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왜?
정말 그 여자라고 생각해?
모르겠어.
물론, 그렇다고 꼭 그 여자일 리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틀림없이 그 여자일 거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그 여자는 저런 모습으로 변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도시 전체가, 온통 물에 잠겨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해도,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하나둘씩 괴상한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고 해도, 그래서 거리의 어느 구석에서도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해도,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이젠 겨우 몇 명 남지 않은 사람들 중에, 드디어 그 여자까지 모습이 변하여 내 앞에 나타나는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는 것이 더 옳겠다. 도대체 이런 엄청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하필이면 다른 곳도 아닌, 남북을 가로질러 샛강이 하나 흐르고, 곳곳에 지구촌의 의미를 일깨우는 <세계는 하나>라는 글귀가 붙어 있고, 중심가의 시청 옆에 박물관이 있고, 그 맞은편에 은행과 극장과 무역회관과 병원이 있고, 제법 커다란 용 네 마리가 물줄기를 뿜어대는 분수대가 있고, 유난히 고층 빌딩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바로 이 도시에서 말이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비가 내린 지 정확히 사흘째 되던 날, 나는 어디에선가 풍겨나오는 비릿한 냄새를 맡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유난히 냄새를 잘 맡는다는 것은, 웬만큼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뻔히 아는 사실이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나는 눈을 감고도 내 앞에 어떤 종류의 물건이 있는지, 심지어 어떤 상태로 놓여 있는지까지도 기가 막히게 알아맞힐 정도로 냄새에 민감하였다. 나도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 번은 한의사인 고향 선배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그 선배의 아파트까지 걸어가는 길에 노란 개나리가 피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어느 해 봄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알레르기성 비염을 치료하는 일에 나름대로의 힘을 쏟으며 그걸로 뭔가를 이루고자 무척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그가 「비염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거 원 글솜씨가 없어서….」라며 나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에 나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그의 아파트로 찾아간 터였다. 그는 내내 끙끙거리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아주 반갑게 나를 맞았다. 그리고 뭐가 그리 급한지 턱으로 모니터에 떠 있는, 자신이 써놓은 글을 가리키곤 급히 욕실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입으로는 「내가 뭘.」 하면서도 그가 써놓은 글을 흔쾌히 읽어보았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내가 내 글은 쓰지 않고 왜 여기 와서 이 짓을 하고 있나, 싶지도 않았다. 그건, 그가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나를 언제 어디서건 <김 작가>라고 부르며 작품이 어떻다느니 치켜세우고 칭찬을 해서 나조차도 내가 꽤 괜찮은 소설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소설가 아무개라는 이름을 단 지 몇 년이 지나도록 변변한 지면 하나 얻지 못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릴 적 자신의 꿈이 소설을 쓰는 것이었기에 지금도 무조건 소설가를 존경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고 보면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아무튼 나는 그가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게 갖고 있는 애정만큼, 그가 써놓은 글을 꼼꼼히 훑어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샤워를 마치고 나오며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는 등의 내가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때였을 것이다. 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불쑥 한마디를 던졌던 것이다. 「코 전문가가 코피까지 쏟으며 썼으니, 이 책 잘 팔리겠네.」라고 말이다. 기실, 코를 치료하는 사람이라고 코피가 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인 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그것을 농담이라고 한마디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말 뜨악한 순간이었다. 그제야, 나의 말과 동시에 그의 코에서 뚝뚝 코피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차> 싶었다. 그가 서둘러 휴지로 코밑을 닦아낸 뒤,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내가 알고는 있었지만 넌 참 희한한 녀석이야.」라고 말을 할 때서야 어색하나마 조금 웃음을 지을 수가 있었다. 나 스스로도 놀랄 일이었다. 냄새였다. 흙 냄새와 비슷한 찡하는 냄새. 흙 냄새가 어딘지 서늘한 느낌을 준다면, 피 냄새에서는 그보다 약간 따듯하고 달콤한 기운이 풍겼다. 그것은 면도를 하다가 자칫 얼굴을 베었을 때의 송골송골 스며나오는 피의 냄새와는 달랐다. 마치 크림이 잔뜩 들어간 커피에다가 사과 주스를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욕실에서 나오는 순간, 내가 바로 그 냄새를 맡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막상 당사자인 그보다도 먼저 그가 코피를 흘리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물으면 나로서도 정확히 대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혓바닥에 음식이 닿았을 때, 우리가 맛과, 습관과, 지식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느낌으로 육류, 야채, 과일, 유제품을 구분하고 심지어 유제품 중에서도 우유니, 요구르트니, 치즈니, 아이스크림이니, 초콜릿이니 하는 것들을 저절로 알아내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정말이지, <그냥 저절로 그렇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유난히 냄새를 잘 맡는 것에 얽힌 이야기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소설 공부를 하고 비슷한 시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등단을 한 뒤, 아직도 간간이 동인회 비슷한 모임을 갖고 있는 친구들도 나의 그런 점을 아주 신기하게 여겼으며 즐거워하기까지 하였다. 