 4km, 노고단 10km, 토끼봉 2km, 천왕봉 35km라고 표기해놓고 있다.


 

   뱀사골 계곡의 정상이란 의미의 뱀사골 정상은 우리 어법상 말도 안되는 소리다.

 

모든 계곡의 끝을 계곡의 정상이라 한다면 칠선계곡이 끝나는 천왕봉 역시 칠선계 곡 정상이라고 해야 한다는 논리와 다름 없다는 어느 산악인의 주장을 빌지 않더라도 이는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순수한 우리말인 "재" 대신 골짜기의 정상이라 고쳐 쓴 모순을 바로 잡아야 할 때로 여겨진다.

 

더욱이 지리산을 사이에 두고 두 지역 주민들이 오랜 옛날부터 오고 가면서 남겨진 역사와 발자취, 그리고 화개재에 얽힌 전설등을 오늘에 다시 발굴해 전함으로써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꺼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화개재에 얽힌 설화중 "운봉무더미"란 얘기가 있다.

 

운봉사람 소금장수 3대의 조상이 일흔살 나이에 화개에서 소금을 지고 운봉으로 넘어가다 화개재에 이르러 힘에 지쳐 소금을 진채 쓰러져 죽었는데 손자가 할아버지를 그 자리에 묻고 정성을 다해 큰 묘를 만들었다 한다.

 

화개재 언저리의 큰 무덤을 두고 그 소금장수의 무덤이라 해 운봉무더미라 부르고 있다.


   이 설화에서 보듯 화개재는 해안지방의 소금이나 수산물과 내륙지방의 삼베를 비롯한 농산물을 서로 교역했던 삶의 고갯마루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지리산에는 화개재와 비슷한 역할을 한 고갯마루가 많다.

 

그만큼 지리산이 광활하다는 증명 이기도하며 이에 따른 조상들의 삶의 얘기들도 다양하게 서려져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목통마을에서 출발해 연동골을 거쳐 화개재로 가는 길은 오랜 도로기능의 역사 덕분에 잘 열려 있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며 칠불사 아래의 첫 마을로 사하촌(寺下村)이기도한 목통마을은 10여 가구가 사는 조그마한 산촌이다.

 

지금은 승용차가 쉽게 오를 수 있으며 물밀듯 들어오는 관광객, 등산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계속 들어서고 있는등 번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마을앞 계곡에는 옛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물레방아가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

 

그리고 물레방아 와 함께 산 너머 직전마을로 넘어가는 좁다란 길을 이어주는 돌다리가 이채롭다.

 

여기서부터 연동골 산행은 시작된다. 물레방아와 독특한 양식의 돌다리를 살펴본뒤 마을을 지나 잘 열려져 있는 등산로를 따라 화개재까지는 대략 8km 남짓하다.

 

아직은 일반 등산객에게는 덜 알려진 연동골은 아기자기한 경관과 조용한 것이 특 징이다. 목통마을을 출발해 30여분 가량 오르면 연동골의 으뜸 명소인 스님소(沼)가 나온 다.


  칠불사 스님들이 목욕하는 곳이라해 붙여진 지명인데 늘 옥류가 흐르며 싱그런 분위기가 가히 세속의 때를 씻을만하다는 느낌이 간다.

 

계곡을 따라 한동안 가면 풀밭과 잡목지대로 변해있는 마을터를 만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께까지 사람들이 살았던 연동마을 터다.

 

마을이 사라진 것은 1967년 여름 서해안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9명이 지리산에 들어와 이 일대를 무대로 활약하다 모두 사살된 사건이후 연동마을을 없어지게 했던 것이다.

   연동마을 터를 지나 30여분 가량 지나면서 부터 화개재까지 급경사로 힘든 코스지만 쉽게 화개재에 오를 수 있다.

 

산행시간은 2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하산은 토끼봉∼칠불사, 또는 뱀사골∼반선 등 다양하게 열려 있어 시간만 잘 조절하면 어느 곳으로 하산해도 좋다.

