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연지 1년반만에 도로 문 닫아..."애초부터 승객 많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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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공항청사 앞 마당의 콘크리트 틈새로 잡초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 18일 오후 경북 예천군 변두리에 자리잡은 예천공항을 찾았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4시간 가량 걸려 도착한 예천공항은 중앙고속도로 예천 IC에서 17km쯤 떨어져 있었다. 공항 정문 앞에 이르자 바리케이드가 가로막고 섰다. 단 한명의 승객들이 보이지 않는 텅 빈 공항은 더 이상 운영되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공항 운영 및 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공항공사는 10일 제주~예천 노선을 폐지하고 건교부에 공항지정 해제를 요청한 상태. 건교부의 승인 절차가 남아있지만 공항은 사실상 폐쇄됐다. 97년부터 386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2002년말 완공한 신청사가 문을 연지 1년 반도 안돼 무용지물로 전락해 초라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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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케이드를 통과해 공항 안으로 들어가자 초라한 대형창고 같은 청사가 한 눈에 들어왔다. 직원용 주차장엔 차량 몇 대만이 공항의 청산절차가 진행중임을 짐작케 했다. 청사 2층에 위치한 한국공항공사 사무실로 올라가자 70여평 공간에 다섯 명의 직원이 한가롭게 업무를 보고 있었다. “직원 정원이 25명인데 노선 폐지 뒤 10명가량이 이미 다른 지사로 전출가거나 그만둔 상태입니다” 한 직원은 공항노선 폐지로 직원들마저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고 전하면서 어두운 표정을 떨치지 못했다.
이종봉 시설팀장의 안내로 공항 청사를 둘러 보았다. 공항이란 느낌은 이제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스낵바에는 간판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관광안내센터에는 뽀얗게 먼지가 쌓인 채 관광안내 팸플릿이 비치돼 있었다. 청사 밖 활주로를 내려다 보니 곳곳엔 벌써 잡초들이 무성했다.
예천공항은 89년 12월 공군 비행장을 활용해 문을 열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서울과 제주 노선을 하루 왕복 6차례씩 운항하면서 주민 편의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공사가 시작된 97년 외환위기가 닥친 데 이어 2001년말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탑승객이 크게 줄었다. 공사 시작 무렵부터 이용객이 줄어 공항이 폐쇄될 가능성이 적지 않았지만 공사가 강행된 셈이다.
“주로 예천과 문경, 안동, 영주 시민들이 이 공항을 이용했습니다만 인구도 적고 대부분 농민들이라 비행기를 이용하는 숫자가 애초부터 많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속도로가 가까운 것도 승객이 적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봐야죠. 노선이 없어진 뒤에도 노선이 폐지됐다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노선이 있어서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상관 없다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기자가 “공항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방안이 없느냐”고 묻자 이팀장은 “그런 아이디어가 있었다면 공항이 이렇게 까지 됐겠느냐”고 반문했다. 건설교통부 부산지방항공청에서 예천공항에 파견나온 장일복 출장소장도 “지금으로선 상부 지시를 기다리는 것밖에 달리 할 일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울진군민들 "우리도 공항 필요성 못 느껴"... "정치인과 관리들 잇속 차리느라 추진한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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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프트럭 여러 대가 울진공항 건설 현장을 바삐 오가고 있다. | 다음 날인 19일 아침 예천에서 두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경북 울진공항 건설현장. 총공사비 1364억원이 들어가는 울진공항에는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시공사인 한라건설은 청사 외관 공사를 거의 마무리 짓고 내장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청사 앞 건설 현장에는 인부 수십 명이 하수시설을 놓고 있었고 활주로쪽에서는 땅을 고르는 한편 아스팔트를 깔고 있었다. 활주로 입구에서 벌목하는 인부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공항 건설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공사장 인부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공항의 입지 타당성에 대해 물어보자 이구동성으로 “아니올시다”란 대답이다. 