특히 그 중에서도 그 여자는 유난히 호기심을 갖고 나를 대했다. 언젠가 내가 눈을 감고서, 여자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몇 가지 물건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냈을 때, 이건 냄새만 잘 맡아서 될 일이 아니다, 나도 냄새에 민감한 편인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혹시 본인이 알지 못하는 어떤 힘이 작용한다거나 그런 훈련을 받은 건 아닌지 궁금하다,라며 내가 아무리 냄새를 맡고 알아맞히는 것이라고 해도 믿지 않으며 마치 신통한 재주를 부리는 것처럼 의심을 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나를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나의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던 것이다. 사람의 콧속에는 작은 동전 크기의 냄새 탐지 세포대가 두 개 있는데 그 세포대들은 약 오백만 개의 노르스름한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개의 경우에는 약 이억 이천만 개라고 한다, 개만큼은 못하지만 인간도 공기 중에 떠 있는 수십억 분의 일의 냄새를 탐지해낼 능력이 있다고 하는데 얼마나 경이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냄새에 무딘 것을 보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향기가 질식되어 있는 곳에 모여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이 입고 있는 옷도 자연스러운 몸 냄새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너무 어렵기도 하거니와,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해댔던 것이다. 여자는 내가 냄새를 잘 맡는 것이 믿기지 않았나 보다. 의심이 풀릴 때까지 여기저기 책을 뒤적여본 모양이었다. 하긴, 그 여자라면 그럴 만했다. 여자는 집요했다. 매사에 무엇이든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 모두들 혀를 내두를 만큼 의심에 의심을 하며 행여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납득할 때까지 물고 늘어져 주위의 사람들을 귀찮게 하였다. 때문에 자신이 쓰는 글 속에서도 그런 성격을 여실히 드러냈다. 예를 들어, 버스에서 내리다가 발목을 삐끗하고 그 자리에 덜컥 주저앉는, 어떻게 보면 아주 시시한 그런 한 장면을 묘사할 때에도 수십 장의 원고지 분량을 아주 그럴 듯하게 채워놓아, 그 글을 읽고 난 뒤, 나는 정말 내가 발이 다친 느낌에 빠져 새삼 나의 왼쪽 발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한숨을 돌릴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여자가 너무 장황하게 냄새가 어쩌느니 늘어놓자 짜증이 났었다. 가뜩이나 여자가 당신 같은 사람이 냄새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아주 좋을 텐데… 하고 말꼬리를 흐렸을 때는,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 싶어 「그건 다른 사람들이 많이 쓰지 않았소.」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물론 여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데도 왜 제대로 된 소설 하나 못 쓰느냐는 소리로 들려 왠지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마치 상대의 기분은 전혀 헤아리지 않는 정신이 나간 사람의 말을 듣고 있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해서, 나는 「요즘엔 어떤 작품을 쓰고 있나요?」 하고 말꼬리를 돌렸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여자는 두드러지게 눈을 반짝이며 마른침을 삼키더니 대뜸 「불가사리 얘기요.」 하고 씽끗 웃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적잖은 당황을 했었다. <불가사리라니, 이건 또 무슨 엉뚱한 얘기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여자에게 뭔가 말려들고 있다는 느낌이 왔었다. 말을 잘못 꺼냈다는 후회가 스쳤지만 이미 여자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여자는 한동안 『피터팬』에 나오는 후크 선장 어쩌고 하면서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을 이야기하더니 불가사리를 의인화시킨 것이 조금 유치하지만 뭐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나에게 혹시 불가사리가 어떤 냄새를 갖고 있는지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때쯤부터 나는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하고 여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해버렸을 것이다. 내가 딱히 불가사리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거니와 난데없이 불가사리의 냄새를 물어보는 데는 정말 할말이 없었다. 더군다나 극피동물이란 피부에 가시가 있다는 의미이니 어쩌니 하면서, 해삼, 바다나리, 성게, 거미불가사리 어쩌구 하는 말들이 그녀의 입을 통해 쏟아져나올 때는 도대체 여자가 지겨워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여자의 모습을 보며 무엇이든 끈질기고 지독하게 매달려야 하는 소설 작업이 남자보다는 여자의 속성에 가까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또한 그 여자가 그런 성격 때문에 우리 중의 누구보다도 괜찮은 소설을 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집요함 때문에 기어코 큰 고통을 겪으리라는 우려를 갖기도 했었다. 왜, 사람들은 간혹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듯할 때, 경이롭고 대단한 힘을 느끼면서도 뭔지 모를 두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반대로 <아 이건 인간으로서 할 짓이 못 된다> 싶을 때에도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때때로 <천벌> 운운하는 것도 결코 그냥 희떱게 지껄이는 소리만은 아닌 모양이다. 가뜩이나 며칠 사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가 이토록 냄새가 어떻느니 이야기를 해대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기상대에서조차 예측하지 못한 비가 계속해서 사흘째 내리던 날 아침, 나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공기 중에 섞여 떠다니는 비릿한 냄새를 맡게 된 것이었다. 심한 구역질을 느끼며 잠자리에서 일어났고, 오른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은 채 부랴부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고, 변기의 뚜껑을 나머지 한 손으로 잡아 젖히기도 전에 누런 액체를 쏟아냈고, 마치 옷을 뒤집듯이 누군가 나의 위장을 홀랑 까뒤집어 잡아 뽑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몸을 뒤틀었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겨우 내 발등 위를 뒤덮고 있는 토사물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던 것이다.
이봐.
왜?
냄새였지. 그렇지?
모르겠어.