 

하동지역에서 짧은 시간에 반야봉을 올랐다가 하산 할 수도 있는 등산로가 연동골 코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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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계곡...광대골 | 지리산의계곡들
2005.07.06


광대골이라는 넓고 커다란 계곡이 지리산에 있다.

 

지리산 수많은 골짜기 가운데 앞으로 가장 각광받을 명소로 등장할 조짐이 나타났다.

 

지리산 계곡 중에서 그 규모나 비경이 다른 계곡에 결코 뒤지지 않으면서도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지리산의 골짜기로 남아있다.

 

인근의 백무동이나 칠선계곡·뱀사골의 명성은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 반해 넓고 커다란 광대골은 그저 묵묵히 자연의 흐름을 쫓아 조용히 숨겨져 있었던 탓에 그 값어치는 더욱 돋보이기에 충분하다.

  광대골은 뱀사골과 한신계곡 사이의 커다란 물줄기다. 지맥으로는 덕평봉 ∼ 벽소령꼭대기 ∼ 형제봉 ∼ 삼각봉과 덕평봉에서 강청마을 뒷편의 오송산(669m)을 잇는 산줄기, 그리고 삼각봉에서 삼정산(1225m)을 연결하는 지맥사이의 계곡이다.

 

흔히들 벽소령의 이름을 따 벽소령계곡 이라고도 하지만 넓고 커다란 골짜기란 의미의 광대골이 본래 이름이다.

 

벽소령 북쪽에 10여개에 달하는 지류를 하나로 만들어 임천강으로 흘러 강청리에서 백무동의 물줄기와 합류한다.


  광대골의 수많은 지류와 능선 사이사이에는 벽소령 군사도로라는 구절양장의 꼬불꼬불한 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이러한 탓에 광대골은 계곡미를 음미하며 찾아나서는 등산객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대부분 비포장 도로지만 비교적 잘 닦인 군사도로를 등산로 삼아 벽소령을 오르내렸을뿐 그 아래 원시수림과 함께 어우러진 광대골의 비경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외면해 왔다.

 

반면 광대골 가운데 삼정산에서 흘러내리는 지류방면에는 천년고찰 영원사와 상무주암등 숱한 불적들이 많아 벽소령 군사도로 못지 않은 도로가 삼정마을에서 영원사 입구까지 잘 만들어져 있는데 이 구간은 삼정산 등산로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결국 광대골은 삼정산 기슭은 불적들과 벽소령도로등 인위적으로 조성된 일부분은 잘 알려진 반면 계곡 깊숙이 숨겨진 비경은 전인미답의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베일에 가려졌던 광대골은 이제 더이상의 신비감을 숨겨놓을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

  풍부한 수자원에다 울창한 원시림을 최대한 활용한 자연 휴양림을 산림청에서 조성하기 시작해 벌써 마무리 단계에 이른 것이다.

 

산림청이 굳이 광대골에다 지리산 자연 휴양림을 조성하게 된 것은 광대골의 빼어난 수림과 수자원을 간파했음은 물론 아직도 그러한 비경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산림청 남원영림서 함양관리소가 조성중인 지리산 자연휴양림은 광대골 일원 142ha에다 6억여원의 사업비를 들여 32개의 시설물을 이미 설치했으며 삼정마을에서 2개의 연결도로망을 구축해 놓는 등 마무리 단계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삼정마을의 입구에서 왼쪽으로 2개의 진입도로가 있는데 하나는 마을 못미쳐서 계곡을 건너 이어지며 다른 하나는 마을을 돌아 연결된다.

 

휴양림 입구 못미친곳에는 대규모 주차장과 야영장이 만들어졌으며 휴양림 안에는 야외학습장, 삼림욕장등의 시설물이 대부분 완료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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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계곡...화개골 | 지리산의계곡들
2005.07.06

지리산 수많은 골짜기 가운데 가장 풍성한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소중한 문화유적과 그에 따른 얘깃 거리가 담겨져 있는 곳이 화개골이다.

 

사시사철 색다른 모습으로 변하면서 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풍경이 화개동천만이 가진 특성이라면 특성이다.

