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교 교장과 화북교 교장을 역임한 김영환 선생(사진)이 지난 10일 도솔산전투 참전기를 쓴 수필 ‘도솔산’으로 서울문학 제16회 신인상 수필부문에 당선됐다(심사위원장 이원복).
김 선생은 6.25가 나던 해 성산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동료교사 3명과 함께 해병 3기로 입대해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 도솔산전투 등에 참전했으며 무공훈장 화랑훈장을 받았다.
당선작 ‘도솔산’의 전반부를 소개한다.【편집자주】
도솔산
1951년 6월 4일 도솔산 점령을 위한 공격명령이 우리 해병대에 하달된 것은 아침 8시였다.
산은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어서 전후 좌우를 분별할 수 없었고 불과 몇 미터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솔산 전투지역은 양구와 인제 사이의 태백산맥 중에서 가장 험준한 곳으로 평균 고도가 1000미터 이상이고, 양양.철원을 삼각의 저변으로 하여 원산을 그 정점으로 하는 중동부의 삼각산악지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요새지이다.
전략상 가치가 대단했기에 북괴군은 막강을 자랑하는 12사단이 포진하고 있었다. 미해병사단은 북괴의 공격기도를 분쇄하고 방어에 유리한 지역으로서의 캔자스선(Kansas Line)을 설정하여 전투에 임했었다.
그러나 항공 및 야포의 지원이 제대로 안 되었기 때문에 실패를 거듭하다가 우리 해병대 제1연대에 인계된 것이다.
당시는 신록의 유월이어서 울창한 나무숲과 지면은 기형적으로 휘어진 바위들뿐이었다.
바로 몇 미터 앞 바위틈에서 병사의 모습이 안개속에 아른거려도 적군인지 아군인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아군이 적군에게 포위당하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한 가지 묘안을 착상해 내었다. 제주 사투리는 특유해서 전국에서는 아무도 모를 것으로 추측되었기에 사투리로 말을 건네어서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적군으로, 사투리로 대답이 있으면 아군임을 확인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어느 캄캄한 밤이었다. 우리 해병이 바위 틈에 포복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서 인기척이 났다.
“무싱거 햄서(무엇 하고 있냐)?”
하고 소리를 지르자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 순간 우리는 집중사격을 가하고 그쪽을 점령할 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큰 실수를 저지를 뻔하였다. 앞에서 꿈틀거리는 흔적이 적군임이 분명한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사투리 신호를 보내었다.
“강생이시냐(강아지 있냐)?”
하고 말을 건네자 그쪽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호꼼도었다(한 마리도 없다)”
라는 소리가 들려오자 우리 병사들은 조용히 그쪽으로 다가설 수가 있었으며 만일 그런 신호의 예고없이 적으로 오인하고 공격했더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아찔한 감회에 잠겨 보기도 했다.
우리 해병대 주력부대의 대원들은 거의 제주도에서 혈서지원한 학도병과 현직 교사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서로의 암호를 예약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즉석에서 피아를 구별할 수가 있었다.
어느 전우가 말한 것처럼 귀신도 모를 암호가 펼쳐진 것이며 훗날 귀신 잡는 해병이란 호칭도 이 전투의 승전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