우선 자신들부터 비행기 이용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 인부는 “공항이 읍내에서 떨어져 있고 공항을 이용하는 시간 등을 따져보면 직접 차를 몰고 가는 시간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누가 비싼 삯을 물고 비행기를 타겠느냐”고 말했다. 울진읍에서 공항까지는 승용차로 30분 정도. 티켓을 끊고 탑승을 대기하는 시간에다가, 김포공항에서 내려 도심을 진입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주민이나 관광객들이 공항을 이용하기는 무리라는 설명이다. 더구나 울진과 포항을 연결하는 4차선 국도 확장 공사가 내년이면 완공돼 울진에서 1시간이면 포항에 도착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주민들은 둘째 치고 관광객들 사정은 어떨까? 울진공항 건설 부지 앞에서 수퍼를 운영하는 김지혜(31,여)씨는 “여기가 워낙 외진 곳이라 관광하러 일부러 비행기까지 타고 올 외지인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화물 운송량도 많지 않아 굳이 공항이 들어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울진읍내에서 회집을 운영하는 도영극씨도 “당장은 공항 건설로 일자리가 생겼지만 공항 개장 후 과연 얼마나 지역에 도움 될지는 모르겠다”며 “공항이 애물단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사가 시작될 때 당국은 울진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공사 인력들의 항공 수요도 계산에 넣었지만 몇 년안에 발전소 건설 공사가 끝나면 그 수요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 현장과 울진읍내에서 만나본 20여명 가운데 울진공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울진읍내에서 만난 한 약사는 “정치인과 관리들이 자기네들 이권 때문에 공항 건설을 추진한 것 아니겠느냐”며 “시민들이 속 사정을 속속들이 몰라 반발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제 2, 제 3의 예천공항' 계속 지어져... 건교부, 10년전 계획 '무조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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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방공항별 이용객 수 변화 | 예천공항의 경우에서 보듯 고속도로 개통 등 주변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공항을 지은 결과 지난 해 전국 지방공항의 적자는 480억원에 이르렀다. 김포공항을 제외한 15개 지방공항 중 흑자를 내는 공항은 김해와 제주뿐이다. 영동고속도로가 확장된 직후 문을 연 강원도 양양공항의 경우 지난 해 수용능력 연간 190만명에 턱없이 모자라는 20만명만 이용해 전기료도 못 건지고 있는 수준이다. 고속철 개통으로 적자 폭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런데도 한편에서는 ‘제2, 제3의 예천공항’이 울진뿐만 아니라 전남 무안, 전북 김제 등에서 계속 건설되고 있다. 97년 대선 공약으로 시작된 이들 세 개 공항의 신설에는 국고 5500억원이 든다. 특히 군산공항을 대체하기 위해 모두 1474억원을 들여 진행하고 있는 김제공항 건설사업은 타당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미 2001년 서해안고속도로 개통 이후 33km떨어진 군산공항의 이용객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 김포~군산 노선은 폐지됐고 제주~군산 노선만 하루 두 편 운행되고 있는 실정. 더구나 지난 달부터 호남고속철도도 운행되고 있어 김제공항이 들어설 2007년 무렵이면 승객이 지금보다 더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지방공항의 사례들은 정부 예산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짜여지고 집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건설교통부가 사업에 대한 치밀한 타당성 분석 없이 10년전 세운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독단이 이 같은 예산 낭비를 초래한 일차적 원인이다. 대부분 지방 공항 신설 및 확정 사업은 건교부가 94년 4월 수립한 ‘공항 개발 중장기 기본 계획’에 근거해 추진되고 있다. 그 동안 서해안, 중앙, 대전고속도로 개통과 경부고속철도 개통 등으로 다른 대체 교통수단의 증가로 여객 수의 감소세가 충분히 예상됐다. 더구나 이 같은 도로 및 철도 개통은 다른 부처도 아닌 건교부가 시행하고 있는 사업. 같은 부처에서 시행되는 사업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부실 예산 심의가 부실 지방공항 문제 만들어
지방공항 건설 사업의 문제는 동시에 국회 예산 심의 과정의 허점을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방공항 건설 사업이 10년 가량 계속되는 동안 국회에서는 이들 사업에 대해 한번도 제대로 제동을 걸지 못했다. 오히려 의원들의 지역 나눠먹기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난 해와 2002년 국회 예결위 심의 내용을 잠시만 살펴봐도 이들 예산에 대한 심의가 얼마나 부실하게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 예결위 회의록을 통해 이를 살펴보자.
"항공사에 인센티브 줘서라도 공항 폐쇄 막아라"
예천공항 인근의 한 지역구 의원은 예천공항의 이용객 수 감소로 서울~예천간 노선이 없어진 시점인 2002년 이를 되살리기 위해 건교부에 새로운 유인책을 제공하라고 압박했다.
