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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동시교실 원문보기 글쓴이: 허암 박일
극적이면서 ‘흥’을 일으키는 엉뚱한 상상력
-강기화의 첫동시집 『놀기 좋은 날』을 읽고
박 일
1.
강기화의 동시를 읽는다. 갑자기 트와이스가 떠올랐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9인조 걸 그룹이다. 2016년 11월 11일, 그들의 ‘OOH-AHH하게 (우아하게)’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 수가 1억 뷰를 돌파했다고 한다.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나에게는 그들의 이름도, 얼굴도 낯설다. 그저 예쁘고, 귀엽고, 활달하게 보일 뿐이다. 가끔 TV에서 만나면 그들이 내지르는 음악의 가사는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지만 현란한 율동만 보고 즐길 뿐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것은 그들의 음악이 아이들의 기호에 맞기도 하지만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그렇다면 강기화의 동시도 트와이스의 음악이다.
처음에는 4차원에서 강기화의 동시를 이해하려고 했다. ‘4차원 소녀의 엉뚱한 상상 여행’이라고 주제를 잡기도 했다. 4차원에서 온 사람이란 정신세계는 물론 말과 행동이 남들과 다르고 특이할 때 붙여지는 이름이다. 강기화는 엉뚱한 상상력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4차원이란 아인슈타인에 의하여 명명되었고, 3차원의 공간에 시간을 더한 연속체다. 시공간(space-time)이라고도 하는데 상대성이론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이 이론도 한참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강기화의 동시와 접목시키기에는 실력이 너무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고에서는 극적이면서 ‘흥’을 일으키는 엉뚱한 상상력이란 주제로 서술코자 한다. 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그가 겪은 특별한 체험이나 세대 차이 등으로 인해 심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있을 것 같은 염려도 생겼다. 트와이스의 노래를 듣는 것처럼.
강기화는 2010년 창주문학상 동시부문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2014년 월간 『어린이와 문학』에서 추천 완료하면서 문학적 입지를 공고히 한다. 2016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에 당선되면서 첫동시집『놀기 좋은 날』(산지니, 2016)도 빛을 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동시교실’은 그의 문학을 단련시키고 성숙시킨 공간이다.
2.
감격적이거나 인상적인 것을 극적이라 한다. 강기화는 악동처럼 극적인 요소를 즐긴다. ‘시인의 말’에도 악동 다섯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업시간마다
다리 떠는 주원이도
화장실 간다고 손드는 민재도
책에 낙서하는 솜이도
오늘은 모두
의자에 등 딱 붙이고
똑바로 앉아 있다.
진짜 모습
아무도
공개하지 않았다.
-「공개수업」
공개수업이라고 하면 보여줄 것은 다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보여주지 못한 것이 있어야 역설적이면서 극적인 것이 된다. 주원이, 민재 그리고 솜이의 나쁜 버릇들이다. 이것이 노출된다면 공개수업을 망칠 수 있고, 선생님이 얼마나 난처해지겠는가? 그 난처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공개할 수 없었다. 극적이 요소를 다 강하게 발휘하기 위하여.
시란 자아(시적 자아)와 세계(시적 대상)의 상호작용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동시는 동화와 투사를 통해 동일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투사(projection)란 시적 대상에 자기 자신의 특성, 태도, 주관적 변화과정을 부여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적 대상을 자기 자신과 동일화하는 것이다. 동시가 낭만파 계열에 서 있기 때문에 19세기 유럽 낭만파들이 주장한 이것을 거의 수용하고 있다. T. S. 엘리어트는 ‘시는 정서의 분출이 아니고 정서로부터의 도피이며,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다’라 말하며 정서의 절제와 표현의 구체성을 중요시하는 몰개성론을 주장했다. 문학의 몰개성론은 시적 대상과 시적 자아를 동일시하는 개성론에 반동한 문학이다. 시와 동시가 차이를 보이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틈만 나면 게임한다고
중독이라 하지만
난, 학교 갔다 와서 할 뿐
난, 학원 갔다 와서할 뿐
난, 밥 먹고 할 뿐
난, 똥 싸고 할 뿐
학교도안가학원도안가밥도안먹어똥도안싸
틈도 없이 하는 게 중독이지
틈도 없이 잔소리하는
엄마가 중독이지
-「중독」
엄마는 잔소리꾼이다. 어쩌다 게임을 하고 있으면 게임 중독이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러나 그 중독을 되받아치고 싶은 것이다. 극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틈도 없이 잔소리하는/엄마가 중독’이라면서 당당히 아이들 편에 서 주고 있다. 그는 엄마가 아닌 뻔뻔한 아이가 되기도 한다.