물론, 그렇다고 꼭 냄새 때문일 리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도 역시 내가 토악질을 해대는 이유가 냄새 때문이라는 생각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 전날 밤 아스피린을 두 알 삼키고 잠이 들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구토를 할 리는 없었다. 두통 때문에 약을 먹고 잠이 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고질적으로 찾아오는 두통이 냄새 때문이라는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내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비록 그 당시 맡았던 냄새가 평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실 냄새에 민감한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모른다. 그것도 왠지 나처럼 세상이 온통 방부제인 포르말린인가 하는 냄새로 뒤덮여 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고역이 아닐 수가 없다. 입 안으로 삼켜지는 과자, 음료수, 빵, 과일, 거기에다 사진에서까지, 내 주위에 널려 있는 거의 모든 물건에서 맡아지는 냄새. 하루도 빠짐없이 포르말린 냄새가 나는 음식을 먹고, 포르말린 냄새가 밴 옷을 걸치고, 포르말린 냄새가 섞여 있는 공기를 마시며 거리로 나서고, 그러다가 행여 수많은 사람들의 신열과 탄식의 입김이 거침없이 뿜어져 있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단내까지 맡게 되는 날이면 말할 수 없는 두통과 구토에 시달려 차라리 내 콧속에 박힌 냄새를 찾아내는 세포대를 떼어버리고 싶은,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그런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이비인후과 병원으로 달려가보아야겠다는 절박한 기분에 빠지는 것이다. 아니, 언젠가 두 발을 담그고 이렇게 기분 좋은 냄새가 나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 건데,라는 생각을 하며 하염없이 앉아 있었던, 아버지의 분진을 흘려보낸 운암의 깊은 산 계곡 그 차가운 물 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흔들 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서 콱 죽어버린다고 해도 억울할 것이 없다는 심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 아침 구토를 일으켰던 냄새는 분명 달랐다. 계속해서 비가 내린 탓인지, 공기 중에는, 내가 그렇게 속이 뒤집혀 구역질을 해댔을망정 그래도 포르말린 냄새보다는 조금 자연스러운, 약간 비릿했지만 냄새에 민감한 나조차도 이게 무슨 냄새라고 말할 수 없는, 그때까지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묘한 냄새가 났던 것이다.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랬기 때문에 그때 나는 구토를 한 이유가 냄새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발등 위를 덮고 있는 누런 토사물을 내려다보며 불현듯 어릴 적의 한 사건이 떠올라 더욱 위장에 심한 통증을 느끼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그 전날 밤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빗물에 불어 흐물흐물 흘러내리던 토끼의 똥을 본 탓도 있으리라. 더 정확히 말해서, 잠이 들기 직전 지역 방송국 채널을 통해, 똥과 범벅이 된 채 죽어서 여기저기 널려 있는 많은 토끼들의 시체를 보았기 때문에 구토의 이유가 냄새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단 말이다. 어릴 적, 나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거짓말처럼 토끼 한 마리를 주웠던 것이다. 우리 가족이 고향 운암을 떠나 서울로 이사온 지 일 년쯤 지났을 때이니까, 아마 내가 여덟 살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역시 나는 냄새에 민감했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극장의 영화 간판을 그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운암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어떻게 해서 그 일을 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버지가 집에서 있는 공휴일에는 온종일 밖에서 놀았다. 아버지에게선 항시 페인트 냄새가 났기 때문에 함께 있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팠던 것이 아마 그 이유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냄새를 잘 맡는 것도 유전인 것 같다. 내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한 가지뿐이었다. 늘상 어서 빨리 운암으로 돌아가야지 도시에선 냄새 때문에 못 살겠어,라며 양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 아버지는 결국 고향인 운암과는 거리가 먼 도시의 한구석 방에서 페인트 냄새가 밴 몸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영혼만큼은 우리 식구를 어떻게 해서든지 먹여 살리느라 참고 견뎠던 도시의 냄새를 훌훌 털어버리고 운암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날도 새로 올리는 영화 간판을 밤새 그리고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시체처럼 누워서 잠을 잤다. 나는 역시 아버지에게서 맡아지는 냄새가 싫어서 아침부터 집을 빠져나왔었다. 그리고 동네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같이 놀 아이들 찾고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결국 병원의 식당 일을 나가는 어머니를 만나 할 일 없이 그냥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갔었다. 그러다가 어느 공사장 쓰레깃더미 속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토끼 한 마리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어머니의 손을 잡아당기며 저기에 토끼가 있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내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지도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그래도 나는 버스 정류장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토끼를 들먹이며 눈치를 살폈지만 어머니는 끝내, 조금 있다가 아버지 깨워서 밥을 먹으라는 말만 남기고 버스로 올라타버렸다. 그랬는데, 내가 왜 그곳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토끼를 덥석 품에 안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린아이들에게 동물 그림을 그려보라면 우선 두 귀를 쫑긋 세운 토끼를 그리는 것과 같은, 노래를 불러보라면 <산토끼 토끼야> 하고 제일 만만하게 토끼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은, 그런 마음에서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버지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숨어 있는 탓도 있으리라. 여하튼 나는 대책도 없이 그 토끼를 집으로 가져왔던 것이다. 그리고 식구 중 누가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안방에서 있는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부랴부랴 목욕을 시킨 뒤 상자에 담아서 작은 방의 벽장 속에 숨겨놓았던 것이다. 