예천공항 총 사업비 420억원중 중 400억이 이미 투입됐습니다. 서울~예천간 노선을 폐쇄하고 제주도만 1일 1회 운항하고 있습니다. 영주시와 안동시를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권과 예천을 중심으로 한 과수재배 등 유명한 관광지로서 외국인들의 방문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중략) 이용자 감소로 수익이 없는 노선을 운영하는 항공사에 대해 인센티브로 황금노선을 우선적으로 주는 방향이 어떨지 장관의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한나라당 박시균 의원(경북 영주), 2002년 10월 31일 예결위에서 당시 건교부 임인택 장관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
대선 공약 예산 따내려 '팀 플레이'도
대선 공약사업인 지방공항 예산을 따내기 위해 같은 당 소속 예결위원들끼리 ‘팀 플레이’를 펼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일부 의원은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없는 사업은 도중에라도 그만두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경제 원론에 나오는 내용조차 외면하기도 했다.
윤철상 의원(민주당, 비례대표)=김제공항 예산을 전부 삭감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것은 좀 재고하면 어떨까 합니다.(중략) 이강래 의원(민주당, 전북 남원-순창)=제가 조금 더 보완하겠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것이 이미 386억이 투자됐다는 사실입니다.(중략) 따라서 이러한 계속사업을 전면적으로 백지화하면 그동안 투자된 비용이 전부 매몰비용이 돼버려서 국가재정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옵니다. (중략) 또 전라북도가 전략적인 거점이 되는 곳이 김제공항입니다. (중략)그래서 일단 이것은 (정부) 원안대로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박병석 의원(당시 민주당, 대전 서갑)=예산을 배정할 때 효율성도 고려해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지역간 균형도 고려해야 합니다.(2003년 12월 21일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에서)
"부실 지방공항도 지었으니 부산 항만에도 예산 지원해달라"
지방공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이 같은 ‘현실’을 자기 지역 예산을 따내는 ‘지렛대’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허태열 의원(한나라당, 부산 북-강서을)=지방공항들이 부실 공항이 되고 있는데 이 공항들을 예정대로 착착 진행할 예정입니까. (중략) 제가 이 공항 문제를 인용한 것은 지금 항만시설 투자와 관련해서 얘기를 드리기 위한 겁니다. (중략) 이것(부실 지방 공항 사업들을 지칭)은 지속적으로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줄 것인데 어떻게 이런 것은 나가고…정말 21세기 이 나라를 먹여 살려 나갈 항만에는 투자를 안 합니까.(2003년 10월 28일 예결위에서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 등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 |
"예산 한 번 걸치면 상황 달라져도 끝까지 가"... 전문가 "성과주의 예산제도로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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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2001년 건교부가 수립한 지방공항 사업예산안 |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해 건설교통부 예산심의 보고서에서 “공항에 대한 투자는 교통시설특별회계에서 일정 투자분이 보장돼 매년 3000억원대의 투자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예산조정의 탄력성이 적다”고 지적했다. 예산정책처는 “공급이 생기면 수요는 저절로 생긴다는 태도와 지역균형발전 논리 등으로 수요를 초과한 공항확충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교통시설특별회계를 폐지하고 일부 사업계획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예결위 임우근 간사는 “대규모 건설 사업 등은 여러 해 이어지는 계속사업이 많은데 이들 사업은 처음 시작만 하면 ‘이미 한 사업이니 계속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정부와 관련 지역 의원들이 예산을 계속 따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전북 김제공항의 경우 건교부는 99년 공사 타당성 검토를 위한 설계비로 8억원을 책정한 뒤 “이미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한다”는 논리로 2000년 25억, 2001년 50억, 2002년 166억, 2003년 130억 등 계속 사업액수를 불려나갔다는 것. 그는 “도중에 사업 여건이 당초와 달라져 문제를 제기해도 해당 정부 부처나 이해 관계가 걸린 예결위원들은 전혀 아랑곳 않고 ‘우리 사업인데 왜 니네가 손 대느냐’고 깔아뭉갠다”고 말했다.
한경대 이원희 교수는 사업 전반에 대한 평가 없이 항목별로 예산 심의를 해서 이 같은 문제들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항목별 심의를 하게 되면 도로사업의 경우 인건비, 자재비, 도로건설비 등 기계적으로 숫자만 따지게 돼 사업에 대한 실질적 평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도로를 만듦으로써 도로 소통이 얼마나 원활해졌는지, 도로 환경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평가해 다음 해 예산 심의 때 반영하는 ‘성과주의 예산’제도로 가면 잘못 진행되는 사업을 중간에 바로잡을 여지가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 예산 편성이 폐쇄적인 관료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지방정부에 대한 선심성 경상보조가 많아 예산이 정치화됐다”며 “이를 막기 위해 국회 예산정책처 같은 전문기구를 키워 국회의 예산 심의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이 정부와 국회를 동시에 견제하는 ‘제2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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