입속에 사는 개가
주인을 닮아서
개판
개망나니
개구신
거친 입속에 살면
개망신
개양귀비
개망초
개쑥부쟁이
고운 입속에 살면
꽃이 된대
-「입속에 사는 개」
‘개’는 변변하지 못하다는 뜻의 접두사로 쓰이기도 한다. 개양귀비, 개망초, 개쑥부쟁이 등. 이 때 ‘개’는 꽃과 함께 어울리면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개과의 짐승으로 표현될 때는 그야말로 개판이고 개망신이 된다. 입속에 사는 ‘개’가 이렇게 다르게 쓰일 수 있으니까 꽃이 되라고 일러준다. 내 입 속에 개가 개판, 개망나니 등의 거친 말로 튀어나오면 너도 그렇게 된다는 강한 경고가 느껴진다.
3.
‘흥’이란 서구적 개념의 은유와 유사하지만 다른 사물을 끌어들여 자신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흥겨움과 즐거움도 맥을 같이 한다.
꽁치 한 무더기 3500원
할머니는 잔돈 없다며 500원만 깎자 하고
아저씨는 다 팔아봐야 500원도 안 남는다며
봉지에 꽁치 한 마리 더 담는다.
할머니는 꼴랑 한 마리 더 담나 소리치고
아저씨는 할매 목소리 짱짱한 거 보이
아직도 이팔청춘이라고 놀린다.
깎아 달라는 꽁치 값은 안 깎아주고
돈 안 되는 나이만 팍팍 깎는다면서
할머니는 콧노래 흥얼거리며 돌아간다.
-「우리 동네 깎기 선수」
시장 안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다. 사려는 쪽에선 값을 조금이라도 더 깎고 싶어 하지만 파는 쪽은 그렇지 않다. 물건 값을 깎겠다고 떼쓰면 주인은 남는 게 없다고 한다. 흥정의 심리전이 일어난다. 그러나 손해와 이익이 화합하면서 모두를 만족시킨다. 윈-윈 전략으로 독자까지 흥겹게 한다.
운동장을 헤엄치다
배 까붙이고 깔깔대다
우주로 날아가 버리는
우리들의 물고기
주의!
잡아먹지 마시오.
-「은어」
은어는 은어과의 물고기다. 도루묵이라고도 한다. 본뜻을 숨기고 자기들끼리만 알고 남이 모르도록 만들어 쓰는 말도 은어다. 이 두 가지 의미의 적절한 조합이다. 은어는 물고기니까 그들만의 은어도 물고기로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잡아먹지 마시오 하면서 너스레를 떨고 있다.
아빠가 요술에 걸렸다
고릴라가 되었다
"요 술이 문제야, 요 술이!“
엄마가 고릴라를 흘겨본다
“정수야, 무울!”
고릴라가 가슴을 탕탕 친다
거실 한가운데 벌렁 눕는다
고르릉 푸푸
고르릉 푸푸
나는 물 떠 놓고
고릴라에게 주문을 건다
“아침엔 우리 아빠로 돌아와. 얍!”
-「요술」
만취하여 들어온 아빠는 고릴라였다. ‘요 술’이 문제라면서 엄마가 못마땅해 한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요 술’을 요술‘로 바꾸며 주문을 건다. 내일 아침에는 우리 아빠로 돌아와 달라고.
4.
아이들은 미와 상상의 세계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다. 상상력과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하여 4차원의 시공을 맘껏 날아다니기도 한다. 독자가 그의 상상력 앞에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으리라.
10년 무사고
모범운전기사
돈 끼호떼 우리 아빠
새벽마다
로시난떼를 끌고
모험을 떠난다
술주정뱅이 욕쟁이에
싸움쟁이를 만나도
도망치지 않고 달리는 건
기사도 정신 때문이다.
싼초가
라디오 안에서
쉬지 않고 떠들어대다
잠드는 밤이 오면
아빠는
뚱뚱하지만 품위 있는
둘시네아 엄마를 찾아
집으로 돌아온다.