오후 늦게 어머니가 돌아와 마루에 그대로 놓여 있는 밥상을 보며 왜 아버지를 깨워서 밥을 먹지 않았느냐고 심하게 야단을 쳐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 토끼가 단 하룻밤도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릴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한밤 중, 빳빳하게 굳어버린 토끼를 보고 기어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목욕을 시키다니… 토끼가 물을 얼마나 싫어하는데….」라고 했던 말소리가 나의 가슴을 사정없이 긁어대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의 뉴스 진행자는 <토끼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고 했지만 나는 나름대로의 답을 찾았던 것이다. 정말 어머니의 말처럼 토끼가 그렇게 죽도록 물을 싫어하는지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날 밤 뉴스를 보는 순간 조금의 의심도 없이 이토록 지겹게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 때문에 토끼들이 죽어나가는 것이라고 단정을 지었고, 뉴스 시간이 끝나 텔레비전의 전원을 끌 때쯤에는 어릴 적 벽장 속에서 빳빳하게 굳은 토끼에게 맡았던 죽음의 냄새를 기억해냈고, 텔레비전에 비쳐진 그곳에서도 똑같은 냄새가 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빠져 두통이 일어났고, 이내 아스피린을 두 알 삼키고 잠이 들었던 것이다. 역시 냄새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건, 나는 비릿한 냄새를 맡기 시작한 그날 오후, 예민한 후각 덕분에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서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예감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사실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그런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 역시, 세세한 원인은 다르겠지만 토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이유와 똑같이 멈추지 않고 쏟아지는 비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왜, 비가 쏟아져 홍수가 지고 온통 습기가 차면 병균이 기승을 부리지 않는가. 그런 병균이 변이를 일으켜 사람들이 대책 없이 감염된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 여자가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언젠가 여자가 보았다는,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났었던 몇 가지 불가사의한 일 중에서 하나를 영상으로 담았다는, 「블랙 게이트」라는 영화에서처럼, 이 도시 어디쯤인가에 세상을 온통 망쳐버릴 <문>이 열려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공기 중에 퍼져 있는 비릿한 냄새가 그 문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란 말인가. 이틀 전, 여자가 나에게 횡설수설 해댔던 말들이 모두 사실이었단 말인가. 나는 비릿한 냄새를 처음 맡은 날 아침 심하게 구토를 한 뒤부터 어제 아침까지, 그러니까 한 사흘 간 꼼짝하지 못하고 앓아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문 밖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비가 그치지 않고 점점 거세게 계속해서 내리자, 텔레비전에서는 아예 모든 정규 방송을 중단했고 토끼들의 죽음을 알릴 때와는 상당히 다른 격앙된 목소리의 뉴스 진행자가 하루 종일 화면을 떠나지 않았다. 곳곳에서 비로 인해 물에 잠긴 자신의 집을 망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수도 없이 비춰주었다. 사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그리 큰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었다. 나 역시 그 일이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처럼 느껴졌었다. 정작 그 당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포르말린 냄새도 아니요, 어릴 적 맡았던 죽은 토끼의 시체 냄새도 아니요, 아버지의 몸에 항상 배어 있던 페인트 냄새도 아닌, 공기 중으로 점점 진하게 퍼지고 있는 그 알 수 없는 비릿한 냄새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와는 별반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그 여자로부터, 무엇을 확인하려는 것인지 <당장 만나고 싶다>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뒤에서야 나는 내가 아프다는 것도 잊을 만큼 안절부절못했던 것이다. 여자는 이틀 전, 느닷없이 내게 전화를 걸어 「당신은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알고 있지요?」 하고 물었던 것이다. 마치 그런 야릇한 냄새가 풍기는 것이 내 탓인 양 흥분하여 따지는 어조였다. 비가 오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공기 중에 퍼져 있는 이 비릿한 냄새가 뭐냐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몸이 여기저기 가렵고 벌겋게 부어올라 병원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난리라는 소문이 있는데, 이건 분명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끝까지 여자를 만나려는 낌새를 보이지 않자, 바로 그 <블랙 게이트>인지 뭔지 하는 말을 해댔던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지만 애써 비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대꾸했었다. 그런 대답이 세상의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씩씩거리는 여자와, 뭔가 심상치 않음을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나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나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여자와 통화를 하던 수화기를 내려놓고 뭔가 미심쩍은 기분에 휩싸여 하루를 보내고 난 바로 어제 아침, 사람들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빠르게 돌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런 엄청난 일이 그때서야 보도가 되는 것에 벌컥 화가 나면서도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과연 화면에 비친 세상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당혹스러운 것은 감염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병의 진행 속도가 너무나 빨랐던 것이다. 몸의 어딘가가 조금 가려워서 병원을 찾아왔던 사람들은 진료를 받기도 전에, 대기실의 의자에 앉아 있는 단 몇 분 사이에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가렵던 살갗이 순식간에 부풀어올라 갓 태어난 아기 손바닥 크기의 물집으로 잡히는가 싶더니 그것이 이내 별 모양의 검붉은 덩어리로 변하는 것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깜짝 놀라 입이 벌어질 일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사람들의 피부에 붙은 그 덩어리의 모습이었다. 내 눈에는 그것이 영락없는 불가사리로 보였던 것이다. 왜 하필이면 불가사리란 말인가. 여자가 <별을 가장한 해적>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쓰며 나에게 그 냄새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던 불가사리.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불가사리가 무엇이기에 처음엔 여자의 입을 통해 튀어나와 나를 당황시키더니, 어째서 또다시 이런 해괴망측한 일로 모양을 드러내 나의 눈앞에 나타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왜?
불가사리지. 그렇지?
모르겠어.