 

그 옛날 선조들이 지리산의 이상향을 찾아 나섰던 들머리가 바로 이 곳 화개골이고 보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고있는 까닭을 알 수 있다.


 

   이른 봄이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화개 10리 벚꽃길은 일제때 부터 내려온 고목의 벚나무들이 길 좌우로 늘어서 있다.

 

그 나무에서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은 하늘을 가릴듯 벚꽃터널을 만들어 장관을 이룬다.

 

봄 내음을 물씬 풍기는 화개천의 옥류와 10리 벚꽃길이 빚어내는 화개의 봄 풍경은 생동감이 넘치며 대자연의 신비함을 느끼게 한다.


 

   해마다 4월 초순께면 이 곳의 벚꽃 장관을 즐기려는 상춘객들이 줄을 잇는 까닭은 지리산 자락의 봄기운이 화개천변의 벚꽃에서부터 피어오르고 있는 탓이다.

 

갈수록 벚꽃 인파가 늘어나면서 93년부터 하동군에서는 상춘객의 흥을 돋우기 위해 화개장터 벚꽃제 행사를 마련했다.

 

화개장터 벚꽃제는 지난 4월 4일부터 9일까지 다채로운 행사와 함께 열렸으나 꽃샘 추위로 인해 벚꽃이 개화가 늦어져 벚꽃의 화려함은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올해는 예년에 비 해 벚꽃 개화 시기가 열흘쯤 늦어져 환상적인 벚꽃의 향연은 4월 중순께 극치를 이뤄 이무렵 전국에서 몰려든 벚꽃 인파로 화개골은 터져 나갈듯했다.


화개 벚꽃과 함께 화개골 들머리의 화개장터 역시 아직도 그 명성을 충분히 떨치고 있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무대이며 최근엔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 주무대로 더 알려진 이 곳 화개장터는 그 옛날 우리나라 3대 장터 중의 하나였다.

 

해안지방의 해산물과 내륙의 산나물, 약초 따위를 거래하기 위해 1일과 6일 닷새마다 열렸던 그 옛날의 화개장터 모습은 이제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지만 지리산을 찾는 이들에겐 소중한 향수를 일깨워주는 장터임엔 틀림없다.

 

   화개골의 또 다른 진면목은 수많은 불교 유적들이다. 조선시대 까지 만해도 이 계곡 안에는 100개가 넘는 절과 암자가 있었다 한다.

 

이들 불교 유적들은 대부분 빼어난 절경을 끼고 있어 당대의 고승들과 유학자들이 탐승의 발길을 끊지 않았다.

 

쌍계사와 칠불사의 대비되는 불교 문화를 음미해 볼 수도 있으며 이들 사찰을 배경으로 한 고승들의 발자취, 그리고 융성했던 신라불교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래돼온 과정을 살필수도 있다.


 

   화개골의 사찰은 특히 신라시대의 고운 최치원과 조선시대 서산대사의 행적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는가 하면 가락국 일곱왕자의 성불에 얽힌 사연을 전해 주기도해 더더욱 흥미를 끌게 하고있다.

 

화개골에 사찰이 많았음을 보여 주는 것은 쌍계사와 칠불사 이외에 화개장터 주변의 마을이름이 탑리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이 곳에 탑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도 화개장터 건너편에 3층석탑이 남아 있어 이 일대의 불교문화가 번창했음을 엿볼 수 있다.

 

가락국과 신라시대의 융성했던 불교문화는 가히 이곳 화개골에서 그 깊이를 더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범패음곡등 불교음악의 원류가 이 곳이었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화개골의 불교는 또한 우리나라 차(茶)문화의 발달과도 연관지어볼 수 있다.

 

삼국 사기에 따르면 흥덕왕 3년(828)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김대렴(金大廉)이 차 종자를 가지고 오자 왕이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했다고 한다.

