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베트남 사이 증오의 흔적이 사라지고, 사랑만이 남은 그런 세상을 만드는 일은 이제 당신과 나의 몫이 아닌가?"는 탄 타오 시인의 2001년 강연에서 나는 깨달았다.
역사는 윤리와 만나야 한다!
역사에서 윤리를 구현하려면 먼저 자신의 어두운 역사를 스스로 드러내, 고백하는 용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고백 없이 진실하게 화해할 수는 없다. 나는 진실은 나의 거짓, 나의 왜곡, 나의 은폐, 나의 착오를 겸허하게 인정해야만 드러난다고 믿는다. 제 눈의 대들보는 모른 체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만 돋보는 사람에게 진실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예수께서 내가 얼마나 ‘지독한지’ 모르고 남을 그저 ‘지독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인간의 태도라고 준엄하게 꾸짖지 않았던가.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
이것을 인간의 최고 윤리로 삼아야 마땅하리라. 스스로 죽임을 당하거나 도적맞고 싶지 않거든 남을 죽이거나 훔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극한 상식이지만, 이것을 인간이 지키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신의 위대한 창조물이 되기 위해서 약육강식하는 동물적 야만 습성을 억눌러서 없애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하리라.
일본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아시아 전역에서 이루 헤아릴 수없이 저지른 명백한 전쟁 범죄에 대하여 본질적 반성은커녕 겉치레 사과 조차 않고 있다. 일본은 역사를 왜곡할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한시도 멈추지 않고, 모든 침략을 미화하고 학살을 전쟁의 속성이라는 궤변으로 윤리적 불감증을 만천하에 과시한다. 뻔뻔한 거짓을 혐오스럽게 늘어놓는 늙은 유다처럼…
일본인들 개개인은 사실 어느 민족보다도 예의바르고 정직하고 성실하며 예술을 사랑하며 유순하다. 그러나 이러한 미덕은 저희끼리만 지킨다. 일본은 이웃 나라를 침략해서 저지른 만행이 역사적 증거로 훤히 드러나도 아예 외면하는 태도는 마치 손바닥으로 제 눈을 가려 놓고 하늘을 덮었다고 스스로 기만하는 모습이다. 탁월하게 신비한 기술로 경이적인 근대화를 이룩해서 쌓은 풍부한 물질적 부에 어울리지 않게 유치한 일본의 윤리적 정신 수준에 그저 혀를 내두를 뿐이다.
최근에도 일본 정부는 ‘한국이 불법으로 독도를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중국과 영토 분쟁을 빚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 대해서는 ‘영토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런 몰염치는 남에게 저지른 악독한 행위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과거사에 대해 혐오스럽게 뻔뻔하고, 이웃을 향해 사악한 뱀처럼 탐욕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일본이 있는 한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는 요원하리라.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의 범죄를 철저하게 반성했고 피해자들에게 철저하게 배상했다. 정치인들이 파시스트 전범의 위패를 안치한 야스쿠니 신사를 끊임없이 참배하는 일본과 달리 독일은 나치를 찬양하는 발언조차 범죄 행위로 처벌한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은 폴란드 바르샤바 방문에서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희생당한 유태인 추모비 앞에 화환을 바치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진심어린 돌발 행동에 독일에 극심한 반감을 품은 폴란드인은 물론 전 세계인이 감동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무릎 꿇을 필요가 없는 그가 정작 무릎을 꿇어야 할 용기 없는 사람을 대신해 무릎을 꿇었다”고 극찬했다. 나치 시절 빌리 브란트는 반나치 운동을 한 저항 투사다. 그런 한 사람이 무릎을 꿇음으로써 모든 독일 국민이 온전히 일어설 수 있었다.
1985년 5월 8일, 바이츠제커 독일 대통령은 기념행사에서 역사 윤리의 진정한 의미를 웅변으로 표현했다. “…우리는 모두 죄가 있건 없건, 나이가 많건 적건 우리의 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이제 새로운 세대가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40년 전에 일어난 일에 책임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그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우리는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가를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바이츠제커는 독일의 젊은이들에게 어버이 세대의 잘못을 꼭 기억하도록 요구하였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인 젊은이들에게 역사의 명백한 잘못을 바라보게 할 때 음험한 미소를 짓는 일본을 닮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참회하며 무릎을 꿇은 독일을 닮도록 할 것인가. 실로 우리가 베트남전쟁 참가를 반성하지 않는다면, 기억을 왜곡하고 잘못을 미화하는 일본의 역사관을 천박하다고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세계사 무대에서 도덕을 운운할 수 있는가? 과거에 대해 애써 눈을 감는다면 미래에 밝은 빛을 볼 수 있을까? 기성세대가 과거사를 인식하는 태도에 따라 젊은이의 역사 윤리가 파멸의 경계에서 그 방향을 달리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