물론, 그렇다고 꼭 바닷속 깊숙한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바로 그 불가사리일 리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다섯 개의 다리를 방사형으로 뻗고 있는 그 덩어리를 보고 불가사리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불가사리는 재생력이 강해서 다리가 잘리면 다시 자란답니다.」라던 여자의 말이 생각나 몸을 떨었다. 여자에게 처음 들을 때에는 가볍게 「그래요?」 정도로 되묻던 그 말이 그토록 무섭게 상기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덩어리가 한 사람의 몸에 하나 이상 생기지 않는 점이었다. 어느 사람은 다리에, 어느 사람은 가슴에, 어느 사람은 얼굴에.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여겨졌었다. 컴퓨터로 합성한 괴상하고 흥미 있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때문에, 안되기는 했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물난리로 집을 잃고 망연히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의 그런 정도의 감정만을 가지려고 애써 마음을 추슬렀었다. 그러나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끔찍한 현실은 숨돌릴 틈 없이 나를 따라붙었다. 머지않아, 나는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켰던 것이다. 갑자기 그 알 수 없는 비릿한 냄새가 강하게 나의 콧속을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텔레비전의 기계를 통과한 소리가 아닌, 생생한 비명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날씨가 춥건, 덥건, 새벽마다 반바지 차림으로, 화장실에나 놓아두면 딱 맞아 보이는 앞이 막힌 회색 고무 슬리퍼를 질질 끌며 잡종 치와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옆집 남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냄새 나는 것이 싫어서 쓰레기를 집 안에 두지 못하고 한밤중이건, 새벽이건 수시로 가져다 버리는 버릇이 있는데, 새벽에 가끔씩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곤 했었다. 그런데 그놈의 치와와가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나에게 달려들어 신발을 물고 늘어지거나, 쓰레기 봉지를 잡아뜯는 것이었다. 나는 번번이 개에게 무엇인가를 물린 채, 그가 어서 말려주기를 원했지만 그는 그때마다 자신의 개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히죽거리기만 했었다. 나에게 있어 그 잡종 치와와는 물론, 그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내가 그의 목소리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도 그럴 만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문을 열어놓고 현관 마루에 걸터앉아 신발을 신고 있는데, 그놈의 잡종 치와와가 갑자기 달려들어 문 밖에 세워둔 쓰레기 봉지를 입으로 마구 잡아 흔드는 것이었다. 나는 앞뒤를 둘러볼 틈도 없이 잘 만났다 싶어 바닥에 있는 묵직한 구두 한 짝을 힘껏 집어던졌다. 그런데 그놈이 퍽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나뒹굴며 내가 미처 상상하지도 못했던 큰 소리로 깨갱거리더니 벌떡 일어나 이리저리 날뛰는 것이었다. 또한 놈이 날뛰는 것과 동시에 옆집으로부터 그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나는 황급히 문을 닫아건 채 가슴을 졸이며 문 밖으로 잔뜩 귀를 기울이고 서 있었다. 구두 한 짝과 쓰레기 봉지를 미처 줍지 못한 것을 걱정하면서 말이다. 아니나다를까, 그의 회색 슬리퍼 끌리는 소리가 나의 집 문 앞까지 다가와 멈춰졌고, 「이런 개만도 못한 자식, 잡히기만 해봐라.」 하는 중얼거림이 들려왔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어이없게도, 저 사람 목소리가 저렇구나, 하는 아주 새삼스러운 기분에 빠져버렸다. 여지껏 그의 얼굴을 그렇게 여러 번 봤어도 말하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가 언제나 쇳소리를 쉬익쉬익 내며 히죽거리기만 했지 소리를 내어 잡종 치와와의 이름조차 부르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더욱이 그의 특이한 목소리에 배어 있는, 알루미늄이 구겨지는 듯한 짜그락 하는 느낌이 나를 잠시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여자처럼 윤곽선이 곱고 눈꺼풀이 얇은 그의 얼굴과는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동안 어딘지 모르게 만만치 않은 느낌을 가졌던 것에 대해 충분한 이유가 될 만큼 칼칼한 음성이었다. 그러니 코를 찌르는 비릿한 냄새와 함께 나의 귀로 파고든 비명소리의 주인이 단번에 그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 어떻든 그때, 나는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비릿한 냄새가 주는 의심을 참지 못하여 후닥닥 문 밖으로 뛰어나갔고 급기야 텔레비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내 눈앞에서 꿈틀대는, 내가 불가사리라고 생각했던 그 덩어리를 본 것이었다. 숨소리도 낼 수 없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그의 오른쪽 뺨에 붙어 있는 덩어리는 다섯 개의 다리를 잠시도 쉬지 않고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마치 끈끈한 액체가 뭉쳐서 이리저리 쏠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잡아뜯으려고 하면 할수록 다섯 개의 다리를 동시에 밀리듯 오므렸다. 또한 가운데의 몸통이라고 여겨지는 중심 부분을 한껏 볼록하게 부풀렸다. 그리고 잠시 경련을 일으킨 뒤, 어느 한 순간 온몸을 얇게 쭉 펼쳐 그의 뺨 피부 속으로 더욱 강하게 달라붙는 것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쌉싸름한 맛이 날 것 같은 강한 비린내가 땡볕에 물을 확확 끼얹듯 공기 중으로 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하건대, 분명 불가사리였다. 또다시 말하건대, 텔레비전을 통해 본 일들은 내가 아무리 믿고 싶지 않아 외면을 해도 분명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나는 한동안 다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직 여자의 황당한 소설 속에서 후크 선장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불가사리가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얼마 전 여자의 소설을 읽어본 몇몇의 친구들과 나는, 무슨 그런 가당치도 않는 이야기를 썼느냐, 살짝 맛이 간 거 아니냐, 등의 말로 빈축 아닌 빈축을 놓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우리는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너나할것없이 지지부진한 소재에 빠져 그만그만한 소설을 끙끙거리며 짜내고 있다가 여자로 인해 뭔지 모를 위기감을 맞이한 꼴이었다. 해서, 더욱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고 모두 한 마디씩 거들어 여자의 소설이 우습다는 식으로 떠벌리게 되었고, 어느 한 친구는 아예 이런 비현실적인 글은 소설도 아니라고 몰아붙이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 누가 옆집 남자의 뺨에 붙은 불가사리 모양의 붉은 덩어리를 바라보며 여자의 소설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사람들의 몸에 나타난 별 모양은 여자의 소설 속에 나오는 불가사리 후크 선장보다 더욱 황당한 것이었다. 누가 감히, 당장의 상황이, 우리가 얼마 전 그렇게 현실성이 없다고 몰아붙였던 여자의 소설보다 더욱 비현실적인 일인데도 눈앞의 현실로 다가와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정말 혼란스러웠다. 내가 끔찍하게 변한 옆집 남자를 얼굴을 본 뒤, 뒷걸음질 쳐 다짜고짜 수첩 어딘가에 적어놓은 여자의 전화번호를 찾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이봐.
왜?
꼭 그 여자를 봐야겠어?
모르겠어.