-「기사도 정신」
세르반데스의 『돈 끼호떼』는 기상천외한 모험 이야기다. 당시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가 발코니에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한 학생이 책을 읽다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 “저 학생은 돈 키호떼를 읽고 있겠지.”라고 했을 정도로 널리 읽힌 소설이다. 주인공인 돈 끼호떼는 우리 아빠다. 아빠가 운행하는 택시는 로시난떼다. 종일 수많은 승객을 만난다. 때로는 역겨운 분들도 있겠지만 그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그게 기사도 정신이었다. 싼초는 라디오 안에서 쉬지 않고 떠들고 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엄마가 기다리고 계신다. 뚱뚱하지만 품위 있는 엄마가 둘시네아다. 소설의 주인공과 가족과의 기막힌 대입과 비유가 근사하게 어울린다.
교실 옆에 교실 옆에 교실을
컨트롤C 컨트롤V
학교종이 땡땡땡 선생님 말씀을
컨트롤C 컨트롤V
집 위에 집 위에집 위에집을
컨트롤C 컨트롤V
해라마라 엄마아빠 잔소리를컨
트롤C 컨트롤 V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컨트롤C 컨트롤V
잠깐
!복사한 꿈은 모두 딜리트.
나는 종이비행기 날리기 국가대표 선수가 될 거야
-「컨트롤C 컨트롤V」
컨트롤C 컨트롤V는 복사해서 붙여 넣기다. 교실, 선생님 말씀, 집, 잔소리는 물론 내일까지 복사하고 싶은 꿈이다. 그 꿈을 위하여 노력한다. 그러나 복사한 것은 진정한 꿈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딜리트 해버린다.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하여. 그 꿈은 종이비행기 날리기 국가대표 선수였다.
트와이스의 노래처럼 이해(아이들은 잘 이해하겠지만)가 어려운 작품들이 보인다. 「안녕 말고」「개구리 알람」「해골바가지를 그리자」「몽구와 파파추」「미로 찾기」「분수를 배우는 까닭」 등등.
5.
동시집 『놀기 좋은 날』에는 48편의 동시가 들어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거듭 읽다 보니 마침표(온점)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 현재진행형이었다. 가능성을 무한대로 넓혀 놓았기 때문이리라. 시어도 세련되었다기보다 거칠고 투박하다. 그러나 그 시어들이 작품 속에 동화되면서 멋지고 격조 있는 언어로 변신하는 것이다.
강기화는 극적인 구성을 즐긴다. 제목만으로 궁금증을 유발시켰다가 극적인 상황에 가서 주제를 풀어놓는다. 끝까지 읽게 만든다. ‘흥’은 자유분방한 사고에서 오는 여유와 멋이다. 곁에서 지켜보면 말괄량이 삐삐처럼 덤벙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이 동시집의 제목 ‘놀기 좋은 날’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오즈의 나라로, 귀신의 집으로, 달나라로 마구 달리며 짜릿함을 느끼기도 한다. 엄마가 아니고 아이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글은 치밀하고 기발한 표현을 지향한다. 그래서 세인들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엉뚱한 상상력은 그의 동시의 본질이다. 본론에서 극적인 것, 흥에 관한 것을 따로 떼어서 기술했지만, 그의 모든 동시들은 상상력과 직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밤은/모험을 떠나는 시간/꿈을 꾸면/어디든 갈 수 있지/말썽꾸러기 개구쟁이들의/천국이 지옥이라면/허클베리 핀이 되어도 좋아/이제 불을 꺼/아무도 간 적 없는 길/맨 처음 발자국을 찍으러/우리 함께 떠나자’(「모험을 떠나는 시간」)라고 한 것도 상상의 모험이다. 그 모험을 즐기는 시간이 어디 밤뿐이랴!
등단 후 6년 만의 경사다. 2016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에 당당히 당선되면서 『놀기 좋은 날』이 빛을 보았다. 그의 동시까지 제대로 인정받는 계기도 되었다. 더한층 도약의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
강기화의 곁에는 동화작가인 친구 한아가 있다. 그와의 보이지 않는 경쟁과 격려가 서로 구름 위에 올려놓는 것은 아닐까. 한아는 2008년 MBC 창작동화대상을 받고 등단하여 동화집 『콜라요괴』 등을 상재했다. 관중과 포숙아처럼 우정을 다지면서 성장과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무래도 아동문학계에 큰일을 저지를 날도 머지않으리라.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