 

아울러 차는 이미 선덕 여왕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번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대렴이 차를 처음 심은 곳이 지리산에서도 쌍계사 근처의 화개골이냐 화엄사 부근이냐는 논란이 있으나 여러 정황과 현재 화개일원의 야생 차밭 등으로 미루어 화개골이 시배지라 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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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계곡...심원계곡 | 지리산의계곡들
2005.07.06

지리산 서쪽 자락에 가면 천년 수목 사이를 운무가 감도는 천혜의 절경이 늘 반긴다.

 

반야선경과 노고단의 그윽한 정취와 풍경이 곁들여져 마치 심연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감도는 곳이 바로 심원(深源)계곡이다.


  칠선계곡, 문수계곡과 더불어 지리산의 3대 계곡으로 손꼽히는 심원계곡은 굽이굽이 청산녹수요, 사방이 영봉이니 지리의 깊고 깊은 그 오묘함이 서려있는 곳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반야봉과 노고단 사이의 깊고 깊은 계곡인 심원계곡은 담(潭)과 소(沼)가 50여개나 연이어 펼쳐지는 골짜기로 계곡을 거슬러 오를수록 산행을 한다는 느낌보다 선경에 몰입하는 기분이 들게하는 곳이다.


  심원계곡은 마한의 피란도성 터인 달궁 마을에서부터 시작되는 달궁계곡과 이어져 펼쳐진다.

 

달궁 마을에서 20여분 오르면 쟁기소가 나타나고 다시 20분 가량 가면 둘레가 80m나 되는 쟁반소가 눈에 띄는데 여기서 부터 심원계곡의 신비가 시작된다.

 

옛적에 비가 오면 수천마리의 두꺼비가 모여 울었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두꺼비소가 있는가 하면 이름 모를 수많은 징담이 즐비해 찾는 이를 매료시킨다.

 

반야봉에서 달궁마을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지나가기도 하는 쟁기소에서 500여m 더 계곡을 거슬러가면 반야봉 서북 능선 자락과 만복대 사이로 지나는 전남과 전북의 경계지점에 이르게 된다.

 

그 아래까지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이며 그 위로는 전남 구례군 산동면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곳부터가 심원계곡이라 할 수 있고 그 아래는 달궁계곡으로 봄이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심원마을에서 부터 노고단, 반야봉, 임걸령까지는 자연 휴식년제 실시에 따라 등산로가 오는 98년까지 폐쇄돼 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지키려는 등산객은 드물다.

 

등산로 입구에 철조망과 안내판을 세워두고 있으나 이를 지키는 등산객도 없으며 이를 단속 또는 규제하는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도 없다.


   그저 헛구호일 따름이다.

 

지리산에서 자연 휴식년제를 가장 잘 지키는 곳은 아마도 노고단 정상 주변 500여m 둘레일 것이다.

 

이곳 외에는 말뿐인 휴식년제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심원마을 노고단","심원마을 반야봉" 구간도 마찬가지로 철조망을 뚫고 또는 우회한 등산로에 는 여전히 등산객으로 붐빈다.


  심원마을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서울대 연습림 관리사무소 담벼락 아래로 이어지는데 이곳 역시 철조망이 드리워져 있으나 무용 지물이다.

 

이 철조망은 단지 등산객을 조금 불편하게 만들뿐 그 이외의 출입금지 기능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원마을에서 노고단까지는 대략 2시간∼2시간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그리고 반야봉으로 바로 오르려면 노고단 방면으로 오르다 왼쪽계곡, 즉 대소골을 거슬러 이어진 등산로가 잘 열려져있다.

 

또한 심원마을에서 임걸령까지도 오를 수 있는 등 다양한 등산로가 열려 있다.

 

그러나 심원계곡의 신비함을 찾아 힘들게 등산을 한다는 것은 근래들어 별다른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달궁에서 계곡을 따라 이어진 도로망이 쉽게 하늘 아래 첫동네인 심원마을에 이를 수 있게 해주 는가 하면 성삼재에서 30분이면 노고단에 이를 수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하지만 노고단과 반야봉에서 내려다 보는 심원계곡의 깊고 깊은 원시성은 위에서 쉽게 한눈에 내려다 보는 것보다 힘들게 걸어야만 심연에 빠져들 듯한 느낌을 맛볼 수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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