물론, 그렇다고 여자가 나의 혼란스러움을 없애줄 리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왠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누군가가 꼭 그 여자여야만 할 것 같았고, 그 여자라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엄청난 일의 이유를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지겨운 이야기라도 좋았다. 「블랙 게이트」 영화 이야기라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때문에 여전히 콧속으로 강하게 파고드는 비릿한 냄새가 역겨워 눈알이 빨개지게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몇 번이고 수화기의 리다이얼 버튼을 눌러댔었다. 그리고 끝내 따르릉 소리만을 울려주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여자의 소설을 첫머리부터 차근차근 떠올렸었다. 여자는 비가 내리는 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빗줄기 속으로 커다란 불가사리 한 마리를 도시 한가운데에 떨어뜨렸다. 또한 아무런 변명 없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읽는 사람이 그냥 그 상태를 그대로 인정하라는 듯이 소설을 써내려갔다. 아마 우리가 앞다투어 빈축을 놓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부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뭔가 부서져 파편화된 것을 기어코 제자리로 돌려놓아야만 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겐 분명 트집이 잡힐 일이고도 남았다. 그러나 소설 속의 주인공 불가사리는 여자로 인해 후크 선장이라는 이름을 얻어 무섭도록 선명하게 살아서 숨을 쉬었다. 여자는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무척 어리석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과연, 화려한 고층 빌딩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어느 광장의 흙탕물 속에서 직경이 5.8미터나 되고 중심부의 두께가 1.7미터나 되는 불가사리를 발견하게 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쓰고 있던 우산을 접어 여기저기 찔러보았고, 겁에 질린 사람은 멀찌감치 서서 누군가 빨리 달려와 저 괴물을 치우지 않고 뭐 하는 거냐고 고함을 질렀고, 마음이 여린 사람은 비를 맞고 축 늘어져 있는 것이 가엾어 보였는지 어디선가 주먹만한 조개를 가져와 던져놓았고, 눈동자가 약간 풀린 어떤 사람은 가까이 다가가 도무지 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언어로 말을 걸어보기도 했고, 어른의 손을 잡고 있는 꼬마아이들은 한결같이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 것이라고 좋아했다. 하지만 이내 커다란 불가사리의 몸에는 단단한 그물망이 쳐졌고, 광장은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의견은 두 가지로 나누어졌다.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괴물을 죽여버려야 한다는 쪽과 어찌 되었건 생명이 있는 것이니 살려야 한다는 쪽이었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점점 소리를 높여 죽이는 방법과 살리는 방법에 대한 의견을 분분하게 내세웠다. 마치 살리고 죽이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쪽이건 방법이 그럴듯하면 되는 것처럼 아우성을 쳐댔던 것이다. 특히 한 일간지에서 물로 깨끗이 씻어 10%의 포르말린 용액에 담가두었다가 70%의 알코올에 넣어 표본으로 보존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마치 그렇게 하면 커다란 불가사리가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을 것처럼 적어논 어느 채집가의 글을 읽어본 사람들은 그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액침표본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며, 무엇에 홀렸는지 다른 방법으로 죽이는 것은 너무 무지한 것처럼 보이지 않느냐는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불에 태워 죽여야 한다고 흥분하며 떠들던 일부의 사람들은 슬그머니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여러 환경보호 단체와 동물을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광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절대로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시위를 했다. 그것 역시 사람들을 오래도록 자신의 편으로 붙들어놓지는 못했다. 의외로 종교계에서 악마가 어쩌느니 하면서 냉정하게 생각하라고 사람들을 타이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 말고 이럴수록 모두 자기의 일을 더욱 열심히 하라고 경고를 한 것이었다. 한 달이 훨씬 넘도록 사람들은 불가사리 이야기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불가사리는 그 딱딱하고 커다란 몸을 웅크린 채 죽은 듯이 꼼짝 않고 있었다. 아무도 녀석이 후크 선장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아무도 그 별 모양의 단단한 껍질 속에서 한 마리의 괴물이 거대한 식욕을 참으며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사람들은 불가사리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통행을 금지시키던 경찰들도 위험성이 없는 화석쯤으로 여겼는지 서서히 철수를 했다. 간혹 담당관이 나와 그물망을 흔들어보았고, 관광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서서 사진을 찍고 사라질 뿐이었다. 더욱이 몇 달 뒤, 광장에서 꽤 가까운 곳에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점들이 들어차 있는 거리가 있는데, 그곳에서 음식 페스티발이 열리자 온통 그쪽으로 관심이 쏠렸던 것이다. 특히 <뮤즈>와 <중국성> 두 큰 음식점 사이의 공원에서 동양과 서양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 두 명이 함께 공연을 할 때에는 바로 옆 광장에 별 모양의 거대한 불가사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되었다. 불가사리가 계속 바위처럼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고 있자 두려움이 전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어느새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가며 그물망에 매달려 놀았고, 거대한 불가사리 표면의 울퉁불퉁한 돌기를 밟고 위로 올라가 텀블링을 하듯 뛰기도 하였다. 아무도 공연이 있던 날부터 몇몇의 사람들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일주일에 걸쳐 밤낮으로 화려하게 펼쳐진 페스티발은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었고, 그때만큼은 사람들이 밤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 중에 누가 없어졌어도 알지 못했다. 후크 선장 불가사리가 해적질을 할 아주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여자는 소설 속의 후크 선장에게 왕성한 식욕을 넣어주는 것으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주려고 한 모양이다. 드디어 페스티발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불가사리의 입 속으로 사라지고 난 다음, 마지막으로 소설 속의 화자까지 희생을 시킨 여자는 음식점들이 있는 곳에서 광장까지 텅 빈 거리를 천천히 움직이는 후크 선장의 몸 위로 억수 같은 비를 뿌렸고, 광장 위의 그물망 밑에 조금도 찌그러지지 않고 남아 있던 단단한 껍질 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간 후크 선장조차 사라지게 만들어버렸다. 결국, 전혀 움직임이 없어서 바위처럼 보였던 별 모양의 껍질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위장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다른 세상과 통하는, 여자가 나에게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렇게 알려주고 싶어했던 <블랙 게이트>란 말인가. 나는 여자의 소설을 빠짐없이 기억해내곤 더욱 혼란스러웠다. 설마 하면서도 여자의 말처럼 정말 도시 어딘가에 그런 비슷한 문이 열려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괴상하게 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머릿속을 채우는 것이었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인데도 몇 번이고 가슴이 내려앉으며 그것이 사실처럼 다가왔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렇게 집 안에 틀어박혀 대책 없이 당할 수만은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때문에 그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수화기를 들었고, 조금 전에도 몇 번이나 눌렀던 여자의 전화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아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내두르며 또다시 수첩을 뒤적였고, 손이 마구 떨려 단번에 누르지도 못했고, 끝내 신호음만 울려대는 수화기를 꽝 소리가 나게 팽개쳐버리고 급하게 텔레비전을 켰던 것이다. 웬일인지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뉴스를 알리던 진행자는 사라지고 머리가 짧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또 다시 가슴이 내려앉았다. 혹시 그도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던 것이다. 평상시라면 그냥 지나쳐버릴 일들이 하나하나 여자가 했던 말들과 엮어져 현실로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주 이상한 점이 있었다.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사납게 날뛰던 사람들이 일단 모습이 변하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뜻밖으로 온순해진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텔레비전의 화면에 비친, 불가사리 모양의 덩어리를 하나씩 붙이고 있는 사람들은 무척 태연했다. 마치 그것을 코나 손가락처럼 태어날 때부터 달고 있던 자신의 몸의 일부분이라고 여기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걱정스러웠다. 손금에 별이 새겨져 있다고 대단한 의미가 있는 양 자랑스레 떠들던 어느 친구의 얼굴도 그렇듯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었다. 하물며 같은 별 모양이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엔 분명한 불가사리를 혹처럼 달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어떻게 그리 편안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점점 알 수 없는 일 뿐이었다. 아무리 대책이 없어 모든 것을 포기하는 마음이라고 해도 그럴 리가 없었다. 텔레비전 속의 진행자는 그 새로운 사실에 대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거듭 반복해서 말했다. 정말이지 그때, 나는 무엇이 그리 다행스러운 일이냐고 묻고 싶었다. 당해보지도 않고 무슨 그런 헛소리를 하느냐는 질책을 들을 소리일는지는 몰라도, 어떤 희망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만약 여자의 말대로 모든 일이 <블랙 게이트>가 열려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곳으로부터 밀려온 거대한 힘 때문이라면, 그 힘이 불가사리를 통해 사람들을 마음대로 다루려고 작정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사람들이 온순해지는 것도 분명 누군가의 조종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더욱 잃어버리는 꼴이었다. 또한, 설사 여자의 말을 온통 무시하고 생각해봐도 그랬다. 그냥 쉽게 다행이라는 표현으로 넘어갈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여자의 소설 속에서처럼 그렇게도 쉽게 마음을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있단 말인가. 고통이 잠시 멈췄다고 상처를 감추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는 일이 그리 홀가분한 기분은 아닐 텐데 말이다. 어쩌면 여자도 소설 속에서 그런 변덕이 심한 사람들의 어리석은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뉴스 진행자의 얼굴 표정에서 느껴지는 가벼움에 마음이 착잡해져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었다.
이봐.
왜?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모르겠어.
물론, 그렇다고 옆집 남자가 온순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엔 시간상으로는 너무 빨랐다. 하지만 나는 그라고 별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본 나도 이미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몸의 여기저기가 가려운 것 같았고, 행여 냄새로 전염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코를 틀어막았고, 무턱대고 거리로 뛰쳐나갈 수도 없어 답답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텔레비전을 켜놓고 서성거리며 때때로 창문을 통해, 비가 오는 거리를 내려다보는 일뿐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한밤중이라고 해도 문 밖의 세상이 너무나 조용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길에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지나가는 자동차도 없었고, 빗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텅 빈 도시에 나 혼자만이 남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었다.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보도하던 진행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치지직> 하고 화면이 꺼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잇달아 이게 뭐야, 으악, 왜 이래, 떨어져나갔어, 발로 밟아, 죽여, 움직이질 않아, 하는 사람들의 급박한 음성만이 까만 화면 안에서 소란스럽게 뒤섞여 흘러나왔었다. 오래 전, 무슨 국경일 기념식 행사를 생방송으로 보던 중에 갑자기 총성이 들리며 화면이 사라졌을 때와 비슷했다.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왜 바깥이 그렇게 조용한 것인지, 또 무슨 엉뚱한 일이 일어난 것인지, 숨을 죽이고 텔레비전의 채널을 지역 방송으로 고정시킨 채 꼼짝없이 앉아 있었는데 그런 일이 생기니 아주 미칠 노릇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점점 크게 들리는 빗소리와, 점점 진하게 맡아지는 비릿한 냄새와, 점점 불안해지는 마음을 억누르며 내가 어떻게 밤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부랴부랴 이 도시를 빠져나갔기 때문에 주위가 조용한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고 말이다. 아무튼, 오늘 새벽, 마침내 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던 것이다.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고 이것 저것 복잡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거리는, 여자의 소설 끝부분에서 후크 선장이 사람들을 모두 잡아먹고 광장으로 돌아갈 때처럼 텅 비어 있었고,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이 도시에 나 혼자 남겨졌다는 두려움에 빠져들었고, 허공을 향해 <거기 누구 없느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고, 한동안 길 한가운데 서서 두리번거리다가 가까운 건물 속에서 전등 불빛이 하나 터져나오는 것을 본 뒤에야 안심을 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손맛집> 분식 센터의 차양 밑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사람일 거라는 짐작을 하며 자세히 주위를 둘러볼 수가 있었다. 그때서야, 내 두 발이 어디에서 쓸려왔는지도 모르는 시커먼 진흙탕물 속에 빠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또 그때서야, 주위가 온통 비릿하기는 하지만 내가 집 안에서 시달렸던 냄새보다도 훨씬 고약한 냄새로 뒤덮여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흙탕물 속에서 심한 악취가 올라왔던 것이다. 나는 서서히 움직이며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발에 뭔가가 뭉클뭉클 거치적거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리 그렇다고, 발을 옮길 때마다 진득거리며 달라붙는 덩어리들이 썩은 불가사리들이라는 것을 내가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그것들이 사람의 몸에서 떨어져나온 덩어리라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정말 기겁할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진흙 속에서 썩어 악취를 풍기며 나뒹구는 불가사리들을 발견하곤, 드디어 뭔가를 알 것 같았다. 간밤에 텔레비전 방송 사고가 일어났을 때 마구 뒤섞여 흘러나왔던, 이게 뭐야, 으악, 왜 이래, 떨어져나갔어, 등등의 말들이 순식간에 떠올랐고, 바로 그래서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실제로 본 것이 아니라서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뉴스를 담당하는 스텝들 중, 누군가의 몸에 붙어 있던 불가사리 하나가 갑자기 바닥으로 툭 떨어져버린 것이 분명했다. 마치 거머리가 사람의 몸에 달라붙어 양껏 피를 빨아먹은 뒤 스스로 떨어져나가는 모습처럼 말이다. 나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쫓기듯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온 뒤, 언제부터인지 다시 화면이 나오고 있는 텔레비전을 보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 도시를 떠났다는 것 빼고는, 마치 내가 쓴 시나리오 각본처럼 정말 똑같은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라고 해도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그런 괴상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정말 그러나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아닌 것이 분명한 어떤 뜨거운 힘이 불끈거리며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느낌이 든 탓이었는지, 집요하게 여자의 소설을 떠올린 탓이었는지, 나는 이내, 세상에는 아무리 <왜>냐고 따져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 분명하게 있는 한, 여자가 소설 속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처럼, 이 어처구니없는 상태를 그대로 인정한다고 더 나빠질 것이 없다는 생각에 빠졌던 것이다. 사람들이 흉측하게 변해버린 것이, 어떤 커다란 힘에 의해 천벌을 받은 것이건, 다른 세상과 통하는 문이 열려서이건, 이미 그렇다고 치자. 왜 하필이면, 그 많은 생물 중에서 날개가 달린 곤충도, 뱀도, 외계인도 아닌 불가사리냐는 것도 이미 그렇다고 치자. 불가사리처럼 식욕이 왕성하고 무자비한 생물이 또 어디 있는가. <물에 빠진 사람의 시체를 건져올렸는데 온몸에 한치의 틈도 없이 조개들이 달라붙어 있어서 누군지 식별을 할 수 없었다>는 한 친구가 그 말끝에 「그런데, 그 조개를 잡아먹고 사는 게 뭔 줄 알아?」 하고 물었던 것이 바로 불가사리이지 않는가. 그런 무시무시한 것이 끝까지 몸에 달라붙어 있어야 걱정이지, 저절로 떨어져나가 진흙탕 속에서 썩어 나뒹구는데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나는 한 순간, 어차피 돌이킬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라는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쿵쾅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미칠 듯이 집으로 달려 들어와서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어느새 내 머릿속에는 더 이상 <왜>라는 물음이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단 말이다. 아마 그 때문이리라. 나는, 그 뒤부터 양다리가 심하게 따끔거려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고, 공기 중에 퍼져 있는 고약한 냄새에도 헛구역질이 올라오지 않았다. 단지, 왼쪽 발목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을 뿐이었다. 예전에, 여자의 글을 읽고 마치 내가 발이 다친 느낌에 빠졌을 때처럼 기연가미연가 말이다.
독자 여러분, 저는 감히 이 소설을 여기에서 끝내려고 합니다. 오만불손하게도, 저는 지금, 몇 장의 원고를 더 채워서 이 글의 앞머리와 끝머리를 꼭 맞물려놓으려 했던 제 자신이 지긋지긋해졌습니다. 갑자기, 이 빈약한 글을 집어던지지 않고 읽어준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제가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 것인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딜레마에 빠져버린 것이지요. 맞습니다. 이 소설의 화자는 투명한 유리창 앞에 서서, 투명이라는 낱말이 무색하리 만치 불투명하게 보이는 흐린 새벽의 거리를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아마도 다음 순간, <손맛집> 분식 센터 차양 밑에 어렴풋이 보였던 사람이 바로 그 여자였을지도 모른다고 슬쩍 눙치며 이야기를 끌어나갈 것입니다. 소설의 중간 부분에서 여자가 화자에게 <만나고 싶다>는 전화를 이미 했기 때문에 별다른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여자의 신체 중에서 눈에 띄는 곳, 굳이 따지자면 얼굴의 이마쯤에다가 불가사리 하나를 딱 붙여놓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하겠지요. 아무리 빤한 내용이라서 낯이 간지러워도 이 부분에서 여자의 얼굴이 괴상하게 변했음을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바로 그런 점들이 지겨워서 제가 이 글을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아도 말입니다. 그래야지만, 화자는 이내 시야로 들어오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혼자 중얼거리게 될 것입니다.
이봐.
왜?
정말 그 여자라고 생각해?
모르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